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고 하기에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뜰을 거니실 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소?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도 한 가지 묻겠는데 너희가 대답하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에게서 왔느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왔느냐? 말해 보아라”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만일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할 것이고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자니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으므로 백성들이 두렵다”[“… 그들이 우리를 돌로 칠 것이다”(누가복음20:6, 현대인의 성경)]하고 서로 의논하다가 “우리는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11:27-33, 현대인의 성경; 참고: 마태복음21:23-27; 누가복음20:1-8).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고 생각하게 됩니다:
(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뜰을 거니실 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소?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하고 따져 물었다(마가복음11:27-28, 현대인의 성경)하는 말씀을 묵상할 때 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권한”에 대하여 2개 질문들을 던졌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어쩌면 그들은 산헤드린의 대표자들로서 예수님의 권위를 문제삼은 이유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산헤드린을 공식적으로 도전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호크마)[여기서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들의 최고 법원을 말하는 것으로서 최고 의장은 대제사장으로 그 구성원은 대제사장, 장로들, 서기관들(율법학자들) 중에서 선출되었습니다(인터넷).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앞장섰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인터넷)]. 또한 그들의 숨겨진 의도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스스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자라고 하는 선언을 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었습니다(호크마). 이러한 유도 질문의 의도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었습니다(마태복음22:15, 현대인의 성경).
(a) 그들의 두 유도 질문인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소?”와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마가복음11:28, 현대인의 성경)는 예수님의 권한이 신적인 것이냐 혹은 인간적인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호크마). 만일 예수님의 권한이 신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므로 예수님은 신성모독죄를 범하는 것이고, 만일 예수님의 권한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산헤드린을 공식적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공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산헤드린에서 예수님에게 공적인 권한을 부여한 사실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호크마).
(2)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던진 2개 질문들에 답변을 하시기보다 “나도 한 가지 묻겠는데 너희가 대답하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겠다”하고 말씀하신 후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에게서 왔느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왔느냐? 말해 보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가복음11:29-30,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예수님에게 2개 질문들을 던졌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한 가지 질문만 던지셨는데 그 한 가지 질문이란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에게서 왔느냐, 아니면 사람에게 왔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세례 요한은 그의 사역을 통해 참된 예언자로 대중적인 인정을 받았었고 그는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1:29-37; 3:26-30)(호크마).
(a)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의 입장에서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답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은 세례 요한을 믿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이 선포하고 있었던 예수님이 메시아(그리스도)라는 진리도 믿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b) 그렇다고 그들은 세례 요한이 사람에게서 왔다고 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참 선지자(예언자)로 여기고(인정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백성들이 자신들을 돌로 칠 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c) 그래서 그들은 “서로 의논”(마태복음21:26, 현대인의 성경)하였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권위에 정면 도전한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의 반격을 받아 스스로 딜레마(dilemma)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호크마). 그래서 그들은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계속해서 연구(호크마)한 결과 “우리는 모르겠소”하고 예수님에게 대답하였습니다(마가복음 11:33,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33절, 현대인의 성경).
(3)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창세기 3장 1-3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와는 아예 뱀의 말을 듣지도 말고 뱀과는 말을 섞지도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교활한 뱀이 다가와 “하나님이 정말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1절, 현대인의 성경)고 물어도 답변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예 그 자리를 피했어야 했습니다.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요셉은 그리했습니다. 그가 섬기고 있었던 애굽 왕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인 보디발(1절)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에게(10절) 눈짓을 하며 동침하기를 청해도(7절) 요셉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10절). 그 뿐만 아니라 요셉은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10절).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을 때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고 그 여인만 있었습니다(11-12절). 그 때 그 여인이 요셉의 옷을 붙들고 자기와 함께 잠자리에 들자고 하니까 요셉은 자기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버려든 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요셉처럼 이래야 하는데 성경 잠언 7장에 나오는 지혜 없는 어리석은 젊은이처럼(7절)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 쪽으로” 간 것처럼(8절) 하와는 멀리해야 할 선악과를 가까이 가서 보았을 뿐만 아니라[“그 열매를 따 먹”을 정도의 거리였다면(6절)] 멀리해야 할 뱀을 가까이 하여 뱀의 말을 들었습니다(창3:1ff). 그 뿐만 아니라 하와는 뱀과 말을 섞었습니다. 그 자리를 피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뱀의 말을 듣지 말고 아예 무시해 버리고 그 곳을 떠났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탐심 가운데 뱀의 말을 중요시하고 있었다고 증거입니다.
(a) 신명기 5장 27절을 보면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처럼 저 또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을 다 들어야 하는데 저는 그 말씀에 불순종하고 오히려 사탄의 말 듣기를 더 속히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이미 저는 저의 생각의 영역에서 사탄의 거짓말과 섞고 있을 때가 참 많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생각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님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어야 하는데 불쑥불쑥 자꾸만 사탄의 달콤한 귓속말이 생각날 때가 참 많습니다. 왜 이렇게 나는 사탄의 미혹의 말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볼 때 그 원인은 제 자신에 욕심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제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입니다(약1:14). 그 결과 진리를 떠나(5:19) 시험을 받아(1:14)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이 여겨주시사 회개의 은총을 날마다 베풀어 주시길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의 귀를 열어주시사 “주 음성 외에는 참 기쁨”이 없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주 음성 외에는”(새찬송가 446장)]. 그러므로 제가 더 이상 사탄의 달콤한 속삭임을 은근히 좋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좋아하며 그 들은 말씀을 순종하는 기쁨을 더욱더 맛보는 주님의 제자가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