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의 사랑, 주님의 사랑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주님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사 우리를 영원히 죽지 않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인자하심을 우리 집에 영원히 끊어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생명보다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삼상 20:14-15, 17)
요나의 내려감과 예수님의 낮아지심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요나 선지자는
욥바로 내려가고
다시스로 가는 배로 ‘내려가고’(3절)
더 나아가서 배 밑층으로 내려갔을 뿐만 아니라(5절)
“깊은 속 바다”(2:3)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6절)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6)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죄 없는 육체의 몸을 입고 오시되, 낮고 낮은 베들레헴 마구간 구유(짐승의 먹이를 두는 곳)에 누이시고(눅2:7),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시되(빌2:7)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는데(8절),
그 십자가형은 하류계층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낮아지고 낮아지시되 "땅 속"까지 내려가셨습니다(마12:40).
용서의 기도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사울 왕의 옷자락을 벰으로
마음에 찔림이 있었던 다윗은(삼상 24:5)
자신이 왕이 되어 압살롬으로부터 도망칠 때
시므이가 그를 저주하므로
죽어 마땅한 죄를 범했는데도 불구하고(삼하19:21)
그에게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까지 했습니다(23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왔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요11:11)
독생자 예수님을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우리 가운데 분쟁이 없기 위해선 ...
우리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온전히 합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뜻을 행하며,
주님의 말씀으로 말해야 할텐데 ...
(고전 1:10)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눅 1:66; 단 7:28; 참고: 창37:11).
우리 마음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그 일들을 우리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신 4:9).
우리 마음이 교만해지고 있다는 증거?
우리 마음이 교만해지고 있다는 증거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하 32:25).
우리 목사님이 ... ㅠㅠ
우리 목사님이
원로 장로님들의
올바른 가르침을 버리지 말고
우리 교인들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며,
우리 교인들의 말을 듣고
매우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야 할 텐데,
오히려 젊은 장로님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
우리 교인들의 멍에를
더욱더 무겁게 하고 있으니
우리가 목사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 ㅠㅠ
(참고: 대하 10:1-16)
우리 목사들이 어리석어 ...
우리 목사들이 어리석어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하지 못하며
또한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양 떼는
흩어지고 있습니다
(렘 10:21).
우리 미래의 소망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나타나시면(이 세상에 다시 오시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죄를 범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죄를 알지도 못하는 죄가 없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미래의 소망입니다
(요일 3:2-3; 히 4:15; 벧전2:22, 고후5:21).
우리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알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목격한 하나님의 일들을
우리 자녀들과 우리 손주들에게 알게 해야 합니다(신 4:9, 3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 경외함을 배워
우리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10절).
우리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
우리 자녀들이 "아직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찾고,
자라나면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자기의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면 좋겠습니다
(대하 34:3-7).
우리 집은 지혜로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해지며, 각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워져야 합니다(잠24:3-4).
우리 하나님은 …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소성케 해주십니다(사 57:15).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탐심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매를 맞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자를 고쳐주시고, 고쳐주십니다(18, 19절).
그러신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19절).
우리 하나님은 긍휼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기대한대로 안되면
주님께서는 주님의 뜻대로 우리에게 약속하신바 신실하게 행하시고 계신데
우리는 우리의 뜻과 욕심대로 주님께 기도하고 기대한바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주님을 원망합니다
(마 20:10-14).
우리가 미워할 때 ...
주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요일 3:11, 23)
그런데 우리는 이 주님의 계명에 불순종하여
서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 형제/자매를 미워할 때(15절)
- 우리는 가인 같이 하는 것이요(12절),
- 세상이 우리를 사랑할 것이요(13절),
- 우리가 아직도 사망에 머물러 있는 것이요(14절),
- 우리는 살인하는 자(15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우리 형제/자매를 미워할 때
우리는 가인 같이 살인하는 자입니다(12, 15절).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이 실제로는
'가장 나쁜 것'이 될 수도 ...
탐심에 이끌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을 "탈취"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가장 나쁘게 하는 것입니다
(삼상 15:9, 19, 21, 23).
우리가 "여수룬"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믿는
우리가 바로 "여수룬"(뜻: '의로운 자')입니다(신 33:5).
