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무관심?

 

 

죄를 짖는 의인에게 있어서

참으로 이해가 안되고 괴로운 것은

악인들은 형통한데

의인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드는

하나님은 무관심하다는 생각이다.

 

(W. Robert Godfrey, "LEARNING TO LOVE THE PSALMS"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빠름과 더딤

 

 

하나님의 용서는 선제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용서가 필요한지도 모를 때에 우리의 용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용서는 빠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더디 이루시는 분 같아 보입니다.

실제로는 우리를 위해 참고 계시는 것인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더딤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벧후 3:9).

이 하나님의 빠름과 더딤은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통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

 

 

하나님의 사람들은 진실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신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으로 인하여 감사의 눈물 흘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

 

 

May God comfort

those who are broken-hearted.

 

 

하나님의 은혜

 

 

살아가면 갈 수록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더욱더 깊이 깨달아 갈 때

우리는 더욱더 감사하며

더욱더 겸손해 지며

더욱더 주님의 일에 수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

 

 

목회 사역을

겸손히, 신실하게 잘 감당하다가

은퇴를 잘하는 것도

참으로 어렵고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그런데 은퇴 후에도

주님께서 하늘 나라로 부르실 때까지

추한 모습 보이지 않고

끝까지 겸손하며 신실하게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가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자제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형제들과

주님 안에서 마음 문을 열고

진실되게 나눔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신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아닐까요?

 

 

10,000가지 받은 은혜의 선물들에 대해

감사 감사하며 만족하지 못하고,

1가지 없는 것에 대해 불만족 속에서 불평하면서

그 한 가지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혹시 그 한 가지가 지금 우리에게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아닐까요? 

 

(김병삼 목사님의 "살아내는 약속"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일이란?

 

 

우리는 우선순위를 분명히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요 6:29).

우리가 우선순위 해야 할 예수님을 믿는 것,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의 진보입니다(빌 1:25).

하나님의 일하심이 흥미롭습니다. 하하

 

 

 

약 5년 전 2010년도에

제가 섬기고 있는 승리장로교회 30주년을 맞이하여

"마음이 정결한 자"란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후 이렇게 5년 후에

"마음이 지혜로운 자"란 책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심이 흥미로습니다.

그 이유는 5년 전에

하나님께서 서현교회 김영철 장로님을 통해서

"마음이 정결한 자"를 내게 해주셨는데

그런 후 저는 두 번째 책으로 "마음이 지혜로운 자"(전도서 묵상집)을

내고 싶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2015년 "인터넷 사역 한국으로"를 통하여

서현교회 옆에 생긴 카페 포도씨의 모신희 자매를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셨는데

신희 자매가 제가 보내 준 10권의 책 원고들 중

원래는 '느헤미야' 책을 묵상하고 싶었했다고 했는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신희 자매로 하여금

'전도서' 책인 "마음이 지혜로운 자"를 묵상케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과정을 통해서 "마음이 지혜로운 자" 책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의 소원(desire)도 다 아시고

제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제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전혀 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을 하시네요. 하하.

하나님께 감사!

 

 

하나님의 주권과 나의 책임

 

 

주님의 주권적인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면서

내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요

주님의 뜻을 이루려는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Mark D. Futato 교수님의 "The Book of Psalms" 주석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충분한 진노

 

 

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충분히(fully) 진노를 쏟아내시지 못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듭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크게 범죄할 때에도 "막대기"를 들고 징계하시다가도 긍휼이 여시시가 멈추시는 것 같다.

우리를 완전히 진멸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남겨두신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충분히 내리시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독생자 예수님에게 십자가 상에서

모든 진노를 충분히 쏟아내셨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의 침묵, 나의 침묵

 

 

하나님의 침묵을 두려워하기 보다

침묵 속에서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음으로 인정하지 못하면 …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음으로 인정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행하심에 근거하지 않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행함은 참으로 위험하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기에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I love you because God loves you.'

