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공로, 자기 의, 마음의 완악함

 

 

무엇인가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행한 것을 자기 공로로 여기면서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기를 좋아하게 되면

우리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의 중독되어

마음이 완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막 3:5).

 

 

 

자기 의를 세우려는 열심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것은

"올바른 지식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롬 10:2-3).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는 부자보다 ...

 

 

자기 자신을 지혜롭게 여기는 부자보다

가난해도 자기를 살펴 아는 명철한 자가 낫습니다(잠 28:11).

자녀 양육

 

 

자녀 양육,

삼손의 아버지인 마노아의 심정입니다:

 

'주님, 우리 자녀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우리 자녀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세요' (삿 13:8, 12).

 

 

 

 

'자리'가 그 사람을 변화시키나요?

 

 

'자리'가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교회 안에서 직분자로 세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직분자가 아닌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작게 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오히려 직분자가 되어서

점진적으로 변질되어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도

책망을 듣지 않고 변명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요?

 

(사무엘상 15장을 읽으면서 든 생각)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부모의 마음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부모의 마음은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입니다(삼하 18:33).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빌 2:7).

미워하는 마음,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마음에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특히 물질에 대한 욕심을 ...

교만한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종이 되어 섬겨야 합니다.

겸손히 주님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8절).

 

 

 

 

자신을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인해 교만해진 자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만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이고 있습니다(self-deception)(고전 8:1-2). 

자유를 자유스럽게 사용하지 않는 이유

 

 

내게 주어진 자유(권리)를 자유스럽게 사용하기보다

절제하고 범사에 참아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고전 9:12).

 

 

 

잘 보이고 계속 생각나는 상대방의 허물?

 

사단의 유혹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의 허물을 너무나도 잘 보게 하고, 계속 생각하게 만들어 기록하게 만들고, 또한 그 허물을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잘못한 것들을 기록하지 않으며)

(Love keeps no record of wrongs)(고전13:5)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but love covers over all wrongs)(잠10:12)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입니다(잠17:9).

 

 

 

잘 섬기고, 잘 대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집(교회)을 아주 잘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쓰임 받아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베풀어준

하나님의 종과 그의 집을 후대(잘 대접)해야 합니다(삿 8:34, 35).

잠을 달게 자는 노동자가 ...

 

 

잠을 달게 자는 노동자가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는 부자보다 낫습니다

(전 5:12).

 

 

 

 

 

 

장인-사위 관계?

 

 

모세의 장인과 사위인 모세와의 관계(출 18:13-27)

 

  1. 모세의 장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습니다.
  2. 모세의 장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재판하느라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의 곁에 서 있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할 것이고 또한 모세가 이 중한 일을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모세의 장인은 모세에게 "방침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방침은 모세의 중한 일을 함께 담당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들을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면 모세에게 일이 쉬울 것이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모세는 자신의 장인의 말을 다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했습니다.

 

이 4가지 사실을 현재 우리의 장인-사위 관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재물" 우상을 미워할 정도로

오직 "주님"만 사랑하는 단련의 기회인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우리 목회자들부터 해서 사랑하고 중히 여기고 섬기고 있는

"재물"이란 우상을 미워하고 경히 여기는 계기인가?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 사랑하고 중히 여기며 섬기는 단련과 훈련의 기회인가?

 

 

 

 

저주를 돌이켜 축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저주를 돌이켜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세 번이나

저주케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저주를 돌이켜 오히려 이스라엘을 세 번이나 축복케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 행복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 무리들은 예수를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예수가 신성 모독죄와 성전 모독죄로

마땅히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예수 십자가의 저주를 돌이켜

우리에게 구원의 축복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 & "세상의 미련한 것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며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고전 1:21, 27).

 

 

 

 

전심으로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

 

 

전심으로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면서 마음과 삶의 모든 우상을 제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대하 17:3-6).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지 않는 자들은 ...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지 않는 자들은

큰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지만

그 후에 작은 위기 가운데서는 사람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망령되이 행하는 것이라는

주님의 종의 책망에 크게 분노하여 그 주님의 종을 핍박합니다(대하 16:7-10).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해야 하는데 ...

 

 

하나님을 의지하였다가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하나님 보시기에

망령되이 행하는 것입니다

(대하 16:7-9).

 

 

 

 

 

 

 

 

점치는 것은 죄입니다.

