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짧은 말씀 묵상
가정들의 죄악이 하늘에까지 사무쳤을 때 어쩌면 주님은 요나와 같은 목사인 저에게 그 가정들에게 가서 회개하지 않으면 그 가정들이 깨질(멸망할) 것이라고 외치라고 말씀(명령)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참고: 요나 1:2, 현대인의 성경).
만일 주님께서 요나와 같은 목사인 저에게 그리 말씀(명령)하신다면 저 같은 회피형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어떻게해서든 그 가정들에게 가지 않으려고 이런 저런 변명을 대면서 도망갈 확률이 많습니다(참고: 요나 1:3, 현대인의 성경).
불순종하는 목사는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요나와 같은 목사에게 주님은 그의 인생에 “강한 바람”을 보내시사 “폭풍”이 일게 하시므로 그의 교만한 마음을 깨트리십니다(참고: 요나 1:3-4, 현대인의 성경).
불순종하는 목사로 인해 함께 있는 교인들까지도 고통을 당합니다(참고: 요나 1:4-5, 현대인의 성경).
불순종하는 목사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성도님들은 교회의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최선을 다하는데 그 목사는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다면 그 교회는 배가 침몰하듯이 깨어지지 않을까요? (참고: 요나 1:4-5, 현대인의 성경)
불순종하는 목사는 함께 있는 불신자들에게도 충분히 피해를 줄 수가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불신자들 중에 한 사람을 통해서라도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그 목사를 책망하실 수도 있습니다(참고: 요나 1:5-6, 현대인의 성경).
불신자들은 각자 자기들이 섬기는 신에게 도와 달라고 부르짖으면서 어떻게해서든 거의 깨어지게 된 배를 살려보려고 배의 짐들을 바다에 던지고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종은 그런 때에 잠을 자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도 들이지 않고 있다면 그 불신자들의 눈에 그 목사가 어떻게 보일까요? (참고: 요나 1:4-6, 현대인의 성경)
불순종하는 목사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한 배에 탔다가 큰 위기를 접했을 때 만일 그 불신자들이 ‘누구 때문에 우리가 이 큰 위기를 접했는지 제비를 뽑아 알아보자’했다가 그 제비에 그 불순종하는 목사가 뽑혔다면 그 목사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요? (참고: 요나 1:7, 현대인의 성경)
만일 그 불신자들이 불순종하는 목사에게 ‘무슨 이유로 우리가 이 큰 위기를 접했는지 말해 보시오. 당신은 도대체 뭣하는 사람이요?’라고 묻는다면 그 목사는 뭐라고 답변을 할까요? 과연 그 목사는 ‘나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요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목사입니다’라고 답변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 목사는 그 불신자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말씀(명령)에 불순종하고 지금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고 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을까요? (참고: 요나 1:8-10, 현대인의 성경)
만일 불순종하는 목사에게 함께 있는 그 불신자들이 그의 자백을 다 듣고 나서 “당신이 어째서 이런 짓을 하였고?”라고 말한다면 그 목사의 양심에 찔림이 있을까요? (참고: 요나 1:10, 현대인의 성경)
교회란 공동체의 풍랑을 잔잔케 하기 위해선 교회의 폭풍을 만나게 된 것이 “내 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목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가정이란 공동체도 가정의 가장인 남편/아버지가 자기 탓이라는 것을 잘 알고 회개할 때만이 그 가정이 살 수가 있습니다(참고: 요나 1:12, 현대인의 성경).
만일 교인들이 불순종하는 목사도 사랑하여 은혜를 베풀므로 그 목사를 살려보려고 최선을 다할지라도 주님의 뜻이 그 목사가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라면 “점점 더 사나운 파도가” 그 교회에 “밀어닥치”게 하셔서라도 그 교인들로 하여금 그 목사를 “들어 바다에 던”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야 그 교회가 살 수 있을 것입니다(참고: 요나 1:13-15, 현대인의 성경).
불순종하는 목사를 향한 성난 교인들의 마음을 즉시 잔잔하게 하는 방법은 그 목사가 철저히 회개하는 것뿐입니다. 가정도 성난 식구들의 마음을 즉시 잔잔하게 하는 방법은 그 가정의 가장이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참고: 요나 1:15,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목사를 통해서도 그 목사와 함께 있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시사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하시사 하나님을 예배케 하실 수 있으십니다(참고: 요나 1:16, 현대인의 성경).