그 이유는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롬 4:25).
우리가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폭풍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일어나” 니느웨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욘 1:2),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내려’ 갔습니다 (3절).
그리고 요나는 욥바로 “내려”갔으며, 배로 “내려” 갔으면(3절) 결국에는 배 밑층까지 “내려”갔습니다(5절).
하나님께서 대풍을 바다 위래 내리시므로 바다 가운데 폭풍이 “일어났”습니다(4절).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시의 신을 불렀(기도하였)습니다(5절).
그러나 요나는 누어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5절).
우리가 주님의 명령인 “일어나” 가라는 말씀에 불순종하면,
우리는 “내려”가고 또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폭풍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우리 주위에 있는 불신자들까지도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 불신자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부르짖을 때에도,
우리는 깊이 잠들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
성경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씀하고 있지만(출 14:13),
우리가 잘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이요
우리가 못하는 것은 가만히 서서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은 ...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가까워
우리 입에 있으며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롬 10:8).
우리가 주님 앞에서 간구할 때에 ... (1)
우리가 주님 앞에서 간구할 때에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합니다(단 9:18).
우리가 주님께 간구할 때에 (2)
우리가 주님께 간구할 때에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를 응답해 주시길 구하기보다
"주 자신을 위하여" 기도 응답해 주시길 구해야 합니다(단 9:19).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우리의 길이 평탄하고 우리가 형통할 것입니다(수 1:5-9).
우리는 마음과 뜻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과 뜻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하여 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우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수 23:14).
우리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하 10:8; 눅 10:39, 42).
우리는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민 22:12).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았고,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롬 5:6-10).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8절).
우리는 불신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민14:37)의 “악평”으로 말미암아(13:32)
이스라엘 온 회중이 밤새도록 “통곡”했을 뿐만 아니라(14:1)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2절).
더 나아가서,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지휘관을 세우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까지 했습니다(4절).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 정탐꾼이 말한 “악평”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9절).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불신의 말을
듣는 것을 매우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만일 우리는 그들의 불신의 말을 들으면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만일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할 것이기 때문입니다(9절).
우리는 털려서 빈손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행 좋지 못할 때 우리의 대적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느 5:9).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털려서 빈손이 될 것입니다(12-13절).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엡 2:10).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과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피로 사시사(행 20:18)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걸작품인 우리를 천상에 전시하셨다(엡2:6).
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서이다(10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큰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일 3:1-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1, 23, 24절).
서로 사랑하되 우리는
육체로 오신(요이1:7)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요일 1:1,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2:2)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버리신 것처럼
우리도 목숨을 버리기까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3:16).
우리로 하여금 에워싸여 있게 만드는 사탄?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에워싸여 있"게 만듭니다(대하 32:10).
그리고 사탄은 우리가 그 에워싸여 있을 때에
주님의 종을 통하여 들은 말씀인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에워싸임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라고 믿는 것을 가리켜
주님의 종이 우리를 "꾀어" 말한 것이라고 말합니다(11절).
그래서 사탄은 우리에게 주님의 종에게
"속지 말라 꾀임을 받지 말라 그를 믿지도 말라"고 말합니다(15절).
사탄은 우리가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고
"다만" 주님만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을 싫어하지요.
사탄은 우리에게 그 에워싸여 있는 힘든 위기 상황에서
"능히" 주님도 못 건지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14, 15절; 참고: 17절).
우리를 막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막아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에게
높임을 받지 못하게 하시며
존귀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민 24:11).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과 같은 바벨론(렘51:7),
재물이 많아 탐남의 한정이 이른 바벨론(13절),
그 바벨론에서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비록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5절).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안에 죄가 가득하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버리시지 못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사 51:12).
하나님은 구속 받은 우리들을 구원하시사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시므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5, 6, 11절).
우리만의 '바벨 탑'을 세울 때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고자 우리만의 '바벨 탑'을 세울 때
하나님께서는 내려오시사 우리의 하는 일을 막으시고자 우리의 언어(대화, 소통?)를 혼잡하게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고 우리를 흩으시지 않나 생각합니다(창 11:1-9).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우리의 하나님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대로 자기들 보다 “먼저” 사람을 가나안 땅에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하게 한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신 1:22)
과연 모세가 말한 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었을까요? (23절, 현대인의 성경).
