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우물 이름, 3개의 교훈
이삭은 그의 종들로 하여금 3개의 우물을 팠습니다.
그 이름은 (1) "에섹"("다툼의 우물"): 그랄의 목자들과 이삭의 목자들이 다투며
"이 우물은 우리 것이다"라고 주장하였기에,
(2) "싯나라"("적대의 우물"): 이삭의 종들이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랄의 목자들이 그것도 자기들 것이라고 우겼기에,
(3) "르호봇"(넓은 우물"): 이삭이 또 다른 우물을 파자
그들이 더 이상 다투지 않았기에 였습니다(창세기 26:18-22).
(1) 싸우는 정욕을 경계해야 합니다(야고보서 4:1),
(2) 적개심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창세기 16:12; 에베소서 2:16),
(3) 넓은 마음으로 더 이상 다투지 말고 화목하게 지내야 합니다
(열왕기상 4:29; 고린도후서 5:18; 로마서 12:18).
가까운 천척과의 관계에서도 언젠가는 올 수 있는
관계의 어려움과 위기는 ...
하나님은 라반이 야곱에게 행하는 모든 것을 다 보셨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는 라반이 야곱을 속여
그의 품삯을 10번이나 변경한 것도 다 보셔서 알고 계셨습니다.
그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기 아내인 라헬과 레아를 집 밖에 자기가 양을 치는 들로 불러 다가 다 말했습니다(창세기 31:4-12, 현대인의 성경).
가까운 천척과의 관계에서도 언젠가는 올 수 있는 관계의 어려움과 위기는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요
그 말씀을 듣고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괴롭히며
법정으로 끌고 가는 부자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부자들 중에는
사람의 겉모양만 보고 사람을 차별하여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되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괴롭히며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2:1, 4, 6, 현대인의 성경).
가인 같은 교인?
가인 같은 사람은 자기의 동생의 행위는 의로운데 자기의 행위는 악하기에 그 동생을 미워합니다
(요한일서 3:12).
가인의 악한 길을 따르고 돈을 위해 발람의 잘못된 길로
달려갔으며 고라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 ...
경건치 않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고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사람들,
이성을 잃고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무시하고
영광스러운 하늘의 존재들을 욕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행이 닥칠 것입니다.
그들은 가인의 악한 길을 따르고 돈을 위해 발람의 잘못된 길로 달려갔으며
고라처럼 하나님을 거역하여 멸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유다서 1:4, 8, 11, 현대인의 성경).
가장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려야 합니다
(유다서 1:20-21, 현대인의 성경).
가장 교활한 사탄이 우리의 생각의 영역에 들게 하는
의문들과 말들
가장 교활한 사탄이 우리의 생각의 영역에 들게 하는 의문들과 말들을
우리는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창세기 3:1-5, 현대인의 성경).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 묵상해야 합니다(시편 1:2,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사탄이 우리의 생각의 영역에 들게 하는 의문들이나 말들을 분별하여
믿음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찬양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여러분에게 승리를 주시사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찬양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창세기 14:19-20, 현대인의 성경).
갇힌 바 되었을 때 비신자와의 만남을 통해서도
우리를 건져 내십니다.
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창세기 39:1)은
요셉을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가뒀을까요? (20절)
분명히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죄수도 아니고 그저 히브리 사람으로서
보디발의 종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 옥이 보디발의 집 안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40:3).
흥미로운 점은 "얼마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애굽 왕에게 범죄하여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뒀는데 그 곳은 요셉이 갇혀 있는 곳이었다는 사실입니다(1-3절). 요셉이 갇힌 바 되었을 때 결국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함께 갇혀 있었던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케 하시므로 그를 건져 내셨습니다(9-13, 31절).
우리가 동서남북으로 갇힌 바 되었을 때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요나 2:9,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갇힌 바 되었을 때 비신자와의 만남을 통해서도 우리를 건져 내십니다.
갈라서게 하시는 방법?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에게 소유가 너무 많아서 함께 살기에는 "그 땅"(벧엘과 아이 사이에 있는 땅)의 목초지가 부족하여 결국 롯이 그 땅을 떠나 동쪽인 소돔과 고모라로 떠나므로 서로 갈라서게 되었는데(창세기 13:6-11, 현대인의 성경)
야곱과 에서도 소유가 너무 많아 그들의 짐승을 함께 기르기에는
"그 땅"(가나안 땅)이 부족하여 결국 에서가 그 땅을 떠나 세일의 산간 지역에서 살게 되므로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36:6-8, 현대인의 성경).
이 사실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형제이든 친척이든 그들의 소유가 너무 많게 하심으로도
서로 갈라서게 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하나님은 물질의 축복을 베풀어 주셔서도 서로 갈라서게 하신다는 생각입니다.
