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낮추시는 하나님

 

 

교회가 하나님께 크게 범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낮추시는 것은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대하 28:19).

 

그러나 만일 교회가 하나님께 크게 범죄하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또 높일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냥 내버려 두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큰 심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돌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을 떠났기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의 대적이 되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왕상 11:9, 14).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예정하시고, 예정하신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자 예수님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육신에 죄를 정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영을 따라 행하게 하시고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셨으며

우리를 인도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는 사탄과 모든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로마서 8장).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십시다!

 

 

우리 모두 주님을 위해 일평생 당하는 죽음의 위험에

육신의 눈으로 초점을 맞추지 말고

우리로 하여금 이 모든 죽음의 위험에서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눈으로 초점을 맞추십시다!

(롬 8:36-37)

 

 

 

 

 

우리의 고난을 보시고 아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시기에

내가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시 31:7).

 

 

‘=

 

 

우리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길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정하시고 우리의 길을 기뻐하실 것입니다(시 37:5, 23).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나의 도움"이 되시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는

나의 "그늘"이 되십니다(시 121:1, 2, 5).

 

그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요나,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셨는데 자기를 자기의 뜻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뜻을 관철하려고 하는 요나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시므로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주셨습니다(욘 4:6).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요나와 같은 저 같은 자에게도 "그늘"을 지게 하시사

저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지만

우리가 주님을 잊지 않고 주님의 언약을 어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위축되지 않았고 우리 걸음도 주님의 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 44:17-18).

 

 

우리의 모욕을 갚아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 당한 우리의 모욕을 갚아 주사

우리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케 하십니다(삼상 25:39).

 

 

 

 

 

우리의 영원한 고향

 

우리에게는 주님 안에서 돌아갈 영원한 고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쁘고 즐거운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 것입니다.

이 영원하고 확실한 소망이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슬픔 많은 이 죄악 된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돌아갈 고향인 천국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히 11:15-16).

 

 

 

 

 

우리의 영혼을 기쁘시게 하시는 주님

 

 

주님께서 환난 날에 부르짖는 우리의 영혼을 기쁘게 하시되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기뻐하시므로 우리의 영혼을 기쁘게 하십니다(시 86:3-5).

우리의 힘?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힘으로 삼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해야 합니다

(시 52:7, 8).

 

 

 

 

 

위대한 이름?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우리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셔야지

우리의 뜻(마음대로) 우리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려다가는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합니다

(삼하 7:9).

 

 

 

 

 

 

 

위험한 두 사람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권력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연합하면 참으로 위험합니다

(왕상 21:1-16).

유익한 고난과 상함?

 

 

하나님이 여러 가지 고난으로 요란하게 하시므로

우리가 피차 상한 바 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을 찾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면

그 고난과 상함은 유익한 것입니다(대하 15:4, 6).

 

 

 

 

 

육신의 거리를 두는 것이

마음의 거리를 두는 것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 다윗에게 진심을 용서를 받지 못했던 아들 압살롬,

그는 아버지 다윗의 얼굴을 5년 동안이나 보지 못했습니다

[도망하여 3년은 그술에서(삼하13:38) + 돌아온 예루살렘에서 2년(14:23-24, 28)].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보고 싶어서 노력을 했습니다(29-32절).

그가 요압에게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32절).

압살롬의 심정은 자신을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는 아버지 다윗의 얼굴도 2년 동안이나 보지 못하면서 예루살렘에 사는 것보다 오히려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도망가 3년 동안 그술에서 살았던 것이 더 좋았던 것입니다.

 

한 지붕 아래 함께 살면서 가족이 서로 용서하지 않고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사는 것보다

육신의 거리를 두고 살면서 마음으로 서로 간절히 그리워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13:38-39).

의미 없는 숫자, 의미 있는 순종

 

 

하나님에게는 숫자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지에 의미를 두십니다.

 

심히 큰 숫자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버리므로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적은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므로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대하 24:20, 24).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 보다 낫습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 보다 낫습니다.

그 이유는 의인은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므로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하지만

악인의 팔은 부러지며 연기가 되어 멸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37:16, 17, 20, 24).

 

 

이 또한 역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 지위가 높이 올림을 받은 하만,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으므로 매우 노했던 하만이

결국에 가서는 모르드개의 사촌인 하나님께 높이 올림을 받은 왕후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려서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이 또한 역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 3:1-5; 7:7-8)

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는가!

