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나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주님의 교회에 대하여 하신 약속의 말씀은(요6:1-15 & 마16:18)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왕하 10:10).
보상에 눈이 먼 친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친구를 위로 한답시고 와서
보상을 얻으려고 오히려 그 친구를 비난한다면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될 것입니다(욥 17:5).
보상에 눈이 먼 친구보다 사랑에 눈이 먼 친구가 낫습니다.
복 받은 사람들
지혜로운 지도자를 쫓는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항상 그 지혜로운 지도자에게서
그의 지혜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왕상 10:7-8).
부족함이 없습니다.
목자이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 23:1; 34:9-10).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고 있다는 것은 ...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결말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요(시 37:2; 73:17-20)
또한 내 마음의 소원을 내게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37:4).
불평의 소리 듣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눈물을 흘리며 원망으로 기도하는 소리까지도 들으셨는데
(민 11:12, 20)
하나님의 종이라는 목사인 나는 성도님의 불평의 소리조차도 듣지 못하고
나 자신을 방어하고 있으니 ... ㅠㅠ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지만 ...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을 가지고 섬기는 나를 비방하므로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기에 그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지만
주님께서는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기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시 69:4, 7, 8, 13, 19, 20).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이때에 ...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이"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 뛰"고 있습니다.
그들은 입술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하면서
"우리 것이"요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로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예수님을 믿는 의인들은
비록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끊어져도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고
"가련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안전한 지대에 두"실 것임을 믿고
순결하고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은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실 것입니다(시 12편).
뼈저리게 느끼는 나의 무능력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라!
우리가 당면한 큰 위기의 역경 속에서 우리 자신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가운데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이 큰 위기의 역경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속한 것을 깨닫고 임마누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할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찬송하게 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대하 20:12-21).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지위를 높이 올림을 받았을 때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여 "모르드게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했습니다(에 3:1-6). 그러한 하만이 왕후 에스더의 초청을 받아 아하수에로 왕과 함께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한번 참여하고 두 번째 잔치에도 초청을 받은 후 "그 날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와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매우" 분노했지만 "그는 그 분노를 참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5:1-10).
모드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모르드개의 민족인 유다인을 다 멸하고자 할 정도로 매우 분노하였던 하만이 어떻게 그 큰 분노를 참을 수 있었을까요?
제 생각엔 그 원인은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지방관이나 신하들보다 높인 것"과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11-1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만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했습니다(13절). 그 정도로 하만은 높이 올림을 받고 싶어 했고(3:2) 자기의 큰 영광을 자랑하고 싶어 했습니다(5:11).
그 결과는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세운 나무에(14절) 자기가 매달림을 받았습니다(7:9-10).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사랑의 확신, 승리의 확신
사랑의 확신이 있기에 승리의 확신도 있습니다(롬 8:35, 37, 39).
사랑이 언제나 변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헌신하는 마음이 항상 있게 하시고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언제나 변하지 않게 하소서(대상 29:18, 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나의 세 자녀들이 ...
사랑하는 나의 세 자녀들이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사랑하며
내가 지켜 행하는 주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기를 기원합니다(참고: 왕상 3:3).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 통혼하지 말아야 할 사람과
통혼하고 사랑하므로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왕상 11:2).
사랑해야 할 자와 사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할 자?
북쪽 이스라엘 아합 왕은 자기에 대하여 좋은 일로는 예언하지 않고
항상 나쁜 일로만 예언하는 참 선지자 미가야를 미워하였는데(대하 18:7),
남쪽 유다 왕 여호사밧은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인 아합 왕을 사랑하여(19:2)
아합 왕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습니다(18:1).
우리는 우리를 사랑으로 책망하는 참 목자를 사랑해야 하며,
주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탄은 사랑과 미움의 대상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사랑과 미움의 대상을 바꾸어놓고 있습니다(롬 1:23, 25, 26).
사탄은 우리가 사랑해야할 우리 이웃을 미워하게 만들고 있으며(요일 3:15, 23)
또한 우리가 미워해야 할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눈의 욕심과 삶에 대한 자랑"은 사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요일2:16, 현대인의 성경).
사탄의 "까닭 없이"와 "틀림없이"
사탄은 우리가 "까닭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께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아래서 우리의 모든 소유물을 칩니다.
그리하면 사탄은 우리가 "틀림없이" 주님을 향하여 욕한다고 말합니다(욥 1:9-11).