감옥에서 간수장의 사랑을 받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한 짓을 하며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했던 요셉은
결국 유부녀의 유혹을 뿌리친 결과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를 축복하셔서
간수장의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창세기 39:9, 12, 20-21, 현대인의 성경).
주인 집에서 유부녀의 유혹적인 사랑을 받는 것보다
감옥에서 간수장의 사랑을 받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강간 전과 후?
다윗의 아들 암논은 그의 아름다운 이복 여동생 다말을 몹시 사랑하여
그녀보다 힘이 세므로 그녀를 덮쳐 강간한 후 사랑할 때의 그 사랑보다
더한 증오심으로 그녀는 미워한 반면에(사무엘하 13:1, 14-15, 현대인의 성경),
하몰의 아들 세겜은 레아가 낳은 야곱의 딸 디나를 보고 끌고 가서 강간한 후
그의 마음이 디나에게 깊이 끌려 그녀를 사랑하며 부드러운 말로 그녀를 위로하고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했습니다(창세기 34:1-4, 현대인의 성경).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몸을 씻고도
다시 진탕에 뒹군다"는 속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부터 해방된 우리들이
다시 거기에 빠져 정복을 당하면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몸을 씻고도
다시 진탕에 뒹군다"는 속담이 우리에게 맞는 말입니다
(베드로후서 2:20, 22, 현대인의 성경).
거리낌이 있어야 합니다.
빛 가운데 산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므로 아직도 어두움 속에 사는 사람은
자기 속에 거리낌이 있어야 합니다(요한일서 2:9-10, 현대인의 성경).
거짓 목사들
우리 가운데도 있는 거짓 목사들은 호색(탐색, 여색)하는 것을 따르면서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우리로 이득을 삼으므로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임박한 멸망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베드로후서 2:1-3).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모함을 하여 곤경에 빠트립니다.
요셉에게 눈짓을 하며 함께 잠자리에 들자고 하면서
날마다 치근거렸던 보디발의 아내는 계속 거절을 당하면서도
요셉의 옷을 붙들고 또 다시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자"했지만
요셉이 자기 옷을 그녀의 손에 버려 든 책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가니까
그녀는 요셉이 자기를 희롱하였고 자기를 겁탈하려고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결국 요셉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창세기 39:7-20, 현대인의 성경).
가짜 사랑은 육신의 정욕에 이끌려서 동침을 하려고 해서 거절을 당할 때
상대방에 대하여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모함을 하여 곤경에 빠트립니다.
거짓말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원수
거짓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원수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2:22, 현대인의 성경).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시는 주님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가 네 번째 아들인 유다를 낳았을 때에는
"이번에는 내가 여호와를 찬양하리라"고 말합니다(창세기 29:35, 현대인의 성경).
신랑 되신 주님께서는 결국 신부 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십니다.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넘치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빈손으로 떠나겠지만(전도서 5:15, 공동번역)
그러나 적어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사람들이(심지어 사랑하는 식구가)
우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련을 당하며 수고하는 것을 보시고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넘치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참고: 창세기 31:42-43, 현대인의 성경).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우리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춰서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섬기며
또한 장로님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되
때가 되면 하나님이 겸손한 사람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베드로전서 5:5-6, 현대인의 성경).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은 무법한 자들이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요 음란을 행하는 자들로서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베드로후서 2:1, 5-8).
경계해야할 사람과 함께 있지도 말아야 할 사람을
분별하여 분명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건장하고 잘생긴 미남자였던 요셉에게 눈짓을 하며
함께 잠자리에 들자고 하면서 날마다 치근거렸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은 자기가 어떻게 감히 이런 악한 짓을 하여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느냐며 거절하며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지도 않고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창세기 39:6-10,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경계해야할 사람과
함께 있지도 말아야 할 사람을 분별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있다가 그녀의 유혹에 빠집니다
(참고: 잠언 7:5-23, 현대인의 성경).
고난을 받는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
생명을 사랑하며 행복한 생활을 원하는 우리는
옳은 일인 선한 일을 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고난을 받는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 3:10, 14, 현대인의 성경).
고아와 과부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고아와 과부들을 돌봐 줍니다
(야고보서 1:27, 현대인의 성경).
곱고 아름다우면 뭐합니까 진실되지 못한 여자인데요.
