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죄를 은밀히, 하나님은 지혜를 은밀히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은밀히" 죄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은밀한 죄를 책망하시사

우리에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십니다(시 51: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밀히 가르치시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두 가지라 생각합니다:

 

  1. 주님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신다는 것(6절)
  2.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는 것(17절).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도 익숙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에만 익숙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도 익숙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익숙해야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되야 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의뢰하는 사람들이 되야 합니다(시 22:4).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를 귀울이시고(시77:1)

반드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출 22:2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입니다(시3:4, 86:7, 120: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고전15:57).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8장 12-17절 말씀 묵상]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8장 14절을 보십시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여기서 “하나님의 영”이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육신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4, 5절).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는

우리는 “영을 따르는 자”들, 즉 성령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4, 5절). 

즉, 우리는 성령님을 따르는 자들이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인도자이십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 주님은(시23:1) 우리의 성령님이시요

성령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십니다(2절).

또한 성령님은 우리가 사망의 음친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4절).

인도하시되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를 감동시키시므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바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행 16:6),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지만 “에수의 영”(성령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였습니다(7절).

그렇지만 성령님은 바울은 마게도냐로, 유럽으로 인도하셨습니다(9-12절).

이렇게 바울을 인도하신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롬8:14).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의의 길로, 천국으로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더 이상 종의 영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면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성령님을 따라 그분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인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가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님께서 그리하셨습니다(막14:36).

아빠 아버지를 믿고 신뢰하며 의지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셨습니다(36절). 

우리도 “아빠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또한 “상속자”입니다(롬8:17).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입니다(17절).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이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17절).

 

[원로 목사님의 금요기도회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어제 한국 KBS 저녁 9시 뉴스를 보면서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 목도 00 교회에서 담임 목사 지지파와 반대파와 분쟁 가운데

어느 한 파가 쇠사슬로 잠긴 예배당 문을 여러 사람들이

긴 통나무 같은 것으로 부스러 트리려고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를 행하는 우리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습니다(시 119:6).

우리는 판단력을 상실했습니다(7절).  지금 우리는 정직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7절).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불의를 버려야 합니다(3절).

교회 안에서 모든 악은 제거되야 합니다.

신부된 교회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엡 5:27).

 

 

우리들의 존재 가치는 ...

 

 

무가치했던 우리들의 존재 가치는

우리의 행함의 열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존귀하신 예수님의 행하심의 열매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주님만 자랑할 수 밖에 없어야 합니다(고전 1:31, 3:21).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우리에게 분노하여 우리를 비웃으며,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욕하며,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치고 우리를 요란하게 하려고

악한 의도로 꾀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 악한 의도를 눈치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꾀함을 패하실 것입니다(느 4:1, 4, 8, 15).

우리를 막아 범죄치 않게 하시는 하나님

 

 

온전한 마음으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그의 누이인 줄 알고

사람을 보내어 데려왔지만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한 그랄 왕 아비멜렉을

하나님께서 막아 그로하여금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게 하셨습니다(창 20:1-6).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5절) 행하는 자를

막으시사 하나님께 범죄치 않게 하십니다.

 

 

우리를 지극히 미약하게 만드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하던 애굽 나라를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겔 29:14, 15).  그 이유는 2가지로 요약 할 수가 있습니다:

  1. 그 이유는 애굽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애굽이 교만하였기 때문에 그 나라를 지극히 미약하게 하셨습니다(29:3, 9; 30:6, 18; 31:10, 14).
  2.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고자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시므로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하게 하셨으며 또한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을 바라보지 아니하게 하시므로 "그 죄악을 기억되지 아니하"게 하셨습니다(29:16).

 

주시는 교훈: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나 사람을 지극히 미약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그 것이나 그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 의지케 만드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하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기억지 아니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기억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자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던 것이나 사람을 지극히 미약하게 만드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만할 때 우리를 지극히 미약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는 낮아지게 하십니다(30:6).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히 하나님 만 의지하게 만드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독생자 예수님이 상함을 받으시길 원하실 정도로

우리의 죄악을 사하여 주시길 원하셨다는 것입니다(사 53:10).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을 기뻐하실 정도로

우리의 죄악을 사하여 주시고 구원해 주시길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10, 12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의 못박혀 죽으시는 것을 만족히 여기실 정도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길 원하셨고 기뻐하셨으며 만족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11절).

 

 

우리만 모르고 있으니 …

 

불신자들조차도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우리 자신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으니 ... (렘 40:3)

 

 

우리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명령을 상기시켜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요나에게

불신자 선장을 통하여서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1:2),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1:6)]. 

우리 하나님은 불신자(들)를 통해서라도 우리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명령(말씀)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합니다(고후 4:7).

 

 

우리에겐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도 소망이 있습니다(스 10:2).

주님의 교훈을 따르며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3절)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주님의 뜻대로 행하되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 즉 끊어 버려야 할 것들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11, 12절).