 

 

점치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습니다.

우상에게 절하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습니다

(삼상 15:23).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맹세)하신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셨고(렘32:22),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던(민14:24) 여호수아와 갈렙도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했습니다(8절).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악평”한 10명의 정탐꾼들도(13:32)

그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른다고 말했습니다(27절).

 

그런데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16:3, 11) “너무 분수에 지나”쳤던(7절) 다단과 아비람(12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 생활을 했던 애굽을(20:2, 신5:6, 6:12, 24:22)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여겼습니다(민16:13).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인(계시록 21:1) 영원한 천국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따라는 우리는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면서

믿음으로 저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슬러 너무 분수에 지나친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의 좋 노릇하던 애굽과 같은 이 죄악 된 세상을

‘천국’으로 여기고

“위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땅의 것을 생각”하면 살고 있습니다(참고: 골 3:2).

 

 

 

 

제자도의 원리?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제자도의 원리는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삿7:17).

 

 

 

조심하여 사랑해야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여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그들의 신들을 가까이 하지 말고

오직 우리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수 23:7-13).

 

 

 

존경 받는 사람

 

 

존경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삼상 9:6, 12:23).

죄를 다스려야

 

 

죄에 다스림을 받지 말고

죄를 다스려야 하는데 ...

(창 4:7)

 

 

 

 

죄를 덮고자 하려다가 아예 살인죄까지 ...

 

 

다윗은 유부녀 밧세바와 동침하여

그녀가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덮으려고

전쟁에 나가있었던 그녀의 남편 충성된 군인 우리아를 불러다가

두 번이나 자기 집으로 내려가게 만들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하자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려고

그의 손에 편지를 들려 요압 장군에게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그것도 요압과 공모에서 우리아를 죽이는 계획에 적혀 있는 편지를

그의 손에 들고 가게 말입니다.

 

제 생각에 이때에 다윗은

그저 밧세바와 동침하여 그녀가 임심했다는 사실을 덮으려고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게 만들므로

밧세바를 자기의 아내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삼하 11:4-27).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님이신데 ...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도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3번이나 말했음에도 불구하고(눅23:14, 15, 22),

그 큰 무리는 "큰 소리로 재촉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했습니다(21절).

예수님을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인데(고후5:21),

그래서 본디오 빌라도도 예수님을 "심문"해 본 후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던 것인데 (눅23:14, 15, 22)

그 무지한 큰 무리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 죄(5:21)와 '성전모독' 죄(요2:19)로

마땅히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한다고 확신했기에(신21:23; 갈3:13)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두 번이나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눅23:21).

 

 

 

 

 

 

"죄악의 걸림돌"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우리 마음에 들이면

그것은 결국

죄악의 걸림돌을 우리 앞에

두는 것입니다

(겔 14:3).

죄와 죄 인식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죄는 덜 짓게 되지만

죄 인식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5장 1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 베푸시는 은혜로 기억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나를 공의로 기억치 않으시고

베푸시는 은혜로 기억하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가(시 106:4).

 

 

 

 

주님 보시기에 "좋은 일"?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이

주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한 것이라면(막 14:6, 8),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파하며,

부활 승천하시사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 보시기에 좋은 일이 아닐까?

주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주님, 주님께서 저를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용서해주신 것처럼

주님의 변함없으신 크신 사랑으로 저를 용서해주세요’(민 14:19, 현대인의 성경).

 

 

 

주님, 제 마음을 연단해주세요.

 

 

하나님, 고통의 용광로를 통해서라도(사 48:10) 제 마음을 연단해주셔서(잠17:3)

이러한 마음을 주세요:

교만한 마음이 아닌 겸손한 마음, 거짓된 마음이 아닌 진실 된 마음,

미련한 마음이 아닌 지혜로운 마음, 더러운 마음이 아닌 정결한 마음,

탐욕스러운 마음이 아닌 자족하는 마음.

 

 

 

주님 중심된 삶을 산다는 것이란?

 

주님 중심된 삶을 산다는 것이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요일4:8, 16)의 지배(control)를 받으면서,

진리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요14:6)의 권위(authority)의 말씀인

예수님의 이중 계명(하나님 사랑 및 이웃 사랑)에 순종함으로(마22:37, 39),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교제(fellowship)하는 것입니다(요일 1:3).

주님께서 나를 보내심은 ...