라헬은 자기 남편인 야곱에게도
자기 아버지 라반의 가정 신을 훔친 것을 말하지 않고 몰래 훔쳤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가정 신을 낙타 안장 속에 넣고 그 위에 앉아 있으면서
자기 아버지가 자신의 천막을 구석구석 뒤졌으나 찾지 못했을 때
자기가 생리중이래서 일어나서 아버지를 영접할 수 없다고 라반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창세기 31:32-35,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야곱이 보기에 곱고 아름다운 라헬(29:17)은
자기 아버지 라반만 속인 것이 아니라 자기 남편 야곱도 속였습니다.
곱고 아름다우면 뭐합니까 진실되지 못한 여자인데요.
공격적으로 집착하는 여자?
거절하면 거절할수록(창세기 39:8, 10, 현대인의 성경)
더욱더 다가와서 치근거리면서 공격적으로 집착하는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붙들고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자"고 했을 때
요셉은 자기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버려 든 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12절, 현대인의 성경).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 얽매이기 쉬운 규정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참고: 히브리서 13:9, 현대인의 성경).
과연 그것이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길일까요?
과연 아브라함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고향에서 내어보내 방랑 생활을 하게 하실 때부터
자기와 아내 사라가 어디로 가든지 사라가 자기를 오빠라고 말하 게 한 것이
사라가 아브라함을 사랑하는 길이었을까요?
(창세기 20:13, 현대인의 성경)
과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했는가
아니면 사람을 더 두려워했는가?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이유는
그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아내 사라를 탐내서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창세기 20:9-11,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든 질문은
(1) 과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했는가 아니면 사람을 더 두려워했는가?
(2) 과연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 1-4절에서 주신 언약의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었다면
그는 자신이 아직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했지 않았을까?
(아직 이삭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지 못했기에)
(3) 아브라함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생각하고 미리 두려워한 것은 아닌가?
과연 우리는 그 축복의 말씀 외에 고통에 대한 말씀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세어 보아라.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은 아브람이 "네가 반드시 알아야 될 일이 있다. 네 후손들이 외국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400년 동안 종살이하며 학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벌할 것이니
그 후에 네 후손들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그 나라에서 나올 것이다.
그리고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죽어 묻힐 것이며 네 후손들은 4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은 아직 아모리족의 죄가 절정에 달하지 않았으므로 그때까지는 내가 그들을 쫓아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믿었을까요? (창세기 15:5-6, 13-16, 현대인의 성경)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후손에 대한 축복의 말씀을 하셨다가
우리의 후손이 4대 동안 고통을 동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면
과연 우리는 그 축복의 말씀 외에 고통에 대한 말씀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과연 하나님의 약속대로 ...?
과연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은 들 나귀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람을 치고 모든 사람은 그들을 치며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은 적개심을 품고 자기 형제들과 동떨어져 살고 있는 것일까요?
(참고: 창세기 16:12, 현대인의 성경)
[참고: "들나귀의 같은 생활" https://blog.daum.net/song3294221/4783443]
교회 봉사가 "강제 노동"이 되면 아니 델 텐데요 ...
위협을 느낄 때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이
그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강제 노동" 같은 것으로
그들을 괴롭힌다는 것이 진정 지혜롭게 행하는 것인지 ...?
(참고: 출애굽기 1:9-11, 현대인의 성경)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하나님께 보고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하나님께 보고해야 할 사람들이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성도님들의 영혼을 보살피되 괴로운 마음으로 하지 말고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3:17, 현대인의 성경).
"구원을 주시는 분은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이십니다."
국가와 종족과 언어를 초월하여 세계 모든 민족가운데서
아무도 셀 수 없는 엄청난 군중이 나와서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구원을 주시는 분은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이십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요한계시록 7:9-10, 현대인의 성경).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장인 어른이 사위에게 한 이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내 딸들을 학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이면
나는 몰라도 하나님은 너와 나 사이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라"
(창세기 31:50, 현대인의 성경).
귀신의 영들도 ...
귀신의 영들도 기적을 행합니다(요한계시록 16:14, 현대인의 성경).
"그 꿈이 이루어 주옵소서"
요셉은 그의 나이가 적어도 37살이 지나서
[30세에 총리(창세기 41:46) + 7년 풍년(29절) + ?년째 흉년 = 적어도 37살]
그의 10명의 형들이 이집트(애굽)까지 내려와서 총리인 자기 앞에 와서 땅에 엎드려 절했을 때
(창세기 42:6, 현대인의 성경)
과연 자기가 17살 때(37:2) 두 번이나 꿈을 꾼 내용(5-10절, 현대인의 성경)대로
자기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였었을까요?
적어도 20년 만에 만난 형들이 자기 앞에 와서 땅에 엎드려 절했을 때
과연 요셉은 20년 전에 꾼 두 번의 꿈이 성취되고 있었다고 생각하였었을까요?
창세기 42장 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요셉은 오래 전에 그들에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며 ….”