 

 

하나님이 잠잠히 계실 때에

 

 

하나님이 잠잠히 계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며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하루 일과를 뒤돌아 볼 때

 

 

하루 일과를 뒤돌아 볼 때

이런 저런 일들로 좀 분부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분의

밝고 환한 웃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힘이나고 기쁘고 감사하네요.

 

 

 

학력과 실력보다 능력이

 

 

학력을 통하여 스펙을 쌓고자 한 것이 아니라

실력을 쌓고자 신학 공부를 세 신학교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학력을 통한 실력보다

죄에서 스스로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낌니다.

한 마음, 한 뜻

 

 

헤롯과 빌라도는 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흩어져 버렸다.

왜 진리와 바른 교리를 추구한다고 하는 우리들은

한 뜻을 품고 한 마음이 되고 있지 않는 것일까?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선 …

 

 

한 사람을 세우는 사역에 있어서

많은 인내와 기도와 지혜가 필요함을 경험합니다.

동시에 내 자아가 깨지고 부서져야 할 필요성도 느낌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겸손히, 희생적으로 그 한 사람을 섬겨야 함을 배웁니다.

 

 

한 순간입니까?

 

 

소중한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들도

한 순간에 안 좋은 추억으로 인하여

무너질 수가 ...?

한 어머님의 눈물

 

 

너무나도 사랑하는 자식 부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한 어머님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서운하시다고 말씀하시면서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땅히 자식 부부에게 사랑을 받으셔야 하는 어머님이신데 ...

 

 

한 영혼을 사랑케 하시는 주님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사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고난의 풀무에서 단련시키시는 모습을 엿 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형제 곁에 있으며, 함께 울며,

그 형제를 위하여 기도할 뿐입니다.

 

 

한번도 안싸웠다는 부부?

 

 

부부 싸움, 한번도 안했다고 말하는 부부, 걱정이 됩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두 부부가 서로 참고 산다는 말인데

그러다 보면 마음에 많은 것들이 쌓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많이 쌓인 것들이 언젠가는 그 부부 관계에 충분히 위기를 가지고 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번도 안싸웠다고 말하는 부부보다,

그래서 사람들 보기에 부부 관계가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듣는 부부보다

부부 싸움을 하되 그 싸움을 통해서 부부가 서로의 차이를 알아가고 인정하며

서로를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부부가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눈물

 

 

목회자의 눈물,

함께 눈물을 흘리는 성도님들 ...

 

 

함께 슬퍼하는게 더 나을 수도?

 

 

아무리 내 마음의 의도가

슬픔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려는 것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의 슬픔을 가볍게 생각하는 발언은 삼가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두 세마디의 쉽게 던지는 가벼운 말보다

침묵 속에서 옆에 서서 함께 슬퍼하는게 더 나을 수도 ...

 

 

함께 울수 있는 친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다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겪을 수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의 슬픔을 아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께 간구도 해야 하지만

주님 안에서 함께 울 수 있는

신앙의 친구도 필요하기도 합니다.

함부러 속단해서는 아니될텐데 …

 

 

상대방의 행동을 마음 속으로 섣불리 판단하고 비판하기 보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그럴꺼야 라는 마음 자세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게 훨씬 더 좋습니다.

 

 

항상 그 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할 때와 용서받을 때,

화목할 때과 관계가 회복될 때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용서하고 잊어버리며 사랑을 표현할 때가 항상 잊지 않다는 사실을 ...)

 

 

해로운 자책감

 

 

삐뚤어진 지아관은

해로운 자책감 속에서

낙심과 우울감의 늪에 빠지게하며

또한

자기 자신을 비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게 만듭니다.

행동을 뒤돌아 보면 …

 

 

우리의 행동을 뒤돌아 보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좀 알 수가 있는 듯 ...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복음 6:21)

 

 

행함보다 존재에!

 

 

행함보다 존재에 초점을 맞춘 신앙 생활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또한 성도님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초첨을 맞추기 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허물 찾기보다 덮어주기

 

 

다른 사람의 허물을 찾아내는 것을 즐기기보다

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하기를 즐거워하자.

 

 

허전하지요.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

항상 그 곳에 있던 사랑하는 사람이 안보이면 허전하지요.

