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심 vs. 만족

 

 

탐심은 세상적인 헛된 것들을 아름답게 보게 만들고

그것들을 소유하게 만듭니다(수 7:21).

 

만족은 의미 있는 영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게 만들고

그것을 감사히 여기에 만듭니다.

 

 

 

탐심 속에서 한 사람이 불순종하므로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주실 때에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명하셨는데(수 6:18)

아간이란 한 사람이 탐심 속에서(7:21)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했습니다(1절).

 

성경은 아간 한 사람의 불순종이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우리를 괴롭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5절).

 

성경 로마서 5장 18-1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택함과 섬기는 이유

 

 

하나님이 우리는 먼저 택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섬기셨기에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수 24:22; 엡 1:4; 마20:28).

 

 

 

평탄한 길을 하나님께 간구하십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자녀 후손들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에스라 8:21).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십니다(22절). 

우리는 하나님의 응낙하심을 입을 것입니다(23절).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갈 것인데 ...

 

 

인생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갈 것인데

나 자신의 높음이나 낮아짐을 자랑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약 1:9-11).

피곤한 인생입니다.

 

 

족함이 없는 인생은 피곤한 인생입니다(참고: 전 1:8).

 

 

 

하나님 보시기에 어느 것이 더 나을까요?

 

 

높은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 보다

낮은 사람들과 함께 낮아져서 겸손히 섬기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훨씬 났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에 6:1-11; 9:4; 10:3)

교만한 자를 낮추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삼하22:28; 욥40:11-12; 시18:27; 잠 29:23).

(에스더 책에 나오는 하만과 모르드개를 생각할 때)

 

 

 

하나님 보시기에 …

 

 

하나님 보시기에 쓸모없는 사람은

삐뚤어진 입으로 거짓말과 속이는 말을 하는 자입니다(잠6:12). 

하나님 보시기에 쓸모없는 사람은 삐뚤어진 마음으로 항상 악을 꾀하는 자입니다(14절). 

하나님 보시기에 쓸모없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켜(14절) 인간관계를 삐뚤어 놓는 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쓸모 있는 사람은 바른 입으로 바른 말을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쓸모 있는 사람은 바른 마음으로 항상 선을 도모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쓸모 있는 사람은 화목케 하여 인간관계를 바르게 하는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마음으로 싫어하셨을까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달아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요일 3:1)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요 14:21).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상(reward)을 주십니다:

"열매", "안전", "평화", 승리, "번성"/"창대", 등등(레 26:4-10).

그 상 중에 하나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1절).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불순종할 때에는(14-15절)

"재앙" 등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18, 28절),

"일곱 배나 더 재앙"(21절), "칠 배나 더 치"실 것이며(24절),

우리의 수고가 헛될 것이며(20절), 열매를 맺지 아니할 것이며(20절), 등등,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30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요일 3:1).

그러한 가운데 든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을 때(요 3:16),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 지르셨을 때(마 27:46),

과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이신 예수님을(3:17) 싫어하셨을까?

 

과연 하나님 아버지는 십자가 상에서

독생자 예수님을 마음으로 싫어하시사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싫어하실 정도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반역의 죄를” 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싫어하던 땅”으로 여겼습니다(민 14:31, 33).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에서 40년 동안

그들의 죄의 대가를 받으므로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34절).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자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죽으시는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는 싫어하실 정도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요 3:16; 갈 1:4; 요일4:10)

 

 

 

 

 

하나님 앞에 심히 큰 죄입니다.

 

 

행실이 습관적으로 나쁜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배를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심히 큰 죄입니다

(삼상 2:12-17).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데 ...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 왕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십 사람들은 다윗을

사울 왕의 손에 넘기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라고

사울 왕에게 말했습니다.

그 때 사울 왕은 십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했습니다

(삼상 23:14, 20-21).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의무를 감당하지 않고

그 사람의 뜻을 행하는 것을 자기 의무로 여기므로

그 사람에게 축복의 말을 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녀를 키워야 하는 것인가요?