그렇게 한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26절).
그들은 장막 중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라고
원망을 했습니다(27절).
이 원망이 말이 됩니까?
아니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미워하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멸하시려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원망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목적을 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 보다 “먼저” 정탐꾼들을 보낸 결과
12명 중 갈렙과 여호수아를 뺀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의 악평을 들으므로(민13:28-33)
낙심했으며(신1:28) 또한 소리 높여 밤새도록 통곡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민14:1-2).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1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대로
그들 보다 “먼저” 가시는(신1:30) 하나님을 믿고(참고: 32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대로 가나안 땅에 올라가서 치지했어야 했습니다(21절).
그들은 두려워(무서워)하지 말고(21절, 29절) 또한 주저하지 말고(21절)
자기들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그들이) 갈 길을 지시하신” 하나님(33절)을 믿고
갈렙처럼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했어야 했습니다(36절).
우리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뒤돌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여기까지 인도해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결코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먼저 가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근심이 많고 우리 몸에 힘이 없어졌을 때 ...
우리에게 근심이 많고 우리 몸에 힘이 없어졌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만지시며 우리를 강건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고 말씀하실 때에
우리가 "곧 힘이 나서" 이렇게 주님께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내 주여, 주께서 나에게 힘을 주셨으니 이제 말씀하소서"
(단 10:16-19, 현대인이 성경).
우리에게 기울어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아들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해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면서
(삼하18:33; 참고: 19:4)
울며 슬퍼하므로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되었고,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갈 정도로(19:1-3)
다윗의 마음이 죽은 압살롬에게 기울어져 있었지만,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다윗에게 들렸을 때에는(11절)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였습니다(14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을 때에도
(마27:46)
우리에게 기울어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마음은 하나 같이
오직 왕 중의 왕이신 주님께 기울어져 있습니다
(계19:16).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모든 일을 성취하심으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사26:12).
우리에겐 "쉼"이 필요합니다.
천지창조하신 하나님도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일을 마치시고 쉬셨는데(출 31:17)
지금 우리는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인 안식일에 쉴 줄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쉬어야 할 때 쉬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귀와 눈과 마음
우리의 귀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속히 해야 하는데
사람(들)의 말 듣기를 속히 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로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선택이란 바로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간지러워서 자기(우리)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는 것이다(딤후 4:3).
우리는 바른 교훈(sound doctrine)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눈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히12:2).
우리는 우리 인생의 폭풍을 바라보면서
그 폭풍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보는 데로 행하고 있다(고후 5:7).
우리는 우리 눈으로 바로 보며(look straight ahead)
우리는 주님을 똑바로 쳐야보며(fix our gaze directly before the Lord)
걸어가야 한다(잠4:25).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우리의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잠4:2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잠3:21).
그 결과 우리는 생명력을 잃고 있으며 우리 육체의 건강도 잃고 있다(22절).
우리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한다(4:23).
그 이유는 우리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23절).
우리의 말과 우리의 전도함이 ...
우리의 말과 우리의 전도함이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지 않고
다만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면 상대방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지 않고
다만 사람의 지혜에 있는 것입니다(고전 2:4-5).
"우리의 본보기"
과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우리의 죄를 징계하신 것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악을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고전 10:6)
우리의 이중 사명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이중 사명 (twofold calling)은
외면적으로는 복음을 증거 하는 것(행20:24)과
내면적으로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빌1:27).
그러나 한국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는 외면적인 사명을 너무 강조한 반면에
내면적인 사명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고 있지 않다.
그 결과 입술로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삶은 복음 전파의 거침돌(장애물)이 되고 있다.
우리의 입이 말한 대로 행하지 않으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입이 말한 대로 행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가 반드시 우리를 찾아낼 것입니다
(민 32:23-24).
우리의 죄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때문에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사 53:5, 10).
우리의 힘은 ...
우리의 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삿 6:14, 16).
우쭐댑니다.
교회 안에서
허영심 가운데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자는
형제, 자매들 앞에서 우쭐댑니다
(참고: 삿 9:1-13).
