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탐심

 

 

가장 교활한 사탄은 우리 속에 온갖 탐심을 일으켜 놓습니다

(창세기 3:1, 6; 로마서 7:8, 현대인의 성경).

 

 

 

온전한 믿음 ...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이 있습니다(야고보서 2:21-22).

 

 

 

왜 요셉의 마음에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요셉의 그의 10명의 형들에게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의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고 말했다가

그들을 3일 동안 가둬 두었다가 3일 만에 그들에게 "...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42:16-20). 

왜 요셉은 말을 바꾼 것일까요?  왜 그는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라고 말했다가(16절)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19절)라고 말을 바꿨을까요? 

원래는 1명만 돌아가고 9명은 그 감옥에 갇혀 있었어야 했는데 결국에 가서는 1명만 옥에 갇히고 나머지 9명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10명의 형들이 3일 동안 옥에 갇혀 있었을 때 요셉의 마음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명만 돌려보내려 다가 1명만 남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아버지 야곱을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고

또한 형들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

 

 

요셉은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에게 "지금부터 3일 안에 왕이 당신을 석방하여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전에 하던 것처럼 왕에게 다시 술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라고 그의 꿈을 좋게 해석한 후 "당신의 모든 일이 잘되거든 나를 기억하셔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내 사정을 왕에게 말씀드리고 나를 이 감옥에서 나가도록 해 주십시오. 

나는 히브리 땅에서 강제로 끌려왔으며 여기서도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부탁했습니다(창세기 40:12-16, 현대인의 성경). 

 왜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에게 범죄한(1절) 술 맡은 관원장은 꿈을 꾼 후로부터 3일 안에

전직을 회복시켜 주신 반면에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옥에 갇혀 있었던 요셉은

그로부터 만2년이 지난 후에 서야 옥에서 건져 주셨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3일 동안 무덤에 두시고

하나님과 원수 된 죄 많은 우리는 화목케 하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의 꿈은 속히 행하셨고,

요셉의 꿈은 속히 행하지 않으셨을까요?

 

 

애굽(이집트)왕 바로가 꿈을 두 번 연달아 꾼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으며

그 일을 속히 행하실 것을 뜻"하는데(창세기 41:32, 현대인의 성경)

요셉이 꿈을 두 번 연달아 꾼 것(37:5-10)은 하나님께서 약 22년이나 걸려 서야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요셉의 나이 17살 때 꾼 2개의 꿈의 의미(해몽)가 무어인지 몰랐다가

약 22년이 지난 그의 나이 39살이나 되어서(30살 때 애굽의 총리가 됨(41:46)

+ 7년 풍년(29절) + 2년 동안 흉년(45:6) = 39세)]. 

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의 꿈은 속히 행하셨고, 요셉의 꿈은 속히 행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삶의 풍요롭던 시절을 다 잊히게 만드실 정도로 극심한 삶의 기근을 내려주(허락하)시는 것일까요?

 

 

 

삶의 기근이 너무 심하면 이전의 삶의 풍년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극심한 인생의 기근은 풍요롭던 시절을 다 잊히게 만듭니다

(참고: 창세기 41:30-31, 현대인의 성경). 

왜 하나님께서는 삶의 풍요롭던 시절을 다 잊히게 만드실 정도로

극심한 삶의 기근을 내려주(허락하)시는 것일까요? 

혹시 탕자처럼 궁핍함 가운데서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일까요?

(누가복음 15:13-20) 

요셉의 때에 왜 하나님께서 젓과 꿀이 흐르는 풍족한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게 하셨을까요?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미워하여(창세기 37:8) 그들 죽이려 다가(20절)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판(28절) 그의 형들의 죄를 회개케 하시려고 했던 것일까요? 

혹시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풍족한 은혜를 다시금 생각케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appreciation)하게 만드시고 그러시는 것일까요? 

어쩌면 삶의 기근으로 말미암은 우리가 경험하는 궁핍함은

하나님의 큰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45:5, 7)

 

 

 

 

 

왜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바로 왕의 2개의 꿈을

즉시 알게 하셨으면서 ...

 

 

애굽 왕 바로가 요셉에게 자기가 꾼 2개의 꿈을 말했을 때

요셉은 "그 두 가지 꿈은 한 가지 일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왕에게 보이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41:25,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요셉이 17살 때 2개의 꿈을 꾼 말씀이 생각났습니다(37:7-9). 