마치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요나를 건지시고자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신 것처럼 주님은 교회가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된 것이 자기 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불순종한 목사를 예비하신 은총으로 그를 건져주실 것입니다(참고: 요나 1:17,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내리신 바다에 큰 바람으로 인해 큰 폭풍이 바다 가운데 일어나므로 말미암아 요나 선지자가 타고 있던 배가 거의 깨지게 된 상황에서 불신자 선원들은 두려워하여 각자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도와달라고 부르짖고 있었을 때에도 배 밑층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던 요나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물고기 안에서 밤낮 3일 동안 있으면서 자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요나 1:4-5, 17; 2:1,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하나님께서는 큰 폭풍으로 인해 배가 거의 깨지게 된 상황에서도 배 밑층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던 요나를 선장의 이 말로 깨우셨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어째서 이런 때에 잠을 자고 있소? 일어나 당신의 신에게 도움을 구하시오! 그가 우리를 불쌍히 여겨 구해 줄는지 누가 알겠소”(1:6,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고난과 고통으로도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우리를 심지어 불신자의 “고래고래 소치”치는 말로도 깨우실 수 있다는 교훈을 받습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2) 우상들을 섬기는 불신자 선원들은 그 위기 가운데서도 살고자 각자가 섬기는 신에게 도와달라고 부르짖고 있었을 때에도 요나 선지자는 배 밑층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지도 않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가 결국에 가서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므로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을 일으키신 하나님께서는(1:4) 결국 요나로 하여금 “큰 물고기”(17절) 뱃속에서 요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도케 하신 것입니다(2:1).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큰 바람”과 “큰 폭풍”을 일으키셔서라도 우리로 하여금 “큰 물고기” 뱃속과 같은 상황에서라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하시고 하나님께 크게 부르짖게 만들어 주시길 기원합니다. (3) 요나가 밤낮 3일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을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도 밤낮 3일 동안 땅 깊은 속에 있으셨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마태복음 12:40). 하나님의 종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로 큰 물고기 뱃속에 밤낮 3일 동안 있었던 반면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밤낮 3일 동안 땅 깊은 속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가고 있었던 요나 선지자는 고난을 겪게 되었지만 그는 그 고통 중에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무덤과 같은 곳에서 주님의 도움을 구했는데 주님께서는 그의 음성을 들으신 것입니다(요나 1:1-3; 2:2,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1) 우리가 불순종의 결과로 고난(고통)을 겪게 될 때에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2) 우리는 무덤과 같은 곳에서도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3)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다 위에 “큰 바람”을 던지시사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을 일어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불신자 선원들과 대결하여 승리하시므로 결국 그 선원들은 요나 선지자가 원하는 대로 그를 바다에 던졌습니다(요나 1:4, 12-15). 그런데 요나 선지자는 “큰 물고기”(17절)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2:1) “주께서 나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셨”다고 말했습니다(3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큰 바람을 “바다 위”에(1:4) 던지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요나 선지자를 “바다 깊은 곳”(2:3, 현대인의 성경)에 던지셨다는 사실을 흥미롭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바다 위”에 “큰 폭풍”으로 인해 두려워하며 우왕좌왕하기보다 “바다 깊은 곳”에서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께 부르짖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도망을 가고 있었던 요나 선지자에게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사 바다 가운데 “큰 폭풍”이 일어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셨으므로 물이 그를 두르고 주님의 “큰 파도”가 그를 덮치게 하셨습니다(요나 1:4; 2:3, 현대인의 성경). 결국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신 하나님(시편 95:3)께서 “그의 크신 사랑”으로(106:45, 현대인의 성경) 요나를 사랑하시사 그로 하여금 “큰 물고기”(요나 1:17)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께(2:1) 부르짖게하시되(2절) 그를 바다 깊은 곳에서 “큰 물”이 그를 두르게 하시고 주님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그의 위에 넘치게하시므로 그로 하여금 주님의 성전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3-4절). 비록 우리가 어리석은 요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우리 인생에 “큰 바람”이나 “큰 폭풍”이나 “큰 파도”나 “큰 물결”같은 위기가 몰아닥쳐 마치 우리가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간 느낌이 들지라도 우리는 그 깊은 곳에서라도 저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빠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 앞에서 쫓겨났다는 생각(느낌)이 들지라도(참고: 4절) 우리는 다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던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1) 욥바로 ‘내려갔고’ (2) 다시스로 가는 배에 ‘내려갔으며’ (요나 1:3) (3) 배 밑층까지 ‘내려갔다가’(5절) 결국에 가서는 (4) 해저의 산 밑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2:6,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불순종하였던 요나는 해저의 산 밑바닥까지 내려간 반면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셨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빌립보서2:8) 골고다 언덕 길을 올라가셔서 결국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신명기 21:23; 갈라디아서 3:13)까지 올라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을 최고로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든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립보서 2:9-11, 현대인의 성경).
