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내지 않으실지라도”
“몇몇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노발 대발하며 그 세 사람을 당장 끌어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은 그 세 사람에게 금 신상에게 절하라는 자기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줬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에게 “만일 이번에도 너희가 절하지 않는다면 너희를 뜨겁게 타는 용광로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어떤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내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시여,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 입장을 변호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뜨겁게 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진다고 해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그 용광로에서 구해 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반드시 우리를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내지 않으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며 또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을 것이니 왕이시여, 그런 줄 아십시오”(다니엘 3:12-18, 현대인의 성경). (1) 저는 먼저 느부갓네살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자신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도록 두 번째 기회를 줬다는 사실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요나 선지자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요나 3:1-2). 요나 선지자는 자기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3절). 그렇지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경우에는 금 신상에서 절하라는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에 두 번째 기회가 주었졌을지라도 당연히 불순종해야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주어지는 두 번째 기회가 하나님의 명령이면 순종해야겠지만 하나님의 명령과 위배되는 권력자의 명령이라면 우리는 계속해서 일관되게 불순종해야 합니다. (2) 그 다음에 제가 묵상하게 된 점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 문제(금 신상에서 절하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 입장을 변호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명령과 위배되는 권력자의 명령에는 “우리 입장을 변호할 필요를 느끼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세상에서 고발을 당할 때 우리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우리를 변호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고발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관한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를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입장을 변호할 필요를 느”낄 필요조차도 없어야 합니다. (3) 셋째로 제가 묵상하게 된 점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이 견고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뜨겁게 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진다고 해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그 용광로에서 구해 내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단3:17,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을 확고히 믿었습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이러한 구원의 확신과 견고한 믿음으로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4) 넷째로 제가 묵상하게 된 점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내지 않으실지라도”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며 또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담대하게 왕에게 말했다는 말씀입니다(18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그들은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신 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확고히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뜨겁게 타는 용광로 속에서 구해주실지 안 해주실지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믿고 그리 인정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우리는 그러한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들처럼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신 줄 믿고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도 믿지만 우리를 그 위기에서 꼭 건져내 주시길 그리도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겸손히 믿음으로 인정하기보다 우리의 뜻이나 간절한 원함을 하나님의 뜻(원하심)보다 앞세우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우리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내지 않으실지라도 …”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해 내지 못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아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