 

 

육적인 죽음에서 살아난 것을 그리도 감사하고 기쁘다면,

하물며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엡 2:1)

하나님 아버지의 전적인 은혜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성령 하나님의 살리시는 역사로 살린바 되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을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는가.

 

 

 

이 큰 역경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당면한 이 큰 역경으로 인해 두려워하거나 놀랄 필요가 없는 이유는

이 큰 역경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보면 됩니다(대하 20:15, 17).

 

 

 

이러한 사람들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바른 교훈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자기 욕심을 따"르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자기의 "귀를 즐겁게"하고자(딤후4:3, 현대인의 성경)

자기에게 좋게 말하는(대하18:12) '목사'를 '참 목사'라고 믿고

그 가짜 목사를 추종하고 그 거짓 목사에게 맹종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주님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는 자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시며

그의 입술을 요구를 거절하지 않으십니다(시 21:1-2).

 

 

"인과응보적 신앙관"?

 

 

"인과응보적 신앙관", 의인의 고난은 인정하지 않고 죄인에게만 고난이 임한다는 신앙관은

의인이 고난을 당할 때에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 의인을 정죄하고 책망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고난도 허락하셔서 그 의인을 성숙한 신앙으로 인도하십니다.

 

(성경 "욥기"서의 해설을 읽으면서)

 

 

 

인생의 쓴 맛을 보고 있을 때 ...

 

 

인생의 쓴 맛을 보고 있을 때 나오미에게는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굳게 결심함으로 말한 며느리 모압 여인 룻이 있었고(룻 1:16-18),

다윗 왕에게는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라고 말한

블레셋 족속 출신 잇대 장관이 있었습니다(삼하 15:21).

우리가 인생의 쓴 맛을 보고 있을 때 룻이나 잇대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인생의 위기 때 ...

 

 

인생의 위기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삼하15:25-26)

다시금 주님의 성전을 바라보며(욘 2:4) 다시금 주님께서 계신 곳을 바라봅니다(삼하 15:25).

 

 

 

 

 

"인심"을 얻지 못하는 이유?

 

 

자칭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위 사람들에게조차 "인심"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못하는 것 보다 '인간' 됨됨조차도 안돼서 일수도 ...

 

(사무엘하 15장 13절을 다시금 읽다가 든 생각)

 

 

 

 

 

 

일심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주님의 도를 가르침 받으며 주님의 진리를 행하는 자는

일심으로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며 전심으로 주님을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립니다(시 86:11-12).

일어나 바로 섭시다.

 

 

하나님 외에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을 의지하는 자는

비틀거리며 엎드러지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자는 일어나 바로 섭니다(시 20:7-8).

 

 

 

 

 

 

자기 자신을 ...

 

 

자기 자신을 지혜롭게 여기는 부자가 되기보다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살피는 명철한 가난한 자가 돼야 합니다(잠 28:11).

 

 

 

 

 

 

 

자기의 생명과 죽음

 

 

생명의 위협을 받는 형편 때에는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을 간 자가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의 죽음'을 구하였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왕상 19:2-4).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프면 ...

 

 

교인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프면

목사님을 "돌"로 칠 수도 있습니다

(삼상 30:6).

 

 

 

 

 

 

 

자녀를 통해서 ...?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 두 개가 있습니다:

(1) 요한복음 6장 1-15절 말씀(저 개인에게)과 (2)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승리장로교회). 

(1) 첫 번째 약속의 말씀은,

물고기 2마리와 떡 5덩어리 밖에 안 되는 제 자신을 주님께 받칠 때에

 주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사 남자만 5,000명을 먹이신다는 약속이고

(무슨 뜻인지 몰라 20년 넘게 말씀과 씨름을 했음. 

조금 깨닫게 된 것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나눌 때에

주님께서 그 묵상 말씀을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 같음),

(2) 두 번째 약속의 말씀은, 제가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는 승리장로교회는

(a) 주님의 교회요 (b) 주님께서 세우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약속의 말씀들을 저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어쩌면 제 자녀를 통해서도 이루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열왕기상 8장 15절을 읽다가 들었습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마음?

 

 

자녀를 향한 '간절한 마음'보다 자녀를 '용서하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삼하13:39; 14:24, 28).

 

 

"작은 구름" "큰 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기도 응답의 싸인이 없다가

일곱 번째서야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 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구름"이 결국에 가서는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왕상 18:43-45).

 

기도응답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끊기 있게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너무나 "큰 비"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작은 구름"에도 믿음으로 감사하며 행동으로 옮기십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비"를 내리시기 전에

"작은 구름"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입니다.