“큰 물결”(요나2:3)이 우리를 덮쳐 우리가 “바다 깊은 곳”(5절) 또는 “해저의 산 밑바닥까지 내려가 죽음의 땅에 갇혀 있”을지라도(6절) 우리는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4절) 그 무덤과 같은 곳에서도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므로(2절, 현대인의 성경) 주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죽음에서 구해 내시는(6절, 현대인의 성경) 큰 구원의 은총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길 기원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서서히 사라져 갈 때에도 우리는 다시 한번 주님을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참고: 요나 2:7, 현대인의 성경).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사람은 자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사람들입니다(참고: 요나 2:8).
삶 속에 큰 위기를 통하여서라도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라는 사실을 겸손히 믿음으로 인정하게 되는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죽음의 땅에 갇혀 있는 것 같을지라도 주님께 감사의 노래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참고: 요나 2:9, 현대인의 성경).
불신자 선원들을 도구로 사용하시사 요나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신 주님께서는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요나1:13-15, 17; 2:3,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주님께서는 요나로 하여금 그 큰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3일 동안 있으면서(1:17) 주님께 부르짖게 하셔서(2:2) 결국에는 그로 하여금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라고 고백케 하셨습니다(9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나서야 주님은 그 큰 물고기에게 명령하시사 그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해변)에 토해 내게 만드셨습니다(10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큰 물고기를 창주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을 잘하였는데 미련한 요나 선지자는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새 찬송가 143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 1절 가사입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마치 요나가 큰 물고기보다 못했던 것처럼 벌레보다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주님은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2절 가사).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했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현대인의 성경) “너는 저 큰 니느웨성으로 가서 내가 전에 너에게 말한 대로 니느웨 성의 멸망을 선포하라”](요나 3:1-2).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불순종한 요나에게(1:1-3)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저 같은 목사가 불순종하고 또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주님은 저에게 수 없이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시편 139편 17-18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주님의 사랑과 은혜(저에게 적용)]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했다는 말씀을 묵상할 때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예레미야33:1)는 말씀도 함께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할 때 저는 저에게 수 없이 많은 기회를 주시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그 때 그 때마다 저에게 1987년 5월 승리장로교회 대학부 수련회 때 강사 목사님을 통해 주신 오병이어(예수님께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000명 먹이신 기적)의 약속의 말씀인 요한복음 6장 1-15절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사 그 말씀으로 제 자신에게 낙심하고 실망한 저를 오뚝이처럼 일으켜주셨습니다. (3) 저는 요나에게 두 번째로 임한 하나님의 말씀(요나 3:2)을 첫 번째로 임한 하나님의 말씀(1:2)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리했을 때 하나님의 동일한 말씀(메시지)은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저는 “일어나”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 루스드라에서 태어나면서 앉은뱅이가 되어 전혀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었다는 말씀(사도행전 14:8-10)과 연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했을 때 드는 생각은 주님께서 영적 앉은뱅이인 저를 능력의 말씀으로 일으켜 주셔야 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라’는 주님의 말씀(명령)(요나 1:2; 3:2)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저에게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9-20)고 말씀하셨는데 주님께서 저를 가게 하셔야 제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는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주님의 명령인 ‘일어나 … 가라’는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못하고) 있습니다. (4) 요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과 두 번째 말씀의 차이는 이것인 것 같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요나 3:2)와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1:2). 