 

 

주님께서 나를 보내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도" 를 전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고전 1:17-18).

 

 

 

 

 

주님께서 나를 인자하심과 구원의 노래로 두루셨습니다.

 

 

첫째 아기 주영이의 뼛가루를 물가에 뿌리고

배를 몰고 육지로 돌아가고 있었을 때

배 앞부분에 타고 있던 사랑하는 아내가

갑자기 뒤에서 배를 몰고 있는 나에게 고개를 돌려 "Titanic"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저는 아내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에서 터져 입술로

굉장하고 놀라운 주님의 구원의 사랑을 찬양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편 32편 말씀을 읽다가

7절과 10절 말씀이 그 때 그 순간을 다시금 뒤돌아보게 만드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나를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두르셨고, 나를 구원의 노래로 두르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영원하신 인자하심이 주영이의 55일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로 하여금 주님의 구원의 사랑을 찬양케 하셨습니다(시 63:3).

주님께서 우리를 ....

 

 

주님께서 우리를 ...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고전 1:8).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처녀인데 어떻게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수가 있습니까?

그것도 위대하시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요? (눅 1:31-32, 현대인의 성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천사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하니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했습니다"(35-38절).

그녀는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었습니다(45절).

 

어떻게 나 같은 자가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으며(마16:18),

어떻게 나 같은 자가 오병이어의 역사를 이를 수 있겠습니까?(요6:1-15)

오직 성령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태복음 16장 18절과 요한복음 6장 1-15절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습니다!(눅 1:37)

그러므로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은 완전합니다.

 

 

모세의 두 번째 노래(신 32:1-43)를 보면 [첫 번째 노래 (출 15:1-18)]

모세는 “…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라고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신32:4).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든 생각은 모세가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라고 노래를 했을 때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처럼 “그가 하신 일은 완전하고”라고 노래를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보면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불평하고 원망을 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 앞까지 인도하심에 있어서 불만족에서 불평과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한 예로, 신명기 1장 17절을 보십시오: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이렇게 까지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행하신 일은 완전하다고 노래할 수가 있었을까요?

제 생각엔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그가 하신 일은 완전”합니다 라고

노래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모세가 “그가 하신 일은 완전하고”라고 믿음으로 신앙 고백으로 노래를 했다는 것은

자기가 가데스 므리바 물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으므로

그가 그리도 간절히 들어가고 싶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민20:12)

또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완전합니다’라고

믿음으로 고백적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합니다(신32:4).

잠언 19장 21절을 보면 “…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뜻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진노하사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그에게 "그만해도 족하니(It's enough)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3:23-26). 

모세는 예수님께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마26:39, 현대인의 성경)

자기의 뜻보다 주님의 완전한 뜻(잠19:21)이 이루어주길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후세대들이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을 원했습니다(민 14:29). 

그 이유는 모세는 하나님의 완전한 뜻만이 이루어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모세는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뜻을 행하시는

모든 일이 완전하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합니다 라고

신앙 고백적인 노래를 하나님께 불렀다고 생각합니다(신32:4).

 

우리 주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도 완전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완전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뜻은 구원입니다.

그 구원의 뜻을 이루심에 있어서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요

완전하신 사람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므로 우리가 완전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반석이시요 완전하신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구원의 일을 이미 시작하셨으며(빌1:6), 지금도 구원의 일을 행하고 계시며 (2:12),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구원의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1:6,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완전하십니다’라고 신앙 고백적 노래를 하나님께 부르는 것입니다(신32:4).

주님은 나를 돕고 위로하십니다.

 

 

주님은 나를 돕고 위로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응답해 주십니다.

주님은 나에게 힘을 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주님은 나에게 주님의 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 이유는 내게 향하신 주님의 인자하심이 크고 후하기 때문입니다

(시 86).

 

 

 

 

 

 

주님을 만날 기회 ...?

 

 

주님을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님께 기도를 해야 할 텐데

그 기회란 언제일까요?

 

어쩌면 그 기회란

내가 범한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으므로 말미암아

주님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므로

내 진액이 빠져 내가 종일 신음하고

내 뼈가 쇠할 정도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일 수도 ...?

