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더 큰 사명을 주시는 주님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이더라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마가복음14:53-54)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여기서 “그들”은 요한복음 18장 12절에 의하면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잡아 결박하여”(12절) “끌고”간 “대제사장”(마가복음14:53)은 바로 “안나스”로서 그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었습니다(요한복음18:13).
(a) 여기서 “가야바”는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대제사장으로서(마태복음26:57)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였습니다(요한복음18:14).
(b) 그 대제사장의 집에는 이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있었던 것(마가복음14:53)을 보면 예수님을 체포한 주동 세력은 대제사장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안나스는 A.D. 15년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에 의해 대제사장직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안나스는 대제사장직을 종신직으로 여기던 유대인들에게는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추앙받았고 가야바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안나스는 명예 대제사장으로서 그 일가 중에서 세력의 우두머리를 차지하고 있어 현재 대제사장직으로 있는 자기의 사위 가야바를 통하여 실질적으로 굉장한 세력을 계속 갖고 있었다. 이처럼 유대 전통에 따라 대제사장직을 종신직으로 맡고 있으면서 유대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자들은 예수를 죽이는데 함께 공모해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호크마).
(2)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마가복음14:54)하고 마가는 기록하였는데 마태는 베드로가 그리한 이유는 “그 결말을 보려고”[(현대인의 성경)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려고”]하고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는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누가복음22:54하-55)하고 기록하였고, 요한은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요한복음18:15-16)하고 기록하였습니다.
(a) 요한복음 18장 15-16절 말씀에 의하면 베드로 외에 “다른 제자”도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다른 제자”는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어서 문지키는 여종에게 아무런 저지를 받지 않고 문을 통화했을 뿐만 아니라 문 밖에 서 있었던 베드로도 문지키는 그 여종에게 말하여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b) 왜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갔었던 것일까요? 요한복음 18장 10절에서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쳐서 잘라 버렸듯이 예수님을 구출하거나 복수하기 위해 따라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혼자서 그들의 손에서 예수님을 구출한다는 것은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는 스승인 예수님의 신변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걱정이 되어 따라왔을 것입니다.
(i) 그러나 여기에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13:38)는 말씀을 이루려는 주님의 섭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문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18:16)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따라오기는 했지만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신분이 드러날 경우 자기의 신변에 위험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감히 들어가려고 시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거기에는 자기의 칼에 상처를 입었던 대제사장의 종(10절)도 있었을 것이므로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을 것입니다(호크마).
(3) 대제사장의 집 뜰안까지 들어간 베드로는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마가복음14:54)고 마가는 기록하였는데, 요한은 “그 때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요한복음18:18)하고 기록하였습니다.
(a) “그 때 여종 하나가 앉아서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를 유심히 보더니 '이 사람도 그와 한패예요'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여자야, 나는 그를 모른다.' 하고 딱 잡아떼었”는데(누가복음22:56-57, 현대인의 성경) [(마가복음14:68,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베드로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당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단 말이오!' 하고 부인하며 현관으로 나갔다. 그러자 닭이 울었다”] 그 “여종 하나”는 “이 문지기 여종”(요한복음18:17,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이것이 바로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13:38)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베드로의 첫 번째 예수님을 부인함).
(b) “조금 후에 또 어떤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그들과 한패지요?' 하자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니야' 하고 말하였다”(누가복음22:58, 현대인의 성경)고 누가는 기록하였고, 마태는 “베드로가 정문으로 나갈 때 다른 여종이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베드로가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니까요.' 하며 딱 잡아 떼었다”(마태복음26:71-72, 현대인의 성경)고 기록하였습니다(베드로의 두 번째 예수님을 부인함).
(c) “잠시 후 거기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당신 말씨를 보니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하자 베드로는 만일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하면서 '나는 정말 그 사람을 모릅니다.' 하였다. 바로 그때 닭이 울었다”(마태복음26:73-74, 현대인의 성경)하고 마태는 기록하였고, 마가는 “잠시 후 거기 섰던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당신도 갈릴리 사람인 걸 보니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하자 베드로는 만일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하면서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이 사람을 정말 모릅니다.' 하였다. 바로 그때 닭이 두 번째 울었다”(마가복음14:70-71, 현대인의 성경)하고 기록하였습니다(베드로의 세 번째 예수님을 부인함).
(i) 흥미로운 점은 누가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째 부인한 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닭이 곧 울었다. 주님께서 몸을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자 그는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한없이 울었다”(누가복음22:60-62,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제가 잊을 수 없는 말씀은 “주님께서 몸을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자 …”하는 말씀입니다.
· 저는 이 말씀의 장면을 상상해보곤 합니다. 멀찍이 예수님을 뛰따라갔던 베드로(54절, 현대인의 성경)가 예수님께서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요한복음13:38)하고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주님께서 몸을 돌이켜 자기를 보셨을 때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만일 그리했다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도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들이 흩어질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살아나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마가복음14:27-28,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린다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29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바로 오늘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하셨고, 그러나 베드로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하고 큰 소리로 장담하였기 때문입니다(30-31절, 현대인의 성경).
(d) 저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을 때 그가 종들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고 있었을 때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었다(요한복음18:18)는 말씀을 묵상할 때 요한복음 21장 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숯불”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숯불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고 떡도 있었을 때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기 때문입니다(15, 16, 17절). 그러신 후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태복음4:19)하고 말씀하셨던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한복음21:15), “내 양을 치라”(16절), “내 양을 먹이라”(17절)하는 더 큰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i) 결국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신 후 더 큰 사명을 주시사 오순절 날 베드로로 하여금 성령이 충만하게 하시사(사도행전2:4, 현대인의 성경)[참고: 그 때 “혀처럼 생긴 불이 나타나더니”(3절, 현대인의 성경)] 그로하여금 주님의 사명을 완수케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