 

 

우리의 거룩은 ...

 

우리의 거룩은 평강을 이루는데 필요한 조건입니다(빌 4:6-9)(주석).

 

 

우리의 교만함과 결과?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교만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없는

죄악된 일을 우리 가운데서 행하면서도

우리는 오히려 교만하여 지금 우리가 범하고 있는 죄악을

통한히 여기고 있지도 않습니다(고전 5:1-2).

우리의 더러운 몸과 마음을 드리는 것?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더러운 몸과 마음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요,

하나님의 예배를 경멸히 여기는 것이요,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것입니다(말 1:6-8).

 

 

 

우리의 마음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여러번 시험하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종 갈렙의 마음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민 14:11, 22-24).

 

 

우리의 마음을 돌리게 만드는 사람들?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데서 우리 마음을 돌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게 만드는

하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불신자들과 통혼하지 말고

그들도 우리와 통혼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왕상 11:1-10).

우리의 마음을 만족해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여 우리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으로 우리의 마음을

흡족게 하시며 만족해 하실 것입니다

(렘 31:13-14).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만족케 하는 사랑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의 어떠한 사랑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주님의 영원한 사랑으로만이 온전히 만족 할 수 있습니다(시 90:14).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전 3:11).

영원을 사모하는 우리의 마음은 오직 주님의 영원한 사랑으로만이 만족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

 

 

우리 스스로에게서 난 만족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금 불만족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납니다.

(고후 3:5)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판에 새기고 지켜 행하는 지혜로운 자는

그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의뢰(신뢰)합니다(잠 3:5-6). 

여기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말은 “독점적인 신뢰”를 말합니다. 

이런 의뢰심을 가리켜 “동심의 신뢰(Childish confidence)”라고 합니다(박윤선). 

마치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믿되 단순성 있는 신뢰심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바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박윤선). 

이러한 동심의 신뢰로 하나님을 의뢰하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면 할 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의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련함

 

우리 사람들의 미련함은

우리가 잘못해 놓고

그 결과로 고통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잠 19:3).

 

 

우리의 믿음을 위해

 

항상 우리를 위하시는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위하여

우리의 기도를 더디 응답하시기도 하십니다

(요 11:6, 15).

우리의 복을 저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저주를 내려 우리의 복을 저주하실 것입니다(말 2:2).

 

 

우리의 불순종함도 사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요나를 통해서도 능력을 나타내시사

불신자 선장과 사공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시며(욘1:14),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하시며(14절)

또한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게 하셨습니다(16절).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순종함도 사용하셔서 영혼을 구원케 하십니다!

 

 

우리의 사랑은 …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습니다 (호 6:4).

 

 

우리의 생각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좀 알 수가 있습니다.

만일 지금 내가 이런 저런 걱정과 염려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지,

또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들을 하고 있던지 하면

지금 나의 영적 상태는 연약함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참고: 시 77:7-10).

우리의 슬픔은 소망이 있는 슬픔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는(죽은) 분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충분히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는 우리들의 슬픔은

소망이 있는 슬픔입니다.

그 소망이란 바로 예수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데리고 오신다는 소망입니다(살전 4:13-14).

 

 

우리의 신뢰의 대상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할 만한 근거가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근거는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시 62:1, 5).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도 ...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고(행 8:1)

헤롯 왕은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였고 사도 베드로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12:2, 4).

더 강해진 대적자들: 사울에서 헤롯 왕으로.

더 중요한 사람들(?): 스데반에서 야고보(와 베드로)로.

스데반이 죽음으로 시작된 "큰 박해"가 더욱더 커진 것 같습니다(8:1).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도 점점 더 큰 어려움과 박해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들은 점점 더 강한 사람들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더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이

대적자들로 인해 생명을 잃던지

더 큰 박해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선 …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선

물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해야 하지만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우리의 행실을 삼가해야 합니다(잠 19:16).

 

 

우리의 우선순위, 하나님의 우선순위

 

 

우리는 하나님께 병 낫기를 간구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길 원하십니다

(눅 5:17-20).

 

 

 

우리의 자랑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의 은혜로

특별히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고후 1:12).

 

 

우리의 죄가 많을 때

 

 

우리의 죄가 많을 때

우리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우리의 원수들이 형통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곤고해집니다.

(애 1:5)

우리의 칭찬 기준은 매우 낮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칭찬 기준은 매우 낮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는 사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죄인들도 이렇게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꾸어 주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은혜도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는 자를 칭찬하십니다(눅 6:32-35).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에게 명령하셨지만 우리는 불행의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신 10:13).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

 

 

뉴스를 통해서 법정 판결이 "사형"이란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그 사형수에 대하여 사형 받을 만한 죄를 범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이 사형을 당하는 것이

자기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마땅히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신성모독 죄와 성전모독 죄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마땅히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사 53:5).

