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없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기쁨은 있지만
뿌리가 없기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 13:20-21).
삐뚤어진 어머니의 사랑?
어떻게 자신의 돈을 가져간 미가에게
어머니는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 어머니는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부어 만들기 위해"
자신의 돈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고 말한 후
미가에게 돌려받은 자신의 돈을 도로 그에게 줄 수 있을까요?
(삿 17:1-3)
자녀의 영혼을 망치는 어머니의 삐뚤어진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한 "부활의 권능"(빌 3:10)이란 무엇일까요?
이미(과거) "부활의 권능":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불순종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현대인의 성경]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부활의 권능(엡 2:1, 5; 참고: 요일 4:9).
아직도(미래) "부활의 권능":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고전15:52, 현대인의 성경),
"주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날("부활"할) 부활의 권능
(살전4:16, 현대인의 성경; 참고: 롬6:5).
지금(현재) "부활의 권능":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고(빌3:11)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되(10절, 현대인의 성경)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롬8:18, 현대인의 성경) "나는 날마다 죽"으므로(고전15:3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빌3:10, 현대인의 성경).
사람에게 외면을 당할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외면을 당할 때에
우리에게 외면 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까지 외면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다(사 53:3).
사람을 무시하는 자는 ...
사람을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눅 18:4).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내 편이시사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시118:6-9).
사람을 얻는 자유인
사람을 얻는 자유인은
한 사람이라도 더 얻고자
자기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됩니다
(고전 9:19).
사랑 받지 못하는 괴로움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아내의 괴로움 ...
야곱은 시력이 약한 레아보다 곱고 아리따운 라헬(창29:17)을
더 사랑하였습니다(18, 30절).
레아는 남편 야곱에게 사랑 받지 못하므로(31절) 괴로워하였습니다(32절).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셨습니다(31절).
사랑과 진리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요일4:8, 16)와
진리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요14:6)와
교제하는(요일1:3) 하나님의 자녀들은(3:1, 2)
진실된 사랑으로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며(3:18)
또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합니다(엡4:15, 현대인의 성경).
사랑 병(Lovesick)
다시 사랑 병에 걸리고 싶습니다(아2:5).
신랑 되신 예수님의 그늘에 앉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3절).
어린양의 혼인 잔치 집으로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고 싶습니다(4절).
신랑 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시원케(refresh)되고 싶습니다(5절).
사랑에서 질투로 ...
다윗을 크게 사랑하였던 사울 왕은(삼상 16:21)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하니까
다윗을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18:6-9).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므로
다윗이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까
사울 왕은 다윗을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었고
심지어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12-15, 25, 28).
사랑의 목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은
우리의 구원입니다(엡 1:3-6).
사랑하기보다 미워하면
우리가 주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기보다(요일3:23)
오히려 미워하면(15절)
우리 속에는 거리낌이 있어야 하며(2:10)
또한 우리 양심이 우리를 책망해야 합니다(3:20-21).
사랑하기를 거부할 때
주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인데(요일3:23)
만일 우리가 사랑을 행하지 않고 있으면
마치 호랑이가 먹잇감을 노려보면서
잡아먹으려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죄가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우리 마음 문 앞에서
웅크리고 있다가(참고: 창 4:7; 요일3:14) 틈만 보이면(참고: 느4:3)
우리 안에 그 형제를 미워하라는 생각을 넣어서(요13:2)
결국 우리로 하여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살인죄를 범하게 만들고 있습니다(요일3:15).
사랑하는 하나님을 친근히 하기 위해선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요14:21).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친근히 하는 것입니다
(수22:5).
사랑하시기에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막 10:21).
사랑하지 말았어야 할 여인들을 사랑했습니다.
아무리 지혜로웠다는 솔로몬 왕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랑하지 말았어야 할 여인들을 사랑했습니다
(왕상11:1-8, 삼손이 생각남).
그 불순종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일찍이"(2, 9절) "두 번이나"(9절)
말씀하신대로 그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려"(2, 4, 9절)
그 이방 여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습니다(9절).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진리 안에서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밖에서는 그 지혜는
더 이상 하늘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적이요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입니다(약3:15).
사망 vs. 영생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롬 5:12).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6:23).