(시32:3-6)

주님은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모세의 두 번째 노래(신 32:1-43)를 보면 [첫 번째 노래 (출 15:1-18)]

모세는 “그는 반석이시니 …”라고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신32:4).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은 반석이시’라고 고백하면서 노래를 불렀을 때

그의 입장에서 “반석”하면 어떠한 생각이 떠올랐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랬을 때 생각나는 말씀은 민수기 20장 10절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가데스란 곳에서 이스라엘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다퉜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8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 앞에서 지팡이를 잡고

이스라엘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그들에게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라”라고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9-11절).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절).

결국 모세는 “므리바 물”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과 다퉜을 때 (12절)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죽기 전에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기 전에

노래를 지어 불렀을 때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그는 반석이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신32:4).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께서 제가 섬기고 있는 승리장로교회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생각난 성경 말씀은 고린도전서 10장 4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리고 또 생각난 말씀은 마태복음 7장 24-2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 말씀과 신명기 32장 4절의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반석이시요 나는 모래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저 같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모래와 같은 사람에게 주님은 나의 반석이십니다.’

 

 

 

주님을 말과 혀로만 사랑?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저 하나님께 "주여, 주여"만 부르고

행함이 없는 것은, 주님을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눅 6:46; 요일 3:18).

주님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세요.

 

 

사랑의 주님,

주님을 아는 마음을 주님을 떠난 그들에게 주시사

그들로 하여금 전심으로 주님께 돌아오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렘 24:7).

 

 

 

 

주님을 향한 내 마음을 돌릴 사람이라면 ...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반드시" 내 마음을 돌려

그 사람의 우상을 따르게 할 것 같으면 나는 그 사람하고 결혼하지 말뿐만 아니라

그 사람으로 나와 결혼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참고: 왕상 11:1-5).

 

 

 

 

주님의 뜻대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

 

 

주님의 뜻대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 모든 큰일을 행하시되

주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주님의 종의 집을 세우시고 영원히 복을 받게 하시사

오직 주님 만에 하나님이시며 주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시옵소서

(삼하 7:21, 25, 27-29).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란?

 

 

솔로몬 왕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왕상 3:10).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스리게 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대하 1:11).

그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그가 구한 지혜와 지식만 주신 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셨습니다(12절; 왕상 3:13).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는

"먼저 그(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마6:33).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우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33절).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26:39).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 ...

 

 

나는 주님을 존귀히 여기길 원합니다.

나에게 약속의 말씀인 요한복음 5장 1-15절과 마태복음 16장 18절을 주신

주님을 존귀히 여기길 기원합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어 나아가시는

주님을 존귀히 여기길 원합니다.

그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 나는 주님을 존귀히 여길 것입니다

(참고: 삿 13:17).

주님의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주님은 우리 선한 목자이십니다(시23:1; 요10:11, 14).

선한 목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들인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목숨을 버리시므로

우리가 풍성한 영생을 얻게 되었기에(요10:10-11, 15, 17)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시23:1).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심과

주님의 공급하심과 소생케 하심이 범죄한 우리를 회개케 하여

진정한 생명을 받게 하심과 함께하심과 보호하심과 안위하심과

우리로 하여금 영적 싸움에 승리케 하시사

우리 원수 앞에서 높이심과 우리를 귀빈처럼 대우하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으로 인해 우리의 잔이 넘칩니다(2-5절, 박윤선).

 

우리의 평생에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선하심과 주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따를 것이기에 우리는 확실한 소망인 주님의 집에 영원히 살 것입니다(6절).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신앙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주님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

 

 

주님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되

모태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참고: 민 14:19).

주님의 전을 재건함에 있어서 ...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바사 왕 고레스로 하여금 명령케 하여

"유다 사람이 어느 곳에 살든지 그가 돌아갈 때에

그 이웃 사람들은 그를 도와주고

그에게 은과 금과 그 밖에 필요한 물건과 짐승과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바칠 예물을 주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스1:4, 현대인의 성경) 또한 고레스 자신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어(7절)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게 하셨습니다(8절).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도착했을 때

일부 집안의 지도자들이 그 곳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습니다(2:68,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을 통해서도 주님의 전을 재건하는데 도움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백성들 중 "자진해서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예물"을 통해서도

주님이 전을 재건케 하십니다(3:5, 현대인의 성경).

 

 

 

 

주님의 종에게 지혜를 주시므로 ...

 

 

주님께서는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시사

주님의 종에게 지혜를 주시므로 능히 주님의 교회를 세우(게 하)십니다

(참고: 대하 2:12; 마16:18).