우연이었을까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요셉으로 하여금 2개의 꿈을 꾸게 하시사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요셉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그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은 그의 형들이나 아버지 야곱) 그의 꿈을 해석해 주는 사람(참고: 41:15, 현대인의 성경) 또는 설명하는 자(참고: 24절, 현대인의 성경)가 없었습니다. 

결국 요셉의 그 2개의 꿈도 "한 가지 일"(25절, 현대인의 성경)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보이신 것인데

나중에 가서야 하나님께서 직접 요셉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나중에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온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형님들이 이집트(애굽)에 판 동생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하시려고 나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 곳에 보내셨습니다.  ... 

하나님이 놀라운 방법으로 형님들을 구원하고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손들이 살아 남도록 하기 위해서 나를 형님들보다 먼저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이 곳이 보내신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45:5, 7-8,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요셉이 (2개의) 꿈을 꾼 것이나,

바로 왕의 술을 따르는 신하와 빵 굽는 신하가 꿈을 꾼 것이나,

바로 왕이 (2개의) 꿈을 꾼 것이나 다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리 행하시사 결국 하나님께서 앞으로 행하실 일을 요셉에게 보여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 바로 왕의 술을 따르는 신하의 꿈이나 바로 왕의 꿈은

그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꿈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꿈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요셉의 가족을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요셉은 바로 왕이 꾼 2개의 꿈은 "한 가지 일"을 뜻하고

"하나님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바로) 왕에게 보이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41:25, 현대인의 성경)

자기가 17살 때 꾼 2개의 꿈의 의미(해몽)가 무엇인지 몰랐다가 22년이 지난 그의 나이 39살이나 되어서[30살 때 애굽의 총리가 됨(46절) + 7년 풍년(29절) + 2년 동안 흉년(45:6) = 39세]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바로 왕의 2개의 꿈을 즉시 알게 하셨으면서

요셉의 2개의 꿈은  그 즉시 17살 때 알게 하지 않으시다가 22년이 지나서야

그의 나이 39살 때 알게 하신 것일까요?

 

 

 

요셉은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요셉은 울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의 형제들은

"만일 요셉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앙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행한 일에 대하여 복수를 한다면

어떻게 할까?"하고 요셉에게 이렇게 전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에게 이런 말을 전하라고 우리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네 형들이 너에게 악한 짓을 했을지라도 이제 너는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이제 당신도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창세기 50:15-17,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오빠 나사로로 인해 마리아가 울고

또 그녀와 함께 온 유대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나사로)를 더이 두었느냐?하고 물으셨고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하자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33-35, 현대인의 성경). 

성경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로마서 12:15).

 

 

 

 

 

 

 

 

 

욕망과 욕심

 

 

우리 속에 싸우는 쾌락에 대한 욕망과 욕심은

우리로 하여금 싸움과 다툼을 일으키며 하나님께 기도 응답도 받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1-3, 현대인의 성경).

욕심!

 

 

우리가 시험을 받는 것은 우리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생기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14-15, 현대인의 성경).

 

 

 

우리 가운데도 있는 거짓 선생들은 ...

 

 

우리 가운데도 있는 거짓 선생들은 파괴적인 이단을 몰래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1, 현대인의 성경).

 

 

 

우리 남편들은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왜 이삭은 야곱에게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말했을까요? (창세기 28:1, 현대인의 성경) 

혹시 그 이유가 이삭은 그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가 헷 족속의 두 여자와 결혼을 해서

자신과 아내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기 때문이었을까요? (26:34-35, 현대인의 성경) 

혹시 그 이유가 아내 리브가가 자기에게 "내가 이 헷 여자들 때문에 사는 것이 지긋지긋할 지경인데

만일 야곱이 이 땅의 헷 여자와 결혼한다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라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27:46, 현대인의 성경) 

자녀의 결혼 기도 제목에 있어서 우리 남편들은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아내가 리브가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다면

더욱더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25:22-23).

우리 말의 진실함을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요셉은 그의 10명의 형들로 하여금 정탐꾼들이 아니라는 그들의 말의 진실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서 막내 동생을 애굽에 있는 자기에 게로 데리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한 말이 입증되어 그들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요셉의 형들은 그대로 했습니다(창세기 42:20, 33-34). 

우리는 진실한 사람이 돼야 할 뿐만 아니라 진실한 말을 하며

또한 우리 말의 진실함을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집'("벧엘"의 의미)에 올라가서 ...

