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기도의 집”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아니면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라고 말씀하실까요?
예루살렘에 이르시자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거기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시고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무도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내 성전은 모든 민족의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하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11:15-17, 현대인의 성경). 성전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뚝발이들이 예수님께 나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마태복음21:1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로 생각하게 됩니다:
(1)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거기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시고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마가복음11:15,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거기서”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이방인의 뜰’을 가리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지성소가 있는 건물과 안뜰, 바깥뜰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성전의 안뜰은 유대인에게만(여인의 뜰 포함), 그리고 바깥뜰, 즉 이방인의 뜰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요세푸스의 고대사에 의하면 이방인의 뜰에는 회당 같은 기능을 하는 모임 장소도 있었고, 이방인의 뜻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율법을 토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인터넷).
예루살렘 성전의 뜰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a) 유대인 남자들의 뜰과 (b) 유대인 여인들의 뜰, 그리고 (c) 이방인의 뜰입니다. 성전의 뜰들 중 가장 주변부에 있던 곳이 이방인의 뜰이었고 이곳은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 할례는 받지 못한 자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인터넷). 그런데 이 이방인의 뜰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비싼 권리금을 받고 상인들에게 자리를 나누어 준 것입니다(인터넷). 칼빈(J. Calvin)에 의하면 성전에서 물건을 파는 행위는 제사장들에 의해서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상인들은 장사할 장소를 얻기 위하여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는데, 이 돈 중의 일부는 최종적으로 제사장 가야바와 안나스의 돈궤에 들어가게 될 것이었기 때문 따라서 이 소매 상인들과 제사장들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그들의 상행위는 제사장들의 묵인과 권장 아래서 점차 커져갔는데, 특히 큰 명절 때에는 부당하게 가격을 매겨서 비싸게 물건을 파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고 합니다(호크마).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것(마가복음11:15, 현대인의 성경)은 대제사장 등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호크마). 그리고 예수님께서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다(15절, 현대인의 성경)고 말씀하고 있는데 출애굽기 30장 13절과 레위기 27장 3절 말씀에 의하면 속죄제물의 값으로 다른 나라의 돈을 가져오는 것은 불법이었고 돈 바꾸는 자들은 로마와 헬라의 표준화폐를 성전의 화폐로 바꾸어 주었는데 이 화폐로 그들은 반 세겔(shekel)의 성전세를 바쳐야 했다고 합니다(17:24-27)(호크마). 그리고 예수님께서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마가복음11:15, 현대인의 성경)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비둘기는 문둥병자가 치료를 확증 받기 위해서(14:22) 또는 여인이 해산한 후 정결례를 행하기 위한 속죄제물로(레 12:6-8) 이용되었고 소나 양과 같은 제물을 드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대신 드리는 제물이었으며(레 5:7) 주로 여인들에 의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호크마). 결국 이러한 제도를 악용하여 당시 제사장들이 매매하는 자들과 결탁하고 그곳에서 사는 짐승들만 바칠 수 있도록 허락하여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고 합니다(인터넷).
(2) 예수님은 아무도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하셨다(마가복음11:16,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왜 예수님께서 그리하셨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제사와 관계된 기구를 이동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은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성전 제사를 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모이는 이유가 성전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인데 이것을 금해 버리신 것입니다”(인터넷). 그 이유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내 성전은 모든 민족의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말씀하셨다”(17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말라기 1장 10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현대인의 성경) “너희가 내 단에 쓸데없이 불을 놓지 않도록 너희 중 하나가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멸시하였고(6절) 또한 주님을 더럽게 하였기 때문입니다(7절). 그러고도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6, 7절).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범하고 있었던 죄를 깨닫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지도 않았으면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6절).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단에 “더러운 떡을 드렸습니다(7절).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깨끗한 제물”(11절)을 드리기 보다 눈먼 것, 병든 것(8, 13절),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으로 희생 제사 고기를 드렸습니다(13절). 곧, 그들은 하나님의 상을 더럽혔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렵혔습니다(12절).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궤사과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며(2:10-11)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였습니다(11절).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며(11절) 자기 짝이요 맹약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했습니다(14절). 한 마디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고도 자기들이 그렇게 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17절).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완악한 말로 대적하였습니다(3:13). 그들의 완악한 말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는 말이였으며 또한 ‘하나님 앞에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14절). 그리고도 그들은 하나님께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라고 말하였습니다(13절). 그러면서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무수한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 나는 …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이사야1:10-14).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말라기1:1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이상 헛되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우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0절). 주님의 사랑을 모르고(2절), 주님을 공경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고(6절), 주님을 더럽게 하는(7절)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을까요? (10절)
(3)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 집(“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마가복음11:17, 현대인의 성경)하신 말씀을 묵상할 때 예레미야 7장 10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희 눈에는 나의 성전이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나는 너희가 행하는 일을 다 지켜보았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성전”(4절)이라고 믿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너희 눈에는 나의 성전이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고 말씀하신 이유는 유대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10절).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은 이방인과 고아를 압제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며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6절),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는 것(9절)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증한 일들을 행하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은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면서(10절) 계속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일이었습니다(6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사람들은 무지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전 안에 들어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면서 자기들은 구원을 얻었기에 안전하다고 말한 후(4절, 현대인의 성경) 성전 밖에 나아가서는 계속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가증한 일들을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성전 입구에 서서 그 유대인들에게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3, 5절)고 선포케 하신 것입니다(2절).
과연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고 있나요? 혹시 지금 우리는 교회 안에서와 밖에서의 삶이 너무 다르지 않나요?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교회 밖에서는 예배의 삶을 살기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온갖 가증한 일들을 행하고 있지 않나요? 지금 우리는 교회 밖에서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고 있지 않나요? (9절). 하나님 보다 돈을 더 믿고 사랑하고 있지 않나요? (참고: 마태복음6:24) 지금 우리는 한번 구원을 받았으면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지 않나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그 은혜의 힘으로 더욱더 주님의 일에 수고하기보다(고린도전서15:10) 하나님 보시기에 이 모든 가증한 일을 계속해서 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면서도 지금 우리는 주일 주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나요? (예레미야7:10) 이러한 보상심리적인 주일 행함(쇼?)으로 우리는 위안과 힘(?)을 얻어 세상에 나아가 다시 또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지 않나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다”, “너희는 무가치한 제물(헌금?)을 더 이 이상 가져오지 말아라. 너희가 분향(찬양?)하는 것도 나는 싫어졌다”, “그것이 오히려 나아게 짐이 되어 내가 감당하기에도 지쳤”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으시지 않을까요? (이사야1:11-15) 과연 지금 주님이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기도의 집”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아니면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라고 말씀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