 

 

 

저는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성경 사사기 13-16장에 나오는 사사 삼손의 이야기를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의 입장에서 (또는 부모의 입장에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1. 마노아의 아내는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했습니다(삿 13:3).
  2.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자기 아내에게 나타나서 "...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고 말했습니다(3-5절).
  3. "이에 그 여인은 가서 그의 남편" 마노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6-7절).
  4. 그 말을 자기 아내로 부터 들은 마노아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습니다: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8절).
  5. 그런데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를 이번에도 마노아에게 나타나게 하지 않으시고 마노아의 아내가 밭에 앉았을 때에 그녀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9절).
  6. 마노아의 아내는 급히 달려가서 자기의 남편 마노아에게 알리므로 마노아는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르렀습니다(11절).
  7.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가 일전에 자기 아내에게 말씀하셨던 그 사람인지 확인한 후(11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12절).

저는 이 말씀을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의 입장에서 묵상할 때

그가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한 내용이 마음이 다가왔습니다:

(1)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8절)(마노아가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 (2)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12절) (마노아가 하나님의 사자에게 한 말).

 

이 마노아의 말을 생각할 때 저는 삼손의 아버지 입장에서 장차 태어날

삼손에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자에게 물은 것이 흥미로왔습니다.

특히 마노아의 입장에서 장차 내어날 아들 삼손은 하나님의 사자의 말대로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기에(5, 7절)

아버지로서 나실인 삼손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자에게 여쭤볼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마노나와 그의 아내는 부모로서

아들 삼손이 왜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올라와서" 부모에게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여자를 자기 아내로 맞으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을 것입니다.

유대인 여자도 있는데 왜 자기 아들 삼손이 이방 민족인 블레셋 여자하고 결혼하려고 하는지 부모로서 이해가 안 되었을 것입니다(14:1-3).

한 마디로, 삼손의 부모는 "이것이 여호와께서 계획하신 일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삼손을 통해 블레셋 사람을 칠 기회를 찾고 계셨"던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4절, 현대인의 성경).

또한 그 이유는 삼손은 자기 부모인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알리지 아니"했습니다.

무엇을 삼손은 자기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했냐면 ...

  1. 삼손은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던 중 딤나의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자기에게 힘을 주시므로 맨손으로 젊은 사자 한 마리를 찢어 버린 것을 그의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5-6절).
  2. 삼손은 "얼마 후" 딤나의 그 이방 여자와 결혼하려고 다시 딤나로 내려가다가 길을 벗어나 자기가 찢어 버린 그 사자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 죽은 사자의 몸에 있는 약간의 꿀을 자기 손으로 떠서 걸어가면서 먹고 또한 그의 부모에게도 가지고 가서 드리면서도 그는 그 꿀을 죽은 사자의 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자기 부모에게 알리지(말하지) 않았습니다(7-9절, 현대인의 성경).
  3. 삼손은 딤나에서 7일 동안 잔치를 베풀면서 불레셋 사람들이 보낸 청년 30명에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 30명 청년들이 삼손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자 7일째 되는 날에 삼손의 아내에게 삼손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자기들에게 알려달라고 위협을 했습니다. 삼손의 아내는 삼손 앞에서 울면서 "당신은 나를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는가 봐요. 당신이 내 백성에게 수수께끼를 내고도 나에게는 그 답을 말해 주지 않았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삼손은 그녀에게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알려 주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알게 하리요"라고 말했습니다(10-16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이렇게 세 번이나 부모에게 알리지도(말하지도) 않는 삼손을

아버지 마노아와 어머니(부모)가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여쭤볼 수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후에 삼손의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삼손의 친구에게 주므로 말미암아(15:6)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릅니다(4-5절).

