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수 1:9).
“하나님의 법”, “믿음의 법”, “생명의 성령의 법”이란?
"하나님의 법"(롬 7:22, 25) [vs. "죄의 법"(23, 25절)]
"믿음의 법"(3:27) [vs. 죄가 우리를 주장하는 "법"(6:14, 15)],
"생명의 성령의 법"(8:2) [vs. "죄와 사망의 법"(2절)].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세 가지 법을 묵상할 때
저는 이것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성부 "하나님의 법", 성자 예수님의 "믿음의 법" 그리고 "성령의 법".
그리고 저는 이 성삼위일체의 법을
로마서의 핵심 주제인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즉,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1:17)는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저는 먼저 구원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구원을 완성시키시고,
성령 하나님은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성자가 완성시킨 구원사역을 우리들에게 적용시키십니다
(엡 1:3-14 참조).
그런 후 저는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법"과 "믿음의 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법"은 구원의 사랑,
성자 예수님의 "믿음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의 진리,
"생명의 성령의 법"은 성부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과 성자 예수님의 구원의 진리를
우리들에게 적용시키시는 법으로서 예수님의 사랑의 이중계명의 진리를 순종케 하시는
구원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
[로마서 15장 16-21절]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직분”을 맡기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딤전 1:12).
그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직분”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혜”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롬 15:15).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로서(딤전 1:13)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던 자인데(고전 15:9)
성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으니(롬 1:5; 11:13)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고전 15:10).
사도 바울은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롬 15:15-16).
즉, 바울이 말하고 있는 성부 하나님의 은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의 몸된 교회를 박해하던 박해자요,
그것은 곧 예수님을 박해하던 자신이(행 9:4, 5)
성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롬 15:15-16).
바울은 성자 예수님의 일꾼(a minister)으로서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ministering)을 감당하였는데
여기서 그의 “제사장 직분”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므로
그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16절).
여기서 사도 바울인 이방인들에게 전한 “하나님의 복음”이란(1:1)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서(2절)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3-4절).
성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이 하나님의 복음을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신 목적은
그 이방인들로 하여금 성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롬 15:16).
여기서 사도 바울은 성부 하나님의 은혜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므로
그들을 성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들로 드린다는 것은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되(1:5)
성부 하나님의 복음이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주님께 순종하는(5; 15:18)절), 즉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가는(15:16)
성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실 만한 “거룩한 산 제물”(12:1)로 드리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시사
그 이방인들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셨습니다(15:1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되(17절)
오직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감히 말하지 않았습니다(18절).
그 성자 예수님의 역사의 결과로 이방인들이 순종하게 된 것은(18절)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19절).
여기서 “성령의 능력”이란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17절)을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18-19절)
그 이방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순종케 하신 것입니다(1:5; 15:18).
결국 사도 바울은 성부 하나님의 은혜로
성자 예수님의 일꾼이 되어 제사장 직분을 하되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므로
그들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도 성부 하나님의 은혜로 성자 예수님의 일꾼이 되어 제사장 직분을 하되(벧전 2:9)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나가 전하므로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우리 복음이 그들에게 말로만 이르지 않고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되어(살전 1:5)
그들이 예수님을 믿어 순종하여(롬 1:5)
그들이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되(살전2:13)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들이 되길 기원합니다(1:6).
[2019년 2월 10일, 원로 목사님의 주일 설교를 들은 후 요약한 것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과정
궁핍한데서 더 궁핍한 상황으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과 은혜가 풍부하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주님 밖에 없음을 가르쳐 주십니다(찬송가 342장).
문제 가운데서 더 큰 문제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케 만드십니다.
기도케 만드시되 죽은 자로 살리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체험케 하십니다(왕상17:22).
역경 가운데서 더 큰 역경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우리로 알게 하십니다 (신8:3).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고 계십니다 (왕상17:24).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24절).
하나님의 사랑은 ...
하나님의 사랑은 ...
보내시는 사랑(요3:34)
주시는 사랑(16절)
함께 하시는 사랑 … 입니다
(마 1:23).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모든 영적인 문제의 뿌리입니다(말라기 1:2).
예수 십자가 대속 죽으심을 통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마음은
다양한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Iain M. Duguid & Matthew P. Harmon의 "Zephaniah, Haggai, Malachi"
REFORMED EXPOSITORY COMMENTARY"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은 ...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주님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에 순종하므로
주님 곁에 안전히 삽니다
(신 33:3, 12).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자.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고
주님 안에서 즐기며 누리자(전 3:13, 5:19).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지 못하고서는
(시 34:8, 롬 8:28)
나를 해하려고 했던 형제/자매들을
결코 선하게 대할 수가 없습니다
(창 50:20).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자녀 양육함에 있어서 시험과 헤어짐과 죽음과 같은 고통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자 100세 얻은 이삭을 받치라고 명하셨습니다(창 22).