여기서 "사망"이란
- 하나님으로부터 분리가 된 '영적인 죽음'
- 몸과 영혼이 분리가 될 '육체적인 죽음'
- 하나님과 영원하고 완전하게 분리되어 영원한 사망에 처하게 되는
'영원한 죽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18절, 현대인의 성경; 6:23).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6:23).
여기서 "영생"이란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
-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
- 주님의 재림 때 몸은 변화하던지(그 때까지 살아있다면) 또는 부활하여(죽었다면) 영혼과 연합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망이란 하나님과 "단절", 영생이란 하나님과 "연결"?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롬 5:12).
사망이란 하나님과 "단절"된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아담이신(고전15:45)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의 순종으로 말미암아(빌2:8) 우리가 선물인 영생을 얻었습니다(5:15, 18; 6:23).
영생이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을 의미합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결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요일1:2, 3, 현대인의 성경).
이 교제는 "성령으로 교제"하는 것으로써 (빌2:1, 현대인의 성경) 이것은 "믿음의 교제"요(몬1:6, 현대인의 성경) 또한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서로 교제"하는 것으로써(행 2:42; 요일 1:7, 현대인의 성경) "서로 사랑"하는(벧전4:8; 요13:34, 35; 15:12, 17; 요일3:11, 23; 4:7, 11, 12; 요이1:5) '사랑의 교제'입니다.
이 교제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우리 속에서 온전하게 되어(요일2:5) "기쁨"이 충만합니다(1:4).
이렇게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우리 이웃과 연결되어 있어서 예수님의 이중 계명대로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한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할 때에(마22:37, 39) 우리는 천국 시민권자들로서(빌3:20) 하늘나라에서의 천국 생활을 이 땅에서도 부분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에 구원을 이루는 삶이요(2:12),
이것이 바로 이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부분적으로 누리는 삶입니다.
사무엘과 예수님?
사무엘은
그의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얻은 아들로서
하나님께 바쳐졌으므로
그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는 한나 부부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신 반면에
(삼상 2:20-21)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신 후
우리 각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서 바치셨습니다.
"사역은 여러 가지나"
"사역은 여러 가지"(가정 사역, 교회 사역, 인터넷 사역)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고전 12:6).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고 있는 자는
자기를 근심하게 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다(고후 2:5-11).
사탄은 ... (1)
사탄은
우리가 들은 말씀을 우리 마음에서 빼앗아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눅 8:12).
사탄은
우리가 기쁨으로 받은 말씀의 뿌리가
우리 마음에 깊이 내리지 못하게 하므로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게 만듭니다(13절).
사탄은
말씀을 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게 합니다(14절).
그러나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게 하여
인내로 결실케 하십니다(15절).
사탄은 ... (2)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생각하지 아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
우리 자신을 부인하기보다 인정하며
우리 자신의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보다
장식품 용 십자가를 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우리 목숨을 잃는 것 보다
우리 목숨을 구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막 8:31-36).
사탄은 … (3)
사탄은
베드로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각을 못하게 하고
사람의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마 16:23).
사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속에 가득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령님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게 만들었습니다.
(행 5:1-3).
사탄은 우리 마음을 미혹합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을 미혹합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 마음이
진실 되지 않고 거짓되게,
깨끗하지 않고 더럽히게 만들고자
우리를 미혹하고 있습니다
(고후 11:3).
사탄의 유혹
첫째로, 사탄의 유혹은 “소동”입니다(행21:30).
결국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추측 속에서
바울을 붙잡고 그에 대한 자기주장을 피므로
성전 안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을 충동질하므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온 성이 소동하였습니다.
사탄은 교회에서 소동을 일으켜 요란하게 만듭니다.
둘째로, 사탄의 유혹은 “소문”입니다(31절).
무리들은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아가
그를 죽이려고 할 때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을
로마 주둔군의 최고 사령관이 천부장에게까지 들리므로 말미암아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였습니다.
사탄 은 악성루머를 퍼트립니다.
셋째로, 사탄의 유혹은 “포행”입니다(35절).
바울이 인솔을 받아 느린 걸음으로 진영으로 연결된 계단으로 가고 있었을 때
군인들은 무리들의 폭력적인 조짐을 포착하고 바울을 들고 갔”습니다(35절).
사탄은 교회 안에서도 언행으로 폭행을 가하게 만듭니다.
사탄의 집요한 공격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사사 삼손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밤새도록" "조용히" "매복"을 했습니다.