우매한 자들, 지혜로운 자들

 

우매한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헌금을 드립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함부로 입을 열고

급한 마음으로 말을 많이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실수라도 변명하면서 갚지 않습니다.

그들은 걱정이 많고 꿈도 많으며 헛된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말을 적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반드시 갚습니다

(전 5:1-7).

 

 

원망의 눈물

 

 

원망의 눈물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 11:4, 10, 13, 20).

 

 

 

원망의 소리도

 

 

우리의 원망의 소리(기도)도 들으시사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

(출 16 : 9 )

원수까지도 사랑?

 

 

 

요셉은 그의 나이 39살 때

(30살 때 애굽의 총리 + 7년 풍년 + 2년째 흉년 때 형들에게

 자기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고 하나님의 뜻을 말함 = 39살)

자기 형제들에게 자기가 요셉임을 밝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자기를 그들보다 앞서 애굽에 보내셨는지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말하였습니다:

 

"....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

"...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 (창 45:5, 7).

 

그리고 요셉은 그의 나이 110세에 죽을 때까지(50:22)

자그만치 71년 동안

자기를 미워하여 죽이려고까지 했다가 자기를 판 형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기릅니다(21절). 

 

저는 이 요셉의 삶과 죽음을 생각할 때

진정한 요셉이 되시는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나님과 원수된 우리 죄인들(롬 5:8, 10)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계명인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마 5:44).

비록 저의 본능은 나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것이요 복수하는 것이지만

내 안에 거하시사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저)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빌 2:13)

요셉처럼, 예수님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원인은 마음에 탐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서 놀라운 진리를 보던 우리의 눈을 돌이켜

헛된 것을 보는 이유는

주님의 말씀을 향하던 우리 마음이

지금 탐욕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 119:18, 36-37).

 

 

원하는 선택이 없는 선택목록이 나에게 주어진 이유는 …

 

 

나에게 주어진 선택할 목록들이

결코 내가 원하는 선택 또는 옵션(option)이 없다는 것은

나의 죄의 결과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삼하 24:13).

 

 

위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육신의 눈으로 너무나도 잘 보이는 위급한 상황에서

우리 마음의 두려움을(삼상 13:6-7)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의지하므로(히 12:2)

구원(건짐)의 확신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상황의 위급함 속에 휘말려

믿음으로 행하기보다 상황에 이끌림을 받아 행하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 밖에 없습니다(삼상 13:8-14).

위기 상황에서도 감사 기도?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아무리 심히 애써도 소망이 없어보이는

위태로운 위기의 상황에 쳐해있다 할지라도

안심하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들려주신

약속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행 27:9-37).

 

 

 

위기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이라 할찌라도 ...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충분히 위기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이라 할찌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그 위기 같아 보이는 상황은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열왕기상 18장).

 

 

위기는 …

 

 

위기는 하나님의 법도를 배우는 좋은 기회입니다(시 94:12).

우리가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에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이끌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13절).

하나님께서는 위기 가운데 있는 우리를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붙들어 주십니다(18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우리를 위안해주시사 우리의 영혼을 즐겁게 해 주십니다(19절).

위기란?

 

 

우리 삶 속에 위기란 적어도 두 가지를 깨닫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두 가지란 첫째로 우리는 위기를 통해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위기에서 건질 수 없다는 사실과 둘째로 건지심(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욘2:9,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 가운데 이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위기란 진정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위기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건지심)의 사랑을

더 많이, 더 깊게, 더 넓게, 더 높게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엡3:18-19).

 

 

위기를 통하여 우리를 높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위기 가운데서 높이시되(단 2장, 특히 48-49절)

더욱 높이십니다(3장, 특히 30절).

 

 

위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대하는 위로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가 다를 수 있습니다(렘 46:28).

 

 

위로가 견디게 합니다.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위로는

능히 고난을 견디게 합니다(고후 1:3-6).

위로를 거절할 수 밖에 없을 때에

 

 

우리가 슬픔 속에서 통곡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위로를 거절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장래의 구원의 소망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렘 31:15-17).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 주소서

 

내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게 하소서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 주소서(눅 24:45-49).

 

 

위로하는 은사?

 

 

주님께서 나에게 위로하는 은사를 주신 듯 하다(롬 12:8).

 

 

위선과 위선자

 

 

마음으로는 그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친절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위선입니다.

위선자는 상대방을 향하여 악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입술로는 매끄러운 말을 하고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되

자기의 악한 마음을 매우 따뜻한(열렬한) 사랑의 말로 가장합니다(잠 26:23).

위선을 미워하다 보면 그릇된 판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위선자의 위선을 미워하다 보면

그 위선자의 입에서 나오는 옳은 말조차도 듣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아야 하지만

그가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 고 말씀하셨는데도 말입니다(마 23:3).