 

 

허풍, 허세

 

 

허풍 떨지 말고

허세 부리지 말자.

 

 

 

헌신된 교제의 필요성?

 

 

주님 안에서

지속적인 교제가 없는 가운데서

어떻게 서로를 위하여

깊이 기도할 수 있을까 ...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선

주님 안에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헌신된 교제가 있어야 ...

 

헤롯

 

 

사랑을 받는다는 것, 마음이 흐믓합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 마음에 힘이 납니다.

 

 

헤어질 필요도

 

 

서로가 맞지 않을 때에는 헤어질 필요도 있는 듯,

그러나 바램은 헤어지더라도 주님 안에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헤어졌으면 합니다.

 

 

 

헤어짐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떠나는 자로서의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하는 자들의 마음이

다 쉽지는 않겠지만

주님 안에서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들을 많이 담고

헤어지는 것이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서로를 맡기고

축복하면서 떠나며 또한 떠나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헤어짐

 

 

이젠 익숙할 법도 된 것 같은데 여전히 ...

마지막 떠나는 순간들이 아직도 내 마음에 분명하게 남아있기에,

그보다 사랑의 추억들이 너무나 많이 마음에 적혀있기에 ...

그리움.

 

 

현재의 난관은 ...

 

 

현재의 난관은

과거의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기념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소망에 대한 확실함과 분명함을 믿음으로 보게하는 기회이다.

 

 

형제/자매의 관계가 ...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의 관계가

꾸준하고

신실하고

깊어지고

넒어지면

좋겠는데 ...

형통의 지름길?

 

 

고통은 형통의 지름길일 수도 있습니다.

 

 

 

혼동의 시대

 

 

우리는 혼동의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과 가짜 그리스도인을 분별하기가 힘듭니다.

진짜 목사와 가짜 목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복음과 거짓된 복음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보다 둘이서

 

 

혼자서 일을 하면

일을 잘 끝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둘이서 같이 일을 하면

일은 잘 끝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귀한 일꾼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혼탁과 혼동의 시대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혼동해서는 아니됩니다.

 

 

 

혼합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도마 복음"(Gospel of Thomas)에 대한 질문을

교회 어르신에게 받고 흥미로운 articles를 찾아 읽었습니다. 

이단으로 배척된 영지주의 문서로 알려진 도마 복음에 대해서 읽으면서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그리고 지리적으로까지 어떻게 도마 복음과 같은 문서가 생겨났고

그 문서에 영지주의와 인도 종교가 어떻게 혼합되어 있는지를

좀 엿보게 될 때

참으로 "혼합주의"는 경계하고 또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갖게 됩니다. 

이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섞을 뿐만 아니라 믿음도 섞습니다. 

진리에 거짓을 더하고 그 섞인 진리에 섞인 믿음을 갖게 하여

결국에는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사랑으로 이해하기!

 

 

화평케 하는자

 

 

주님은 화평케 하시는데 우리는 화평을 깨고 있다면 ...?

 

 

확고하고 성숙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확고하고 성숙하게 믿고

주변 사람들도 확고하고 성숙하게 사랑하라!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확신과 여유가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확신과 여유가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회개”가 없는 “개혁”은 무의미합니다.

 

2017년 10월 31일, 세상에서는 할로윈(Halloween)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 기독교에서는 개혁의 날(Reformation day)로 알고있다.

특히 금년은 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기에 그 의미를 크게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어제 주일 교회 식구들에게 처음으로

개혁 500주년 주일이라는 사실을 광고 시간에 알려드렸다.

내가 그리한 이유는 아마도 내 개인적인 생각이

나부터해서 우리 교회가 항상 개혁되야 한다(Always reforming)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개혁"(Reform)에는 항상(Always) "회개"(Repentance)가 전제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회개"가 없이는 "개혁"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나부터해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회개의 눈물"이 없는 "개혁의 외침"을 부르짖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되기에 나는 "개혁"에 대한 소리를 잘 내지 않았다.