주님의 종은 ...

 

 

"주의 종"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참 "이스라엘"인 교회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이 나타나야 합니다(왕상 18:36).

 

 

주님의 종이라는 우리 목사님들은 ...

 

 

"여호와의 선지자"(왕상22:7) 미가는

모든 거짓 선지자들이 아합 왕에게 "좋은 일만 예언"할 때에도(10-13절, 현대인의 성경)

"내가 살아 계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나는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만 말"합니다

(14절, 현대인의 성경; 참고: 예레미야 선지자).

미가 선지자는 아합 왕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말했지만

(16절; 참고: 19-23절)

아합 왕은 미가가 자기에게 "좋은 일은 예언하지 않고

언제나 나쁜 일만 예언한다고" 생각했습니다(18절, 현대인의 성경).

 

주님의 종이라는 우리 목사님들은 거짓 목사들이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다른 영"을 받게 하며 또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할지라도(고후11:4; 참고: 갈1:7-9)

"여호와의 선지자" 미가처럼 "살아 계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나는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만 말"해야 합니다(왕상22:14).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일입니다.  내가 이제 와서 사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갈1:10, 현대인의 성경).

주님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봅니다.

 

 

내가 주님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님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겠습니다(시106:5).

 

 

 

죽음 후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리가 ...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위하여 살되(막8:35)

그 복음을 입술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고전1:17; 9:14)

그 복음의 합당한 삶으로도 전하다가(빌1:27) 죽은 후에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의 기억에 메아리치길 기원합니다(히11:4).

 

 

중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미션

 

 

하나님의 미션은 중지할 수가 없습니다(느 6:3).

비록 사단과 우리의 대적자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미션을 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자 공격을 해오고 있지만 우리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심장이 이 순간에도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빌1:8).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심장을 뛰고 있게 하시기에 우리는 오늘도 미션 필드(Mission Field)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 친척으로, 우리의 학교로, 우리의 직장으로, 우리의 이웃으로 ...

중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미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 미션을 이루셨고 지금도 이루고 계시며 앞으로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입니다(빌1:6).  승리!

지금 나는 ...

 

 

지금 나는 ...

주님의 일을 염려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일을 염려하고 있는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아내를 기쁘게 하고 있는가?

 

지금 내 마음은 갈라져 있는 것은 아닌가?

 

이치에 합당하게 하려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겨야 할 텐데 ...

(고전7:32-35)

 

 

 

 

지금 내 입으로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말하기 마련입니다(눅 6:45).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생각해보면

지금 내 마음에 무엇이 가득히 쌓여 있는지 좀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진실이 아닌 거짓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진실이 아닌 거짓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람들은 "활을 당기듯이 혀를 놀려 거짓말을 쏘아대"고 있습니다

(렘9:3, 현대인의 성경).

지금 우리는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또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3절).

지금 우리는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주님을 알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6절).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을 조심하고 어떤 형제/자매든지 믿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우리를 속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의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는 데 지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4-5절).

 

 

 

 

 

 

 

지금보다 나중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을 경책하므로

지금은 미움을 받아도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는 것이

사람에게 아첨함으로

지금은 사랑을 받는 것 같아도

나중에 더욱 미움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잠28:23).

지금은 받을 때가 아닌데 ...

 

 

주인인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는

자금이 받을 때가 아닌 줄 알고

나병 치유 받은 나아만 장군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았는데

엘리사 선지자의 종인 게하시는

나아만 장군에게서 무엇이든지 받으려고 쫓아가서

실제로 받은 후 그 받은 것들을 집에 감추었습니다(왕하 5:19-26).

 

지금은 받을 때가 아니라 베풀 때인데 ...

 

 

 

지도자는 ...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들의 무슨 말을 들어야 하는지 보다

무슨 말을 듣지 말아야 하는지를 더 잘(분별)해야 합니다(삼상 24:9).

 

 

 

"지식의 하나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지식의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달아 보십니다(삼상 2:3).

지혜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

 

 

지혜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므로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시사

우리들의 마음을 겸손케 하신 것을 보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시107:11-12, 43).

 

 

 

 

 

지혜 있는 자들은 ... (1)

 

 

지혜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판단합니다(고전 10:15).

 

 

 

 

지혜 있는 자들은 ... (2)

 

 

지혜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행하시는 일들을 지켜보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습니다(시107:43).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8, 15, 21, 31절).