새 찬송가 490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1절과 후렴 가사가 생각납니다:
(1절)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이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년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아버지에게 특별히 사랑을 받은 동생,
아버지가 자기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요셉을 미워하여 요셉에게 말도 잘 하지 않았던 요셉의 형들,
그런데 요셉이 두 번이나 꿈을 꾸고 자신들에게 그 꿈 이야기를 하므로
더욱 미워하고 시기하게 된 요셉(창세기 37:3-11, 현대인의 성경)을 죽여
구덩이에 던져 놓고 맹수가 잡아먹었다고 하려고 했다가(20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겼었는데(27절, 현대인의 성경)
약 22년 후에[이 때 요셉의 나이가 17살(2절)이었는데 30살에 총리(41:46)가 되었고 + 7년 풍년(29절) + 2년 동안 흉년(45:6) = 39세이니까 39살 - 17살 = 22년] 요셉이 자신들에게 "나는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십니까?"라고 말했으니
그들은 얼마나 놀랬기에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을까요? (45:3, 현대인의 성경)
실제로 약 22년 전인 동생 요셉의 나이 17살 때 그가 두 번이나 꿈을 꾼 대로(37:7, 10)
지금 자기들이 요셉 앞에 가서 땅에 엎드려 절하지 않았나요? (43:26, 28; 44:14, 현대인의 성경)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을 이루실 때 너무 놀라 아무 말을 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로 경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믿음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님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은 좋은데 그분의 행실의 결말이 좋지 않으면
그 목사님의 믿음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 히브리서 13:7, 현대인의 성경).
그 분의 핏 값으로 우리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이 동생 요셉에게 한 일로 말미암아 벌을 받고 있다고 서로 말했습니다.
요셉이 살려 달라고 애걸했을 때 그들은 요셉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젠 자신들이 이런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다고 서로 말했습니다
(창세기 42:21, 현대인의 성경).
그때 맏형인 르우벤은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 값을 치르게 되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22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을 때(마태복음 27:46)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의 괴로움을 보시고 들으셨으면서도 외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괴로움을 당하게 되지 않았습니다(참고: 이사야 53:5).
죄를 우리가 지었는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므로
그 분의 핏 값으로 우리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골로새서 1:14).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며
율법이 우리를 범죄자로 선언할 것입니다.
최고의 법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겉모양만 보고 차별하여 대하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며
율법이 우리를 범죄자로 선언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2:8-9, 현대인의 성경).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인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오히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기에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여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요한일서 2:11, 현대인의 성경).
그들의 옷까지 미워하되
두려운 마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의심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불 속에 있는 사람들을 끄집어내어 구원하며
또 육신의 정욕으로 더럽혀진 사람들은 그들의 옷까지 미워하되
두려운 마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유다서 1:22-23,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살아났고
또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 요셉과 17년을 함께 가나안 땅에서 살다가 원치 않게 헤어져서(창세기 39:2ff) 약 22년을 떨어져 살다가 야곱의 나이 130세 때 요셉과 이집트에서 재회하여(47:9)
함께 17년을 살다가 야곱은 그의 나이 147세가 되어 죽었습니다(28절).
결국 야곱은 특별히 사랑하는 요셉과 34년 밖에 함께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33년 밖에 사시지 못하고 죽으셨습니다.
그 33년 중에 제자들 하고는 3년 밖에 함께하지 않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살아났고 또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야고보서 4:6, 10,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
죄를 이기지 못하고 죄에 다스림을 받아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고 말씀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에 죽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벌을 "칠 배나"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를 하시고
우리를 속량(죄 사함)하시고 구원하시고자 죽으셨습니다
(창세기 4:7-8, 19; 이사야 53:10-12; 로마서 5:10; 고린도후서 5:21; 골로새서 1: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가르치신 대로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떳떳이 그분을 뵙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2:27-28, 현대인의 성경).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은 ...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만
지나치게 앞질러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요한이서 1:9, 현대인의 성경).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해야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지만 리브가가 아이를 낳지 못하여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20년 만에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의 나이 60세때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창세기 25:20-26, 현대인의 성경).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기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
기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끈기 있게 기도하되
주님께서 나에게 축복하지 않으시면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창세기 32:24-26, 현대인의 성경).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여러분의 모든 일이 잘 되고 몸도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요한삼서 1:2, 현대인의 성경).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인이 돼야 합니다
(야고보서 1:27, 현대인의 성경).
끝까지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에 살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고
주님의 신실한 증인이 되어 죽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끝까지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13, 현대인의 성경).