 

 

우리 모두 '하나님의 집'("벧엘"의 의미)에 올라가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십시다

(참고: 창세기 35:3, 현대인의 성경).

 

 

 

우리 모두가 다 주님께 죄를 범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인데 ...

 

 

분명히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그들의 주인인 애굽 왕에게 범죄를 했건만

그들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요셉이 해석한 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3일째가 되던 날

바로 왕의 생일에 바로가 그의 전직을 회복시켜 다시 술을 따르게 한 반면

떡 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매달아 처형을 당한 것일까요? (창세기 40:1, 5-22, 현대인의 성경) 

왜 우리 모두가 다 왕 중의 왕이신 주님께 죄를 범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화목케) 되었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주의 나무(신명기 21:23; 갈라디아서 3:13)에 못 박혀 처형을 당하신 것일까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장인 어른(장모님, 시아버님, 시어머님)의 태도가 안 좋게 변했어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장인 어른(장모님, 시아버님, 시어머님)이 우리를 여러 번 속일지라도

하나님은 장인 어른(장모님, 시아버님, 시어머님)을 막으사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참고: 창세기 31:5-7).

 

 

 

 

 

우리 영혼이 어느 누구에게 위로 받기를 거절할 정도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식구가 죽었을 때에는 모든 식구가 우리를 위로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을 수 있습니다(참고: 창세기 37:35,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우리 영혼이 어느 누구에게 위로 받기를 거절할 정도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시편 77: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간절히 찾게 되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

 

 

부모로서 우리 받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우리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매우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요한이서 1:4, 요한삼서 1:4, 현대인의 성경).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할 뿐만 아니라

더욱 힘써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5-7, 10-11, 현대인의 성경).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이 미혹되어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로 가고 있다면 ...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이 미혹되어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로 가고 있다면

우리는 그 죄인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서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해야 합니다. 

그의 많은 죄가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5:19-20, 현대인의 성경).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누가 진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인지를 분명히 아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두 번이나 '네가(너는)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한 번은 자신을 속이는 작은 아들 야곱에게 물었고,

다른 한 번은 자기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에게 물었습니다(창세기 27:18, 32). 

야곱의 답변은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였고(19절),

에서의 답변은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였습니다(32절).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였던 아버지 이삭은(1절)

누가 진짜 자기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인지 분별하지 못했습니다(23절). 

특히 그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였기에 분별하기가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25:24). 

이렇게 아버지 이삭은 누가 진짜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인지도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했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누가 진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인지를 분명히 아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3, 현대인의 성경).

 

 

 

우리 형제가 하는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안 그래도 아버지 야곱에게 특별히 사랑을 받고 있었던 요셉인데

꿈을 두 번이나 꿔서 형들에게 그 꿈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꾸짖었던 야곱은 요셉의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두었습니다(창세기 37:3-11). 

우리 형제가 우리보다 더 사랑을 받고 더 높임을 받을 때에

우리는 우리 형제를 충분히 미워하고 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형제가 우리에게 하는 말을 간직해 둘 필요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형제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주님은 속히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우리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11,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21:1, 7,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두려워하는 사람으로부터 도망할 때 ...

 

 

우리가 두려워하는 사람으로부터 도망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참고: 창세기 35:1, 9,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있게 된 것은 ...

 

 

우리가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 영광스럽게 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베드로전서 1:21,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보기에 안전한 곳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안전한 곳이 아닐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롯에게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했는데

롯은 도중에 재앙을 만나 죽을까봐 산까지 달아날 수가 없으니

도망하기 가까운 작은 성(소알)로 도망가게 해 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롯이 천사들에게 그리 말한 이유는

천사들이 볼 때에는 산이 안전한 게, 롯이 볼 때에는

그 작은 성(소알)이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했을 때 천사들은 롯의 요구대로 그 작은 성(소알)을 멸망시키지 않고

롯으로 하여금 가족과 함께 소알로 도망할 때까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9:17-22, 현대인의 성경). 

재앙을 만나 죽을까봐 하는 두려움은 우리가 보기에 안전한 곳을 찾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 안전한 곳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안전한 곳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면 ...

 

 

진정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한일서 3:16,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는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살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4:12-15,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이 영적 싸움을 힘써 해야 하는 이유는 ...

