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들리는 소리?

 

 

충분히 염려스러운 상황에서

크게 들리는 많은 잡다한 소리 듣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고통 속에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잔잔한 음성을

더 크게 듣길 기원합니다.

 

 

 

 

 

큰 고통을 가져다 줄 한 번의 잘못된 선택?

 

 

부부 관계에 있어서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앞으로 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 줄지를

조금이나마 깨달아야 하는데 ... ㅠ

 

 

 

 

 

큰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문제를 크게 확대해서 생각하기 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묵상하는게 훨씬 낫습니다.

큰 바위를 밀라고 하시는 주님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주님께서는 큰 바위를 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큰 바위를 하루 종일 밀었지만 그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또 밀었지만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 달 동안 밀었지만 그 큰 바위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낙심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바위만 움직이는 것을 빼고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는 '나는 너에게 큰 바위를 밀라고 했지 그 바위를 움직이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하는 예화입니다.

왠지 목회는 큰 바위를 미는 것 같습니다.

그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해야 ...

큰 바위를 움직이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승리!

 

 

 

 

큰 위기, 더 큰 믿음으로 …

 

 

큰 위기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더 큰 믿음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큰 축복과 큰 특권

 

 

마음의 고충 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 큰 축복 속에서

우리가 마음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서로에게 나누고 서로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큰 축복입니다.

 

 

나를 위하여

함께 기도해 주는

기도 그룹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기도 제목을 나누지 못하여

기도로 함께 지지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 밖에 없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타락하고 변질되기 보다

 

 

크고 높은 위치에서

타락하고 변질되기 보다

작고 낮은 위치에서

씨름하면서 변화되는게

훨씬 낫습니다.

 

 

 

타락한 목사?

 

 

마치 유대교 공동체 안에서 제사장이라는 단어는

오래전부터 도덕적 방탕, 탐욕, 욕심과 야망, 교만과 허세로 타락해 있었던 것처럼

지금 교회 안에 우리 목사님들이 ...?

 

(유진 피터슨의 "물통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탐심과 우상숭배

 

 

탐심과 우상숭배는 연관 있다(미가 1:7, 2:2, 참고: 골 3:5).

교회와 교계의 지도자들이 탐심을 품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 보다 물질이나 명예나 여자를 더 사랑하고 있는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고 있을 것이다.

 

통찰력

 

 

 

자녀에게 무엇을 보여주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로 하여금 옳바른 통찰력(perception)을 갖도록

부모로서 기도하며 도와주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어제 주일 가족 모임 대화 및 예배 후 아내하고 한 자녀의 발언에 대해서 대화한 것을

오늘 이렇게 다시 생각하면서)

 

 

 

특권을 잃어서라도

 

 

특권을 잃어서라도

겸손하고 공감하는 사람으로 세움을 받아야 ...

 

(ANTHONY T. SELVAGGIO, "FROM BONDAGE TO LIBERTY –

THE GOSPEL ACCORDING TO MOSES"을 읽으면서)

 

 

특권의식 특별대우 경계

 

 

우리는 특권의식 속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특별히 아니라 마땅히 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뭔가를 특별히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틀안에 갇힌 사람?

 

 

자신이 만들어 놓은 비본질적인 틀속에 박혀

그 틀속안에서만 일이 진행되는 것에 안심을 하고

그 틀밖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매우 불안해하면서 어쩔 줄 몰라한다면

안그래도 근심 걱정 많은 세상인데

어떻게 그리도 염려하면서 살려고 하는 것일까 ...

 

 

 

 

판단 Yes, 비판 No

 

 

(지혜롭게)     판단은 하되

(분노하면서)  비판은 하지 말아야 ....

 

 

판단력과 결단력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사

분명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갖게 하시어

결단력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편리한 신앙생활 보다 ...

 

 

내가 원하는 편리한 신앙생활을 추구하지 말고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편안이 아닌 불안일 수도

 

 

우리가 보기엔 우리가 선택한 길이

우리에게 '편안'을 줄 것 같아 보이지만

어쩌면 그 길에 끝에는 '불안'이 우리를 기다릴 수도 ...

 

 

 

 

편안함의 결과

 

 

점점 더 편안함을 추구하는 세상,
점점 더 편안해지는 우리의 삶,
그 결과
우리는 고난(고통)을 회피하는 사람이,
우리는 희생할 줄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듯 ...

 

 

편안함의 불편함?

 

 

편안한게

불편할 때도 있어야 하는데 ...ㅠ

 

 

 

평범하게 살기

 

 

 

쉴 수가 없이 너무나 분주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인가 주님을 위해서 놀라운 혹은 대단한 일을

꼭 해야만 한다는 강박개념에 사로 잡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하루 하루 말씀과 기도 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주일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므로

하나님을 즐거워 하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평범한 동역자의 축복

 

 

서로 공감하고

서로 이해하며

서로 체휼할 수 있을 정도로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평범한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평범한 삶

 

 

평범한 일상 생활에 감사하자.