끝까지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있는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의 승리자와 끝까지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에게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5-26, 현대인의 성경).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백 세가 다 되어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4:19, 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너무 늙어 아기를 낳을 수 없었고,
늙은 아브라함도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습니다(히브리서 11:11-12,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년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일 있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을 때
뒤 천막 입구에서 듣고 있었던 사라는 혼자 속으로 웃으며
"내가 노쇠하였고 내 남편도 늙었는데 내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째서 사라가 웃으며 내가 늙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는가? 하고 중얼거리는가?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내년 정한 때에 내가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창세기 18:13-14, 현대인의 성경).
사라는 약속하신 하나님이 신실하신 줄 알고 믿음으로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11, 현대인의 성경).
나는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주님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여
화려하게 장식한 긴 겉옷을 만들어 입혔던 아버지 야곱(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은
염소의 피에 적신 그 화려하게 장식한 요셉의 긴 겉옷(23, 31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고
요셉이 맹수에게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통곡하며 오랫동안 아들의 죽음을 슬퍼했었습니다(33-34절, 현대인의 성경).
그의 모든 자녀들이 그를 위로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가 슬퍼하다가 저 세상에 있는 내 아들에게 가겠다" 하고
계속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습니다(35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그가 약 22년 만에[이 때가 요셉의 나이가 17살이었는데(2절)
그가 30살 때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며(41:46) + 7년 풍년(29절) + 2년 동안 흉년(45:6)
= 39세이었으니가 39세 - 17세 = 22년]
특별히 사랑하였던 요셉을 이집트에 내려와서 직접 본 것입니다.
그 때 야곱은 요셉에게 이리 말했습니다:
"네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46:30, 현대인의 성경).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을 죽은 줄만 알고 약 22년을 지냈다가 살아있는 얼굴을 직접 보았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2가지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1) 내가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2) 나는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주님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마음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애굽 왕 바로가 요셉에게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해석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나는 네가 꿈을 잘 해석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니까
요셉은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왕에게 그 꿈의 뜻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창세기 41:15-16,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바로 왕의 술을 따르는 신하와 빵 굽는 신하가
같은 날 밤에 서로 다른 꿈을 꾼 후
"우리가 꿈을 꾸었으니 해몽해 줄 사람이 없구나"라고 말했을 때 요셉의 답변이 생각납니다: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지 않습니까?" (40:8,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들을 함께 묵상할 때 요셉은 자기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히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믿음의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만일 우리가 아직도 '나는 할 수 있다' 또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 힘과 능력 등으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면
아직도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아야 합니다.
나와 남편과의 관계가 우선이지
아버지와 관계가 우선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기의 아내인 라헬과 레아에게 자기의 장인에 대해
"나를 대하는 당신들 아버지의 태도를 보니 전과 같지 않소. ...
당신들의 아버지는 나를 속여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소. ..."라고 말하였는데
(창세기 31:5, 7,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야곱은 자기 아내 앞에서 장인 어르신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야곱의 말을 들은 라헬과 레아는 어떠한 생각했겠을까요?
남편이 아내에게 장인 어르신에 대해 '당신의 아버지가 나를 속였다'고 말한다면
아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남편의 말을 믿을까요 아니면 남편 앞에서 아버지를 방어할까요?
나와 남편과의 관계가 우선이지 아버지와 관계가 우선이 아닙니다.
"출가외인"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출가(出家)란 '집을 나간다'는 뜻이며,
외인(外人)이란 '바깥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집을 나가면 바깥 사람' 혹은 '집을 나간 바깥 사람'이라는 뜻입니다"(인터넷).
결혼한 여자는 부모를 떠나 남편과 합하여 한 몸이 된 사람입니다(2:24).
남편 된 여러분은 아내를 잘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남편 된 여러분은 아내를 잘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며
은혜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릴 반려자로 알고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기도 생활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 3:7, 현대인의 성경).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인은 마음이 괴로워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으면서 남편의 사랑을 갈급해합니다.
남편 야곱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는 하나님께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하셔서
맏아들 르우벤을 낳았을 때 "여호와께서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시고 아들을 주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 시므온을 낳았을 때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나에게 이 아들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또 임신하여 레위를 낳았을 때에는
“내가 남편에게 세 아들을 낳아 주었으니
이제는 그가 나에게 애착을 느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창세기 29:31-34,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인은
마음이 괴로워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으면서 남편의 사랑을 갈급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또한 그녀가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말도 들어서 알고 계십니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도 ...
하나님께서는 레아가 남편 야곱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녀에게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사랑을 받는 라헬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창세기 29:31, 현대인의 성경).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남편에게 사랑을 받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남편에게 첩으로 주어서라도
아들을 낳길 원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인의 심정?