 

 

우리는 우리가 함께 누리는 구원에 관하여 단번에 주신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 영적 싸움을 힘써 해야 하는 이유는

경건치 않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고

우리의 유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사람들이

몰래 우리 가운데 끼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유다서 1:3-4,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전에는 몰라서 온갖 욕심을 따라 살았지만 이제는 ...

 

 

우리가 전에는 몰라서 온갖 욕심을 따라 살았지만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 답게 하나님께 복종해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모든 행동에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14-16,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참으로 우리 속에서 온전하게 되는 것을 보면 됩니다(요한일서 2:5,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주님을 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

 

 

우리가 주님을 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3,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지금은 마지막 때임을 아는 이유는 ...

 

 

우리가 지금은 마지막 때임을 아는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에게서 성령님을 받아

이미 많은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나타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18, 20,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계속해서 ...

 

 

우리는 계속해서 형제를 사랑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히브리서 13:1-2).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주목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11절 말씀입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는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의 각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사모는 나라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히11:13,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더 나은 하늘에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16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출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골1:13,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합니다(마6:33). 

그러다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합니다(벧후1:10). 

그리할 때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10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11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그 자유를 악용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진리로 자유함을 얻는 자들입니다(요한복음 8:32).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된 자유인 답게 생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유를 악용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그 자유를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16,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9:5-7,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떳떳하게 심판 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 믿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될 때

우리는 떳떳하게 심판 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4:12, 16-17,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큰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1, 23; 5:1-3,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사탄과 그의 종들에게 빈 틈을 보여서는 아니 됩니다.

 

 

간첩(창세기 42:9, 14, 현대인의 성경)과 같은 사탄과 그의 종들은

우리의 틈을 엿보다가(42:12) 우리에게 어떠한 갈라진 틈

["무너질 것이다!"라는 도비야의 조롱에서 '무너지리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벽)의 터진 곳, 갈라진 틈'임(느헤미야 4:3)]이나 허물이나 그릇함을 보게 되면

(다니엘 6:4, 개역한글) 그 틈을 타서 우리를 공격합니다(창세기 14:15,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우리는 사탄과 그의 종들에게 빈 틈을 보여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사탄과 그의 종들은 그 빈틈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제 자신을 봐도 빈 틈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가 없는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속여서 얻은 재물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잠언 21장 6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속여서 얻은 재물은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죽음의 덫과 같다.”

우리가 속여서 얻은 재물을 주목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재물은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죽음의 덫과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도 교인들끼리 서로 속이고 사기까지 치면서

상대방의 돈을 갈취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신8:18)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부유해지려고 하다 보니(17절, 현대인의 성경)

사람을 속이기까지 해서라도 재물을 얻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 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잘못을 깨끗이 씻고

우리가 두 마음을 품은 죄를 회개하며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합니다. 

우리의 웃을 애통으로, 우리의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꿔야 합니다

(야고보서 4:8-9,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신실성이 없지만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셔서

약속하신 것을 어기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10년이 지난 후

자기의 여종인 이집트 사람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줘서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얻고자 했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창세기 16:1-3, 현대인의 성경),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축복하여 그녀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17:16, 19, 현대인의 성경) 또한 "내년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뒤 천막 입구에서 듣고 혼자 속으로 웃으며

"내가 노쇠하였고 내 남편도 늙었는데 내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하고

중얼거렸던 사라(18:10-12,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내년 정한 때에 내가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두려워서 자기가 한 말을 부정하며 "나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고 거짓말했던 사라

(14-15절, 현대인의 성경)인데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사라에게 축복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정한 때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습니다

(21:1-2,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신실성이 없지만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셔서 약속하신 것을 어기실 수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2:13,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

 

 

우리는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도록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베드로전서 2:9,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영원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주목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요4:24)은 영원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롬16:26).

영원한 생명이신 성자 예수님도 영원하십니다(요일1:1-2).

그리고 성령 하나님도 영원하신 성령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9:14).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목하지 않고 이 영원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주목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주목합니다.

 

 

히브리서 5장 9절 말씀입니다: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습니다(8-9절).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9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주목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복음을 주목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 6절을 보십시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롬1:2).

복음이란 예수님의 탄생(3절), 예수님의 죽으심(4절)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하심(4절)입니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입니다(마1:18).

성령으로 잉태되신 후 동정녀에게서 나시고

우리 죄를 구속하시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바로 복음입니다(롬1:4).

그리고 사흘만에 죽음에서 다시 사신 예수님이 바로 복음입니다(4절).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이 바로 복음입니다(3-4절).