이삭의 하나님은
이삭과 그의 아들 야곱으로 하여금 20년 동안이나 헤어져서 떨어져 살게 하셨습니다(31:38).
야곱의 하나님은
그가 자녀들 중에 제일 사랑하는 요셉이 17살 때 죽은 줄만 알게하셨지만(17:2)
22년 후에 요셉이 39살 때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45:26).
그러신 후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하여 야곱과 그의 자녀들과 모든 후손들을 가뭄에서 건져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후손을 이 땅에 보존해 주셨습니다(5, 7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 나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
(시 33:4).
하나님의 시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험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셔서
그들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두게 하시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셨는데(출 16:4),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말라 물을 찾으면서 원망하면서 모세와 다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17:2, 7).
하나님의 완전한 때가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이 돈이나 의복이나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종을 받을 때냐?"
(왕하 5:26, 현대인의 성경)
엘리사 선지자가 그의 사환에게 한 말입니다.
지금 우리 목사님들이 욕심(탐욕) 속에서
교회 새신자 분들에게 돈을 받을 때인가요?
엘리사 선지자가 전에 아들을 살려 준 그 수넴 여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7년의 기간 동안 그녀의 가족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있다가 돌아와
자기 집과 땅을 되찾기 위해 이스라엘 왕에게 호소하러 갔을 "바로 그때"
왕은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 게하시에게서 엘리사가 행한 기적에 대해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게하시가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살렸던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땅을 되찾게 해 달라고 왕에게 호소했습니다
(8:1-5).
하나님의 완전한 때가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우선순위와 우리의 우선순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의 우선순위와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을 향하신 하나님의 우선순위는 아시아나 비두니아가 아니였습니다.
하나님의 우선순위를 바로 마게도냐였습니다(행 16:6-7).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우선순위를 몰랐던 바울과 그의 일행은 선교지를 찾아 열심히 나섰지만 아시아나 비두니아 모두 성령님께서 막으셨던(허락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님께서 바울과 그의 일행을 아시아니 비두니아로 가는 것을 막으셨는지는
성경에 나와있지 않기에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은 성령님께서 막으셨을 때
자기의 뜻을 관철하려 하지 않고 그 성령님의 막으심에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을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정지케 하실 때 우리는 브레이크(Break)를 잡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령님께서 “멈추라”하면 우리는 “예”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왠지 우리는 마치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너무 깊게 밟아 속도를 너무 빨리내느라 브레이크 페달을 갑자기 잘 밟지 못할 때가 있는 것처럼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라 성령님께서 ‘멈추라’고 막을 실 때에 우리의 영적 브레이크 패달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멈춰야 할 때는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너무나 앞을 보고 달리기에만 바빠서 멈춰야 할 때를 분멸 못하고 무심코 달려서는 아니됩니다.
성령님이 달리라 하면 달리지만 성령님께서 멈추라고 하시면 멈춰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영적 민감함(spiritual sensitivity)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항상 민감해 있으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령님은 주님의 뜻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저 흐지부지하게 주님의 뜻을 알려주시는 성령님이 아니십니다.
흑백이 분명하게(clearly) 하시며,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령님의 막으심(허락지 않으심)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영적으로 둔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인드(mind)를 날카롭게(sharpened)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12장 2절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2절).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하는데 치명적인 것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하는데 치명적인 것은
바로 우리의 교만함과 공의[나의 의(my righteousness)]입니다
(신 8:14, 9:4-6).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싶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환난을 통해서도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싶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게 하시는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싶습니다
(행 11:19-23).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로 만들고 있는 것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들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 충돌을 일으켰을 때
주로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믿는데로 살지 않는다.
지금 이 시기에 이 과거의 글이 페북에 뜬 것,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쁘신 뜻 가운데서
지금 나는 이 새벽에 이 글을 접한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이 글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이 무엇일까?
- 하나님의 말씀은 내 안에 분수에 넘치는 욕심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 그 순간 내 양심은 내 욕심대로 행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미 나는 내 욕심 따라 행하기로 마음에 결심을 하고 그리 행한다.
- 결국 나는 내가 믿고 말(설교)한데로 살지 못한 것이다. 나의 위선이 들어난 것이다.
- 그런데 나는 또 다시 성도님들 앞에 서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라고 내 설교를 하고 있다.
- 내 입술에는 '하나님의 은혜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내 공로' 의식으로 가득차 있다.