마치 자식을 낳지 못해서 자신의 여종인 애굽 사람 하갈을 자신의 남편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줘서 그녀와 함께 잠자리에 들게 하므로 그녀가 임신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처럼(창세기 16장),
자녀가 없었고(29:31) 야곱에게 아들을 낳아 주지 못하던 라헬(30:1, 현대인의 성경)도
자기 여종인 빌하를 자기 남편 야곱에게 첩으로 줘서 그녀로 하여금 야곱과 잠자리를 들게 하므로 임신하여 단과 납달리를 낳았습니다(3-8절, 현대인의 성경).
자기 여종을 자기 남편에게 첩으로 주어서라도
아들을 낳길 원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인의 심정을 생각해 봅니다.
내 딸을 강간한 남자에게 내 딸을 시집 보낼 수 있을까요?
자신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 야곱은 양을 치고 있었던 자기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세겜과 같이) 와서 야곱에게 "세겜이 해서는 안 될 그런 못된 짓"을 한 것을 야곱에게 말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야곱의 아들들이 들에서 집으로 돌아와 그 말을 듣게 할 정도로요.
그리고 하몰은 야곱에게 "내 아들 세겜이 당신의 딸을 마음에 두고 연모하고 있으니
그녀와 결혼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 야곱과 그녀의 남자 형제들에게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습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예물을 말하십시오.
만일 이 처녀만 내 아내로 주신다면 당신들이 그 어떤 것을 요구해도 내가 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34:6-12, 현대인의 성경).
자신의 딸이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야곱은 왜? 어떻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세겜은 자기가 강간한 디나를 얼마나 사랑해서 얼마나 자기 아내로 맞이하길 원했으면
디나의 아버지 야곱과 그녀의 남자 형제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려고 했을까요?
내 딸을 강간한 남자에게 내 딸을 시집 보낼 수 있을까요?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유다서 1:1,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우리는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후렴 가사를
하나님께 믿음으로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내 손의 글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기원합니다(시19:14)
내 손의 글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기원합니다(시19:14):
'주님, 저의 짧은 하나님의 말씀 묵상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보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의 마음에 심겨지게 하소서.'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아버지 야곱은
자기가 특별히 사랑하였던 노년에 얻은 요셉(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의 피에 적신 옷을 보고 "내 아들 요셉은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라고 통곡하며
오랫동안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였었기에(31-35절, 현대인의 성경)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굶어 죽지 않으려고(41:54, 57; 42:2, 현대인의 성경)
그의 10명의 형들을 이집트(애굽)에 곡식을 사오라고 보낼 때
요셉의 동생 베냐민은 그들과 함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베냐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42:4, 현대인의 성경).
자식을 이미 잃어본 부모의 마음은
또 다른 자식까지 잃어버릴 까봐 충분히 두려워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두 번째 아들들을 이집트(애굽)으로 보낼 때에
야곱은 베냐민을 함께 보내면서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43:14).
"내가 전에 죽었으나 이제는 영원히 살아 있으며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을 보고 그 발 아래 엎드려 마치 죽은 사람같이 되었던 사도 요한에게
예수님께서는 오른손을 얹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살아 있는 자이다.
내가 전에 죽었으나 이제는 영원히 살아 있으며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
(요한계시록 1:17-18, 현대인의 성경).
너그러운 사랑과 용서를 구하는 선물?
사람을 보내 형 에서에게 문안드리고 안부를 전했던 야곱은
밤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 자기 형 에서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하여
그 많은 짐승들을 여러 떼로 나누어 종들에게 맡기고
"너희는 각 떼마다 간격을 두어 짐승들을 몰고 먼저 가거라"고 말한 후
제일 선두에 가는 종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네 주인은 누구며 너는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에 있는 이 짐승들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이것들은 당신의 종 야곱의 것인데 그의 주인 에서에게 보내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내 주인 야곱도 뒤에 오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야곱은 또 두 번째와 세 번째 가는 자와 그리고 각 떼를 따라가는 모든 자들에게도
같은 지시를 하였다.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이와 똑같이 말하고
당신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습니다 하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한 이유는 먼저 선물을 보내 형의 감정을 누그러지게 한 다음에
그를 만나면 그가 자기를 용서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32:4-20, 현대인의 성경).
야곱은 형 에서의 너그러운 사랑(5절, 현대인의 성경)과 용서를 바랬습니다(20절, 현대인의 성경). 잠언 말씀들입니다: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잠언 21:14),
"선물은 주는 사람의 길을 열어 주고 ..."(18:16),
"너그러운 사람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 좋아하는 자에게 사람마다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19:6, 현대인의 성경).
"너는 너의 첫 사랑을 버리고 말았다."
