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모든 사역(공생애)의 가장 중요한 중추(backbone)
“이른 새벽 예수님은 일어나 외딴 곳에 가서 기도하고 계셨다”(마가복음 1:35, 현대인의 성경)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하게 됩니다: (1) 어쩌면 이 말씀에 근거해서 한국 교회에 새벽기도회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 “이른 새벽”이란 ‘조용한 시간(quite time)’이라 생각합니다. 새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1절 과 후렴 가사가 생각납니다: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 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 사함을 너 받으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3)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귀하다는 생각입니다. (4) “외딴 곳”(개역개정은 “한적한 곳”)이란 ‘조용한 곳(quite place)’라 생각합니다. 마가복음 6장 3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일행은 배를 타고 조용한 곳으로 떠났다.” 우리 각자만의 조용한 곳, 즉 기도하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예수님께서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묵상할 때 헨리 나우웬이 외로운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여기서 외로움과 고독의 다른 점은 외로움은 홀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지만 고독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광야도 아닌 도시 한복판에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에서의 외로움보다 더 무서운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을 우리는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러한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을 우리는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지 못하는 무능력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화하는 대신 가까운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더 좋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사람의 음성을 듣기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사람들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간을 더 선호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에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가 고독을 즐기지 못하면서 외로움은 너무나도 싫어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좀 외로움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조용한 마음(quiet heart)으로 홀로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훈련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경험하므로 외로운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6) 예수님께서 홀로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것이 예수님의 모든 사역(공생애)의 가장 중요한 중추(backbone)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