- 지금 나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지금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결코 아닌 사람인 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것 뿐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 막으시고 여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으시고 하나님께서 가길 원하시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행 16:6-10).
- 돌려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돌려 '광야'로 인도하십니다(출 13:17-18).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광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케 하시고자 하실 뿐만 아니라(14-15장) 우리를 낮추시며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사는 줄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신 8:2-3).
- 앞서 인도하시다가 머물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앞서 우리를 인도하시다가 결국에 가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앞에 머물게 하십니다(마 2: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르다처럼 분주하게 주님을 위하여 일을 할 때에 우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시사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눅 10:39-40).
- 마귀에게 유혹을 받도록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유혹(tempt)하지 않으십니다(약1:13).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test)하십니다(예: 창 22장). 시험하시되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셔서 마귀에게 유혹을 받도록 허락하십니다(God's permissive will)(마 4:1).
그 말은 하나님께서 마귀로 하여금 우리를 유혹하신다는 말이 아니라[우리가 유혹을 받는 것은 우리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약 1:14)]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것도 허락하신다는 말입니다[마치 사탄이 욥의 자녀들과 물질과 욥을 치도록 허락하신 것처럼 말입니다(욥 1:12, 2:6)].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마귀의 유혹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마 4:4, 7, 10, 참고: 신 8:3)].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요 6:29).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40절).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자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자는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러한 자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습니다(막8:33-35).
하나님의 일이란?
우리는 우선순위를 분명히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요 6:29).
우리가 우선순위 해야 할 예수님을 믿는 것,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의 진보입니다(빌 1:25).
하나님의 입장에서의 먼저?
우리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먼저 예배를 드려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먼저 우리들끼리 확목하고
그 다음에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으신 것은 아닌지요 ... (마 5:24)
하나님의 자녀들, 증인들, 군사들은 …
하나님이 자녀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해야 합니다(딤후 2: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죽음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 15:10)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수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증인들은 주님께 충성되야 합니다(딤후 2:2).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성되야 합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고전 4:2).
하나님의 군사들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딤후 2:3).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들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1:8).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빌 1:29).
하나님의 군사들은 모집한 대장되신 예수님만을 기쁘게 하려 합니다(딤후 2:4).
우리는 우리 생활에 얽매여서는 아니됩니다(4절).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들로 우리의 최고의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시43:4).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사
창세 전에 선택한 사람들을
부르시사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자 부르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습니다(롬8:30)
[(예정) (엡1:4-5; 롬8:29)].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자 부르신 사람들을
먼저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 즉 중생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중생의 필연적 결과로 뒤 따르는 것은 회심이요
이 회심에는 회개적 요소와 신앙적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엡 2:8-9)
(인터넷 참고).
하나님의 친밀하심과 가르치심이 ...
하나님의 친밀하심과 가르치심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시 25:12, 14).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를
지도하시고 가르치십니다(9절).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용할 양식을 먹고
이 땅에서 주어진 일에 수고하므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전 5:18).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자
하나님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십니다(시 5:6).
하나님이 임하심은 ...
하나님이 임하심은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출 20:20).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왕상 8:56).
"하늘에 쌓아 둔 소망"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은
"복음의 소망"이요 "영광의 소망"이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골 1:5, 23, 27).
한 뼘 길이만한 나의 날
"한 뼘 길이만"한 "나의 날",
"주 앞에는 일순간에 불과"한 인생,
"인간이 잘난 척하지만 한 번의 입김에 지나지 않습니다"(시 39:5, 현대인의 성경).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합니다(6절).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입니다(11절).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습니다(7절).
한 사람이 천명을 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기에
우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능하게 하시므로
우리 각 사람이 천명에게 주님의 선한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참고: 수 23:10).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저는 성경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안에 있는
약 120,000명의 니느웨 백성들(앗수르 사람들)을 아끼셨다기 보다
하나님의 종 요나 선지자 한 사람을 더 아끼시사
요나 한 사람을 빚으셔서
결국에서 하나님의 미션(명령)에 순종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손길을 엿보았습니다.
그런제 지난 주에 저는 사시가 6-8장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 사람들의 손 안에서 건져내심에 있어서
부르시고 세우시사 구원의 도구로 쓰시고자 하신
한 주님의 종 사사 기드온의 삶 속에 역사하셔서
두려움에서 구원(승리)의 확신을 주시사
결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데로 기드온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결국 요나나 기드온이
그들의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교훈은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삶
고통 중에 있는 형제(자매)에게
사랑과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가
그(녀)와 함께 하므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싶습니다
(조금 전 수요기도회 때 원로 목사님의 요한복음 1장 14절 중심으로 설교 말씀을 들은 후).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에 ...