삼위일체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과 간구와 사랑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강력한 말씀으로 말씀하고 계시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강력한 기도로 간구하고 계시며,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강력한 사랑으로 역사하고 계신데 우리가 어찌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에 견고히 서 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존재"란?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말씀은(고후 5:17, 현대인의 성경)
"새 하늘과 새 땅"의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계 21:1).
생사의 갈림길에서 ...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 한다"라고 말씀하실지라도(삼하 15:25, 26),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종은(행 13:22)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라고 겸손히 말합니다(삼하 15:26).
"섞인" 모든 것을 "모두 분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섞인" 모든 것을 "모두 분리"해야 합니다.
모든 불순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순수하지 못한 "섞인" 믿음 안에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모든 불순한 거짓된 '믿음'을 분리해서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순수하지 못한 "섞인 사랑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모든 인간적인 죄악 된 '사랑'을 분리해서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순수하지 못한 "섞인" 소망 안에 우리의 소망되신 예수님 외에
모든 세상 적이고 보이는 순간적인 가짜 '소망'을 분리해서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순수하지 못한 "섞인" 성품 안에 예수님을 닮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닮아가는 거짓된 '진실'과 거짓된 '겸손' 등을 분리해서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순수하지 못한 "섞인" 마음의 동기 안에
입술로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섬긴다고 하면서
마음에는 자기의 영광을 들어내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와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모든 불순한 동기를 분리해서 제거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13장 3절을 묵상하면서)
섞인 신앙의 유산?
지금 우리 예수님을 믿는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남기고자 하는 신앙의 유산은
순수한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신앙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다른 민족의 풍속대로 그들의 신들도 경외하며 섬기며 예배하며 제사한 것처럼
지금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면서
이 세상에 풍속대로 돈을 경외하며 섬기며 예배하며 우상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은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 말을 경외하라"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왕하 17:27-41).
"성경대로" 간구하십시다.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 아버지께 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히 5:7; 롬 8:34). 간구하고 계시되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형편과 사정과 필요를 다 아시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롬8:26-27).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되 “성경대로” 간구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원로 목사님의 수요기도회 설교를 요약하면서).
성령님은 "친히" ...
성령님은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친히" 간구하십니다
(롬 8:16, 26, 27).
성전 건축
솔로몬 왕은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성전을 건축하였으며 그 시기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에 태평을 주시매
원수도 없고 재앙도 없"을 때였습니다(왕상 5:4-5).
세 자녀를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 저의 세 자녀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더 "넓은 마음"을 주셔서 그들의 "지혜의 소문"이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왕상 4:29, 34).
솔로몬의 천 마리 번제 보다 ...
솔로몬 왕은 1,000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지만(대하 1:6)
그의 아버지 다윗 왕은 3,000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대상 29:21).
수많은 거짓 목사들의 거짓 복음
거짓말 하는 영의 꾐을 받은 수많은 거짓 목사들은 지금 거짓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 거짓 복음을 듣기를 좋아하는 거짓된 교인들이 지금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을까요?
(왕상 22:1-23)
수백 명의 거짓 위로자보다 ...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있지 않는 나에게 앞으로 좋은 일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거짓된 위로자 수십 명보다 나에게 앞으로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참된 책망하는 한 사람이 낫습니다(왕상 22:8-13).
순금보다 더 사모하십시다.
영혼을 소성시키는 완전한 하나님의 율법,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는 확실한 하나님의 증거,
마음을 기쁘게 하는 정직한 하나님의 교훈,
눈을 밝게 하는 순결한 하나님의 계명,
영원까지 이르는 청결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
진실하여 다 의로운 하나님의 법도,
우리는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단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해야 합니다(시 19:7-10).
승리의 비결과 확신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승리의 비결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승리의 확신은
어느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과
어느 무엇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입니다(롬 8:35, 37-39).
실제와 결과가 다른 이유?
실제로는 아히도벨의 계략이 후새의 계략보다 났었는데
결과는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후새의 계략이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시려고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시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삼하 17:14).
우리의 삶의 계획에 있어서 실제와 결과가 다를 수 있는 경우는
하나님께서 그리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실족함이 없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는 의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습니다(시 37:31).
“심한 고통”
의인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악인은 형통하는 것을 보면서
왜 이런 것인지 이해하려고 생각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심한 고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시 73:1-16).
그 "심한 고통"에서 건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악인들의 "종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요 "갑자기 황폐"되는 것이요 "전멸"입니다(17-19절).