이 두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할 때 드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로 하여금 큰 성읍 니느웨 사람들에게 선포하길 원하셨던 말씀이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그리했을 때 드는 생각은 요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과 두 번째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하나님의 동일한 말씀(메시지)는 ‘니느웨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하라’입니다(1:2; 3:2,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40일 후에는 그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3:3-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제 자신에게 반영하며 적용할 때 죄인들에게는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지 ‘축복하라’ 또는 ‘위로하라’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지 의문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서 한 바퀴 도는 데3일이나 걸리는 대단히 큰 니느웨를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40일 후에는 니느웨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요나 3:1-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첫 번째로 임했을 때 그 말씀대로 하지 않고 불순종했던 요나가 그 말씀이 두 번째로 임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는 사실에 좀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불순종하던 주님의 종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일까요? 요나서1장의 불순종하던 요나가 요나서3장에서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은 요나서2장에서 밤낮3일을 큰 물고기 뱃속에서(1:17)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기 때문입니다(2:1-2, 현대인의 성경). 그는 바다 깊은 곳에 던져진 상황에서도 다시금 주님의 성전을 바라보고(3-4절, 현대인의 성경)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였을 때 주님께서 그의 음성을 들으시고(2절, 현대인의 성경) 그의 생명을 죽음에서 구해 내셨기 때문입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한 마디로 말한다면, 불순종하던 요나가 순종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은 그가 갇혀 있었던 “죽음의 땅”(6절, 현대인의 성경) 또는 “무덤과 같은 곳”(2절, 현대인의 성경)에서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임을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9-10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일)는 불순종했었던 요나 선지자를 큰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케 하시사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임했을 때 그로 하여금 순종케 하시사 그가 전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외침을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되 짐승까지도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하여 결국 니느웨 왕부터해서 모든 사람들로하여금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게 하시사 진심으로 회개케 하신 것입니다(요나 3장). 저는 이 말씀을 제 가정과 섬기고 있는 승리장로교회에 적용할 때 한 가정의 가장이요 주님의 교회인 승리장로교회의 담임 목사로서 저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회개의 역사(일)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제가 성령의 검이요(에베소서6:17) 방망이와 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예레미야23:29)을 계속해서 듣고(받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제 양심에 찔린바가 되고(참고: 사무엘상 24:5; 사무엘하24:10; 사도행전 2:37), 제 강퍅한 마음이 부서지고 냉랭한 마음이 녹아내리므로 말미암아 진심으로 저와 우리(가정 및 교회)의 죄를 뉘우치고 모든 죄를 계속해서 버리길 기원합니다.
불순종한 요나 선지자도 사용하시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케 하시므로 놀라운 회개의 역사(일)이 니느웨 사람들에게 일어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순종하고 계시는 김창만 선교사님을 충분히 사용하시사 오하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지혜롭게 전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회개의 역사(일)과 구원의 역사(일)을 이루어 나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참고: 요나 3장).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회개의 메시지(말씀)를 듣게 하시사 모두 회개하는 마음과 진심으로 하나님께 회개 기도케 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모든 악을 버리는 신앙 생활을 하게 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참고: 요나 3장, 특히 5절과 8절과 10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떠난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셔서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요나 3:10). 그러나 요나는 매우 싫어하고 성냈습니다(분노했습니다)(4:1). 그는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3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정도로 성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혹시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수인 앗수르 사람들(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니느웨 사람들은 앗수르 사람들임)이 진정 멸망하길 원했던 것은 아닐까요? (참고: 3:4, 현대인의 성경)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디모데전서 2:4,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보다 멸망하길 원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이 세상을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시는데(요한복음 3:16) 어떻게 하나님의 종인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을 향한 재앙을 내리시려는 뜻을 돌이키신 것에 대해 그렇게 죽고 싶을 정도로 매우 싫어하고 성낼 수 있을까요?