그리고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수없이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동굴에 머물러 있었는데(8절)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 일대를 점유했습니다(9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 유다 사람 3000명이 바위 동굴로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우리가 블레셋 사람의 지배를 받는 줄 네가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째서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11절, 현대인의 성경).

과연 삼손이 유대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의 지배를 받고 있늘 줄 알지 못했을까요?

자기 부모에게 세 번이나 알리지 않았던 삼손은 유대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줄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알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그리 행한 것입니다.

다만 유대 사람들의 삼손의 부모처럼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14:4).

결국 그 때에도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므로

삼손은 "그의 팔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 후

나귀의 새 턱뼈로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였습니다(15:14-15).

그 후에 삼손은 "가사에 가서 "그 곳의 어떤 창녀를 보고

그녀의 침실로 들어갔"습니다(16:1, 현대인의 성경).

아니, 삼손은 이미 딤나에서도 블레셋 여자를 보고

자기 부모에게 그 처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14:1-2, 현대인의 성경)

그 후에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자를 사랑합니다(4절).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인 삼손(13:7)인데

이렇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대로 "세상으로 쫓아 온 것"(요일2:16)을 추구하는 아들을 아버지인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부모로써 하나님께 "우리가 ... (아들 삼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소서"라고 간구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삿13:8, 현대인의 성경)

 

흥미로운 점은 들릴라가 삼손에게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16:6),

"...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이제는 내게 말하라"(10절),

"... 내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13절)고

이렇게 세 번이나 "내게 말하라"고 것입니다.

이 사실이 제게 흥미로운 이유는

삼손은 전에 자기 부모에게 세 번이나 말하지 않았는데(14:6, 9, 16, 현대인의 성경)

자기가 사랑하는 이방 여인 들릴라에게도(16:4) 세 번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가(6, 10, 13, 15절) 결국에 가서는 그녀에게 자기의 "진심을 드러내어"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그 결과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힌바 되어

두 눈이 뽑힌바 되어서 가사로 끌려가서 놋 사슬로 묶인바 되어

감옥에서 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21절).

그러다가 삼손은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는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23절)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다가(25, 27절) 하나님께 부르짖고 나서(28절)

"그 신전을 버티고 있는 중앙의 두 기둥에 양손을 하나씩 갖다 대고 떠밀며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 하고 외치며 있는 힘을 다해

그 기둥을 밀어 제"치므로 "그 신전이 블레셋 통치자들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위에 무너져 내렸다. 이와 같이 삼손은 살아 있을 때보다도 그가 죽을 때 더 많은 사람을 죽"인 후(29-30절, 현대인의 성경)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묘지에 장사"됩니다(31절, 현대인의 성경).

 

이 삼손의 이야기를 묵상할 때

저는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의 기도를 또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보내 주셔서 태어날 아이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소서"(13:8,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저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사랑하는 세 자녀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여쭌 말처럼

저 또한 수시로 하나님께 여쭐 수밖에 없습니다:

"...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12절).

 

 

하나님과 구원

 

하나님은 구원자이시며(골 1:13-14)

하나님의 뜻은 구원입니다(골 1:9; 요6:40; 마18:14).

하나님께서 우리가 맺길 원하시는 선한 열매는

영혼 구원입니다(골 1:10; 고전 16:15).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는 어머니에게 ...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는 어머니에게 잘못된 복관(福觀)을 배운 자녀는

돈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참고: 삿17:1-13, 특히 2, 13절; 마6:24).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 즉 나의 원죄, 나의 과거의 죄, 나의 현재의 죄,

그리고 나의 미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는

내 모든 죄를 사함 받았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롬 4:25).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에게 주신 이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요,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4:18,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모든 나의 죄(all my sin)가 예수님께 전가되어서(imputed)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나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죽으시므로

내 모든 죄가 사함(forgiveness of all my sin)을 받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가 나에게 전가되어서(imputed)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 같은 죄를 짓는 자를 의롭다 칭하실 수가 있습니까? (justification)

 

인간의 명철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잠 3:5)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할 수 밖에 없지만

(롬4:20,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는 믿음으로는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확신할 수밖에 없습니다(21절).  나는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20절).