그 결과 우리는 위선자의 옳치 않은 행동과 옳은 말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판단력의 균형을 잃어서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합니다.

지혜롭게 구분해서 우리는 위선자의 위선은 미워하여 그의 행동은 본받지 말아야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옳은 말은 듣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위선자라 할찌라도 …

 

 

우리의 부모님(목사님, 선생님)이 위선자라 할찌라도

우리 자녀들(성도, 학생)은 그 분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아야 하지만

그 분들이 하시는 올바른 말씀은 행하고 지켜야 합니다(마 23:3).

 

 

위선적인 아첨의 기도와 눈물?

 

 

어떠한 방법으로도 상대방을 향한 자신의 미운 감정은 표출이 될 수 밖에 없을텐데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아첨하는 말로 숨기는 사람은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미운 감정을 눈물까지 흘리면서 숨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위험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위선자의 아첨의 말과 눈물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위선적인 아첨의 기도와 눈물에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참고: 잠 26:25)

유부녀와 동침했습니다.

 

 

유부녀와 동침했습니다.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임신한 아기가 자기의 아기가 아님을

덮으려고 그녀의 남편으로 하여금

그의 아내와 동침하게 하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습니다.

심지어 그로 하여금 술취하게 만들어서라

집으로 가서 자기 아내와 동침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그를 죽이기로 계획까지 하게 되었고 그를 죽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삼하 11:5-27).

 

 

 

 

'유익을 구하는 자' 아니면 "거치는 자"?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되야 합니다.

그 목적은 그들로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고전 10:32-33).

 

 

유익한 근심

 

 

솔로몬 왕은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전 7:3). 

우리 얼굴에는 근심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얼굴에 근심함으로 우리의 마음이 좋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 마음이 좋게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경건한 근심함이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회개케 하므로 말미암아

결국 우리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즉, 경건한 근심이야 말로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은총을 누리게 하기 때문에

우리 얼굴에 근심함은 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 때나 기쁠 때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뜻 가운데서 허락하신 슬픔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할 수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울 때나 웃을 때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를 아름답게 하십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

 

 

"육신에 있는 자들"은(롬8:8)

"육신을 따르는 자"들이며 또한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5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6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7절).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7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8절).

육신대로 살면 받드시 죽습니다(13절).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5절).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5절).

우리는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갈 5:22-23).

 

우리는 성령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육신의 따르고,

육신의 일을 생각하면 불편하고 괴로워해야 하는데 ...

 

[원로 목사님의 수요 설교 요약]

 

 

 

 

 

 

 

 

 

 

 

육신의 일들  vs.  성령님의 일들을 생각?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성령)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롬 8:5).

 

  1. 육신을 따르는 자들이 생각하는 육신의 일들은?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 5:19-21)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마 15:19)

 

  1. 성령님을 따르는 자들이 생각하는 성령님의 일들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23).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육신의 지배를 받았을 때와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전에 우리가 육신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율법에 의해 일어난

죄의 욕망(the sinful passion) 또는 악한 욕망(evil desires)이

우리 안에 작용하여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롬 6:12; 7:5,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이제 우리가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므로

성령님으로 살면서 또한 성령님으로 행합니다(갈 5:25).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롬 7:6).

이제 우리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되었습니다(6:4).

 

우리가 육신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때에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육체을 일을 했습니다(갈5:19).

그 육체의 일이란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19-21절).

 

그러나

이제 우리가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므로(22절, 현대인의 성경)

성령님이 원하시는데로 육체의 욕망과 정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성령님의 열매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22-23절).

 

으뜸되기를 좋아하지 마십시다.

 

 

으뜸되기를 좋아하지 마십시다 (요삼 1:9).

교회 지도자들을 악한 말로 비방하지 마십시다(10절).

교회 형제들을 맞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을 하지 마십시다(10절).

교회 형제들을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들을 금하지 마십시다(10절).

악한 것을 본받지 마십시다(11절).

 

 

 

은혜?

 

 

은혜를 싸구려고 만드는 자의 마음에는

불만족이 있고 그의 입술에는 불평이 있으며

그의 행함에는 불순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진정으로 알아가는 자의 마음에는

감사가 있고 그의 삶에는 수고가 많습니다

(딤전 1:12; 고전 15:10).

 

 

은혜로 여길 수 있어야 할텐데 …

 

의인이 나를 책망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거절하지 말고

오히려

의인의 책망을 은혜로 여겨야 한다

(시 141:5).

은혜를 베풀라고 은혜를 입게 하시는 주님

 

 

지금 주님은 나에게 내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데(마 22:39)

하필이면 그 이웃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습니다(욘 1:2).

그런데 주님께서는 불순종하는 나 같은 죄인에게도

나랑 함께 있는 비신자(들)을 통해 은혜를 입게 하시사

나에게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4-13절).