 

 

내 원수"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무덤으로 스올에 내려가는 것 같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므로 비록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평생이기 때문입니다

(시 30:1-3, 5).

전심으로 주님의 길을 걸으십시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우리 가정과 교회를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

(대하 17:1-6).

 

 

 

 

 

 

절망 가운데 경험하는 깊은 하나님의 은혜?

 

 

큰 절망 가운데 경험하는 깊은 하나님의 은혜는 주님은 나의 소망이시라는 진리입니다

(시 71:5).

 

 

 

 

 

 

 

점점 힘을 얻습니다.

 

 

"손이 깨끗한" "의인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꾸준히 가"므로 "점점 힘을 얻"습니다

(욥 17:9).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과 정직한 의인들

 

 

진실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정직한 말씀을 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의인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마땅히 찬송을 드립니다

(시 33:1, 2, 4, 5, 9).

 

 

 

 

 

 

 

조금 구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대하12:1) 하나님을 버려서(5절)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을 때에(2절)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넘겨

우리의 죄의 결과로 고통을 당하게 허락하십니다(5절).

그 결과 우리는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6절).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겸비함을 보시고

우리를 충만히 벌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조금 구원"하십니다(7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분히 진노를 쏟지 않으십니다(7절).

그 이유는 이미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독생자 예수님에게 모든 진노를 쏟아 부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부귀와 영광을 크게 누릴 때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 왕 여호사밧은 부귀와 영광을 크게 펼쳤을 때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습니다(대하 18:1)

(여호사밧이 자신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 왕의 딸 아달랴와 결혼을 시켜 아합 왕과 동맹을 맺었음).

그 일로 인해 여호사밧 왕은 선견자 예후에게 이렇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19:2).

우리는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할 사람과 관계를 맺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악한 자를 도와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좀 뼈저리게 느끼고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라도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음과

나의 무능력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욥 6:13).

 

그래야만 우리는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로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하게 됩니다(시 121:2).

좋은 사람이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소식을 전하듯이(삼하18:27),

복음(기쁜 소식)의 합당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빌1:27)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죄입니다.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롬 14:23).

 

 

 

주님,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주님,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우리의 원수들은 우리에 대하여 우리가 어느 때에나 죽고

우리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고 악담을 합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우리에게 다정한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비방하는 말을 꾸며 나가서는 그것을 퍼뜨리고 다닙니다.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에 대해서 서로 수군거리고  우리를 해할 악한 계획을 세웁니다.

심지어 우리가 신뢰하여 우리의 떡을 나눠 먹던 우리의 가까운 친구도 우리를 대적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사 그들을 보응해 주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줄 아오니 우리의 원수들로 하여금 우리를 이기지 못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님 앞에 세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시 41편).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단련하시되 ...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단련하시되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에 타고 가게 하셨"지만

마침내는 주님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습니다(시 66:10-12).

 

 

주님께서 주님의 얼굴을 가리시면 ...

 

 

우리가 형통할 때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산 같이 굳게 세움을 받은 것 같다가도

주님께서 주님의 얼굴을 가리시면 우리는 근심할 수밖에 없습니다(시 30:6-7).

 

 

주님을 의지하는 약한 자는 승리합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길 수 없지만

믿음으로 보면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약한 자는

주님께서 이기게 하십니다(대하 14:11).

 

주님의 가난한 자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는 "주의 판단력"을 가진 왕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되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므로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압박하는 자를 꺾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를 것입니다

(시 72:1, 2, 4, 7, 12, 13).

주님의 구원을 더욱더 사랑하게 됩니다.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과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로 인해

비록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지만 오히려 그들로 말미암아 나는 주님을 찾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의 구원을 더욱더 사랑하게 되므로 나는 "항상"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라고 말합니다

(시 70:2, 4-5).

 

 

 

 

주님의 복을 받은 자들과 저주를 받은 자들?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들, 온유한 자들은 주님의 복을 받은 자들로써 땅을 차지하지만

악을 행하는 자들, 악인은 주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로서 반드시 끊어질 것입니다

(시 37:9-11, 22).

 

 

 

 

 

주님의 판단력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주님의 판단력을 목사인 저에게 주셔서 주님의 백성에게 공의를 행하며

주님의 가난한 자에게 정의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시 72:1-3).