 

 

 

평범한 우정

 

 

주님 안에서의 우정은 평범한 우정입니다.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 이뤄진 친구 관계에는

가식적인 것이 없고 서로의 진실된 모습 속에서

평범한 사랑과 신실한 충성과 희생적인 헌신 및 순종이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평생 배워야 합니다.

 

 

남자는 자기 아내 사랑하는 법을 평생 배워야 합니다.

여자는 자기 남편을 존경하는 법을 평생 배워야 합니다.

 

 

평생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자원이 없을 정도로

평생 주님에게만 의존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평적인 관계이전에 수직적인 관계가 우선

 

 

공동체를 원하고 있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사귐이 있길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수평적인 관계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 수직적인 관계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사귐이 있길 갈망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일대일로 친밀한 교제를 갖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모든 만남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만의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장소에서 조용한 마음으로

주님께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아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 우리는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 이웃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과 연결되고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 중심된 공동체를 세우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평화롭게 잠드신 사랑하는 장인 어르신을 생각할 때 ...

 

 

고 오 덕겸 장로님,

나의 장인 어르신은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일"을 좋아하셨다.

그런데 나는 지난 주 금요일 새벽기도회 때에서야 처음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아니, 어떻게 돌아가시기 전까지 질병으로 그리도(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당하시고 계셨는데 그 찬송가 1절 가사처럼 "내 평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을 늘 편한다"라는 고백을 찬양으로 하실 수 있으셨을까?'

어떻게 그 고통의 길이 순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고통 중에 "늘 잔잔한 강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너무나 어려우셨는데 어떻게 "나의 영혼을 늘 편한다"라고 찬양을 즐겨하실 수 있으셨을까??

 

나는 평화롭게 잠드신 장인 어르신을 생각할 때

"평강"이란 단어와 함께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이 생각났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울 때 …

 

 

우리 신앙인들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울 때,

낙망하고 절망할 때에라도

우리의 소망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꿈을 꾸어야 합니다.

피해 의식에 사로 잡혀 있을 경우

 

 

많은 상처와 아픔 등으로 인하여

피해 의식에 사로 잡혀 있을 경우

다른 사람의 말도 그대로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자기 입장에서 재해석하며 또한 부풀려서 상상하여

부정적으로 듣고 분노하며 상처까지도 입는 것 같습니다.

 

 

 

 

피해의식을 갖지 않는 피해자가 되는게 낫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우리는

가해자가 되기보다 피해자가 되는게 더 낫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해의식은 갖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은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필요(도) 없습니다.

 

 

 

부러워 할 필요 없습니다.

부럽다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필요합니다 …

 

 

 

듣는 귀가 필요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

이해가 필요합니다, 말보다 ...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랑을 느낄 수 있는 ...

 

 

 

 

하나님 보다 사람들 앞에서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보다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교회생활 하기에 분주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다 안전과 보장을?

 

 

 

 

우리가 안전과 보장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범할 것입니다.

 

[Iain M. Duguid, "Living n the Gap between Promise and Reality"을 읽으면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 기대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의 품안에 고히 잠들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는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들의 우고를 알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저에게 돌리지 말아주세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데,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라고 고백까지 했는데,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니 감시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자꾸만 내가 칭찬 받은 그 일을 생각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는 서서히 내가 잘한 줄 착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좀 잘난 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내가 했다고 생각하고 나를 은근히 자랑하였습니다.

결국 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내 공로로 돌렸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여 내 영광으로 돌렸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나님, 저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하나님, 영광을 저에게 돌리지 말아주세요

(시편 115:1).

 

 

 

 

하나님께 감사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의 믿음이 자라나고(growing)

서로 사랑함이 증가(increasing)될 때

저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살후 1:3).

 

하나님께 감사 …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창세기 32:10).

 

우리 온 가족 식구들을 생각할 때

저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에 감사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크고 많은 축복을

우리 온 가족 식구들에게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크고 영원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

 

 

너무 힘들고 어려웠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구한 것 보다

넘치도록 풍성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요. .. 라는 고백을 들으니

 함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나님께 통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미 마음에 내 뜻을 결정해 놓고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기보다 내 뜻을 하나님께 통보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듯이

나 또한 내 자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듯이

나 또한 내 자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겉모습보다 내 마음을 보고 계시듯이

나 또한 내 자녀의 겉모습보다 내 자녀의 마음을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의도를 알고 계시듯이

나 또한 내 자녀의 행동보다 그/녀의 의도를 알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과 내 의도를 아시고 격려하시듯이

나 또한 내 자녀의 마음과 의도를 알아가면서 격려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힘주시듯이

나 또한 내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며 힘주실 원하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듯이

나 또한 내 자녀를 그/녀의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어젯 밤 사랑하는 자녀와 주님 안에서 귀하고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고

하나님께 기도한 추억을 되새기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4개의 말씀들

 

 

나의 인생의 뒤돌아 볼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4개의 말씀들:

 

  1. 나를 부르셨을 때 주신 말씀: 요한복음 6장 1-15절 (1987년 대학부 수련회 때)
  2. 나의 결혼 예배 때 주신 말씀: 시편 34편 8절 (1997년)
  3. 나의 첫째 아기를 이 세상에서 떠나 보낼 때 주신 말씀: 시편 63편 3절 (1998년)
  4. 나를 다시금 승리장로교회로 부르실 때 주신 말씀: 마태복음 16장 18절 (2003년 한국 교갱협 수련회 때)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행할 떄까지는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창세기 28장 15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붙혀주시는 사람들을 보면 ...

