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시25:11
다윗의 곤고함은 자기 죄를 생각하게 하였고, 그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게 했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 용서해 주십사고 울부짖게 했습니다 이는 환난의 때에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인하여 ' 용서를 턴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이렇게 의로우니 용서해 달라고 한다든지, 자기가 내세울 만한 어떤 행실이 용서받기에 합당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의가 탄원의 근원이 될 수 있다면 다윗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탄원할 이유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자신의 이름이나, 당신의 영광이나 당신 자신의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나, 당신의 언약의 신실함을 근거로 하여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 기자는 자기 죄악이 큼을 들어 , 마치 거지가 구걸하듯이 하나님의 더욱 크신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같은 탄원을 허락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비참함밖에 없다는 것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마음을 가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비참함'을 알아야 하며, 우리에게 긍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비참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긍휼을 구하려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참한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선하심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 신적 긍휼의 진정한 개념입니다 그 은혜를 받을 자가 비참하지 않다면, 그 은혜를 베풀 필요가 없게 됩니다
율법이 사람을 거스리며, 자신이 율법의 저주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매일 자기들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긍휼을 구하러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긍휼의 모든 소망은 그리스도와 그가 하신 일과 , 그의 고난 받으신 일을 생각함으로 나옵니다 하늘 아래 그리스도 외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세상의 구주시요, 그의 피가 모든 죄를 깨끗케 하며, 모든 죄인이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 받아들여 지게 합니다
그들의 죄가 아무리 많고 크다 할지라도 , 그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무한하기 때문에 가장 작은 죄를 용서하시는 것과 똑같이 가장 큰 죄도 용서하시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7)라고 했으며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13:39)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셨을 때 그 아들에게 진노를 퍼부으셨는데, 그것은 바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를 충분히 드러내는 증거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장 큰 죄인'을 용서하시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손상당하실까봐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하나님의 공의를 충분히 보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 범죄자의 중보로 나서서 그들을 위하여 그처럼 고난을 받으셨으니 , 하나님의 영예에 끼친 손상에 대하여 충분히 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자로서 긍휼을 베푸시는 것과, 재판장으로서 공의를 행사하시는 것이 서로 거스리지 않는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죄가 온전히 심판되었고, 공의가 만족되었습니다 (롬3:25-26)
사람이 긍휼을 구하러 하나님께 진심으로 나오기만 하면 율법은 이제 가장 큰 죄를 용서하더라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다 이루셨고, 고난을 통해 율법의 저주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3:13)"
(김은희 성도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