원망하는 마음 or 감사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은
현재의 삶에 불만족 속에서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민 20:3-5)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미래를 바라며
현재를 소망 중에 즐거워합니다
(롬 5:1-2, 12:12).
원망하는 마음은 점진적으로 과거를 그리워합니다.
가데스에서 모세와 다퉜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
-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 하였도다”(민20:3; 참고: 16:31-25)라고 말한 후,
-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20:4)라고 말했고,
- 결국에 가서는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5절)라고 말했습니다.
이 (1) ~ (3)까지의 내용의 흐름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제일 근래에 있었던 (1)에서 좀 더 과거인 (2),
그리고 결국 (3)에 가서는 그 셋 중에 제일 과거인 “애굽”에서
왜 자기들을 나오게 했냐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렇게 원망하는 마음은 점진적으로 과거로 돌아갑니다.
우리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이렇게 점진적으로 과거로 돌아가
결국에 가서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애굽”과 같은 이 죄악 된 세상에서의 삶을 그리워합니다.
위기 가운데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은 ...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잠잠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자리"에서 "규례를 어기고"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각오로 나아갑니다(에 4:14-16).
위기 때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
우리의 "자리" 또는 지위 등이
어쩌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요?
우리가 "이 때에"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안 되겠지요? (에 4:14)
유익한 고통?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사
우리 고통의 원인인 우리의 죄를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유익합니다(수 7:1-11; 시 119:67, 71).
육신의 생각은 …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우리의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롬 8:7).
육에 속한 사람은 ...
"육에 속한 사람"은 영적 분별력이 없기에
성령님의 일들을 알 수도 없고, 받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성령님의 일들을 어리석게 봅니다(고전 2:14).
육체의 고난의 유익?
육체의 고난을 받으므로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죄를 그치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되었으니
이 육체의 고난도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벧전 4:1-2).
"죽은 개나 벼룩" 같은 나를 살리시려고 ...
사울 왕은 "죽은 개나 벼룩" 같은 다윗을 쫓아 죽이려고 했지만(삼상 24:14),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죽은 개나 벼룩" 같은 나를 살리시려고
이 낮고 낮은 천한 세상까지 오셔서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은혜를 베푸는 자는 ..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며 돌보는 자는
그 은혜를 사모하는 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는 말을 합니다
(룻 2:2, 10, 13).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기를 원했던 룻 (룻 2:2),
결국에 가서는 보아스에게 은혜를 입기를 원했습니다(13절).
보아스는 룻으로 하여금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아 떡을 먹게 했으며,
볶은 곡식을 그녀에게 주므로 롯이 배불리 먹었습니다(14절).
또한 보아스는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났을 때
자기 소년들에게 그녀를 곡신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15절).
보아스는 룻을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녀로 하여금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16절).
이렇게 보아스는 자기에게 은혜를 입기 원하는
룻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20절).
음악 치료 (Music Therapy)?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영(성령님)이 크게 감동된 하나님의 사람이
손으로 악기를 다루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에
듣는 이들을 "상쾌"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으로 인해 "번뇌"하는 자조차도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납니다
(삼상 16:13-15, 18, 23).
음행과 절제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해야 하며,
결혼 후에는
부부가 서로에게
성적 의무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부부는 절제하지 못하므로
사탄이 시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서로 분방하지 말고 합방해야 합니다
(고전 7:2-5).
‘의를 행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요일2:29)
의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왕이신 의로우신 예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마 6:33).
즉, 의를 행한다는 것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요일2:1) 행하시는 대로
우리도 행하는 것입니다(6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대로
우리도 행해야 하는데(6절)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7-11절).
예수님의 이중계명: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먼저 의를 행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중계명 중
첫 번째 계명대로 주 하나님을 우리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요한일서의 관점으로 말한다면
요한일서 2장 15-17절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의미는
다 지나가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의를 행하는 것이란
첫째로 다 지나가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대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을 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2:15-17)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4:3)].
그 다음에 의를 행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중계명 중 두 번째 계명대로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요한일서의 관점으로 말한다면
요한일서 2장 3-11절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데
그 말씀을 요약한다면 형제를 사랑하고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계명의 순종하여
그 형제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습니다(5절).
