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란 오직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의 음성만 듣고

그 말씀에 묵묵히 믿음으로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의회(공회)에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만한 증거를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실질적인 증거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와서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말한 사람입니다”하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일어나 예수님께 “이들이 네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도 왜 대답이 없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시고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복음 26:59-63,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1)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만한 증거를 잡으려고 한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의회를 생각할 때 예수님의 마태복음 20장 18절 말씀의 성취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서 나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다음”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예수님이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2)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나는 주님과 함께 감옥에도, 사형장에도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하고 말했지만(누가복음 22:33, 현대인의 성경) 도망쳐 버렸다가 다시 돌아와 예수님을 멀찍이 뒤따라 가서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려고 했지만(마태복음 26:56, 58, 현대인의 성경) 사도 바울은 그의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느낌만 들은 것이 아니라(고린도후서 1:9, 현대인의 성경)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힐 만한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사도행전 26:31, 현대인의 성경) 실제로 사형장의 죄수처럼 제일 천한 자리까지 내려갔었습니다(고린도전서 4:9,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에게 여러 가지 죄로 고소를 당했을 때 “내가 만일 죽을 죄를 지었다면 사형도 달게 받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사도행전 25:7, 11, 현대인의 성경).  사도 바울이 그리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1:9,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감옥에 갇힌 자들의 탄식을 들으시며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을 해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참고: 시편 102:20, 현대인의 성경)  (3) “많은 사람들이 와서 거짓 증언을 하였으나 실질적인 증거를 얻지 못하”였다(마태복음 26:60,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할 뿐이다”(잠언 12:17, 현대인의 성경)하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거짓 증인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그리고 비방”입니다(마태복음 15:19,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거짓 증언하는 사람은 방망이와 칼과 뾰족한 화살로 그 이웃을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잠언 25:18, 현대인의 성경).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우리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할 것입니다(참고: 시편 27:12,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우리가 알지도 못한 일로 우리를 비난할 뿐만 아니라(참고: 시편 35:11, 현대인의 성경) 우리에 대하여 허위 사실을 진술할 것입니다(참고: 잠언 24:28, 현대인의 성경).  성경은 분명히 “너희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아라”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출애굽기 20:16,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죄 없는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거짓 증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벌하실 것입니다(참고: 이사야 29:21, 현대인의 성경).  (4) 많은 사람들은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마지막 두 사람은 예수님에 대하여 실질적인 증거를 얻을 만한 증언을 했습니다.  그 증언이란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말한 사람입니다”입니다(마태복음 26:60-61, 현대인의 성경).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3일 안에 다시 세우겠다”하고 말씀하셨었습니다(요한복음 2:19,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그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나(18절) 예수님에 대하여 실질적인 증거를 얻을 만한 증언을 한 그 두 사람이나(마태복음 26:60, 현대인의 성경) 모르고 있었던 사실(진리)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은 자신의 몸을 가리킨 것이었다”(요한복음 2:21, 현대인의 성경)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야 이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22절, 현대인의 성경)].  그랬기에 그 두 사람의 증인들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유대인의 의회나 예수님을 고소한 모든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하는 죄를 범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처하는 곳인데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라고 말한 것은 성전 모독죄인 동시에 곧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죄 곧 참란죄로 보았기 때문입니다(이정현).  (5) 이렇게 두 사람이 예수님에 대하여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도 예수님을 대답을 하시지 않으시고 침묵을 지키셨습니다(마태복음 26:62-63, 현대인의 성경).  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변론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헐라고 말씀하신 성전이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 건물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가리킨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왜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신 것일까요?  이사야 53장 7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면서도 침묵을 지켰으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은 비록 아무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헨리 나우웬).   그리고 침묵이란 많은 사람들의 거짓 증언과 비난과 수군수군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는 말들을 듣는 가운데서도 오직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참고: 고린도후서 1:9, 현대인의 성경)의 음성만 듣고 그 말씀에 묵묵히 믿음으로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