주야로 방비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가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매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는 교회 대적자들은 "다 함께 꾀하"여 교회를 "치고" "요란하게"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을 말미암아 (영적)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해야 합니다(느 4:7-9).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환난 중에 있"으므로 "나는 가난하고 슬"플 때

주님이 아시는 "나의 우매함"을 나 또한 알게 되고

주님 앞에 숨길 수 없는 죄를 나 또한 깨닫게 되므로 "수치가 나의 얼굴을 덮였"기에

나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찾습니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시 69:5-7, 17, 29, 32).

 

 

죽기 전에 자녀에게 할 말?

 

 

다윗은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가게 되었을 때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형통의 비결을 가르쳐 줬습니다.

그 형통의 비결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왕상 2:1-3).

나는 다윗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죽음의 길을 가게 될 때에

사랑하는 세 자녀에게 뭐라고 말할까?

그 때 가서 성령님께서 내가 해야 할 말을 가르쳐 주시겠지만

어쩌면 그 할 말 중에 하나는 내가 그들의 아버지로서 그들을 위하여

그들이 태어나서 부터 평생 죽을 때까지 기도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된다.

죽음조차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이유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성경대로 자기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버리셨고

성경대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 나셨기 때문입니다(롬 8:35; 고전 15:3-4; 요일 1:1-2; 3:16).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는 주님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사

우리로 하여금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죄악을 자복하고 회개케 하시되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간구케 하십니다(시 51:5, 6, 10, 17).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는 이유

 

 

우리가 주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받은 것으로 주님께 드릴 뿐입니다(대상 29:14).

지금 하나님 우편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간구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지금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간구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롬 8:34).

 

제 생각엔 지금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완성(consummation)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Already) 구원을 받았지만(요한복음 19:30), '아직도'(Not-yet)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요한계시록 21:6).

다시 말하면, '이미' 예수님이 오셔서(초림) 우리를 구원해 주셨지만

'아직도' 예수님이 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재림).

그러므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구원을 받은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저는 지금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가 "영화롭게" 되길 기도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로마서 8:30).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영화롭게 하셨지만,

아직도 우리는 완전히 영화롭게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하나님 앞에 세워지길 간구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엡 5:27).

 

또한 제 생각엔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교회)가 하나(unity)가 되길 간구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요 17:11, 21, 22).

다시 말하면, 지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길 간구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이 하나 되게 하셨지만(에베소서 4:3) 아직도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온전히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하여 간구하실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

 

 

아버지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지혜 있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왕상 2:9).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사 사랑하는 딸 예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계심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진실 된 말씀을 전해달라고 말하면서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들

 

 

진실 된 목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데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죄가 들춰질까 봐

그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거짓된 위로의 말 듣기를 좋아하면서도

그 목사님이 전하는 말씀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진실 된 말씀을 전해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왕상 22:14-16).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잠8:13)

우리는 악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다(왕하17:32-33).

찬송 중에 계시는 주님을 의뢰하고 의뢰해야 합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실지언정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을 정도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생각과 느낌이 드는 환난 가운데 있을 때,

환난은 가까운데 하나님은 너무나 멀리 계시다는 생각과 느낌이 들고,

하나님은 우리를 돕지 아니하시는 것 같을지라도,

우리는 찬송 중에 계시는 주님을 의뢰하고 의뢰하므로

주님께 건짐과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시 22:1, 3, 4, 5, 11).

 

 

 

찬송은 우리가 마땅히 할 바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의인들은

정직한 자들로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기에 마땅히 찬송을 하나님께 드립니다(시 33:1).

 

 

 

 

참 목사님과 가짜 목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말하는 목사님은 참 목사이지만(대하 18:18)

"바른 교훈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자기 욕심을 따"르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하고자

(딤후4:3, 현대인의 성경) 다른 가짜 목사들처럼 "좋게 말하"는 목사는 가짜 목사입니다

(대하 18:12).

참음으로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분의 사랑의 폭과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아 가면 알아갈 수록 우리는 끊을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확신과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현재의 고난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을 소망하면서 참음으로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롬 8:18, 25, 37, 39; 엡 3:18, 현대인의 성경).

 

 

 

 

 

친구로부터도 동정을 받지 못하는 "낙심한 자"

 

 

친구로부터도 동정을 받지 못하는 "낙심한 자",

오히려 그 친구는 낙심한 나를 책망하고 나의 말을 꾸짖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나는 기대가 무너져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욥 6:14, 20, 25, 26).