그들은 삼손이 사랑하는 "들릴라"라는 여인을 돈(은)으로 매수해서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삼손을 "결박"하려고 심지어 그녀의 "방 안에"까지 매복을 했습니다.
들릴라는 삼손에게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할 수 있는지를 내게 말하라",
"내게 말하라", "내가 말하라"고 세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삼손이 자기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겼는지 그녀에게 말하지 않으니까 그녀는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삼손은 들릴라에게 "진심을 드러내어"
그녀에게 자기의 힘의 근원을 말했습니다.
그 결과 삼손의 힘은 없어졌고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삿 16:1-21).
우리는 사탄의 집요한 공격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탄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의 "힘의 근원"을 공격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힘의 근원은 주님이신데(시18:1)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지 못하게 하므로 우리를 약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기보다
대충 사랑하게 만들므로 주님의 말씀에 자꾸만 불순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말로만 이웃을 사랑하게 만들고
진실과 행함으로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힘과 사랑의 힘이 매우 약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
사탄의 종들이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신자들에게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며 우리를 학대하며
어려운 노동으로 우리의 생활을 괴롭게 하므로
결국에는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출 1:10-14).
상당한 값을 치루시므로 우리는 값없이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상당한 값을 치루시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속량하사 우리는 값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죄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롬 3:24).
상처를 싸매어 주세요, 주님.
주님,
상심한 자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세요.
주님,
겸손한 자들을 붙들어 주세요(시147:3, 6).
생각 영역에서의 영적 싸움
우리는 생각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워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있습니다(렘6:19).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치 않고 있습니다(16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19절).
아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10절).
우리는 하나님의 경책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10절).
오히려 우리는 거짓 목사(선지자)의 "평강하다, 평강하다"라는 말 듣기를 즐겨하고 있습니다(14절).
우리의 생각의 영역에서는 마치 샘이 그 물을 솟쳐냄 같이 악을 발하고 있습니다(7절).
탐욕의 생각들과 거짓된 생각들(13절)과 같은 악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고 있습니다(15절).
그 결과 우리는 장애물을 만나고 있습니다(21절).
우리는 재앙을 만나고 있습니다(19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훈계를 받아야 합니다(8절).
우리는 하나님의 경책을 들어야 합니다(10절).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탐욕과 거짓을 다 버려야 합니다(13절).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행한 가증한 일들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15절).
그리고 우리는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고 행"해야 합니다(16절).
그리할 때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강을 얻을 것입니다(16절).
"생각의 결과" "장애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거절하는 우리들의 "생각의 결과"는
우리 앞에 "장애물"이 있어
가족이 함께 거기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렘 6:19, 21).
생명이신 성령님께서 ...
생명이신 성령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이미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엡2:1)(중생)(과거 살리심),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실 것입니다(롬8:13; 고전 15:52-53; 살전 4:16)(영생)(미래 살리심).
이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사(롬8:9)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교제케 하시며(요일1:3) 알아가게 하시면서(요17:3)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맺으시사(갈5:22)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중계명대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케 하시므로(마22:37, 39)
지금 이 땅에서 '이미 중생'과 '아직도' '(완전한) 영생' 사이에 살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천국 생활인 영원한 생명과 평강(롬8:6)을
부분적으로 누리며 살아가게 하고 계십니다
(생명) (현재 살리심).
생존의 비결
그리스도인의 생존의 비결은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신 4:4).
섞인 믿음
찌끼와 혼잡물과 같은 믿음 (사 1:25), 섞인 믿음 ...
주일에는 하나님을 믿지만 주중에는 세상과 자신을 믿는 믿음,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마음으로는 세상과 재물을 사랑하는 믿음,
종교적 예식을 행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는 믿음,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 유익이 없으며 기뻐하지 않으시는 우리의 무수한 재물(11절),
예배당만 밟는 우리의 발걸음(12절),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우리의 모임들과 집회들(13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오히려 무거운 짐으로 여기시며 지기에 곤비한 우리의 절기예배들(14절),
우리의 섞인 믿음은 고통의 용광로를 통하여 정화될 필요가 있다.
선대하는 다윗과 그의 소년들
다윗은
자기를 학대한 사울 왕을 선대했는데(삼상24:17),
다윗의 소년들은(25:12)
자기들을 모욕한(14절) 미련한 자요(25절) 불량한 사람(17절)인
나발의 하인들을 매우 선대했습니다(15절).