"심히"
요나답은 "심히" 간교한 자이고, 암논은 다말을 "심히" 미워했으며,
다윗은 "심히"노했습니다(삼하 13:3, 15, 21).
우리는 어리석은 암논처럼 심히 간교한 자의 말을 듣지 말뿐만 아니라 가까이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강제로 동침한 후 심히 미워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암논과 다말의 아버지 다윗처럼 심히 노하기만 하고 암논을 징계하지도 않고
다말을 위로도 하지 않는 이러한 아버지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심히 간교한 자" "요나답"
"요나답",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이 사람은 "심히 간교한 자"였습니다(삼하13:3).
그는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1절)의 친구로서(3절)
암논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아름다운 누이" "다말"을 사랑하되(1절)
그녀가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그녀로 인해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된 것을 알고(2절) 암논에게 간교한 조언을 하므로(5절) 결국 암논으로 하여금
"어리석은 일을 행하"게 하여(12절) "억지로" 다말과 동침했습니다(14절).
그리했던 요나답은 "만 이 년 후에"(23절) 다말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계획을 세워
암논만 죽였는데 다윗 "왕의 모든 아들들을 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이르"렀을 때(30절) 다윗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젊은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줄로 생각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그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날부터 압살롬이 결심한 것이니이다"(32절).
결국 심히 간교한 요나답으로 인해 암논은 다말을 억지도 동침하였고 그 일로 다말의 오라버니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는 간음죄와 살인죄가 다윗의 집안에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이미 아버지 다윗이 유부녀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 죄를 덮으려고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살인죄를 그의 두 아들인 암논과 압살롬이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의 옆에는 아직도 심히 간교한 요나답이 있었습니다(32절).
아골 골짜기를 브라가 골짜기로 바꾸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아골 골짜기"(괴로움의 골짜기)를(수 7:26)
"브라가 골짜기"(송축의 골짜기)로 만드십니다(대하 20:26).
아내가 매우 사랑스러우면 ...
아내가 매우 사랑스러우면 그녀의 소원,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을까요?
(에 5:2-3)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입술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데 ...
우리는 배우자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해도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하면서
욥처럼 우리 자신의 온전함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욥 2:3, 9, 13).
악을 거절할 능력도 없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악을 거절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거절할 능력도 없습니다(시 36:1, 4; 잠 8:13).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돌아가는 인생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돌아가는 인생,
모든 소유물(식구, 물질 등등)을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 할 수밖에 없습니다(욥 1:21).
어떻게 내가 위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나를 위로하려고 왔다는 친구들이 내 입장에 있지 못하면서
오히려 나를 괴롭히고 있으되 나에게 헛된 말을 끝없이 하고 있으니
어떻게 내가 위로를 받고 내 근심이 풀릴 수 있겠습니까(욥기 16:2-5).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16).
하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3:23).
심지어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5:44).
그런데 성경은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말1:3; 롬9:13).
또한 성경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14:26).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미워하셨고' 또한 '미워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실까요?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고통이 심한 친구를 어떻게 위문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요?
함께 있으면서 우는 자와 함께 울고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 어떻게 생각하나요?
(욥 2:11-13; 롬 12:15)
어떻게 친구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욥은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봐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했습니다(욥기 1:5). 그런데 그 자녀들이 다 죽었습니다(18-19절).
이해가 안되는 것은 욥의 친구 중 빌닷은 욥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다(8:4)
어떻게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은 자가
우상들을 위하야 산당을 지는 자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왕은 나이가 많을 때에
그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을 때에는
모압에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몰록과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산당을 지었습니다
(왕상 11:4, 7, 8).
어떻게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었던 자가 우상들을 위하여 산당을 지는 자가 되었을까요?
어버이 날 짧은 묵상
우리는 부모로서 신앙생활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신앙으로
세월이 지나갈수록 말씀 인격화 되어 더욱더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더욱더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가 돼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가 죽은 후에도
우리 자녀에게 여전히 예수님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히 11:4).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길 기원합니다(시 71:21).
하나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주님과 교회와 복음을 향한 사랑을 더욱 창대하게 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의 소망을 더욱 창대하게 하시사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으로 준비하면서 믿음 생활하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하여 저의 세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교훈케 하셨습니다(시 71:17).
그 교훈이란 찬송가 "예수 사랑하심은"입니다.