요나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킨 데 대하여 매우 싫어하고 성내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주께서 이렇게 하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내가 급히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나는 주께서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쉽게 노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사랑이 풍성하셔서 뜻을 돌이키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요나 4:2-3,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어떻게 하나님이 뜻을 돌이킨 데 대하여 매우 싫어하고 성내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 정도로 요나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뜻을 하나님에게까지 관철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요나는 예수님의 기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기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하나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누가복음 22:42, 현대인의 성경). (2) 어떻게 요나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명령)대로 니느웨로 가지 않고(요나 1:2) 급히 다시스로 도망한 이유가 자기가 고국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니느웨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4:2,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주님의 종이란 선지자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유를 이렇게 변명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의 변명이 합리적인 것일까요? (3)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시사 바다에 던진 바 된 요나를 건져주셨고(1:17) 또한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으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요나에게(2장) 두 번째로 말씀하시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요나는 자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3:4)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악을 버리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므로(8, 10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므로 두 번째 기회를 얻은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에게 그리도 죽고 싶을 정도까지 성낼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네가 성낼 만한 이유라도 있느냐?”하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 (4:4, 현대인의 성경) (3) 요나가 자기가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주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사랑)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진정 알았다면(2절) 어떻게 자기는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에게 은혜롭지 못하고 자비롭지 못하며 그들을 향하여 매우 분노하며 그렇게도 사랑이 없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 보시기에는 요나 선지자가 죽고 싶을 정도로 성낼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요나는 니느웨 성에서 나가 성 동편에 초막을 만들고 그 그늘 아래 앉아 그 성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자 했습니다(요나 4:4-5, 현대인의 성경). 분명히 요나는 하나님께서 회개하여 악한 길에서 돌아선 니느웨 사람들에게 내리겠다고 선언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겠다고 뜻을 돌이키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3:10-4:2, 현대인의 성경) 니느웨 성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자 그 성에서 나가 성 동편에 초막을 만들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있었던 것을 보면(5절, 현대인의 성경) 요나는 그 때에도 자기가 선포한대로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멸망시키시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3:4, 현대인의 성경). 요나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너는 저 큰 니느웨 성으로 가서 내가 전에 너에게 말한 대로 니느웨 성의 멸망을 선포하라”(2절, 현대인의 성경)고 말씀하셔서 그는 그 성에 들어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40일 후에는 그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외쳤는데(4절, 현대인의 성경)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니느웨 사람들이 믿고(5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고 각자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악을 버렸음으로 말미암아(8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한 재앙의 뜻을 돌이키시고 분노를 거두셔서 그들이 멸망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9-10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하나님은 분명히 진심으로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을 향한 분노를 거두셨는데 하나님의 종인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죽고 싶을 정도로 분노를 한 것입니다(4:1, 3). 요나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정도로 분노했다는 것은 그는 그 정도로 니느웨 성이 멸망하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으시길 원하시는데 혹시 우리는 요나처럼 우리가 인간적으로 매우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나 어느 나라 사람들이 다 멸망하길 원하는 우리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뜻에 부딪혔을 때(충돌했을 때) 예수님처럼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하나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간구해야 합니다(누가복음22:42, 현대인의 성경).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바다에 빠진 요나를 삼키게 하신 하나님께서는(요나 1:17) 박 넝쿨을 예비하사(4:6)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어 주시사 그로 하여금 더위를 피하게 하심으로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요나는 그 박 넝쿨 때문에 크게 기뻐하였습니다(4:6).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않고 죽고 싶을 정도로 하나님께 분노하고 있는 요나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주신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신 박 넝쿨로 괴로움을 면하게 된 요나가 그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요나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10-11절). 자신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준 박 넝쿨을 아낀 요나와 니느웨 사람들을 아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끼고 있는지를 뒤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겪는 괴로움은 면하지 못할지라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공감하여 그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일)을 목격하게 될 때 우리는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큰 물고기(요나1:10)과 박 넝쿨을 예비하신 하나님께서는(4:6) 벌레도 예비하시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갉아먹게 하심으로 요나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 준 박 넝쿨을 시들어 버리게 하셨습니다(7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해가 뜰 때에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심으로 말미암아 요나는 머리 위에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로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고 싶어하며 “사는 것보다 죽는 편이 더 낫겠다’하였습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요나는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9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1) 우리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 같은 것을 예비하시사 우리를 건지시며(구원하시며), “박 넝쿨” 같은 것도 예비하시사 우리의 괴로움을 면하게도 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벌레” 같은 것도 예비하시사 우리의 삶의 그늘을 주고 있었던 “박 넝쿨” 같은 것도 다 없애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뜨거운 동풍”같은 것도 예비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쓰러질 지경까지 가게 하십니다. (2) 우리도 요나처럼 우리에게 유익한 “큰 물고기”나 “박 넝쿨” 같은 것들은 크게 기뻐하면서도(참고: 요나4:6) 우리에게 큰 괴로움을 주는 것 같은 “벌레”나 “뜨꺼운 동풍” 같은 것들은 매우 싫어하고 성냅니다(참고: 4:1). 우리는 로마서 8장 28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 요나에게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요나 4:4)고 물으신 하나님께서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9절)라고 물으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옳으신데 요나는 옳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9절)라고 말했습니다. 왜 요나는 그리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