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선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마가복음10:17-18, 현대인의 성경; 참고: 마태복음 19:16-17; 누가복음10:25).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오늘은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1) 저는 하나님은 항상 선하신 줄 믿습니다. 시편 136편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선하신 줄 믿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 믿습니다(로마서 8:28). 여기서 “모든 것”이란 좋은 것이나 좋지 않는 것을 말씀하는데 그 예로 좋은 것이란 “영광”이요 좋지 않은 것은 “고난”입니다(17절). 즉, “모든 것”에는 “영광”과 “고난”이 있습니다. 여기서 “영광”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고 고난은 “현재”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28절)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여기서 “고난”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고 하는 “환난아니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35절)로서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는(36절)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고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데 여기서 “선”이란 최고/최상의 선으로서 구원의 최종 목표입니다(옥한흠). 그 구원의 최종 목표는 우리의 “영화”입니다(28절). 그 “영화”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앉게 해 주셨습니다”입니다(엡2:6,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롬8:28)을 이미 “영화롭게 하”시사(30절) 우리를 “하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앉게 해 주셨”고(엡2:6, 현대인의 성경)[“이미”(Already) 관점] 또한 “장차”(롬8:18)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아직도”(Not-yet) 관점](김창세).
(4) 저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다. 시편 34편 8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이 말씀은 약 28년 전에 저와 제 아내가 하나님께 결혼 예배를 드리고 있었을 때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저로 하여금 생각나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때 저는 약 6개월 전에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6개월이 지나서 결혼하게 되었는지 마치 video처럼 제 머리에 여러 기억들이 떠올랐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성령님께서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맛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참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다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3555506411)].
(5) 저는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줄 믿습니다(시편 23:6). 우리 하나님은 선하십니다(시편 86:5).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도 선하십니다(로마서 12:2). 하나님께서는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8:28).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함께하시므로(느헤미야 2:8, 18)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반드시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야합니다(시편 34:8). 이렇게 하나님의 선하심이 정녕 우리를 따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시편 23: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일서 4:8, 16). 하나님 우리를 창세 전에 먼저 사랑하셨습니다(19절; 로마서 8:29; 에베소서 1:4).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셔서(에베소서 1:4)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고자(요한복음 3:16)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갈라디아서4:4)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므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정하셨습니다(로마서 5:8). 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인자하심)이 정녕 우리를 따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시편 23:6).
(6) 그러므로 저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147편 1절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성도는(시편 34:8)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로마서 8장 28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한 역사(일)를 경험한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God is so good)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비록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슬픔 가운데 있는 모습을 볼지라도 소망되신 주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서도 그의 선하심을 나타내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돌이키시사 기쁨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https://youtu.be/EQpiiI1Hd64?si=dTlM3tbNuz8tQUPi
(7) 그리고 저는 언제나 선을 추구하며 살고 싶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누구에게나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여러분 자신과 모든 사람을 위해 언제나 선을 추구하십시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저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로마서 12:21). 바울은 누구에게나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5:15). 저는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의 삶 속에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악을 행해서는 아니됩니다. 그 이유는 저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2:10). 성경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베드로전서3:9). 또한 바울은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고 말씀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5:15). 요셉은 그의 형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어 나아가심을 깨달았기에 자기를 죽이려고까지 한 형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기르겠다고 간곡한 말로 위로했습니다 (창세기 50:20-21).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에(시편34:8) 자기를 해아려고 한 형들에게도 선을 베풀수가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