그 찬송가 후렴을 보면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라고 써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하여 주영, 딜런, 예리, 예은이에게 교훈하신 것은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고 써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로서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남은 세 자녀들을 사랑하므로
성경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딜런, 예리, 예은이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은 후에도 사랑하는 딜런, 예리, 예은이가
저를 기억(추모)할 때에 예수님의 사랑이 생각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자녀를 모태에서부터 붙들어주시사(시71:6)
앞으로도 여러 가지 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깨달아 누리게 하시사
그/녀를 다시 살리시며 다시 건져(구원해) 주시므로
위로해 주시길 기원합니다(20, 21절).
어쩌면 그 때가 ...?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고 싶을 때,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않을 때,
"내 삶은 무의미합니다"라고 말하며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라고 말할 때,
어쩌면 그 때가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소중히 여기셔서 많은 관심을 쏟으시고
아침마다 살피시며 매순간마다 시험"하시는지,
"주께서는 어째서 잠시 동안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지,
그 주님의 깊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는 귀한 기회일 수도 ...
(욥 7:15-19, 현대인의 성경)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고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물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병이 없"는데 그의 얼굴에 수심이 있는 것을 보고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마음에 근심이 있음으로 얼굴에 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느헤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채 그대로 있고 성문을 불탄 이후로 다시 세우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느 1:2-3; 2:2).
우리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므로 우리 마음에 근심과 얼굴에 수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며 사모해야 할 것은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는 은혜입니다(2:8:18).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실 때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0절).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진실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진실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자들은 강하고 담대합니다
(시 31:14, 23, 24).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합니다.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시 89:8)
주님께서 택하신 우리 교회와 "언약"을 맺으시고(3절)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견고케 하시며(21절)
주님의 능력의 팔로(13절) 우리를 힘 있게 하시며(21절)
"능력 있는 용사에게는 돕는 힘을 더하"시사(19절)
주님의 교회로 "건설"하고 계시오니(11절)
주님의 종인 우리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대대에 전하며(1절; 참고: 2, 5, 24, 33, 49)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합니다(52절).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두려워한 다윗
다윗은 자기의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 왕을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기에(삼상24:6, 10; 26:9, 11)
"여호와께서" 사울 왕을 자기 손에 두 번이나 넘기신 것을 알고도(24:10; 26;8, 23)
그를 해하지 않았습니다(24:10, 12; 26:23).
오히려 다윗은 자기를 학대하고(24:17) 해하려는(26:21) 사울 왕을 아끼고(24:10)
그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겼습니다(26:21, 24).
그런데 한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삼하1:13)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울 왕이 자기가 "고통 중"에 있으니 "나를 죽이라"고 했고
또한 그 아말렉 청년이 보기에 "살 수 없는 줄을 ... 알고" 사울 왕을 죽였습니다(6-10절).
다윗은 그 아말렉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14, 16).
결국 그 아말렉 사람은 죽임을 당했습니다(15절).
역전 중에 역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누웠던 무수한 유대인들이
결국에 가서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에 4:3; 8:16).
역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만은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했을 뿐만 아니라
에스더와 그녀의 민족을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려는 일을 "심중에 품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이 아니라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하였고,
또한 에스더와 그녀의 민족이 아니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죽임과 도륙과 진멸을 당하도록 했습니다.
역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 6:6, 10; 7:5, 10; 8:1-9:1)
연약함 속에 경험하는 강함
죄악 된 선택의 결과로 인해 큰 고통과 위기를 겪으면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인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사
우리가 마땅히 간구 할 바를 알지 못할지라도 오
직 성령님이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고 계시다는
로마서 8장 26절 말씀을 믿고 의지함으로 힘을 얻어 약할 때 강함 주시는(고후 12:10)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 말씀을 암송하면서)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은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않으므로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편 15편).
영적 면역성과 영적 근육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행 6:4)
영적 면역성(spiritual immunity)과 영적 근육(spiritual muscle)을 길러야
죄악의 바이러스와 세상의 유혹과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한 개인이나 …
예수님을 믿는 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가
하나님께 "높이 들림을 받"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 참 이스라엘을 위해서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대상 14:2).
오직 나는 주님만 바랍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 및 "내 친척들도" "내 상처를 멀리하고" 있을 때,
"내 생명을 찾는 자"와 "나를 해하려는 자가" "올무를 놓고"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밀 때,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시 38:11-15).
오직 나만 남은 줄 알았는데 ...