 

그러므로 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다(5:1).

나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를 누리고 있습니다(요일 1:3, 현대인의 성경).  그 교제에는 "기쁨이 충만"하며(4절)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롬 5:1)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라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후렴).

 

하나님께 기쁘시게 받는 사람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마시는 자입니다(전 9:7; 참고: 2:24).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는 사람은 정결한 삶과 기쁨의 삶을 삽니다(9:8).

하나님께서는 기쁘시게 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삽니다(9절; 참고: 18:22, 5:19).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는 사람은 신적 소명을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힘을 다하여 합니다(9:9).

 

 

하나님께 속한 영적 전쟁이기에 ...

 

 

우리에게 속한 영적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기에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대하20:15).

우리는 이 전쟁에서 싸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17절).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17절).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신뢰하여 견고히 서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을 신뢰하여 형통해야 합니다(20절).

우리는 임마누엘 믿음으로 행진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21절).

이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영적 전쟁에서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22-23절).

하나님께 쉬운 일을 구하기보다 ...

 

 

하나님께 쉬운 일을 구하기보다 어려운 일,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일을 구하자(왕하20:10).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녀 양육함에 있어서 왜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우리의 이성으로는, 심지어 우리가 아는 성경적 지식으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삿14: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을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을 한 나라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 나라를 사랑하시므로

그 지도자를 세워 대통령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시길 기원합니다.

(열왕기상 10장 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솔로몬 왕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우리가 명철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분이심을 깨닫는 것입니다(렘 9:24).

하나님께서 "반드시" ...

 

 

우리가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고 우리의 "일생에"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입니다(삼상 25:28)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기에 …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 목매어 달라고 모세에게 명하셨을까요? (민수기 25:4)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기에

염병으로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24,000명이나 되었을까요?  (9절)

그 하나님의 진노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7절)

하나님의 질투하심으로 질투하여(11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6절) 시므온인 조상의 가문 중 한 지도자인 살루의 아들인 시므리가(14절)

미디안 백성의 한 조상의 가문의 수령인 수르의 딸인 고스비(15절)를 데리고 온 것을 보고

회중 가운데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7절) 시므리의 막사에 따라 들어가

그 시므리와 고스비의 배를 꿰뚫어서 죽였을 때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쳤습니다(8절).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크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의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달리시게 하셨을까요?

우리의 죄가 얼마나 많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진노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독생자 예수님께 다 쏟으셨을까요?

그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한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요19:34) 죽이므로 그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렸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입니다

(사 25:9).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더 하실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극상 포도나무"입니다(사4: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포도" 맺기를 바라십니다(2절).

그런데 우리는 "들포도"를 맺고 있습니다(2, 4절).

우리는 악취 나는 죄악 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4절).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미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하실 수 있었을까요?

이미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더 하실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것은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고전 2:12).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왜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왜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일까요?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닐까요?

(삿 6:12-13)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도

우리는 심한 궁핍함 속에서

충분히 위의 세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알기 위해선 ...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 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독생자 예수님을 봐야 합니다(참고: 민 14:34).

 

 

 

 

하나님께서 택한 길을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택한 길을 가르쳐주십니다(시 25:12).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형통하였고(창39:2, 3, 23),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했습니다(삼상18:14).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형통케 하십니다(느헤미야 2장 20절).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므로 형통케 하여 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느1:11). 

하나님께서 이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어주시사

아닥사스다 왕에에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5절).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유다로 가서 예루살렘 성읍을 중건하게 하였습니다(5절).  그는 조소도 두 개나 써서 느헤미야에게 주었습니다(7-8절).

하나님의 선한 손이 느헤미야를 도우셨습니다(8, 18절).