그 목적은 주님은 나로 하여금 주님을 본받아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에게도 은혜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이 잘 안되기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4:5).

 

(요나 1장 13절 말씀 중심으로 전에 묵상한 "비신자들에게도 은혜를 입는 목사"라는 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중에)

 

 

은혜를 보답하지 않는 자

 

모든 나라들의 눈에 존귀하게 되는 것,

부와 영광이 지극한 것,

결국 히스기야 왕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교만한 그는 하나님께 받은 그 은혜를 보답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대하 32:23-27).

 

우리 마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도 아예 않(못)하는 것 같습니다.

교만한 자는 은혜를 망각하는 자!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소서.

 

 

환관장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는 자기 목숨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환관장이 느부갓네살 왕의 말을 듣고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원한 채식과 물을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단 1:8-16).

 

 

 

은혜의 보답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내가 하나님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시 116:12)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은혜입니다.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와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받는 고난은 은혜입니다(빌 1:29).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7절) 감사해야 합니다(3절).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합니다.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합니다(잠 6:26).

그 악한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24절). 

우리 마음에 그녀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25절).

 

남의 아내를 만지지도 말고 통간하지 말아야 합니다(29절). 

그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입니다.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32절).

상함과 능력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됩니다(33절). 

그녀의 남편은 투기로 분노하여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34절).

 

 

 

음식을 탐하면?

 

음식을 탐하여 먹고 배부르고 살찔 때

우리의 배만 살찌는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살이 쪄서 우리는 교만해 집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 범죄하게 됩니다

(잠 23:3, 6; 신 8:9, 12-14, 17; 31:20, 32:15).

 

 

 

음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를 방종하게 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해야 합니다

(민 15:39, 40).

의논을 해야

 

 

공동체 안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의논을 해야 합니다

(수 22:10ff.)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은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은 ...

 

  1.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는 것이 자신에 복인 줄 알고 있습니다(마5:11).

그러므로 그/녀는 박해를 받을 때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12절).

 

  1.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합니다(계1:9).

그/녀는 예수님처럼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웁니다(히5:8).

 

  1. 고난의 유익을 얻어 누립니다(시119:71).

그/녀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줄 압니다(벧전3:17).

그/녀는 고난을 통하여 그릇 행하던 길에서 돌이켜 주님의 말씀을 지킵니다(시119:67).

 

  1.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사모합니다(롬8:18).

그/녀는 하늘에서의 큰 상을 바라봅니다(마5:12).

그러므로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잠시 이 세상에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히11:25).

 

[Iain M. Duguid, " Hero of Heroes"란 책을 읽으면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그리스도인은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그리스도인은 ...

 

  1. 오직 자신에게 전가된 예수님의 의만 의지합니다(롬3:22).

그/녀는 자기의 의는 마치 더러운 옷과 같다는 것을 인정합니다(사64:6).

 

  1.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합니다(마6:33).

 

  1.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합니다.

그/녀는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올바른 일을 행하면서 올바른 길을 걸어갑니다. 

 

  1. 선한 일을 행합니다(딛3:1).

그/녀는  선한 일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함을 받았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엡2:10).

 

  1.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에서 명하신 말씀에 순종합니다(행5:29).

 

(Iain M. Duguid, "Hero of Heroes"을 읽으면서)

 

 

의인과 악인의 환난?

 

 

의로우신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감찰하시고

의인은 환난에서 건지시지만

악인은 환난에 던지십니다

(잠 21:12).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습니다.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아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도(잠 10:25)

영영히 이동되지 않으며(30절)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룹니다(28절).

 

 

 

의인은 찬양하고 기뻐합니다.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합니다(잠 29:6하).

심지어 악인이 자기의 죄를 들춰내는(엡5:11) 온전하고 정직한 의인을 미워하여(잠29:10)

그 의인에게 올무를 놓는 죄를 범한다 할지라도(6절상)

그 의인은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찬양하며 즐거워합니다(6절하).

그 이유는 그 의인은 하나님께서 범죄하는 악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하시므로(28:10)

자기를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12:13하).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영존하신 주님

 

 

오직 "영존"하신 주님이시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신 주님께서(히 1:11, 12)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 (6절)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2:17)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가 없으신 것은(4:15).

우리의 죄를 속량하려 하기 위한 것이며(2:17)

또한 주님이 몸소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것은

시험 당하는 우리를 능히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18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기에 그리하고 싶지만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이 땅에 좀 더 거하는 것이

더 유익하기에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빌 1:22-25).

 

 

 

이 세상에서의 천국 생활

 

다가오는 세상(천국)에서 충만히 누리는 영원한 생명을

이 세상에서 부분적으로 누리는 삶이란

천국의 계명인 예수님의 이중 계명대로

우리가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마 22:37, 39).

우리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에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어

우리의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요 15:9-12).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비췰 때에

우리 마음 속에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다가오는 세상인 천국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새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1, 4절).