 

 

하나님께 우리 각자에게 붙혀주시는(만나게 하시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와 비슷한 죄를 범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창43:23).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요시하시는 것을 ...

 

 

하나님께서 중요시하시는 것을 목사인 내가 중요시해야 하고,

내가 중요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이 중요시하길 바라지만

각 형제, 자매님들 한분 한분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시는 것을

자기 자신이 중요시해야 함을 깨닫는 때가 다 다를 것이기에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인내로 기다려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십니다!

 

인터넷 사역 한국으로, 하나님께 하고 계심을 엿봅니다.

그저 저는 미국에서 새벽기도회 후 목양실에서 말씀 묵상을 하다가

페이스북에 로그인한 한 지체가 어떻게 지내는지 갑자기 궁금해서 물어본 것 뿐인데

조금 전 당사자를 만나 들어보니 자기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을 때

제가 말을 걸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북 채팅을 대화 기록을 보여주는데

제가 그 지체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 거의 2년만에 말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지체에게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더 아끼시는 것일까요?

 

 

우리 같이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들이 무엇인관대

하나님께서는 아끼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어주신 것입니까? 

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행하셨나요? 

하나님께서는 아끼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더 아끼시기 때문이 아닌가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을 사용하실까요?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자를 사용하실까요?

어제 YMCA에서 운동하면서 MP3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in Charlotte 총장님의 강의를 듣던 중 하나님이 쓰셨던 모세에 대하여 하신 말씀 중 마음에 다가왔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모세의 120년 삶을 세 부분으로 나눠 어떻게 점진적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시고자 준비시키셨는지를 깨닫게 해 주며 도전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 모세가 애굽에 40년 있었을 때 그는 자기가 뭔가가 된 줄 생각했습니다(He thought he was SOMETHING),
  • 모세가 미디안에 40년 있었을 때 그는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 습니다(He began to understand that he was NOTHING) 그리고
  •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인도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자를 쓰시는 줄 깨달았습니다(Now he knows that God uses NOTHING).
  •  

이 강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1) 과 (2)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쩔 때는 내 자신이 SOMETHING인 것 같이 착각할 때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사 제가 아무 것도 아님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 SOMETHING이란 것은 왠지 저로 하여금 "욕심"을 내게 만들고

또한 "교만"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광야"로 인도하셔서 낮추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홀로 그 분 앞에 잠잠이 있게 하시고

또한 기도 하는 가운데 그의 말씀으로 제 마음을 죄를 들춰내시고 또한 회개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부드럽게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인해 위로와 힘을 받습니다(호2:14).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힘든 현실이 지속되므로

주님을 향한 나의 믿음이 흔들리고,

부르짖는 나의 기도에 응답이 더디므로

내 인내심이 다하여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나아가십니다.

 

주님은

나로 하여금 주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시고,

다시금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게 하시어,

다시금 일어나 주님 말씀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의심과 불신앙을 통해서도

내게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상상력에 가두어 놓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상상력에 가두어 놓는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우리 삶 속에서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조급하여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지 않고

오히려 잠잠히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자녀를 양육해야

 

 

예수님을 믿는 어머니가

하나님을 신뢰(trust)하므로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지 못하(않)고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 가운데

자녀를 컨트롤(control)하거나

조종(manipulation)을 해서라도

자녀를 사랑한답시고

자기의 마음과 생각대로

자녀를 양육한다면

그 자녀는 그 어머니에게

심리적으로 컨디션(condition)이 되어서

어머니의 속박(bondage)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freedom)를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자기 삶에 맞추는 데 익숙한 사람들 ...

 

 

하나님을 자기 삶에 맞추는 데 익숙한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은혜(?)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데 열심을 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힘들어하여 그 말씀을 잘 무시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주목하자.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그 상황에 반응하고 있는 나 자신을 주목하기 보다

하나님을 주목하자.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이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훨씬 위대하신지와 내가 처한 그 상황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신 뜻을 이루실 것인지 믿게 하실 것이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계획

 

'I am sure God has plan ...' (Jane)

 

'하나님께서 계획이 있으실꺼예요 ...'

(아내가 이 아침에 한 말)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행동

 

 

교회의 하나됨 지키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자기 파를 형성하여

상대방 파와 나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긍휼은

죽어 마땅한 내가 하나님께 범한 죄의 결과를

충분히 받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내 현실과 연관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 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내 현실을 더 가까이 하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내 현실을

연관시키지 못하고

별개인 듯이 살고 있었구나.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하는 내 현실의 삶 속에 적용해야 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