비록 대적자들이 성전 중건을 방해하였지만(10, 19절)

하나님의 선한 손이 느헤미야를 도우시므로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로 하여금 형통케 하셨습니다(20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실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 시기에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행하십니다.

반드시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그 말씀이란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를 사탄의 왕국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에게 큰 구원의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민 23:19-23).

하나님께서는 선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악한 자"를 돕다가(대하19:2)

죽을 뻔했던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은 후(18:31-32)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19:11).

 

 

 

 

 

 

 

 

 

하나님께서는 한 아이는 치셨지만 또 다른 아이는 사랑하셨습니다.

 

 

다윗 왕은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 거리를 얻게" 한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치셨습니다

(삼하12:14-15).

다윗 왕은 "그 아이가 죽은" 후(19절)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했습니다(20절).

다윗 왕은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녀와 동침하므로 그녀가 아들 솔로몬을 낳았는데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셨습니다(24절).

 

하나님께서 첫째 아이는 치셨지만 둘째 아이는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난 자의 삶의 증거는?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난 자(born of God), 중생한 자, 새롭게 태어난 자,

새 피조물이 된 자의 삶의 증거(evidence)는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신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요한일서 5:1).

이 사도 요한의 요한일서 5장 1절 말씀은

예수님의 마태복음 22장 37,39절의 이중계명 말씀과 유사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자는

예수님의 이중계명(Jesus' twofold commandment)을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16).

사랑의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서로 사랑합니다(3:23).

그러나 서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4:8).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8, 16절).

 

 

 

하나님은 우리의 심중에 있는 것을 알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시고 우리의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실 때에는

우리의 심중에 있는 것을 알고자 우리를 시험하실 수 있습니다(대하 32:27-31).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승리를 준비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뺀 10명은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민13:28).

그리고는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31절),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32-33절).

 

그런데 가나안 땅 거주민인 라합이

여호수아가 보낸 두 명의 정탐꾼들에게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2:9-11).

 

이미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이란 말만 들어도 무서워 떨”게 만들어 놓으셨는데(9절, 현대인의 성경; 참고: 1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 정탐꾼들의 “악평”을 듣고(민13:32)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하면서(14:1)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2절).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11절).

하나님은 항상 선하십니다.

 

 

삶 속에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선하십니다"(God is good, All the time)라고 선포하며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롬 8:28)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미 맛보아 알기 때문입니다(시 34:8).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구원했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삿 7:2).

 

 

 

 

하나님을 믿고 회개할까요?

 

 

한국 선교사님이 일본에 가서 다니면서

'40일이 지나면 일본은 망합니다'라고 외치면

악독이 가득한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회개를 할까요?

(요나 3장4-5절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목사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예배를 멸시하는

행실과 행하는 습관이 나쁜

죄가 하나님 앞에 심히 큰 목사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삼상 2:12-17).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해야 하는데 …

 

 

우리는 우리의 신뢰의 대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하나님을 신뢰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나 무엇인가를 신뢰할지 ...

이렇게 저울질을 하는 원인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사 30:9). 

그 결과 우리는 마음에 평안함이 없으며 마음에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해야 하는데 ... (15절)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십니다.

 

 

요나단은 사랑하는 다윗에게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이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이다'

(삼상 23:16-17).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고전 4:20).

여기서 "말"이란 "교만한 자들의 말"을 가리킵니다(19절).

좀 달리 말한다면, "말"이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가리킵니다(6절).

좀 더 달리 말한다면, "말"이란 교만한 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지혜의 말"을 가리킵니다(2:4, 5).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말에 있지 않습니다(4:20).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능력에 있습니다(4:20).

여기서 "능력"이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2:5).

이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의 도"의 능력입니다(1:18)(복음의 능력)(롬1:16).

이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이십니다(고전 1:24).

이 하나님의 능력에는 "성령님의 나타나심"이 있습니다(2:4).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롬12:2)  사랑하사 창세전에 택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엡1:4).