학대나 모욕을 선으로 바꾸사(창50:20)
이 모든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롬8:28)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자만이(시34:8)
자신을 학대하고 모욕하는 자에게까지도
선대할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선하신 대로 하십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사무엘을 통해서 들은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삼상 3장, 특히 18절).
선한 말씀 vs. 불길한 말씀
만일 우리가 스스로 조심하여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가까이 하는
우상을 두면
하나님의 모든 불길한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순종하면 모든 선한 말씀이,
불순종하면 모든 불길한 말씀이
신실하게 임할 것입니다
(수 23:7-15, 특히 15절).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양들인 우리를 먹이시며,
우리는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우리를 온순히 인도하십니다
(사 40:11).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막10:18),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사는 자(롬12:2),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므로(8:28)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자는(시34:8)
선을 행함으로(엡2:10)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선한 청지기
우리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벧전 3:16-17; 4:10).
선행으로 막아야
우리 성도들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을 행함으로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이나 욕하는 자들이나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고
그 비방하고 욕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벧전 2:12, 15; 3:16).
성도의 삶
성도의 삶은 분리하는 삶입니다(느 13장 3절).
성령님께서 우리 자녀를 움직여 주시길 ...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에게 복을 주시사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자녀를 움직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삿 13:24-25).
성령님의 역사란 ...
성령님의 역사란
우리가 많은 고난 중에 있을 때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사
그 말씀을 겸손히 기쁨으로 받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게 하시사
그 뜻에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게 역사하십니다.
그 결과 성령님은 우리를 고난 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으시사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교제를
만일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하고 있다면(요일 1:3),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4:8, 16)의 뜻대로(2:17)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요14:6)를 믿으며
또한 서로 사랑하되(3:23)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하므로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3:18).
"성령의 검"에 "익숙한" 성경 교사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6:17)에
"익숙한"(스7:6) 성경 교사(목사)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그 말씀을 성도님들에게 가르치기를
결심해야 합니다(10절).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9절)
성실하게 잘 감당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중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란
중생과 완전한 영생 사이에서
성령님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
생동력 있는 삶이란
종말론적인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영원한 천국에서의 완전한 사랑의 삶을
이 땅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재현하며 사는 것입니다.
성삼위 일체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므로
순종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요일 3:24)
우리는 우리에게 큰 사랑을 베푸신 아버지 하나님(1절)과
자기 목숨을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십자가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2:2; 3:16)와 친밀한 교제를 누리므로(1:3)
기쁨이 충만하여(4절)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3:11, 23, 24).
그리할 때 우리는 순종의 축복 4가지인 …
-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 압니다(19절),
- 우리 마음을 주님 앞에서 굳세게 합니다(19절).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기에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습니다(21절),
-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22절),
-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압니다(24절)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누리므로(1:3)
순종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3:19-24).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수록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지면 끊어질수록
더욱더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견고히 서서
주님 안에서의 소망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시 71:5).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삶?
우리는 사람이 보기에 부를 누리면서
아무 염려와 걱정 없이 한가하고 평온하고 안전하며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삶을
매우 좋게 여길 것입니다(삿 18:7, 9, 10).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그러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간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삶이 축복된 삶이라고
"미가"가 "고용"한 목사님에게 설교를 통해 배웠습니다(17:10; 18:4).
그런데 그 목사님은 세상적인 유혹에 넘어가
야망과 욕심이 있는 목사님이요 또한 돈을 우상화해서(18:19-20)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마6:24).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한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아 기뻐하면서 그러한 삶을 간구하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도 야망과 욕심 속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소망을 잃었던 여인
소망을 잃었던 여인 나오미(룻1:12)
고향인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지방에 가서(1절)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죽으므로(3절)
그녀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늙어서 남편을 둘 수도 없었습니다(12절)
그러기에 그녀는 아들들도 낳을 수도 없었습니다(12절).
그런데 결국에 가서 나오미는
그녀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그녀의 며느리인 룻이 낳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되었는데
그녀의 이웃 여인들이 그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습니다(4:15-17).
아들들도 낳을 수도 없었던 소망이 없었던 여인에게(1:12)
아들이 태어난 것입니다(4:17).