 

 

 

 

 

칼 같이 찌르는 비방을 들을 때에

 

 

우리의 대적이 우리의 뼈를 찌르는 칼 같은 비방을 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해야 합니다(시 42:9-10).

크게 존경 받고 사랑을 받는 자

 

 

하나님의 백성 중에 크게 존경받고 하나님의 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들을 안위합니다(에 10:3).

 

 

 

 

 

탐심으로 가득 찬 지도자

 

 

한 시민의 소유를 원하는 탐심으로 가득 찬 한 나라의 지도자(부부)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고 악용하고

권모술수를 써서 그 시민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시민의 소유를 강탈해 갑니다

(왕상 21:1-16).

 

 

 

 

 

 

틀림없이 욕할 줄 알았는데 ...

 

 

사탄은 욥의 모든 소유물을 치면 "틀림없이" 욥이 주님을 향하여 욕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 모든 일의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하며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다"라고 말했습니다(욥 1:11, 20-22).

평안함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대적에게서 벗어나게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평안함을 얻게 하시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에 9:22).

 

 

 

 

 

하나님 아버지의 큰 기쁨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인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모습을 보시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요이 1:4; 요삼 1:3, 4).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십시다.

 

 

악을 행하는 자들과 악을 꾀하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십시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입니다(시 37:1-2, 7).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으십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을 때에 점점 강하여질 것입니다(대하 27:6).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합니다.

 

 

남편 다윗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춤을 췄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 미갈은 그 남편의 모습을 보고 심중에 다윗을 업신여기고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더 낮아지고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심중에 업신여기고 방탕한 자로 보고 염치없는 사람으로 볼지라도 말입니다(삼하 6:16-22).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고 깨끗해야 하는데 ...

 

 

우리는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우리 앞에 두고

그 말씀을 버리지 말고 오히려 더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을 지켜 악을 행하지 않고 죄악을 피하므로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고 깨끗해야 합니다(삼하 22:21-24).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는 성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는 견고히 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는 성도는 형통할 것입니다(대하 20:20).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고 계시기에 ...

 

 

우리를 해하려 하는 자의 생명을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이유는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길 기원합니다(삼상 26:21, 24).

 

 

 

 

 

 

 

하나님께서 그를 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목사님을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셨는데

그것을 알고도 그리한다면 죄가 없을까요?

"여호와께서 그를 치"실 것입니다(삼상 26:9-11).

하나님께서 금하시기에 ...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기에

아무리 아합 왕이 왕궁에서 가까운 나봇의 포도원을 얻고자

그 포도원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준다 할지라도,

또는 그 포도원의 값을 돈으로 준다 할지라도

나는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습니다(왕상 21:1-4).

 

나봇처럼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면 지위가 높든 권력이 엄청나게 쎄든

어떠한 사람이라도 그 금하시는 것을 하게 만들고자 할 때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그 사람에게 단호하게 거절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솔로몬 왕이 그의 아버지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온전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스라엘의 왕인 솔로몬이 그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하여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였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여인들이 솔로몬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여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습니다(왕상 11:1-4).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정의를 사랑하는 성도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정의를 사랑하는 성도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지 아니하고 영원히 보호를 받으며 영원히 살 것입니다(시 37:27-28).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지라도 ...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욥 6:9-10).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를 ...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길 기원합니다(시 71:21).

하나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주님과 교회와 복음을 향한 사랑을 더욱 창대하게 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의 소망을 더욱 창대하게 하시사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으로 준비하면서 믿음 생활하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자녀들을 교훈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하여 저의 세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교훈케 하셨습니다(시 71:17). 

그 교훈이란 찬송가 "예수 사랑하심은"입니다. 

그 찬송가 후렴을 보면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라고 써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하여 주영, 딜런, 예리, 예은이에게 교훈하신 것은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고 써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로서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남은 세 자녀들을 사랑하므로

성경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딜런, 예리, 예은이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은 후에도 사랑하는 딜런, 예리, 예은이가 저를 기억(추모)할 때에

예수님의 사랑이 생각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사람은 ...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사람은 점점 강성해 갑니다(삼하 3:1; 5:10).

 

 

 

 

하나님은 나를 익히 알고 계시건만 ...

 

 

하나님은 나를 익히 알고 계시는데(시139:3)

과연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한가?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며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려야 합니다(시 28:13-14).

 

 

 

 

 

하나님을 소망하는 온유한 자들

 

 

악을 행하는 악인들은 반드시 끊어질 것이고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들,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 할 것입니다

(시 37:9-11).

