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호와께 간청한 한 가지 일을 구하리니 ..."

 

“간청”이란 단어의 단순한 의미는 “간절히 청하다”입니다(인터넷).  마가복음 5장을 읽다보니 “간청”이란 단어가 5번 나옵니다: (1)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에게 자기들을 거라사 지방에서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간청(10절, 현대인의 성경), (2)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께 “우리를 돼지 때에게 보내 그 속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12절), (3) 거라사 지방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그 지방을 떠나 달라고 간청(17절, 현대인의 성경), (4) 귀신 들렸다가 예수님께 치유받은 사람이 예수님에게 같이 가게 해 달라고 간청(18절, 현대인의 성경), (5)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어 갑니다.  제발 오셔서 손을 얹어 살려 주십시오”하고 간청(22-23절, 현대인의 성경).  이 5번의 “간청”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들의 2번의 간청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결과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갔는데 거의 2,000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가파른 비탈로 내리달려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은 영인 귀신들이 아니라 영혼이 없는 돼지 떼였습니다.  왜 그 수많은 귀신들[이름이 “군대”임.  그 이유는 수가 많기 때문임(9절, 현대인의 성경)]이 그 거라사 지방(1절, 현대인의 성경)에서 자기들을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예수님께 간청을 했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들에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2절)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심으로(8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 그 수많은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그들의 간청대로 거의 2,000마리나 되는 돼지 떼 속에 들어가 그 수많은 돼지들이 다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흥미로운 점은 그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은 공동 묘지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3절, 현대인의 성경).  이 사실이 왜 흥미롭냐면 더러운 귀신들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 속에 있으면서 죽은 사람들이 있는 공동 묘지에서 살다가 결국 예수님께 간청하여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그 돼지들이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더러운 귀신들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2)   거의 2,000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에 빠져 죽는 모습을 본 돼지를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이 일을 말하자 사람들이 일어난 일을 보려고 모여들었고 그들은 전에 군대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맑은 정신으로 예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14-15, 현대인의 성경).  그 일을 지켜본 사람들이 귀신 들렸던 사람과 돼지 떼에게 일어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자 그들이 예수님께 그 지방을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16-17절, 현대인의 성경).  왜 그들은 예수님께 그 지방을 떠나 달라고 간청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심히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15절).  이러한 두려움과 무지와 경제적 이기심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실로 그들은 자신들의 미신적 상상력과 물질적 욕심 때문에 생명의 주를 거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4:19)(호크마).  우리도 충분히 주님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 안에 두려움이 있으면 우리는 주님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말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고백한다 할지라도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성경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요한1서 4:18)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이끌림을 받는다면 우리는 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충분히 부인(deny)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을 부인(deny)하지 않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유는 꼭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뿐만 아니라 “이 세상 걱정과 재물에 대한 유혹과 그 밖에 여러 가지 욕심”(마가복음 4:19, 현대인의 성경) 때문에도 우리는 충분히 예수님을 거부하고 또한 부인(deny)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간청대로 그 지방을 떠나시고자 배에 오르셨는데 그 때 귀신 들렸다가 치유를 받은 사람이 예수님에게 같이 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지만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5:18-19, 현대인의 성경).  귀신 들렸다가 치유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싶었던 것입니다[(18절, 공동번역)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예수를 따라다니게 해달라고 애원하였지만”].  아마도 그 이유는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길을 같이 가면서 자기 몸을 다 바쳐 주님을 섬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호크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의 간청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어서 집으로 돌아가 주님께서 행하신 큰 일과 어떻게 너를 불쌍히 여기셨는가를 가족에게 알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는 곧 가서 예수님이 자기에게 행하신 큰 일을 데가볼리 지방에 알리자 듣는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습니다(20절, 현대인의 성경).  귀신들의 간청은 허락하시고 귀신들렸다가 치유받은 사람의 간청은 허락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로마서 9장 20-21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데 감히 하나님께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만들어진 물건이 그것을 만든 자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토기장이가 같은 흙으로 귀하게 쓰일 그릇과 천하게 쓰일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습니까?”(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그저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명령에 곧장 순종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우리도 귀신들렸다가 치유 받은 사람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큰 일과 어떻게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는가를 우리 가족에게 먼저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우리 교회 식구들과 친구들과 주위에 형제와 자매들에게 다 알려야 합니다.

(4)   저는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어 갑니다.  제발 오셔서 손을 얹어 살려 주십시오”하고 간청(마가복음 5:22-23, 현대인의 성경)한 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합니다.  그 이유는 저도 제 첫째 아기 주영이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죽어가고 있었을 때 주님께 기적을 베푸셔서 살려 주시길 간구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사랑하는 자녀가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 성령님께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된 사도 베드로의 간구를 생각나게 하시사 실제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님, 살려 주십시오”하고 간구케 하셨습니다(참고: 마태복음 14:30,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결과는 첫째 아기 주영이는 살지 못하고 제 품 안에서 죽었고(잠들었고) 또 다른 딸은 주님께서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 베드로전서 5장 10절을 성취하셨고 지금도 성취하고 계십니다: “얼마 동안 여러분이 고난을 겪고 나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친히 완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튼튼하게 세워주실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

(5)   “내가 여호와께 간청한 한 가지 일을 구하리니 내가 평생 여호와의 집에서 살며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성전에서 그를 묵상하는 일이다”(시편 27:4,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