속임수로 유혹하는 자들
우리는
속임수로 우리를 유혹하는 자들을
대적해야 합니다
(민 15:17-18).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악한 눈이 있어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 임할 줄은 알지 못합니다
(잠 28:20, 22).
수고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수고하지도 않은 것 하나님은 주셨고,
내가 심지도 않았는데 열매를 맺게 하시고 계십니다
(여호수아 24:13).
그러므로
나는 내가 수고도 아니 하고 받은 것과
심지도 않았는데 받은 열매가
없어졌다고 해서 분노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므로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영혼들을 아껴야 합니다
(욘 4:6-11).
순종의 축복 4가지
우리가 주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면(요일 3:11, 23, 24)
순종의 축복 4가지가 있습니다:
-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 압니다(19절).
- 우리 마음을 주님 앞에서 굳세게 합니다(19절).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기에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습니다(21절).
-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22절).
-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압니다(24절).
스스로 겸손해야 하는데 ...
스스로 겸손해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범죄하고 있으니 ... ㅠ (대하 33:23)
스스로 더럽히지 말아야 ...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이 세상의 풍속을 따르므로
우리 스스로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레 18:30).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 예배하는 자들 중에는
아직도 악한 길을 걸으며
아직도 악행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을 말을 순종하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살인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고 있습니다
(렘 26:2-5, 8, 11, 19; 요일 3:15).
스스로 자기의 행함을 자랑하는 교회
어쩌면 주님께서는 주님을 거슬러
스스로 자기의 행함을 자랑하는 교회에게
'너희 교회에는 교인 수가 너무 많다'
그래서 교인 수를 줄였는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교인 수가 아직도 많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삿 7:2-4)
스스로 조심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여
우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우리 중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가까이 하여
그들의 신들을 섬기고 왕래해서는 아니 됩니다(수 23:7-12).
스스로 회복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지금 우리는 입술로는 "회복"을 외치고 있지만
혹시 우리의 마음과 행동으로는 "회복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대하 36:16)
지금 만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고
목을 걷게 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크게 범죄하고 있든지,
또는 세상의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하나님의 전을 더럽게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부지런히 보내사
말씀을 하셔도 하나님의 종을 비웃고 욕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회복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12-16절).
승리 후 패배 후 승리
여리고 성에서의 승리 후
아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아이 성에서는 3,000명쯤만 보냈다가
36명 쯤 죽임을 당하면서
전쟁에서 패했습니다(수 7:4-5).
아간의 문제를
아골 골짜기(괴로움의 골짜기)에서 해결한 후
다시금 아이 성과의 전쟁할 때에는
처음보다 약 10배나 많은 용사 30,000을 보내어(8:3)
하나님의 전략대로 순종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4-29절).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우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편견과 혼란과 거짓과 화평을 깨는 일과
모든 악한 일이 있습니다
(약 3:14-18).
시어머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
"소망"이 없었던 시어머니 나오미에게는(룻1:12)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고(13절)
시어머니와 함께 시어머니의 고향인
유다 베들레헴으로 가기로 "굳게 결심"한 모압 여인(18절),
누구에겐가 "은혜"를 입으려는 며느리 룻이 있었습니다(2:2).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며느리 룻을 가리켜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4:15).
시어머니의 아픈 마음
늙어서 남편을 두지 못하는
과부요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자기의 젊은 두 과부 며느리들이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려는 모습을 보고
그녀들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파했습니다
(룻 1:13).
시편 69편 짧은 묵상
까닭 없이 주님의 종을 미워하며 비방하는 사람들의 평안은
자신들에게 덫이 될 수도 있습니다(시 69:4, 14, 19, 20, 22).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의 "비방"은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게 할 수 있지만
나를 무조건 적으로 나를 사랑하사 나를 반기시는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반드시 건져주실 것입니다
(시 69:4, 13, 14, 20).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의지한 나의 미련함을 하나님 앞에 쏟아내는 것이
나의 미련함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시편 69:5).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자신의 덤불과 같은 마음을 하나님 앞에 토하지만(시142:2)
사람을 의지하는 자는 그 사람 앞에서 불평과 원망을 쏟아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나의 죄"를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주님 앞에서는 결코 숨길 수가 없습니다(시 69:5).