함께 기뻐하며, 함께 슬퍼하며,
함께 무거운 짐을 져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출 18:9, 18-22; 민 11:14, 16-17; 롬 12:15).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나쁜 일들이나
우리에게 행해진 나쁜 일들을 통해서도
결국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롬 8:28).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한 죄 뿐만 아니라
죄인인 우리를 통해서도
결국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28절).
항상 족하게 여기므로
우리가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므로
다른 신(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젊어서 취한 아내(남편)를 항상 족하게 여기므로(잠 5:18-19)
다른 여자(남자)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6:25).
해산의 수고?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어
그/녀의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우리는 그/녀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갈 4:19).
해산의 수고에는 고통이 따르듯이
한 영혼을 전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있습니다
(마 16:24; 막 8:34; 눅 9:23).
행음하고 남편을 떠난 여자
행음하고 남편을 떠난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녀를 다시 자기 집으로 데려오고자 하는 남자 ...
(삿 19:2-3)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
하나님 앞에서 들춰지는 내 많은 허물을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피흘려 죽으심으로
다 덮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자
(잠 17:9).
허영심에 가득찬 사람
교회 안에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이 겉모습뿐인 영화를
추구하는 사람(허영심에 가득찬 사람)이 있다면
교회 안에서는 불평과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 빌 2:3).
헛되이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면서(시 78:22)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좌하며 배반하며 시험하되
탐욕대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자들(17-18절),
자신들의 욕심을 버리지 않고(30절)
여전히 범죄할 때에(32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또한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십니다(33절).
헛된 것을 멀리해야
우리는 멀리해야 할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잠 30:8).
우리는 헛된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8절).
우리는
헛된 세상과(전 1:1-11)
헛된 지혜와(12-18절)
헛된 쾌락(2:1-11)을 멀리해야 합니다.
헤롯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에 찔림은 있으나 그 양심대로 실행하지는 못하면서(막6:20)
사람들 앞에서 맹세한 것은 근심 속에서라도 지키는 자 (26절) ...
(하나님의 말씀은 실행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말은 실행하는 자)
헤어짐 후에 새로운 만남을 …
사랑하는 어머니(혹은 아버지)와 사별 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자
사랑하는 배우자를 보내주시기도 하십니다
(창 24:67).
헤어짐 후에 새로운 만남이 기대가 됩니다.
현재의 고난과 장차의 영광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상속자이기에)(롬 8:17)
"현재의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18절).
고난을 받되 우리는 확실하고 분명한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받을 때에도
인내하며 견디며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그 소망이란 바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입니다(18절).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은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가
될 수가 없습니다(18절).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은 현재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고후4:17)과
족히 비교가 안됩니다(롬8:18).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장차 나타날 영광은 무엇입니까?
"우리 몸의 속량"입니다(23절).
예수님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마지막 나팔이 울려퍼지는 날(고전 15:52),
우리의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변화될 것입니다(52절).
우리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제와 같이
변화될 것입니다(빌 3:21).
이 외에도 장차 나타날 내세의 영광은
우리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맛대고 볼 것이며(고전13:12; 계시록 22:4)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할 것입니다(계시록 22:5).
우리는 영원히 빛나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5절).
그러므로 우리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의 확신을 가지고
고난 중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견디는 가운데
묵묵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원로 목사님의 로마서 8장 18절 말씀 중심으로 설교하신 내용을 요약한 것임]
형제/자매 사이의 이간질
나와 우리가 다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더 가까워지면 질수록
나를 시기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있고
그러므로
나를 시기하는 사람은
나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이간질하고자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에 대하여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형제 사이의 이간질입니다
(잠 6:19).
혹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
혹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너희가 내 성전에 와서 헛되이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누군가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
'혼자'가 "함께" 보다 나을 때가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혼자' 나느웨로 가기보다
불순종의 길을 선택하여
불신자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했습니다
(욘 1:2-3).
주님과 함께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불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화로다!
누가 실족하면 내가 애타야 하는데,
누가 죄를 지으면 내 마음도 아파야 하는데,
나 자신이 실족하고 죄를 범해도
애타지 않고 마음도 아프지 않으니
이 어찌하랴!
(고후 11:29)
화평케 하는 그리스도인은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화평케 하는 그리스도인은 ...
-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 화목합니다(고후5:20).
그/녀는 그/녀의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추구합니다(2:14).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녀의 마음을 주장합니다(골3:15).
그/녀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자기의 구할 것을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아뢰므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있습니다(빌4:6-7).
-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녀는 가능한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냅니다(롬12:18, 현대인의 성경).