이 복음을 사도 요한은 “영원한 복음”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계14:6).

그 이유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1:2; 참고: 롬16:26).

우리는 이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자들입니다(1절).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 모두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16절).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자들에게 복음의 빚을 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14절).

과연 저와 여러분은 복음의 능력을 믿습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있습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주목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십니다(왕상10:9).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므로(요일3:16)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5:8).

영원하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인간의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맺으시므로(갈5:22)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케 하시며

또한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케 하고 계십니다(마22:37, 39).

이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우리의 생명보다 나으므로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시63:3).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주목합니다.

 

 

우리는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에 지나지 않는 우리의 생명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요일2:25, 현대인의 성경)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요3:16)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롬14:8,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영원한 속죄를 주목합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 말씀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속죄”란 히브리어 “카파르”와 헬라어 “카탈리게”를 번역한 말로 “덮다”,

“제하다”, “허물을 제거하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죄를 속하는 행위를 뜻합니다(인터넷).

성경에서 “속죄”란 할 때는 죄인의 구원을 위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가 죄 사함을 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구약 시대 때에는 죄를 속하기 위해 반드시 드려야 하는 제가가 있었는데

그 제사는 바로 “속죄제”(sin offerings)였습니다.

이 속죄제의 목적은 죄사함과 그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 회복을 위해서 드린 제사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상징합니다(인터넷).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능력) 아래 놓였었습니다(롬8:2).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속죄제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속죄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였기에(5:10)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선 화목제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 이신 “자기 아들”(8:3)을

그 속죄제물과 화목 제물로 삼으셨습니다(김창세).

이젠 더 이상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속죄로 이루시사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히9:12).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도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리면

그 육체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했는데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님을 통해

흠 없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서

어찌 여러분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13-14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옛) 언약 아래서 범한 죄를 속죄하시려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이 약속된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영광을 주목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크고 엄청난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겉 사람은 쇠약해 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16절, 현대인의 성경).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지만(요16:33,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이 고난을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으로 여깁니다(고후4:17,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롬8:18,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고 모든 고난을 참고 있는 것입니다”

(딤후2:10,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영원한 영광을 주목하며 모든 고난을 참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왕을 주목합니다.

 

 

예레미야 10장 10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참 하나님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십니다.

주께서 분노하시면 땅이 진동하고 온 세상이 견딜 수 없습니다.”

주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십니다(10절, 현대인의 성경).

영광의 왕이 누구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영광의 왕이십니다

(시24:10, 현대인의 성경).

그 분은 의의 왕이시요 평화의 왕이십니다(히7:2, 현대인의 성경).

그 분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왕이시기에

우리를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시47:2,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가장 높으신 위대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빌2:7-8, 현대인의 성경).

영원한 왕이시요(렘10:10) 영원한 생명(요일1:2)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저주의 나무(신21:23; 갈3:13)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 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의 죄명이 적힌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막15:26, 현대인의 성경).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함께 예수님을 조롱하며

“이봐,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야,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그러면 우리도 믿겠다.” 하였고 함께 못박힌 강도들까지도 예수님을 욕하였습니다

(막15:31-32, 현대인의 성경).

그분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그분을 외면하고 우리도 그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슬픔을 당하였으나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 때문에 찔림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으니

그분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53:3-5,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낮아지셔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자기 목숨을 우리의 대속물로 주시므로 말미암아(마20:28)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골1:14)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벧전2:9,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왕이신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복음성가 “왕이신 나의 하나님”).  

“정한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주님의 나타나심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으실 분이시요, 오직 한 분이신 통치자이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딤전6:15, 새번역).  

정한 때가 오기 전에 사도 요한이 본 열 왕은 아직 나라를 얻지 못했으나

짐승과 함께 잠시 동안 왕권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 목적을 가지고 그들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줄 것이며 어린 양을 대항하여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은 주들의 주님이시며 왕들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길 것이며

또 부름을 받고 선택된 진실한 신자들은 그분과 함께 이길 것입니다

(계17:12-14,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영원한 왕이시며 죽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길이길이 존귀와 영광을 돌립시다. 아멘”

(딤전1:17,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영원한 위로를 주목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6-17절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우리의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할 때가 있습니다(시77:2).

야곱도 자기가 특별히 사랑하였던 아들 요셉이 죽은 줄 알고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였으나

그가 위로를 받지 않을 정도로 슬퍼하며 울었습니다(창37:35).