나의 죄가 주님 앞에서 숨김이 없듯이,
주님의 얼굴이 나에게 숨김이 없습니다(시 69:5, 17).
우리의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찾는 우리를 비방하고 조롱하며 욕하고
수치를 줄 뿐만 아니라 주님까지도 비방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더욱더 주님의 교회를 위한 열심히 불타올라야 합니다(시 69:6-12).
극심한 고통 중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식구(친구)에게도
"낯선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시 69:8).
그 때 우리는 극심한 외로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난 중에서 두 가지를 좀 뼈저리게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 하나님께서는 나를 반기신다(시 69:13).
고통 중에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반겨주신다는 사실에 사랑을 느끼므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내 미련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므로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게 됩니다.
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결국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므로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내는 것으로 표출이 됩니다(시69:6, 9, 13-14, 16-17; 고후11:2).
내가 나의 형제에게도 객이 되고 낯선 사람이 되었을 때
나의 간구는 '주님,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해주세요'입니다(시 69:8, 18).
극심한 외로움은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나를 반기시며 많은 사랑과 많은 긍휼과 구원의 진리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찬양을 드립니다
(시 69편, 특히 13, 16, 30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리스도인은 평탄할 때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울 때에도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합니다(시 69:30-31; 행 13:22).
시험과 시련을 통한 깨달음?
여러 가지 시험과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되
내 믿음이 부족하여
하나님께 두 마음을 품고
(한 마음으로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마음으로는 의심이 듬)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약 1:2-8).
시험과 시련을 통한 훈련?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과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되
특히 지혜가 부족한 것을 깨닫게 되므로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지혜를 구하는 훈련을 받는 것 같습니다
(약 1:2-5).
식구에게 오해를 받을 때 ...
다윗의 큰 형 엘리압은 막내 동생 다윗을 오해했습니다.
분명히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 왕을 따라 싸움에 나간 세 명의 형인 엘리압과 아비나답과 삼마를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을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지고 가려고 진영에 온 것인데,
엘리압은 다윗이 "전쟁을 구경하러 왔"다고 오해를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엘리압은 자기 동생 다윗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
그 때 다윗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삼상 17:13, 17-20, 28-29).
사랑하는 가족 형제/자매에게 '오해'를 받는다는 것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오해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다 '이해'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신행일치”
믿음과 행함이 일치해야 ... (죤 칼빈)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믿음으로 선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은 믿음 ... (약 2:26)
실족함이 없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는 의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습니다
(시 38:31).
심한 궁핍함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
우리가 심한 궁핍함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삿 6:6-8).
어쩌면 그 말씀의 핵심은
-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 "두려워하지 말라",
-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했다(10절).
"심한 전염병"이 위험하지만 ...
"심한 전염병"이 위험하지만(시91:3)
그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6절) 가운데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단의 "올무"를
매우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3절).
사단은 마음이 단순한 신자들을
특히 거짓말(사32:7; 요8:44)로 미혹하고 "충동하여"(대상21:1)
올무에 빠지게 합니다(시140:5; 딤전3:7; 딤후2:26).
그 목적은 우리 신자들의 "파멸"입니다(시91:6).
십일조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장 8-10절).
- 십일조와 헌금을 하나님께 받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 십일조를 하나님께 받치지 않는 것은 경제적(finance) 문제이기보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성경 말라기 3장 10절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기(못하기) 때문입니다.
쓴 맛을 본 후라도 하나님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
룻기에서 나오는 나오미, 그녀의 이름 뜻은 "나의 즐거움"...
그러나 그녀는 모압 땅에서 쓴 맛("마라"의 뜻)(1:20)을 보았다.
그녀처럼 쓴 맛을 봐서라도 하나님께서 돌아올 수가 있다면 좋으려만...
나오미는 다 잃었지만(남편과 두 아들들, 오르바, 풍족함)
현숙한 여인(3:11)이자 그녀를 사랑하는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 룻을 얻었다(4:15). 그리고 그녀를 통하여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를 얻었고
그 둘을 통해서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품에 품게 되었다(16절).
그리고 오벳을 통하여 다윗, 그리고 다윗을 통하여 메시야 예수님이 오셔서
나오미의 며느리 룻은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마1:5).
결국 모압 땅에서 쓴 맛을 본 나오미는 유다 땅에 돌아와서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
쓴 맛을 본 후라도 하나님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