그 구원의 뜻을 이루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구원의 뜻을 이루십니다 (롬8:28).  그 원대한 구원의 뜻을 이루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사용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롬14:8)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에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빌2: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으로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빌1:27) 우리의 입을 열어 그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행8:35).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마6: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성령님께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간구하게 하옵소서

(롬 8:27; 마26:39; 막14:36; 눅22:42).

 

 

 

하나님의 뜻은 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시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사 46:10).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아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하고

변화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롬12:2).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으로 이해해서 순종하기보다 ...

 

 

여리고 성에서 승리한 후(수6장)

아이 성과의 첫 번째 전쟁에서 아이 성을 정탐한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2-3,000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라고 말했습니다(7:3).

“그래서 3,000명 정도의 병력만 보냈”는데”

“그들은 보기 좋게 패하여 아이군 앞에서 도망”했습니다(4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아이 성과의 두 번째 전쟁에서는

“용사 삼만 명”(정예병 30,000명)이나 뽑아서 밤에 아이 성으로 보냈습니다(8:3).

첫 번째 전쟁했을 때는 3,000명을 보냈었는데 두 번째 전쟁 때에는 10배나 더 많은, 그것도 정예부대 군인들을 30,000명이나 보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아이 성을 “진멸”했을 때(24절)

“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5절).

다시 말하면, 아이 성에는 남자와 여자 모두 12,000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왜 여호수아는 정예병을 30,000명이나 보냈을까요?

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2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크고 견고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넘겨주셨을 때에는(6:2) 엿새 동안 그저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바퀴씩 돌다가 일곱째 날에 일곱 바퀴를 돌고 나팔을 불고 소리를 치라”고 말씀하셨었는데(3-5절),

여리고 성보다 훨씬 작은 아이 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넘겨주시려고 하셨을 때에는(8:1, 18) “복병”까지 아이 성 뒤에 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2절).

우리의 명철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으로 이해해서 순종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믿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참고: 잠 5:6-7).

하나님의 모든 길은 순종하는 자에게는 ...

 

 

하나님의 모든 길,

심지어 욥처럼 내 명철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고통의 길이라 할지라도

내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시기에

내 발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걸어갈 때에

그 하나님의 모든 길에 포함된 나의 고통의 길도

나에게는 인자와 진리입니다

(신 5:32; 수 23:6; 욥 23:10-12; 시 25:10).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사랑하시고(미리 아시고)

예정하신(미리 정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롬8:28, 29).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는 마음

 

 

하나님의 부흥(revival)을 경험하는 마음에는

찬양(praise)과 평안(peace)이 있습니다(사 57:19). 

그러나 찬양과 평안이 없는 마음은 교만한 마음이요

죄를 범하고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승리!

 

 

하나님께서는 아이 성을 점령함에 있어서 여호수아에게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다(수8:1),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18절)고 말씀하셨고

여호수아는 그의 용사들에게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너희 손에 주시리라"(7절)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 있어서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승리의 확신 성경구절입니다:

"여러분이 당한 시험은 모든 사람들이 다 당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고전 10:1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언약을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친밀하심이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보이십니다(시 25:14).

 

 

 

 

하나님의 원수에게 조롱 및 비방거리가

되게 하지 말아야 할 텐데 ...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습니다(출32:25).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므로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했습니다(삼하 12:14).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게 된다면?

 

 

 

만일 우리가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게 된다면 ...?

(수 11:20)

하나님의 일하심이 흥미롭습니다. (1)

 

 

기드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이미 받았을 뿐만 아니라(삿 6:12-16),

자기가 하나님께 구한 표징도 보았습니다(17-21절).

또한 그는 하나님을 양털로 두 번이나 시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요구한 대로 두 번이나 그대로 행하셨습니다(36-40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7:9-10).

이미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말입니다(9절).