오직 나만 남아서 홀로 유별나게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것 같아 보일 때에
큰 역경과 위협 속에서 낙망과 탈진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남겨두시사 나 홀로가 아님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왕상 19:1-18).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는 자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여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는 자는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므로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은 "간사한 혀"로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합니다(시 52:2-4, 7).
오직 하나님께 희망을 두십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잠시 머무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날이 그림자와 같아서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대상29:15).
"그러나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롬12:12).
우리는 없어질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희망을 둬야 합니다(딤전6:17).
그 이유는 우리의 희망의 원천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롬15:13).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희망을 가지고 더욱더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시71:4).
오직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신앙?
'나는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며 하나님의 종인 목사님은 신뢰안합니다.'라고 말할 때에
신앙이 좋아 보일 수 있지만 그 신앙은 성경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삽니다(요일 2:17).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3:14, 현대인의 성경) 또한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 부분적으로 누립니다.
오히려 악을 만들뿐입니다.
분노를 그치지 않고 버리지 않으며 불평할 때에는 악을 만들뿐입니다(시 37:8).
왜 그랬을까요?
왜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았을 때 자신은 유다인임을 알렸을까요?
그 결과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의 민족이 다 멸함을 당하는 위기를 맞지 않았나요?
(에 3:1-6)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모르드개는 에스더로 하여금
자기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말라고 명령을 했다는 것입니다(2:10, 20).
그러다가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의 유대 민족이 큰 위기에 처해있었을 때에야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말했습니다(4:8).
왜 부부의 사랑을 끊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은 끊을 수 없는데 부부의 사랑은 끊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과 아내가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마 22:39; 롬 8:35).
왜 하나님께서는 사탄으로 하여금 ...?
하나님께서 사탄에게까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욥에게 왜 그리 극심한 고통들이 임했던 것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사탄으로 하여금 욥의 생명만 빼고 다 치도록 허락하신 것일까요?
(욥기 1-2장)
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일까?
왜 나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고 무시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징계가 더디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내가 미련해서?
(왕상 11:2)
외롭고 괴로울 때
외롭고 괴로울 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마음의 근심이 많을 때 고난에서 끌어내시는 주님의 건지심을 구하며,
곤고하고 환난을 당할 때 주님께서 내 죄를 사해 주시길 기원합니다(시 25:16-18).
욥과 같은 신앙인은 ...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올 줄 믿는 욥과 같은 신앙인은
주님의 뜻이 일정함과 주님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심을 믿음으로
“나는 그분 앞에서 떨며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르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깁니다(욥 23:10-15).
용서받지 못한 자의 반역
아버지 다윗에게 진심을 용서를 받지 못하므로
아버지의 얼굴을 5년 동안이나(삼상13:38; 14:23-24, 28) 보지 못했던 아들 압살롬은 "반역하는 일"(15:12)을 꾸며서(11절)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인심"(13절)]을 훔치므로(6절) 결국 아버지 다윗은 가족과 신하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을 갔습니다(14-18절).
전에는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후 "도망하여" 그술로 갔었는데(13:38)
이젠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도망"을 하였습니다(15:14).
용서하지 않는 마음
아들 압살롬을 향하여 3년이나 마음이 간절하였던 아버지 다윗 왕(삼하13:38-39),
그런데 왜 다윗은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한 압살롬으로 하여금 2년 동안이나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고 명했을까요?(14:23-24, 28)
어떻게 아들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였던 마음이 그 아들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게 한 것일까요? 제 생각엔 아버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은 있었지만 '용서하는 마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신" 사랑(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사랑하신 사랑)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정하신" 사랑(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사랑)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사랑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사랑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 사랑이기에
우리는 어느 누구도, 어느 무엇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롬 8:29-30, 35, 38-39).
우리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나의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삼하 22:19-20).
우리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만이 "나의 의지"가 되심과
나를 인도하시며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면한 큰 어려움 ...
우리가 당면한 이 큰 어려움과 큰 문제를 우리가 감당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대하 20:12).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외에 사람이나 물질 등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대하 16:7-9).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 되시는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시 46:1, 3).
우리는 부모로서 ...
우리는 부모로서 신앙생활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신앙으로
세월이 지나갈수록 말씀 인격화 되어 더욱더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더욱더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가 돼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가 죽은 후에도
우리 자녀에게 여전히 예수님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히 11:4).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확신이 있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또한 알고 있습니다(롬 8:28,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