다만 내 마음에 주신 은혜대로 나는 5가지 "R's"을 설교한 적이 몇번이고 있었다:

 

Repentance(회개)

Reconciliation(화목)

Restoration(회복)

Reformation(개혁)

Revival(부흥)

 

많은 교회(혹은 대부분 교회)가 부흥이나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지금 우리 교회는 회개를 통한 신랑되신 주님과의 관계의 화목과 회복은 강조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탑갑다.

나부터 해서 우리 교회 식구들이 먼저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있길 기원한다.

그러므로 약 500년 전에 개혁주의 자들이 외치고 실제로 그리 살았던 것처럼 ...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Scriptura (오직 말씀)

Sola Gratia (오직 은혜로)

 

... 우리 모두가 그리 살길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회개가 없는 화목, 회복, 개혁, 부흥은 무의미합니다.

 

 

Repentance (회개)

Reconciliation (화목)

Restoration (회복)

Reformation (개혁)

Revival (부흥)

 

회개가 없는 화목과 회복과 개혁과 부흥은 무의미하다!

 

 

회개란?

 

 

성경에서 말씀하는 "회개"는

감정의 변화나

자세 또는 마음의 변화 뿐만 아니라

생활 방식의 변화를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 ㅠ

 

(David R. Jackson, "CRYING OUT FOR VINDICATION:

THE GOSPEL ACCORDING TO JOB"을 읽으면서)

 

 

후회

 

 

좀 더 들을 걸 ...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할 걸 ...

좀 더 위로할 걸 ...

“흉악한 이리”

 

 

표면적으로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이단들,

적어도 우리는 그들의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나 신성을 부인하면서

비성경적이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심각한 도전은 바로 "흉악한 이리"들이다(행 20:29).

그들은 우리 중에서 일어난 사람들로서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고 있다(30절).   그들은 매우 교묘하게 성경을 비틀어서(twist) 너무나 그럴싸한 성경 해석을 하고 있다.

 

그 성경 해석의 핵심은 바로 '사람은 신이다'(A man is a god)라는 것이다. 

지금 그들은 사람을 신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성경구절을 인용해서 말이다.

이러한 New Age 적인 가르침을 지금 유명한(?) 미국 TV evangelists이 전파하고 있다.

 

자칭 복음주의자 목사라는 사람들이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31-32절).

 

 

 

희생?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 잊을 필요가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들지 않아요.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들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주님께서 내 짐을 대신 져주고 계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원망스러운 큰 소리를 내든지

아니면 고민과 씨름 속에서

비록 우리의 머리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녀로 남아있고자

몸부림을 치는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Iain M. Duguid의 "Zephaniah, Haggai, Malachi"을 읽으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접했을 때

 

 

힘들고 어려운 일(상황)을 접했을 때 ...

 

  1. 하나님의 주권을 믿음으로 인정합니다.
  2. 하나님께서 내가 접한 힘들고 어려운 일(상황)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뤄질 줄 믿고 인내합니다.
  3.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는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펼쳐가실지를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넓게, 많이 체험할 뿐만 아니라

단련된 찬양, 예배자로 세워질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힘들고 어려울 때 한 사람의 지극히 작은 선행이 내 마음에 큰 사랑으로 다가와 심비에 깊이 새겨집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아무도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가까운 가족 식구나 친구들을 의지하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나누며 쏟아내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해를 받고 위로를 받고 싶지만 오히려 더 낙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들에게 위로를 받으려고 가까이 다가가도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낯선 사람들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시편 69:8).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또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13절).

힘을 얻습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따뜻한 사랑의 대접을 받으니

그 과분한 사랑에 그저 감사와 더불어 마음에 힘을 얻습니다.

더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라는 권면으로 받습니다.

 

 

힘이 납니다.  마음이 뭉클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젊은 이를 보면 힘이 납니다.

주님을 묵묵히 사랑하며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합니다.

 

 

힘이 되는 교회 혹은 힘들게 하는 교회?

 

교회가 성도님들에게 힘이 돼야하는데 오히려 힘들게 하고 있으니 ...

 

 

힘이 많이 있는 것보다 …

 

 

힘이 많이 있는 것보다

절제된 힘이 있는게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