 

이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졌다 할지라도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진 상황에서도

우리가 주님을 소망하(바라보)는 이유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은

과거에도 우리를 큰 사망에서 건지셨고 또한 앞으로도 건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후 1:8-10).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교회에 일어난 이유는 ...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우리 교회에게 일어난 이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였으며

하나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되로 행하지 아니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더 참으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렘 44:22-23).

 

 

 

이 짧은 인생 …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신 주님,

주님에게는 천 년도 지나간 하루 같고 밤의 한 순간에 불과한데,

강건하여 100세를 산다한들 모든 날이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되

이 짧은 인생

결국에는 티끌로 돌아가니

나는 하루하루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만족하며

내 평생 즐겁고 기쁘게 살리라(시편 90편).

이 패역한 세대에

 

 

참으로 패역한 세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행 1:14, 2:40).

 

 

이것들을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것들을 피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 아닌 다른 교훈,

교만한 가운데서 변론과 언쟁,

투기와 분쟁과 다툼과 비방과 악한 생각,

불만족 속에서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과 돈 사랑과 탐심

(딤전 6:3-11).

 

 

이것을 마음에 두고 오늘도 사십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끝을

마음에 두고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전 7:2).

 

이것이 바로 용서의 비결입니다.

 

 

사람이 나에게 행한 악한 일들,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그 와중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롬8:28)

우리는 우리에게 죄를 범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상대방에 우리에게 행한 잘못이나 죄악들만을 생각하면

결코 상대방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잘못이나 죄악들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것들 가운데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는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요셉 (창 50:19-21)]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시 69:29, 현대인의 성경)

우리의 마음은 상하고 근심이 충만할 수 있습니다(20절).

그 때에 우리는 아무리 찾아도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과 위로를 받을 수 없을 수 있습니다(20절).

 

그러한 때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용기를 가지고(32절, 현대인의 성경)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29-30절).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31절).

 

"나는 항상 희망을 가지고 더욱더 주를 찬양하겠습니다"(71:14).

이래서는 아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던 자유인이

"뜻이 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자기 자신을 다시 죄의 종 노릇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아니됩니다

(렘 34:8-11; 롬 6:6).

 

 

이러한 가정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 형제(자매)들이 나를 미워하고 시기합니다(창 37:8, 11).

그들은 나를 속일 음모까지 꾸미고 있습니다(18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 나는 그들로 말미암아 인생의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24절).

나는 그들로 말미암아 강제로 나를 특별히 사랑해 주시는

아버지/어머니에게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3, 28, 36절, 현대인의 성경).

나는 아무 식구도 없는 먼 곳에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39장).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십니다(2, 3, 21, 23절).

나는 이 임마누엘 믿음으로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고후 5:7).

 

 

이러한 겸손함이 있다면

 

모든 성도님들 중에

나 자신이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할 수 있는 겸손함이 내게 있다면

나는 나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측량할 수 없을 것입니다(엡 3:8).

이러한 기도를 죽기 전에 응답해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부하게 해주시고 가난하게 하지 말아주시길

간절히 기도하지

잠언 기자 아굴처럼

우리가 죽기 전에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지 마시고

다만 나에게 매일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우리는 잠언 기자 아굴처럼

죽기 전에 이 기도를 허락해 주시길 간구할 정도로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기도인가? (잠 30:7-9).

 

 

이러한 믿음을 저에게도 주소서

 

임마누엘 믿음,

담대한 믿음,

승리하는 믿음,

한결같은 믿음.

 

(여호수아와 갈렙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고난을

이 세상의 모든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기는 믿음 ...

(히 11:26).

이러한 성품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죄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허물이 없는 성품을 추구하는데 헌신하고 싶습니다.

 

(시편 18:23, Mark D. Futato in "CORNERSTONE BIBLICAL COMMENTARY")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별세 신앙

(죽음의 관점을 가지고 신앙생활)

 

종말 신앙

(주님의 재림의 관점을 가지고 신앙생활)

 

천국 신앙

(영원한 관점을 가지고 신앙생활)

 

 

이러한 자를 동반자로 삼아야 합니다.

 

 

당신 앞에 속이는 자들과 거짓말쟁이들을

두지 마십시오.

신실하고 충성된 사람들을 찾아

당신의 동반자로 삼으십시오

(시 101:6-7).

 

이러한 자에게도 사명을 주시는 주님

 

"어부"였던 사도 베드로(마4:18),

예수님께서는 그를 삼년간 데리고 다니시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고자 '제자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삼년간 제자훈련을 받았던 베드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요20:6-7)과

제자들 가운데 두 번이나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19-29절)

"나는 물고기 잡으로 가노라"하고 다시금 본업인 어부로 돌아갔습니다(21:3).

이러한 사람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나타나셔(14절)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내 양을 치라"(15-17절).