그/녀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신실하게 감당합니다(고후5:18).
그/녀는 화평의 복음을 전합니다(행10:36).
- 공동체의 화목을 추구합니다.
그/녀는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나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식구들과 화목하게 지냅니다.
그/녀는 화평의 일에 힘씁니다(롬14:19).
그/녀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는데 헌신합니다(빌2:2; 행2:44-47; 4:32-35).
[Iain M. Duguid, " Hero of Heroes"란 책을 읽으면서]
환난 날에
환난 날에 우리에게 환난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시 22:11).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성도는 어떻게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사 50:10).
우리는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많이 배워 깨달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 (4절 상반절) (박윤선)].
우리는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배워 깨달은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4절 하반절) (박윤선)].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시며(8절)
우리를 도우시고 계심을 믿고(7, 9절)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새찬송가 336장, 1절).
환난과 핍박을 만났을 때
환난과 핍박을 만났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
- 하나님을 알아가므로 강하여 용맹을 떨쳐야 합니다(단 11:32).
- 하나님의 지혜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쳐야 합니다(33절).
-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35절).
회개하는 성도님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목사
니느웨 백성들은
주님의 종인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듣고 회개를 하였는데(요나 3장)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하나님의 종 요나는 진정으로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4장).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인 나는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고 있는데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은 회개를 하고 있다면?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은 ...
지난 날처럼 다시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은
황폐하여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 우리의 삶에
즐거워하는 소리와 기뻐하는 소리와
신랑되신 예수님의 소리와 신부된 교회의 소리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감사 헌신의 예배를 드리는 소리를
다시 들리게 하실 것입니다
(렘 33:10-11).
회복이란 ...
회복이란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바로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겔 39:25, 27, 28).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케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하는데 ...
고난(환난) 중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굳건하게 하고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살전 2:14; 3:2-3).
흥미로운 관찰
비슷한 말씀:
-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삿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2절)
전쟁 승리!
-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20: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18절)
전쟁 패배
다른점:
- (1) 은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인 반면에 (2)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과의 전쟁있었습니다.
- (1) 전쟁에서는 승리한 반면에 (2) 전쟁에서는 패배를 했습니다.
- (1)은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고 약속하셨지만 (2)에는 그런 약속의 말씀이 없습니다.
흥미로운 전리품 분배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아라는 하나님의 말씀(민 31:2)에 모세는 순종하여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1,000 씩, 이스라엘 백만 명중 12,000명을 전쟁에 보냈습니다(4, 5절).
그리고 그 12,000명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를 다 죽였고(7절)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습니다(8절).
흥미로운 점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미디안 사람들이 거주하던 성읍들에서
"탈취한 것, 노략한 것, 사람과 짐승"(11절)을 분배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얻은 물건을 반분하여
그 절반은 전쟁에 나갔던 12,000명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은 전쟁에 나가지 않은 회중 880,00명[백만 명(5절)에서
12,000명을 빼면 880,000명임]에게 주라고 명하셨다는 것입니다(27절).
왜 하나님께서는 전리품을 그리 반분하라고 명하신 것일까요?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군인 12,000명에게 전리품 50%, 회중 880,000명에게
나머지 50%을 주라고 명하셨을까요?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은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때의 1/500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하셨는데 비해 (28절)
전쟁에 나가지 않았던 나머지 회중에게는 1/50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막을 맡은 레위인에에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30절).
이정도로 하나님은 군인들을 지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 공화당(민주당 말고)에서
미국 군인들을 지지하는 것이 성경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흥미롭습니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나은데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인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에 불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나중에는
아말렉 사람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삼상 15:2, 9, 18, 22-23; 삼하 1:8-10).
흥미롭습니다.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결과
아말렉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
희망을 잃고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
희망을 잃고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하며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행하신 모든 일을 생각해 봐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우리는
하나님의 신속한 기도 응답과
주님의 사랑의 말씀과
주님의 건지심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주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길
간구해야 합니다
(시 143:4-11).
희생의 기쁨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며 사모하는(빌 1:8)
형제, 자매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25절)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2:17).
하나님을 섬겨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시사
그를 통하여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신 후
그들이 시내산에서 '나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출 3:1-12)
건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경배를 했습니다(32:4).
하나님을 섬겨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 고센 땅에서 번식력이 강한 황소를
다산과 풍요를 주는 신으로 섬겼던 것처럼(인터넷)
시내산 밑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 숭배를 한 것입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할 때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살 소망까지 끊어져
마치 우리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줄 압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후 1:8-9).
ㅠㅠ
주님의 계명을 행하면서 가르쳐야 하는데 ... ㅠㅠ
(마 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