우리도 사랑하는 식구가 죽었을 때 우리의 영혼이 어느 누구의 위로도 받기를 거절할 정도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때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고후1:3)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로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영원한 위로로 우리 마음을 위로하시사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고후1:4)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견디게 하실 뿐만 아니라(6절)

우리로 하여금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십니다(4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위로로 우리를 위로하시되 우리가 낙심할 때에도 우리를 위로하십니다(7:6).

특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죽은 자들로 인해 애통할 때에 소망 없는 비신자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의 소망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마5:4; 살전4:13-18).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밀하게 말씀하시므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욥15:1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고난 중에 위로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십니다(시119:50).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위로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영원한 위로로 위로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주님의 모든 의로운 법을 주목합니다.

 

 

시편 119편 160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주의 모든 말씀은 진리이며 주의 모든 의로운 법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주님의 의로운 진리의 말씀과 법을 주목하여

그 말씀과 법을 사랑하므로(163절) 주야로 묵상하며(시1:2)

또한 그 말씀과 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고 시편 기자처럼 고백하는 것입니다(119:44).

우리는 영원한 즐거움을 주목합니다.

 

 

사람은 인생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사는 동안

열심히 일하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전8:15,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왠지 우리는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전6:3, 현대인의 성경).

즉, 우리에게는 즐거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치 비옥한 땅과 포도원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없듯이 말입니다.

모든 즐거움의 소리가 그친 것 같습니다(사16:10, 현대인의 성경, 참고: 렘48:33, 현대인의 성경).

사람들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만 것만 같습니다(욜1:12,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모든 즐거움의 소리가 그친 이유는 우리 마음에 근심이

우리 심령을 상하게 하며 우리 뼈를 마르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잠15:13, 17:22, 현대인의 성경).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가 눈 앞에 보이는 즐거움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전7:4, 현대인의 성경).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경고와 조언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겔21:10, 현대인의 성경). 경건치 못한 자의 즐거움은 다 순간적입니다(욥20:4,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주님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사58:14,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즐거움으로 삼아야 합니다(시35:9,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105:3,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슬픔 대신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근심 대신 찬송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61:3,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맛있는 음식처럼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되기 때문입니다(렘15:16, 현대인의 성경).

주님의 교훈과 법은 우리의 즐거움입니다(시119:24, 77,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줍니다(잠2:10,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게 하시고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만이 있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사35:10,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출하신 자들이 노래하며 하나님의 성전에 돌아와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51:11,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영원한 축복들을 주목합니다.

 

 

시편 21편 6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주께서 그에게 영원한 축복을 주시고 그와 함께 하셔서 그에게 한없는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시고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시 않으시사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사(1, 5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의 영광이 한층 돋보이게 하시고 우리에게 명성과 위엄도 주십니다(5절, 현대인의 성경).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축복을 주시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엡1:3,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우리는(요일3:14,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들을

주목하면서 살아가지 이 세상의 순간적이고 다 없어질 축복들을 주목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찬양하는 것을 주목합니다.

 

 

시편 111편 10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이다.

그의 교훈을 따르는 자가 다 좋은 지각을 얻게 되니 그는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에 대하여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150:2,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이렇게 노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다!’(스3:11,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선하시니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아름다운 이름을 찬송해야 합니다(시135: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에게 지혜와 능력이 있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단2:20,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 감사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해야 합니다(시145:2,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68:19,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일에 대하여 진심으로 찬양해야 합니다(71:23, 현대인의 성경).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셨기에 우리는 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눅1:68,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우리를 강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시148:14,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창14:20, 현대인의 성경).

주님께서 주님의 법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니 우리는 항상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시119:171,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103:2,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말씀을 찬양해야 합니다(56:10,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항상 희망을 가지고 더욱더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71:14, 현대인의 성경).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63:3, 현대인의 성경).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크고 그분의 성실하심이 영원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117:2,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지금부터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41:13; 115:18, 현대인의 성경).

지금부터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은 찬양을 받을 것입니다(113:2,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

(146:2, 참고: 104:33,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루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고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것입니다(44:8, 현대인의 성경).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주님을 높이고 영원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겠습니다

(145:1, 현대인의 성경).

우리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합니다

(대상29:13, 현대인의 성경).

우리의 하나님이여, 주님은 영원히 찬양을 받으소서(10절, 현대인의 성경).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복음성가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참고: 시103:1, 22,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