 

 

이러한 자에게도 은혜를 베풀어야 …

 

선을 악으로 갚는 자에게도

은혜를 베푸는 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삼하 2:4-6)

어떻게 우리에게 악을 행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 악을 선으로 바꾸신 목적을 깨닫게 될 때 가능합니다(창 50:20-21).

 

 

이러한 젊은 과부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이러한 젊은 과부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자, 처음 믿음을 저버린 자, 게으름에 익숙한 자,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자.

그녀는 사탄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아야 합니다(딤전 5:11-14).

이러한 젊은 과부는 경계해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정욕적이고 게으르며

마땅히 아니할 쓸데없는 말(헌담)을 하며

남의 일에 끼어들어 일만 만드는

젊은 과부는 경계해야 합니다

(딤전 5:11-13).

 

 

이런 사람도 부르시고 빚으시사 ...

 

 

소극적이고 비관적이며

의심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도 부르시고 빚으시사

담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님의 일꾼으로 세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사기 6-7장에 나오는 기드온이란 인물을 생각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알아줘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한 것을

들춰내기 보다 채워주는 사람과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하기 보다 시원하게 하는 사람을

알아줘야 합니다(고전 16:17-18).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받는 재앙이 심히 무거울 때

우리에게는 반앙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욥23:1-2).

그 때에 우리는 우리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6절)을 간절히 찾으면서

하나님께 호소하며 변론도 할 수 있습니다(3-4, 7절).

그럼 후 우리는 하나님의 답변을 듣고 싶어합니다 (5절).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답변을 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6, 8-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택하여 걸어가는 길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

우리를 순금같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10절).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의 길을 바로 걸으면서 치우치지 않습니다(11절).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않습니다(12절).

우리는 이렇게 고백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일정하시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하시고자 하시는 일은 반드시 그것을 행하십니다(13절).

그런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작정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14절).

 

 

이로써 사랑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음을 믿기에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영생이 우리 속에 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요일 3:15-16).

이미 & 아직도 죄에서 자유를 …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미 죄 사함을 받고(시103:2,3) 이미 죄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롬 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7:19, 현대인의 성경).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법을 따르고 있지만 우리 육신은 죄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25절, 현대인의 성경).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마 26:41) 우리는 시험에 들어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온전히 죄에서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이 땅에 다시오시는 그 날, 우리는 "영광의 자유"에 이를 것입니다(롬 8:21).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엡 5:27).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게 하여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26절).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책임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벧전 1:22).

 

우리의 책임은 예수님의 이중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7, 39).

 

우리는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가능케 하실 수 있으십니다(빌 2:13).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므로(갈 5:22-23)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중계명을 지켜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미 용서하셨는데 …

 

 

하나님께서는

이미 회개한 나를 용서하시고

나의.죄를 잊고 계신데

나는

여탯것 죄책감을 가지고

내 마음에 평강이 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

 

(Wayne Stiles의 "WAITING on GOD"이란 책에서 창세기 50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요셉의 형들을 생각할 때)

 

 

 

이미 죽으셨지만 지금도 ...

 

 

"...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믿음의 사람 아벨은 이미 죽었지만 "그 믿음으로서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4절). 

그는 자기 친형 가인에게 쳐죽임을 당했지만(창 4:8)

"믿음으로  ...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습니다(히 11:4).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은(12:2)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들까지도 그분을 영접하지 않"고(요1:11, 현대인의 성경)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눅 23:18, 21, 23).

비록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지금도 그분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장인 어르신은 이미 죽으셨지만

"그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히 11:4).

이상합니다.

 

 

이상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항상 "예"만 해야 하는데(고후1:19)

많은 때에 "아니오"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웃에게 "아니오"해야 할 때도 많은데

그 때에 우리는 "아니오"라 말하지 못하고 "예"하고 있습니다.

"예"해야 할 주님께는 "예" 하지 않고

오히려 "아니오"할 이웃에게 "예"하고 있으니 이상합니다.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다.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인"이신 예수님이

상종하지도 않는 "사마리아 여자인"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요 4:9).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대인이신 예수님께서  상종하지 말아야 할

그 사마리안 여인과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습니다(27절).

 

 

이웃을 견책해야 하는데 ...

 

 

만일 우리가 형제/자매를

마음으로 미워하는 죄를 계속 지고 있는

우리의 이웃을 견책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우리 이웃에 대하여

죄를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레 19:17).

이웃을 멸시하며 망하게 하는 ...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고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합니다

(잠 11:9, 12).

 

 

이적과 기사를 보이는 거짓 목사?

 

 

사탄은 거짓 목사들로 하여금

이적과 기사를 이루어지게하여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서 꾀어내어

결국에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들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참고: 신 13:1-5).

 

 

이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동안만이라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얼마를 남겨두시며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조금 소생하게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래도 여전히

주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있으니

이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스 9:8-10).

