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시는 주님
“선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은 “한 사람” (마가복음10:17, 현대인의 성경) 또는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하고 물은 “한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 네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켜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19:16-17,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그 청년은 “어느 계명입니까?”하고 예수님께 여쭸고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마가복음10:19)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19:19,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그는 ‘선생님, 저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마가복음10:20, 현대인의 성경) “아직 저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하고 말했습니다(마태복음 19:20, 현대인의 성경). “그때 예수님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는 재산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 버렸다”(마가복음10:21-22,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한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는데(마태복음19:16,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에베소서 2장 8-9절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행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선행으로 구원(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영원한 생명)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참고: 로마서 6:23,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왜 그 청년은 예수님께 잘못된 질문을 던졌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때 어쩌면 그 이유는 그는 “어려서부터”(마가복음10:20) 모세의 십계명(비록 19절 현대인의 성경에는 5, 6, 7, 8, 9계명과 10계명대신 “남을 속여 빼앗지 말아라”고 말씀하고 있지만)을 지키므로 구원(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맞다면 갈라디아서 2장 16절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되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사람은 없습니다.”
(2) 왜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에게 “… 네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켜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마태복음19:17, 현대인의 성경)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이 “완전한 사람”(21절, 현대인의 성경)이 되길 원하는 마음을 아셨기 때문에 그리 말씀하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호크마에 의하면 “그 청년이 목표로 삼고 있는 영생에 이르는데 조금도 핍절함 없는 완벽한 상태, 즉 절대적인 자기 부인(self-denial)과 철저한 순종 및 완전한 자기 의뢰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호크마).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네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켜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로 하여금 사람이 계명은 완전히(온전히) 지켜서 “영생에 이르는데 조금도 핍절함 없는 완벽한 상태”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3) 그 청년은 예수님께 “어느 계명입니까?”하고 여쭸고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마가복음10:19)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다”하고 말씀하신 것(마태복음19:19, 현대인의 성경)을 묵상할 때 두 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있습니다:
(a) 첫 번째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6가지 계명(마가복음 10:19) 중에 5계명은 모세의 십계명 중 5, 6, 7, 8, 9계명인데(누가복음 18장 20절은 이 다섯 계명만 기록하였음) 나머지 하나인 “속여 빼앗지 말라”[“남의 속여 빼앗지 말아라”(현대인의 성경)]는 10번째 계명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출애굽기 20:17)과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속여 빼앗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혹시 그 이유가 그 청년이 남을 속여 빼앗아서 재산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물론 그 청년은 예수님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20절)하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온전”히(완전히)(마태복음19:21) 지키지 못했던 것을 완전하신 예수님은 아시고 “속여 빼앗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셨을까요?
(b) 두 번째 흥미로운 점은, 마태복음 19장 19절에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지키라고 말씀하신 6계명 중에 10번째 계명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출애굽기20:17)는 말씀이나 마가복음10장 1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속여 빼앗지 말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참고: 마태복음 22:39, 현대인의 성경)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그리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0장 19절에서나 마태복음 19장 18-19절에서 말씀하신 모세의 십계명 중 5계명은 실제로 예수님의 이중 계명 중 두번째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에 다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십계명 중 1-4번째 계명은 예수님의 이중 계명 중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태복음22:37)로 말씀하셨고, 5-10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39절)로 말씀하셨음].
(4) 그 청년은 예수님께 ‘선생님, 저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마가복음10:20, 현대인의 성경) “아직 저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하고 말했다(마태복음 19:20,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왠지 그 청년은 “완전한 사람”(21절, 현대인이 성경)이 되려고 했으면서도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인지,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예수님께 “아직 저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하고 여쭌 것 같습니다. 불완전한 사람이 계명을 다 지켰다 한들 완전하신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부족함이 많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족한 은혜(참고: 고린도후서12:9)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시편23:1, 새 번역)는 고백을 할 수도 없습니다.
(5) “그때 예수님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는 재산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 버렸다”(마가복음10:21-22,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나눠서 생각하고 싶습니다:
(a)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셨다는 말씀이 은혜가 됩니다. 그 이유는 동일하신 주님이 저 같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미련하고 어리석고 죄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누가복음 6장 3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너희가 무슨 칭찬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b)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라”(마가복음10:21,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신 것 또한 은혜가 됩니다. 그 이유는 동일하신 주님께서 저의 부족함을 수 없이 알려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이유는 그래야 제가 조금이나마 겸손히 주님을 찾게 되며[(참고: 시편 34:10, 현대인의 성경) “젊은 사자들은 먹이를 잃고 굶주릴 수 있으나, 주님을 찾는 사람은 복이 있어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더욱더 사모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족한 은혜로 말미암아 나의 목자되신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살게 될 때 저는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시편23:1, 새 번역)고 믿음으로 고백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대로 살아드릴 때 저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나눔의 삶’을 살게하시는 은총을 누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c) 이 땅에 사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서 사는 것은 제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저는 지금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삶을 살고자 좀 애쓰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누는 삶은 거의 애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1주일에 한번 형 선교사의 노숙자 사역에 아내와 함께 샌드위치 하는데 다입니다. 제 마음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너무나 결핍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d) 그 청년은 재산이 많으므로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 버렸다(마가복음10:22,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결국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를 포기 또는 거부하고 자기 재산을 지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한편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적어도 그 청년은 주님과 재물은 함께 섬기기 않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 가운데에는 주님을 선택하든 재물을 선택하든 그렇게 하지 않고 주님과 재물 사이에 머뭇머뭇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열왕기상 18장 21절 새 번역 말씀이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재물/돈)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