주님은 우리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악한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고
자칭 목사라는 사람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을 밝혀 낸 일도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잘 참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끝까지 견디고 게으르지 않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책망할 일이 한 가지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너의 첫 사랑을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에 행한 일을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1-5, 현대인의 성경).
'너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가장 교활한 사탄은 우리에게 '너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속삭이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게 만들려고 미혹하고 있습니다
(참고: 창세기 3:1-5, 현대인의 성경).
너무 놀라면 말을 잇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믿겨지지 않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나는 요셉입니다 ..."라고 말하니까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대답을 하지 못하였는데(창세기 45:3, 현대인의 성경)
그들의 아버지인 야곱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가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하자
깜짝 놀라며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26절, 현대인의 성경).
너무 놀라면 말을 잇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믿겨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믿겨지지 않는 너무나도 놀라운 일은
십자가에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4, 현대인의 성경)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눈깜짝할 사이에
죽은 사람들이 썩지 않을 사람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며 우리는 모두 변화될 것입니다"
(52절, 현대인의 성경).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서로 다른 꿈을 꾼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본 요셉은
그들이 수심에 잠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오늘은 어째서 그처럼 수심에 잠겨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꿈을 꾸었으나 해몽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40:5-8, 현대인의 성경).
한나도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수심에 싸여 있었고(사무엘 상 1:15, 18, 현대인의 성경),
암논도 이복 동생 다말을 몹시 사랑하여 날마다 수심에 잠겨 있었으며
(사무엘 하13:1-4, 현대인의 성경),
느헤미야 또한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수심이 가득했었습니다.
그 때 아닥사스다 왕은 병이 없는 느헤미야에게 수심이 가득한 이유가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 1:2-3, 2:1-2, 현대인의 성경).
우리 마음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할 수 있습니다(시편 55:2, 현대인의 성경).
또한 우리는 근심으로 시력이 약해지고 우리 몸과 영혼이 쇠약해질 수 있습니다
(시편 31:9, 현대인의 성경).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며(잠언15:13) 또한 뼈를 마르게 합니다(17:22,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위로 받지 못하는 근심은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예레미야 8:18).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닙니다(예레미야 애가 3:33). 그리고 비록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32절, 새 번역).
이 주님께서 오늘 근심하고 있는 우리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4:1).
우리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의 위로가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는 은혜가 있길 기원합니다(시편 94:19).
노아처럼
노아처럼 하나님께서 저주한 땅에서 수고하며 고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자가 되길 기원합니다(창세기 5:29, 현대인의 성경).
놀라운 방법으로 생존케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과 은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요셉(창세기 39장)을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총리로 높이시사(41장)
모든 영화를 누리게 하신(45:13, 현대인의 성경) 목적은
심각한 기근으로 인해(43:1, 현대인의 성경) 굶주리게 될 상황에서
요셉으로 하여금 아버지 야곱을 보살피고(45:11, 현대인의 성경)
그의 형님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살아 남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놀라운 방법으로(7절, 현대인의 성경) 생존케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과 은혜를 엿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불 못에 던져져 거기서 그들은 밤낮 끊임없이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10, 15, 현대인의 성경).
다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눈의 욕심과 삶에 대한 자랑도 다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2:15-17, 현대인의 성경).
다들 궁핍함으로 쇠약해 가고 있을 때에 ...
기근이 더욱 심하여 온 땅에 양식이 없어서
이집트와 가나안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쇠약해 가고 있었을 때
요셉의 아버지 야곱과 요셉의 형제들은 이집트에서 제일 좋은 땅에 거주하면서
요셉이 공급하는 양식으로 인해 모든 가족들이 굶주림으로 쇠약해 가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47:11-13, 현대인의 성경).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의 고센 땅에 살면서
재산을 모으고 번성하여 많은 자녀를 낳았습니다(27절, 현대인의 성경).
다들 궁핍함으로 쇠약해 가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사 오히려 풍부케 하십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뵙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서 흠 없는 깨끗한 생활을 하여
평안한 마음으로 그분을 뵙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14, 현대인의 성경).
다시는 주님을 뵙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가 된 것
죄를 이기지 못하고 죄에 다스림을 받아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의 형벌은
주님께서 그를 쫓아내시사 그가 다시는 주님을 뵙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가 된 것입니다
(창세기 4:7-8, 14, 현대인의 성경).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셔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27:46).
"당신이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돕고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이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돕고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고: 창세기 21:22, 현대인의 성경).