이해가 안되는 주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

 

 

우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주님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그 명령에 순종할 때

그 결과는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유익이 될 것입니다.

(렘 40:9).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내 삶 속에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내 명철로 이해가 안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일들이 내 명철로 이해가 된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기 보다

나 자신의 명철을 의지할 것입니다

(잠 3:5-6).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는 주님은

결국에는 우리를 그 그물에서 끌어내시사

풍부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시 66:11, 12).

인간관계에 필수적인 마음

 

 

인간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선

너그러운 마음과

베풀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

(잠 19:6)

 

 

 

인간의 지혜로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성취

 

 

번성하고 매우 강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애굽 왕은 애굽 사람들보다 많고 강하다고 생각하여

그들이 더 많아지면 전쟁이 일어날 때

애굽 사람들의 대적과 합하여 자기들과 싸우고

애굽 땅에서 나갈까봐 지혜롭게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는 것과 그들을 학대하는 것과

히브리 산파 두 명으로 하여금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아들이면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갔습니다(출애굽기 1장).

 

과연 인간이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이루시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인간의 헛된 지혜조차도 ...

 

애굽 왕이 지혜롭게 하자고 한 것이 번성하고 매우 강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되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하고 어려운 노동을 하게하므로 그들을 괴롭게 한 것입니다

(출 1:7, 10, 11, 12,1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의 헛된 지혜도 사용하시사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부르짖게 하셨습니다(2:2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그의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24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그들을 기억하셨습니다(25절).

괴로울 때 주님께 부르짖으므로

주님으로부터 기도 응답을 받아 고통 가운데서 건짐을 받길 기원합니다.

인간의 헛된 지혜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혜 안에 있습니다.

 

 

인생은 …

 

 

  1. 인생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에 허무합니다.

시편 90편 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1. 인생은 잠깐이기에 허무합니다.

시편 90편 4-6절을 보십시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1. 인생은 일평생 수고와 슬픔 뿐이기에 허무합니다.

시편 90편 10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생의 흉년

 

 

인생의 흉년으로 말미암아

재물을 잃는 것이

소중한 생명을 잃는 것보다 낫습니다.

 

인생의 흉년 가운데에 있을 때

재물을 지키려다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까지 잃어서는 아니됩니다.

 

풍부한 재물이 있는 가운데서는 필요성을 못느꼈던 하나님의 돌보심을

소중한 생명을 잃고 나서야 들리나 봅니다(룻 1:1-6).

 

 

인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깊은 속에 있는 미운 감정을 들춰내주실 때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잠 26:26).

하나님께서 회개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기원합니다.

 

 

일 혹은 기다림?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주님을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잠잠히 기다리길 원하고 계십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4).

"일용할 것"만 누리는 절제된 삶?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의 소리도 들으시사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셨을 때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두라고 명하셨습니다.

비 같이 내려주신 많고 많은 양식 중에

일용할 것만 날마다 거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시험이었을까요?

(출16:2-5).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영적인 축복들을 베풀어 주셨는데(엡 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모든 축복들 중에

하루 하루 그 날에 필요한 축복만 누리라는 시험 문제를 내셨다면

과연 우리는 하루 하루 "일용할 것"만 누리는

절제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백화점에 쇼핑하러 갔는데

지갑에 돈이 많고 신용카드를 마음 것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사가지고 나올 수 있을까요? 하하

 

 

 

 

 

 

 

 

 

 

 

 

 

일천 번제 드리면서

1000명의 여자로 인해 우상 숭배하면 뭐합니까?

 

 

하나님께 번제물을

1,000마리("일천 번제")를 드리면 뭐합니까?

(왕상 3:4; 대하1:6)

 

여자를 1,000명(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거느리면서

그녀들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떠나

결국에 가서는 그녀들의 꼬임에 빠져

이방 신까지 섬겼으니 말입니다

(왕상11:3-4, 현대인의 성경)

 

1,000 마리 번제물을 하나님께 받치면서

1,000명의 여자들에게 마음을 뺏겨

우상 숭배를 하므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

하나님께서는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 1:13).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1,000마리 번제물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11절),

'나는 기뻐하지 아니하노라'(11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예배당만 밟을 뿐이니라'(12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13절),

'내가 가증히 여기노라'(13절),

'내 마음이 싫어한다'(14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14절),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않겠다'(15절).

 

입술로는 그러나 마음은

 

 

자칭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으면

하나님의 모든 계시가 우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을 가르침을 받았을 뿐입니다

(사 29:11-13).

 

 

 

잊어버림

 

 

혹시나 어머니가 나를 잊어버리신다 할지라도,

어쩌면 내가 내 자신을 잊어버린다 할지라도(치매),

내 주님은 결코 나를 잊어버리지 않으실 것이기에

나는 주님을 찬양합니다(사 49:15).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픈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새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1절과 후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