지혜가 부족하다.

 

 

지혜가 부족하다.

그 결과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날 때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지 못하고 있다(약1:2).

온전히 기쁘게 여기지 못하므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있다(3절).

오히려 조급해졌다(딤후 3:4).

 

 

 

지혜가 없는 우리 목사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목사들에게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 목사들은

욕심을 내고 있으며 거짓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평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평강하다, 평강하다"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고 있습니다(렘8:9-12).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

 

 

모략이 없고 분별력이 없는 우리들,

만일 우리가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을 텐데 ...

(신 32:28-29)

지혜로운 자

 

 

미련한 자는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합니다(잠18:2).

미련한 자는 사연들 듣기 전에 대답합니다(13절).

미련한 자는 다툼을 일으킵니다(6절).

미련한 자는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합니다(7절).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깊은 물 같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plan)일지라도

그것을 길어 냅니다(20:5).

 

 

 

지혜롭게 행하는 자의 이름은 심히 귀하게 됩니다.

 

 

보내진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며,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되 "크게 지혜롭게 행"하며,

"모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의 "이름은 심히 귀하게" 됩니다

(삼상 18:5, 14-15, 30).

 

 

 

지혜롭게 행할 때 두 다른 반응?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므로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했을 때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지만

사울 왕은 다윗을 두려워했습니다(삼상 18:14-16).

지혜와 지식이 있는 그리스도인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까? (신 4:6)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지켜 행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요 우리의 지식입니다(6절).

 

 

 

 

진실이 없어졌습니다.

 

 

진실이 없어져 우리 입에서 끊어진 이유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으며

교훈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렘 7:28).

 

 

 

 

 

진실한 성도는 이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기셨고 이길 것이기에

주님께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성도들도 이길 것입니다(계 17:14).

진실히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구원의 일을 생각하여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겨야 합니다(삼상 12:24).

 

 

 

 

 

 

진정으로 새 사람이라면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요일5:1),

즉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난 자들, 다시 태어난 자들, 새롭게 태어난 자들(new birth)은

계속해서/지속적으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ongoing faith).

그들에게는 새 사람답게 살아가는 증거(evidence)가 있습니다(맥아더).

 

그 증거는 2 가지입니다:

  • “낳으신 이”(1절)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 하나님에게서 거듭난 자인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2 가지는 예수님의 이중계명인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과 같은 의미입니다(마22:37, 39).

 

즉,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요일5:1),

하나님께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거듭난/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의 새 사람 답게 살아가는 증거는

예수님의 이중 계명 또는 (1) 하나님을 사랑하며 (2) 형제, 자매(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범죄를 안다면 ...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높임 받기를 원할 수 있을까요?

진정으로 자신의 범죄를 안다면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히 낮아져야 하지 않나요?

(삼상 15:30)

 

 

 

 

질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해야 합니다(민 25:13).

 

 

 

 

짐승 같은 그리스도인

 

 

짐승 같은 그리스도인(시49:12, 20)은 어리석은 자입니다(13절). 

그리고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53:1). 

다 시 말하면,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합니다(52:7). 

즉, 짐승 같은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입니다(49:6).

“짜증나!” …

 

 

성경은 우리에게 성내기를 더디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약 1:19).

그러나 우리는 짜증을 내면서 그것이 성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책망을 은혜로 여기는 겸손함과 지혜로움

 

 

다윗은 난관 속에서도 의인의 책망을 거저할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책망을 은혜로 여겼습니다(시141:5). 

어떻게 가능합니까? 

사람의 본능은 난관을 만나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위로 받기를 원할 진데 ...

다윗에게는 겸손함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겸손이라 함은 난관과 고통, 역경을 통해서

다윗의 눈이 주님께 향하여 고정되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낮추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의 지혜를 생각할 때 잠언 9장 8절이 생각납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책망하는 목사님에게 화를 내는 교인?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는 자를 책망하는 목사님에게

화를 내는 교만한 그 사람은 주님께서 치실 것이다?(참고: 대하 26:16-20)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또한 여러분과 함께 하시므로 여러분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시길 기원합니다(신 2:7).

 

 

충실한 목사님

 

 

주님 보시기에 충실한 목사님은 주님의 마음, 주님의 뜻대로 행합니다(삼상 2:35).

 

 

충실한 목사님?