 

 

 

 

 

 

하나님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내가 내 소망을 돈에 두고 그 돈을 내가 의뢰하였다면,

만일 내가 재산이 많다고 기뻐한 적이 있었다면,

만일 내 마음이 그 돈과 슬며시 유혹되어 그 돈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할 정도로 숭배했다면,

나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인 것이요 배반한 셈입니다(욥 31:24-28).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지혜로운 자녀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제 자녀를 칭송하기보다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왕상 5:7).

 

 

 

 

 

 

하나님을 찾으십시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대하 15:15).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욥과 같은 성도야 말로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심지어 사탄에게도 칭찬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욥 1:6-22).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대로 ...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잘 행하는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합니다(왕하 10:30).

 

 

 

 

 

하나님의 말씀이 주님의 화살처럼 나를 찌를 때에 ...

 

 

내가 내 허물과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지 않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주님의 화살처럼 나를 찌르고 주님의 손이 주야로 나를 심히 누르시므로

내 마음 깊은 속에 평안함이 없고 내 마음에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 같으므로

결국 나는 내 허물을 하나님께 자복하고 내 죄를 슬퍼하며

주님께 내 죄를 숨기지 않고 아뢰므로 주님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습니다
(시 32:1-5; 38:2-4, 18).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는 왜 계속 용납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인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을

우리"는 왜 계속 용납하고 있는 것입니까? (느 13:26-27)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이요 연약한 우리를 하나님이 미리(창세전에) 아신(사랑하신)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롬 5:6, 8, 10; 8:29, 30; 참고: 엡 1:4).

 

 

 

 

하나님의 일하심이 흥미롭습니다. (1)

 

 

하나님의 일하심이 흥미롭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자기가 세운 나무에 달기를 아하수에로 왕께 구하고자 왔는데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하려고 왕궁 바깥뜰에 있었던 하만에게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라고 물었으니 말입니다

(에 6:1-7).

 

 

 

 

하나님의 일하심이 흥미롭습니다. (2)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자가 하만 자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은 그 하만에게 자기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으므로

하만 자기를 매우 노하게 만든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하라고 명했습니다(에 3:2, 5; 6-10).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깨달아 누리게 하소서.

 

 

주님께서 우리 자녀를 모태에서부터 붙들어주시사(시71:6)

앞으로도 여러 가지 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깨달아 누리게 하시사

그/녀를 다시 살리시며 다시 건져(구원해) 주시므로

위로해 주시길 기원합니다(20, 21절).

 

 

 

 

 

하나님의 택한 길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친밀하심이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택한 길을 가르치십니다(시 25:12, 14).

 

 

 

 

 

하나님의 확실한 구원, 나의 구원의 확신!

 

 

사랑의 하나님의 확실한 구원으로 인해

나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로 목사님의 로마서 8장 말씀 선포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공동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지도자를 세우셔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십니다(왕상 10:9).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지각이" 없는 자들이요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아니요 "죄악을 행하는 자들"로서

"무지"하므로 "함께 더러운 자가" 되어 "한 사람도"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시 53:1-4).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지식으로 순종해야 하는데 ...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으로

이스라엘 왕은 병마와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신명기 17장 16-17절을 어기고 병거와 마병을 많이 모으고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흔하게 했습니다(대하 1:14-15).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형통과 창대케 되는 비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형통의 비결이요(창39:2, 3, 21, 23)

또한 심히 창대하게 되는 비결입니다(대하1:1).

 

 

 

홀로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해 있을 때,

심지어 우리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 형편을 볼 때에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홀로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그 광야에서 주님께 우리의 낙심과 죽고 싶은 마음(심정)을

간구로 쏟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육 간에 힘을 얻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왕상 19:1-8).

 

 

 

화평을 말하나 마음에는 악독이 있는 악인들 ...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마음에는 악독이 있는

악을 행하는 자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나의 힘과 나의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우리의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시 28:3, 7).

환난은 ...

 

 

환난은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주님을 우러러 보게 만들므로

신들 중에 주님과 같으신 분 없음과 주님의 행하신 것 같은 일도 없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은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님만이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 할 수밖에 없습니다(시 86:4, 7, 8, 10).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고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할 것 같을 때,

우리는 침묵을 깨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게 됩니다(욥 7:6-11).

 

 

 

 

힘이 있는 "여호와의 소리"

 

 

힘이 있는 "여호와의 소리"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는 여호와께

영광과 능력을 돌리고 예배해야 합니다(시 29:1, 2,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