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중요성 

 

 

예수님의 소문이 널리 퍼져 헤롯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그가 기적을 행하는 이런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하고 말했고 헤롯도 “내가 목 베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하였습니다(마가복음 6:14-16, 현대인의 성경). 그들의 입장에서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기적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은 물론 구약 성경에 엘리야 선지자(15절)도 있었지만 근래에 있었던 사람은 바로 세례 요한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헤롯 왕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를 자기가 목 베어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했을 때 헤롯 왕은 살아생전의 세례 요한과의 기억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기억이란 헤롯이 전에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일로 세례 요한이 자기에게 “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것은 잘못입니다”하고 말한 책망입니다(17-18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 하였지만 헤롯이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겨 두려워하며 보호하였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었습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흥미로운 점은,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의 말을 들을 때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그의 말을 즐겨 듣고 하였다는 것입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자기의 잘못을 책망한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그의 말을 즐겨 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런 와중에 “마침 헤로디아에게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그 “좋은 기회”란 “헤롯이 자기 생일날에 고관들과 고위 군지휘관들과 갈릴리의 귀빈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 춤을 춰서 헤롯과 참석한 손님들을 즐겁게 하자 왕은 소녀에게 '네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하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헤로디아의 딸이 자기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무엇을 요구할까요?”하고 물었던 것입니다(21-24절, 현대인의 성경). 수시로 우리를 노리는 헤로디아와 같은 사탄의 종들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공격하여 넘어트리고 또한 헤아려고 그들 나름대로 “좋은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리오 왕 시대 때 총리 세 명이 있었는데 다른 두 총리들이 총명하여 모든 면에 도지사들과 다른 총리들보다 뛰어났던 다니엘 총리를 국사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잘못한 점을 찾아 그를 고발하려고 했었습니다(다니엘6:1-4, 현대인의 성경). 창세기 4장 7절 하반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 그러나 네가 옳은 일을 하지 않으면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을 것이다. 죄가 너를 다스리고 싶어하여도 너는 죄를 이겨야 한다”(현대인의 성경).

 

자기에게 와서 “무엇을 요구할까요?”하고 묻는 딸에게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하여라”하고 대답했고 그 딸은 “급히 왕에게 가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지금 곧 제게 주십시오”하였습니다(마가복음 6:24-25,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부분의 말씀을 묵상할 때 성경 에스더서에서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에게 세 번이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에스더5:3), “그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6절),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7:2). 그런데 에스더란 여인과 헤로디아란 여인이 얼마나 대조가 됩니까. 간략하게, 에스더는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 딸이고, 헤로디아는 악한 사탄의 간악한 딸입니다! 이 간악한 사탄의 딸인 헤로디아에게 지배를 받고 조정을 받아 엄마가 하라는 데로 절대복종하는 헤로디아의 딸을 생각할 때 참으로 불쌍하고 불쌍한 딸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러한 엄마와 딸 관계 속에서 몹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딸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지금 곧 제게 주십시오”란 요구를 들은 헤롯 왕은 몹시 괴로워했으면서도 자기가 한 약속과 잔치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 때문에 소녀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결국 즉시 사형 집행인을 보내며 요한의 목을 베어 오라고 명령하자 그는 감옥에 가서 요한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었으며 그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갖다 주었습니다(25-28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세례 요한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였습니다(29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부분의 말씀을 묵상할 때 약속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헤롯 왕은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헤로디아의 딸에게 한 약속을 거절하지 못하고 지켰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잔치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26절, 현대인의 성경). 그렇지만 헤롯은 “요한의 말을 들을 때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그의 말을 즐겨 듣곤 하였”었거든요(19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그가 즐겨 듣고 하였던 요한의 말을 들을 때 몹시 괴로워하였던 것하고, 헤로디아의 딸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지금 곧 제게 주십시오”한 말을 들을 때 몹시 괴로워하였던 것하고 비교를 하면 결국 세례 요한을 통하여 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딸인 헤로디아의 말을 그녀의 딸을 통해서 들은 말로 인해 헤롯 왕은 더 몹시 괴로워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사탄의 말에 순종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헤롯 왕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의 아비인 사탄의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헤롯 왕처럼 몹시 괴로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책망을 받아 양심에 찔린바 되어서 몹시 괴로워하는 가운데서 그 말씀을 순종하기보다 오히려 반대로 사탄의 거짓말을 듣고 몹시 괴로워하는 가운데서 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따를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를 정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