 

 

아무 죽을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기로 결심한 줄을 안 다윗(삼상20:31-33)이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을 때" 제사장 아히멜렉은 "떨며 다윗을 영접하"였습니다(21:1).  그리고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을 위하여 하나님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 칼도 주는 바람에(22:10) 사울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11절).  그 때 사울 왕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다윗)과 공모하여 나(사울 왕)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라고 말했습니다(13절).  분명히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과 공모한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 물어서 다윗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사울 왕을 치게 하려고 했던 것도 결코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 때 제사장 아히멜렉은 사울 왕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14절).  그 결과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온 집[아들 아비아달만 빼고(20절)]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16, 18절).  "충실한 자" 다윗(14절)에게는 이렇게 충실한 하나님의 종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었습니다.

취약점: 악한 자와 교제하는 것?

 

 

유다 왕 여호사밧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을 때(대하18:1)

악한 자(19:2)였던 이스라엘 왕 아합과 인척 관계를 맺었었는데(18:1),

나중에도 심히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왕 아하시아와 교제했습니다(20:35).

이 사실을 볼 때에

제 생각엔 여호사밧은

선견자 예후의 책망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19:2).

그의 취약점은

악한 자와 관계를 맺고 교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치워 버리고 또 버리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을 택하고

주님을 섬기고 있다면

우리 중에 있는 죄악들을 치워 버리고 또 버리면서

우리 마음을 주님께 향하고 있을겁니다

(수 24:22-23).

친구 위로 사역?

 

 

  1. 사랑하는 친구가 당하고 있는 모든 일을 듣습니다.
  2. 서로 연락하여 함께 그 고통당하고 있는 친구를 위로하고자 찾아갑니다.
  3.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그 친구의 변한 모습을 보고 함께 슬피 웁니다.
  4. 오랫동안 그 고통당하는 친구와 함께 있습니다.
  5. 그 친구의 고통이 너무 큰 것을 보았기 때문에 말 한 마디 하지 않습니다.

(욥2:11-13, 현대인의 성경)

 

 

 

 

 

 

 

 

친구의 아픈 책망이 낫습니다.

 

 

친구의 숨은 사랑보다

충직으로 말미암은 친구의 아픈 책망이 낫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충성된 권고는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며 아름답습니다

(잠27:5, 6, 9).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며,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며,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꿔 주는 게

내 본능인데,

주님은 그것은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

'죄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의 계명은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는 말씀이다

(눅 6:31-35).

 

 

 

 

 

"큰 용사"

 

 

하나님께서는 "큰 용사"라고 말씀하신

기드온(삿6:12)을 사용하시사

이스라엘을 미디안에서 건져주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사 선지자를 사용하시사

"큰 용사"인 나아만 장관을(왕하5:1)

그의 나병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큰 위기 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고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는 그리스도인 지도자는  

큰 위기 가운데서도 힘을 내어 자기를 쫓는 자들을 견고하게 하고 위로하며 안심하게 합니다.

그가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으면서 그렇게 할수 있는 이유는

그는 큰 위기보다 자기와 자기를 좇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큰 위기보다 더 크신 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크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 싸우시사 승리케 하실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

(대하 31:20-32:8).

 

 

 

큰 위기 속에서의 큰 구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욘1:2)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요나가 탄 배에 "큰 바람"을 내리시므로 "큰 폭풍"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욘1:4).  그 배가 거의 깨지게 된 큰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위하여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습니다(17절).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1절)에 불순종하였지만(3절)

그 큰 물고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했습니다(2:10).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보다 못한 불순종하는 요나에게 큰 위기를 허락해 주셨지만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큰 위기에서 요나를 건져주시고자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럼,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우리에게 큰 역경과 어려움을 주시지만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구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큰 위기를 감당할 능력이 없을 때 ...

 

 

 

우리가 당면한 이 큰 위기를 우리가 감당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할 줄도 모를 때 우리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대하20:12)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9절).

그 이유는 주님의 손에는

권세와 구원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6, 9절).

 

 

 

큰 폐단과 큰 불행

 

 

이 세상에서 우리가 보는 "큰 폐단"은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요,

"큰 불행"은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하므로 다 없어져서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도 없는 것입니다(전 5:13-16).

 

 

 

 

"탄식"

 

 

주님의 "탄식"이

나의 탄식이어야 하는데 ...

(막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