아마도 그 이유는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12절).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었던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11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미디안 진영에서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는 이야기와

그 꿈을 들은 "그의 친구"의 말을 듣게 하셨는데

"그의 친구"의 말은

"...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였습니다(13-14절).

그런데 이 이방인 사람이 한 말은 이미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9절).

하나님께서는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나이다"라고 말한(6:13) 기드온에게

"내가 그것(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7:9)고 직접 말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미디안 진영에서 적군의 입을 통해서도 기드온에게

"...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기드온)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는

말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14절).

 

하나님의 일하심이 흥미롭지 않나요?

 

하나님의 일하심이 흥미롭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죄를 범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애굽 왕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39:1)의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도록 허락하셨는데(7-20절),

하나님께서는 "그 후에" 바로 왕에게 범죄한 그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40:1) 바로 왕의 분노 가운데 요셉이 갇혀있었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갇히게 하셨습니다(2-3절).

그러신 후 하나님께서는 옥에 갇혀있었던 두 관원장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시고

요셉으로 하여금 그 두 사람의 꿈을 해석케 하시사(5-13절)

결국에는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하여 꿈을 꾼 바로 왕에게 소개되어(41:9-13)

마침내 바로 왕의 꿈도 해석케 하시므로(25-36절)

바로 왕을 통해 요셉을 건져내셨습니다(14절).

 

 

 

 

 

 

하나님의 임재의 목적?

 

 

하나님께서

거룩한 계명(말씀)으로 우리에게 임하심은

우리를 시험하시고

우리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하는 것입니다.

(출 20:20)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

 

 

솔로몬 왕은 기브온에 가서 큰 산당 그 제단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었지만(왕상3:4)

그가 나이가 많을 때에는 그의 일천 명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므로(11:3-4)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삼상15:22).

 

우리가 하나님께서 1,000번의 예배를 드릴 때에

사단은 그의 1,000명의 종들로 하여금 우리를 미혹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1,000번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1번째 명령을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하면서 세상에 나가서 "이 모든 가증한 일",

곧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우상을 숭배하며 따르는 교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하나님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렘 7:9-11).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주님의 발아래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신 33:1, 3).

 

 

 

 

 

하나님의 크신 은총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악과 죄를 행하는 목이 뻣뻣하고 곧은 우리와 친히 동행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출 33:3, 12-16; 34:9).

 

 

 

 

 

하나님의 허락과 불허락?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 당함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고전 10:13).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불신자들이

우리를 보고 이렇게 말하고 있나요?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습니다'

(창 26:28; 39:3).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사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사

모든 사람들이 내가 주님의 종으로 세우심을 받은 것을

알게 해주시길 기원합니다(삼상 3:19-20).

 

 

 

 

학대하는 자를 선대한다?

 

 

나를 학대하는 내 원수를 선대하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으로 갚으시는 것을

경험해야 하지 않나요? (삼상 23:17, 19)

한 가지만 해도

 

 

주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려고

"마음이 분주"하면서 염려하고 근심하기보다

주님 보시기에 "이 좋은 편을 택하"여

"한 가지만"해도 족해야 합니다

(눅 10:38 42).

 

 

 

 

 

 

한 분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셨습니다.

 

 

한 사람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이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으므로 하만을 매우 노하게 했습니다(에스더 4:1-5).

그 결과 하만은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모르드개의 민족인 유다인을 다 멸하고자 했습니다(6절).

[여기서 잘 이해가 안되는 점은 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명령하여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말라고 해놓고(2:10, 20)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는가 입니다(3: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결심한 한 사람 "에스더"(4:16)를 통해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유다인을 그 멸망의 위기에서 건지셨습니다(8-9장).

[여기서 저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결심한 한 사람 에스더를 생각할 때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롬5:17)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빌2:8)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된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롬5:18).]

"한 뼘 길이만큼" 밖에 안되는 인생인데 ...

 

 

"한 뼘 길이만큼" 밖에 안 되는 인생(시 39:5),

주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도(요일3:23)

짧은 인생이건만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했습니다(수7:1, 25).