그리고 그는 빛 가운데 거하여[“빛 가운데 살기 때문에”(현대인의 성경)]
자기 속에 거리낄 만한 것이 없습니다(10절, 현대인의 성경).
의인과 하나님
의인은 고난이 많습니다(시34:19).
의인은 부르짖습니다(17절).
의인은 마음이 상하여 중심으로 통회합니다(18절).
하나님께서 의인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그 의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의 모든 고난/환난에서 건지십니다(17, 19절).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십니다(18절).
의인은 은총을 입을 때에 ...
의인은 하나님께 은총을 입을 때에
의를 배우고 또한 의를 행하므로 하나님의 위엄을 돌아봐야 합니다(사 26:10).
의인의 첩경
의인의 길은 정직 합니다.
정직하신 주님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십니다(사 26:7).
이 세상은 ...
이 세상은 어두운 세상이요(요일1:5, 6; 2:8, 9, 11),
거짓된 세상이요(1:6, 8, 10; 2:4, 21, 22; 4:1, 6, 20),
미움의 세상이요(2:9, 11; 3:12-15; 4:20) 또한
악한 세상이요 불의한 세상입니다(1:9; 2:2, 13, 14, 16; 3:12; 5:17, 18, 19, 21).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요일 2:16).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부터 난 우리는(5:1, 4),
즉 거듭난(중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3:23)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2:15) 오히려 믿음으로 이 세상과 싸워 승리하면서(5:4, 5) 오직 하나님의 뜻인(2:17)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하므로(3:23)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도 부분적으로 누려야 합니다(2:17).
이 좋은 편을 택해야 하는데 …
우리는 교회 안에서 봉사하면서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합니다(눅10:40).
그러다 보니 "나 혼자 일하게 두는"(40절) 주위 형제, 자매들이
못마땅하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만족 속에서 심지어 주님에게까지 나아가 기도하면서 불평을
합니다: '주님, 저들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십니까?'(40절).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개야 아무개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42절).
주님께서는 마리아처럼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39)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우리에게 원하시는데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많은 일을 분주하게 하여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주님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42절)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 한 가지만 하는 것으로 만족을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뜻대로 교회를 봉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는데(42절) ...
이 진리를 확신하십니까?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 진리를 확신 하십니까?
(롬 8:38-39)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롬5:8).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시키셨습니다(사53: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다 사하여 주셨습니다(골1:14).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해 죽게 하셨습니다(롬6:2, 11).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웃의 죄를 사하여 줘야 합니다(마6:12).
만일 지금 우리가 우리 이웃의 죄를 사하여 주고 있지 못하(않)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저것도 없는 광야의 축복
원래 광야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민20:5),
오직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하늘 양식” “만나”(시78:24; 참고: 민21:5)와
반석에서 내시는 “물”이 있을 뿐입니다(민20:10-11; 참고: 시105:41).
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게 하신 것일까요?(민20:5)
혹시 이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하게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
(합3:17-19).
혹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닐까요? (신 8: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1-33).
이러한 자의 괴로움도 면하게 해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내가 원하는 뜻대로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내 뜻을 관철하려고 하는 나 같은 자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주시려고
내 인생의 "박넝쿨을 예비"해 주십니다(욘 4:6).
이러한 지식보다 사랑이 더 낫습니다.
교만하게 하는 지식보다
덕을 세우는 사랑이 낫습니다
(고전 8:8).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행하게 하옵소서.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실 뿐만 아니라(잠 17:9),
우리의 허물을 보지도 아니하십니다(민 23:21).
그러나 사탄은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허물은 못 보게 만들면서
동시에 우리가 사랑하는 식구와 이웃의 허물을 자꾸만 보게 만들며
또한 들춰내게 만들려고 우리를 유혹할 것입니다.
우리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엡 2:5)
우리의 허물을 다 사해주시고 우리의 죄를 가려주신(시 32:1)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엡 2:5)
그 크신 하나님 은혜로 우리 이웃의 허물을 덮어 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행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잠 17:9).
이루어질 줄 믿고 의심하지 말자.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요한복음 6장 1-15절과
마태복음 16장 18절의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말자.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께 기도하고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자
(막 11:23, 24).
"... 이를 갈리라"
"외식하는 자가 ...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 무익한 종 ... 이를 갈리라 ..."