대신 저주까지 받고자 하는 심정
둘째 아들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의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려는 과정에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데 나는 털이 없이 매끈합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나를 만져 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아버지를 속이는 자가 되어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어머니 리브가의 대답을 들어보세요:
"얘야,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 너는 가서 염소나 안고 오너라"(창세기 27:11-13, 현대인의 성경). 어머니 리브가는 사랑하는 둘째 아들 야곱을 위해서라면 대신 저주까지 받고자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내 대신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신명기 21:23; 갈라디아서 3:13).
더 근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에서는 헷 족속의 두 여자와 결혼했는데
그들은 에서의 부모님인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6:30-31, 현대인의 성경).
불신자 며느리/사위로 인해 근심할 수 있겠지만
왠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크리스천 며느리/사위나 사돈으로 인해 더 근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더욱더 견고한 승리장로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승리장로교회를 반석이 되시는 그리스도 위에 견고히 세워주시길 기원합니다!
(마태복음 16:18; 고린도전서 10:4).
더욱더 그리스도 중심 된 꿈을 가진 일꾼을 세워주소서!
주님께서 그리스도 중심 된 꿈을 가진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들을 세워주시길 기원합니다!
(마태복음 9:37-38; 사도행전 13:1-5)
더욱더 하나님께 감사하는 승리장로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또 들으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깨닫아가므로
더욱더 하나님께 감사하는 승리장로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골로새서 1:6)
"도울 적합한 짝"
여자는 그녀의 남편을 "도울 적합한 짝"입니다
(창세기 2:18, 20, 현대인의 성경).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온갖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알고
돈을 사랑하지 말고 가진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5; 디모데전서 6:10, 현대인의 성경).
두려움?
두려움은 자기가 한 말을 부정하게 만들며 또한 거짓말을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창세기 18:15, 현대인의 성경).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안전한 곳이 있을리라 만무합니다.
소알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천사들에게 허락을 받고
산으로 도망가지 않고 작은 성 소알로 도망갔던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한 후 소알에 사는 것도 두려워서
두 딸과 함께 그 곳을 떠나 산으로 올라가서 동굴 속에 살았습니다
(창세기 19:17-22, 30,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안전한 곳이 있을리라 만무합니다.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
자유를 주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법을 마음 속에 새기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그가 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야고보서 1:25, 현대인의 성경).
떠나 보낸 딸?
떠나 보낸 딸을 더 이상 부모가 억지로 사위에게서 빼앗으려고 하면 아니 됩니다(창세기 31:31).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기에 ...
우리의 원수인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기에
우리는 바짝 정신을 차리고 철저하게 경계하며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항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8-9, 현대인의 성경).
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요한일서 2:14, 현대인의 성경).
마음 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욕망이 있다면 ...
마음 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욕망이 있다면 입을 열어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입을 열어 자랑하게 되면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을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3:14, 현대인의 성경).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주실 은혜를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13, 현대인의 성경).
마음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언니 레아가 네 아들인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를 낳으면서
어떠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는지(창세기 29:32-35, 현대인의 성경)와
동생 라헬이 자기 여종 빌하를 통해 두 아들인 단과 납달리를 낳으면서
어떠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는지(30:3-8, 현대인의 성경)를 비교하면
레아의 마음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매우 갈급히 하다가
넷째 유다를 낳았을 때는 하나님을 찬양한 반면에
라헬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아시고 자기가 호소하는 소리를 들으셨다는 것과
자기 언니 레아와의 심한 경쟁에서 이겼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레아의 마음은 남편을 야곱을 향하고 있었고,
라헬의 마음은 자기기 시기하던 언니 레아에게 향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두 여인에게 향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마치 율법의 재판관인 것처럼
우리는 율법의 준행자인데 마치 율법의 재판관인 것처럼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입니다(야고보서 4:11).
마치 작은 불씨가 큰 숲을 태우듯이 ...
마치 작은 불씨가 큰 숲을 태우듯이
우리 몸의 작은 부분에 불과한 혀도 잘못 사용하면 큰 손해를 가져옵니다
(야고보서 3:5, 현대인의 성경).
만일 우리가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우리가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8, 16).
만일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
만일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요한일서 2:1-2, 현대인의 성경).
만일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맛보았으면 ...
만일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맛보았으면
우리는 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한 말씀의 젓을 사모하며
모든 악한 생각과 속임수와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을 버리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1-3, 현대인의 성경).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산다고 한다면 ...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산다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것과 똑같이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2:6, 현대인의 성경).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 ...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거짓말장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2:4, 현대인의 성경).
만일 주님께서 우리 중에 진실이 있는지 시험하신다면?
요셉이 그의 형들의 말을 시험하여 그들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본 것처럼
만일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말을 시험하여
우리 중에 진실이 있는지 시험하신다면 ...?
(참고: 창세기 4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