나 한 사람의 회개치 않은 범죄로 인해

온 공동체(가족 및 교회 등)가 괴로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롬 5:12).

나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영적으로 죽었던 자입니다(엡 2:1, 현대인의 성경).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생이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습니다(롬 5:15, 21; 6:23).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해

나는 죄 사함과 의롭다하심을 받아(4:25)

영원한 생명이 넘칩니다.

'한 사람이 천 명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심으로

그들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았던 것처럼(수23:10),

주님께서 나에게 오병이어의 말씀을 주신 것 같이(요6:1-15)

비록 나는 남자만 5,000명 앞에서

물고기 2마리와 떡 5덩어리 밖에 안 되는 존재이지만

주님께서는 나를 통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용하시사

1,000명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해주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소망을 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항상 소망을 품고

주님을 더욱 찬송하는 자들입니다(시71:14).

 

 

 

 

"행복한 사람"

 

 

우리 같이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사람이 없기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신33:29).

행함이 없는 믿음, 행함이 없는 사랑?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거짓된 믿음인 것처럼

(약 2:14, 17, 20. 26),

행함이 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이요

거짓된 사랑입니다

(요일3:18).

 

 

 

 

 

 

 

 

 

현재의 고난을 ...

 

 

"현재의 고난"을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견디게 하옵소서

(롬 8:18; 골1:11).

혹시 지금 당신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염려하며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혹시 지금 당신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염려하며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혹시 지금 당신은 그 미래의 일을 닥치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두려워하고 있습니까?(신 7:17)

 

성경은 그 미래의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8절).

성경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8절).

어떻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금까지 인도해주셨는지,

어떻게 당신은 역경과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에서

건져주셨는지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9절).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당신이 지금 두려워하는 모든 미래의 일도

과거와 똑같이 건져주시고 인도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21절, 현대인의 성경).

 

 

 

혼동, 망각, 무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지극히 작게 여기는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를 혼동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하심의 목적을 망각하고 또한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죄의 결과도 모르고 있습니다(민16:13).

혼미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 받기를 싫어하여 받지 아니하고

우리 마음이 꾸지람을 가볍게 여기면 우리는 심히 미련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심히 미련한 우리는 혼미하게 되어 큰 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잠 5:12, 14, 23).

 

홍해와 요단 물을 마르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밤새도록 강한 동풍을 불게 하셔서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으므로

홍해 바다가 갈라져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출 14:21,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좌우 물 벽 사이로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너갔고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갔다가

다 전멸 당했습니다(22-28절, 현대인의 성경).

그 결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31절).

하나님께서는 요단 물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마르게 하사

그들로 하여금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신 것과 같았습니다(수4:23, 현대인의 성경).

그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은

세상에 사는 모든 민족에게 여호와의 위대하신 능력을 깨닫게 하고

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히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란다”](24절).

"화목하고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하는데 ... ㅠ

 

 

"음식 문제"이든 어떠한 문제든 아무리 다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거나,

꺼림칙하게 하는 것이나, 죄 짓게 한다면

그것은 나쁜 것인데 ...

삼가했어야 했는데 ...

(롬 14:19-21, 현대인의 성경)

 

"이런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대로 하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의심을 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은 믿음으로 먹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죄 입니다"

(22-23절, 현대인의 성경).

 

 

 

 

 

 

 

 

 

 

1000마리 , 3000마리 번제

 

 

솔로몬 왕이

1000 마리 회생으로 번제를 드렸는데

(대하 1:3-6)

그의 아버지 다윗 왕은

3000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네요

(대상 29:21).

 

 

 

 

 

 

No 차별,   But 분별

 

 

우리는 "차별"해서는 아니 됩니다

(롬10:12, 골3:11).

그러나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속된 것,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레10:10).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분별력을 가지고

이 세상과 "분리"된(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롬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