(마 24:51; 25:30).
이미 이루심과 아직도 이루실 것임 사이에 살면서
언약의 하나님은 구원을 이미 다 이루셨고(예수님의 초림 때)(요19:30)
구원을 장차 다 이루실 것이며(예수님의 재림 때)(계21:6)
현재 그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미" 다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과 "아직도" 다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 사이에 살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므로(롬8:14) 현재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빌2:12).
이방인 적군의 꿈과 해명도 사용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미디안 사람의 꿈과 해몽도 사용하시사
두려워하는 기드온에게 용기를 주시고
또한 하나님의 약속인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는 말씀을
믿게 하셨습니다(삿 7:9-15).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 라합의 신앙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그들의 목전에서
애굽 왕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신29:2)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민14:11).
그런 반면에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던 라합이란 이방인 여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그들이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듣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라”
[(현대인의 성경) “정말 당신들의 하나님 여호와야말로 천하에서 제일가는 신이십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수 2:10-11).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9절).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부터 자기들의 목전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직접 목격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는데 그 모든 것을 직접 목격하지도 않고 듣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 여자 라합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두 성경 구절이 생각납니다:
-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슬과 같은 사랑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습니다(호6:4).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아침구름과 이슬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잠깐이요 순간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제사"와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6절).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쉬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사는 것도 싫어졌는데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내 마음에 괴로움 때문에,"
"내 마음이 뼈를 깍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할 정도로(욥 7:11, 15)
이젠 사는 것도 싫어졌는데 “사람이 무엇이기에 ...
주께서 그처럼 소중히 여기셔서 많은 관심을 쏟으시고
주께서는 어째서 잠시 동안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16, 17, 19절, 현대인의 성경)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하나님의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있는 자들은
"이제는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대하 29:10-11).
인생을 헛되이 허비해서는 아니 될 텐데 ...
"그림자 같이 다니"는 인생인데,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기만 한다면
이 얼마나 짧은 인생을 헛되이 허비하는 것인가(시 39:6).
인생의 쓴맛을 본 여인 ...
인생의 쓴맛을 본 여인 나오미,
그녀는 소망이 없었습니다(룻 1:12).
그녀는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다가
남편만 죽은 게 아니라 그녀의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1, 3, 5절).
그녀는 늙어서 남편을 둘 수가 없었습니다(12절).
그 말은 또 다시 아들들을 낳을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12절).
그녀는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고 생각했습니다(13절).
그녀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20절).
그녀는 유다 베들레헴(1절)에서 "풍족하게" 살다가(21절)
"흉년"이 들므로 모압 지방으로 이사 갔다가(1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다시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21절).
그녀는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고 믿었습니다(21절).
그래서 나오미는 자기를 "나오미"라 더 이상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고 말했습니다(20절).
["나오미"의 뜻은 "나의 즐거움", "마라"의 뜻은 " "쓰다" 또는 "괴로움"임].
인생이란 "배"가 ...
인생이란 "배"가 "바람"이 부는 "바다 가운데" 있으므로
우리는 "힘겹게 노 젓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다양한 "바람"이 "바다 가운데" 불므로
우리의 "배"가 거의 깨지는 위기의 상황까지도 갈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은 "바다 위로 걸어오심"니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 있는 우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은 배에 올라 우리에게 오심으로 우리 인생의 바람이 그칩니다(막 6:45-52).
일천 번제보다 ...?
솔로몬 왕은 기브온에 가서 큰 산당 그 제단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었지만(왕상 3:4)
그가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일천 명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므로(11:3-4)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묵상할 때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1,000번의 예배를 드릴 때에
사단은 그의 1,000명의 종들로 하여금 우리를 미혹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1,000번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1번째 명령을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입술과 마음이 섬기는 대상이 다르면 안 되는데 ...
우리의 입술로는
우리가 결단코 주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돈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보기엔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더 좋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보다 돈을 섬기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수24:14-16).
입으로는 다정이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
"사람을 죽이는 화살과 같"은
혀를 가진 "이웃"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항상 거짓을 말하고
입으로는" 우리에게 "다정히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우리를 "잡을 덫을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렘 9장 4, 8절,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