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전환점?

 

 

우리에게는 사고의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그 사고의 전환점이란

더 이상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공로의식)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고,

지금 하고 계시며,

앞으로 하실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은혜의식).

 

(유진 피터슨의 "물통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사과

 

 

사과를 안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하는 타이밍을 놓쳤다.

 

 

사과할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구나 .

즉시 했어야 했는데 ...

타이밍을 놓쳤다.

 

사과해야 합니다.

 

 

어느 관계에 있어서나(특히 부부 관계)

우리는 상대방에게 잘 못했을 때

"I am sorry"(내가 미안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I am wrong"(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되

무엇을 그 상대방에게 잘못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고쳐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 잘못을 고치려고 하는 노력을 그 상대방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The Five Languages of Apology"란 책을 읽으면서 느낀점).

 

 

 

 

사단은 …

 

 

사단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주님의 일을

무척이나 크게 보이게 만들면서

그 일을 감당해야 할 우리는 얼마나 작고 연약한지를 계속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사단은 우리 귀에다가

'너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을꺼야'라고 속삭이므로

우리로 하여금 낙심케 하여 주님을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람들 보기엔 ...

 

 

사람들 보기에 가 아닌

주님 보시기에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

사람들 앞에서의 종교 생활

혹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 생활

 

 

 

 

  1. 사람들 앞에서의 종교 생활:

 

  1.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다.
  2. 사람들에게 높임(영광)을 받으려고 한다.
  3. 사람들을 두려워 한다.
  4.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하나님보다).
  5. 사람들을 뜻을 이루려고 한다(하나님의 뜻보다).
  6. 사람들과 비교한다.
  7.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판에 민감한다. 등등.

 

  1.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 생활: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2. 하나님을 경외한다.
  3. 하나님께 순종한다.
  4.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5.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6. 하나님의 칭찬을 사모한다.
  7. 자기가 무익한 종인 줄 안다. 등등.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다는 것

 

 

한 때에는 개신교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았던 분이

지금은 가장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을 볼 때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회의가 듭니다.

사랑 고백 및 용서(구)하기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 또는 용서를 하는 것은 참 귀합니다.

 

 

 

사랑 마을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마을입니다.

서로 보고 싶은 지체들이 함께 만나서 즐겁게 먹고 마실 뿐 아니라

서로의 마음 문을 열고 진솔하게 진심을 나누는 모임입니다.

거짓과 가식이 없고 서로를 마음 속으로 비판하지 않으며

주님이 우리 각자를 이 모습 이대로 용납하시고 사랑하시듯이

서로 용납하며 사랑하는 모임입니다.

농담 속에서도 오해보다 웃음이 있으며

사진 찍기 속에서도 마음의 미를 느낄 수 있는 모임입니다.

서로를 위하여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위로하며 격려하는 모임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므로 주님 중심된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나아가는 사랑 마을입니다.

 

 

 

사랑과 이해 및 오해

 

 

사랑을 많이 하는 사람은

이해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적게 하는 사람은

이해보다 오해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절제가 …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절제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아니오"해야 할 때

정중히 그러나 단호하게 "아니오"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

 

 

사랑은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사랑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기억을 귀하게 여깁니다.

사랑은 그 귀한 기억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듣는 것입니다

 

 

사랑은 듣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고민과 고충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란 말씀이 생각납니다(아가 8:6).

금년 2016년 한 해를 뒤돌아 볼 때

제 마음에 깊이 남겨주신 사랑은 참으로 죽음 같이 강한 사랑이었습니다.

비록 그 사랑하는 분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 그 분을 통하여 저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제 마음 판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비록 헤어짐의 슬픔과 아픔이 많았지만

저는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묵상케 하시사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보내드리는 사랑을 이렇게 금년 한해도 체험케 하셨습니다.

그 귀한 사랑을 마음게 고히 간직합니다.

 

 

사랑은 …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동시에 사랑은 용납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

 

사랑은

과분한 마음의 진실된 즐거운 섬김조차도

그 상대방을 배려하여 겸손히 받는 것인 것 같습니다.

그 섬김이 매우 이기적이게 보여두 말입니다. 하하

사랑은 ...

 

 

사랑은

곁에 오랫동안 함께 있는 것인 것 같습니다.

 

 

사랑을 느끼니 …

 

 

사랑하는 분의

위로의 한 마디를 통하여

사랑을 느끼니 힘이 됩니다.

마음이 뭉클합니다.

그저 그 분에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

 

 

사랑을 받는다는 것,

죄송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

 

그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 또한 주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어

내 이웃을 사랑해야겠지.

사랑을 받는다는 것도

 

 

사랑을 베풀고 싶어하는 분의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받는 것도 사랑이네요.

 

 

 

 

 

사랑의 마음

 

 

사랑을 받는다는 것, 마음이 흐믓합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 마음에 힘이 납니다.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분이 매우 힘들고 어려웠을 때

내가 그 분을 위해 기도하므로

위로가 되셨다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사랑의 작은 몸부림

 

 

사랑하기에,

좀 더 사랑하고자 작은 몸부림을 친다.

 

 

 

사랑의 추억 만들기

 

 

사랑하는 자녀의 마음에

아버지로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준 후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첫째 딸과 차 안에서 exiting한 대화를 나눈 후)

 

 

사랑의 추억이 많을 수록 ...

 

 

사랑의 추억이 많을 수록

그리움의 눈물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기쁨

 

주님의 사랑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은

참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물

 

 

금년 새해에도 유난히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많이 봅니다.

그 눈물들이 저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마음으로 울며,

그 우는 마음으로 그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길 원합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며 사모하는 마음을 배우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정을 알아가기 위해선 ...

 

 

사랑하는 사람의 사정을 알아가기 위해선

먼저 내 마음의 그 사람을 향하여 쌓아놓은 "벽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십자가의 사랑으로

부서트리고 녹여 없애야 한다.

그래야 나는 그 사람의 말을 선입관 없이 마음 문을 열고

귀담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심정을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하여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게 되며

또한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영원한 생명을 감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생각할 때 ...

 

 

사랑하는 자녀를 생각할 때

어쩌면 그 자녀가 앞으로 고통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자녀를 나보다 더 사랑하고 계시니까

만일 그 자녀가 앞으로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스러운 상황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사 그 자녀에게 유익되게 하시고

또한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 생각하니

걱정이 되지 않고 오히려 안심이 됩니다.

 

(믿음으로 생각하는 믿음의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하는 행복감

 

 

나 자신의 큰 고통조차도 잊어버릴 정도로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하는 행복감의

훨씬 더 큼과 넓음과 깊음과 높음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한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사랑하며 살아도 시간이 모자를텐데 ...

 

 

신속히 가는 우리의 인생,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도

참으로 짧은 인생일진데 ... ㅠㅠ           

 

 

 

 

사랑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지체들과 함께

공유하는 기쁨과 분유하는 교제의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기원합니다.

 

사명과 비전

 

 

저에게 주어진 사명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나누므로(요 6:1-15)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마16:18)입니다.

 

저의 비전은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가진 일꾼들을 세워 파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길 기원합니다.

 

 

사명따라 살다가 죽기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주님이 주신 사명따라 살다가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큰 은혜요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사명을 받은 자에게는 은퇴가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보시기에 멋지게 인생을 마치기 위해서는 은퇴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비록 은퇴는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계속해서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주님께 사명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받은 자에게는 은퇴가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될텐데 ...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한답시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말을 하였을 때에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수도...?

 

 

사업을 하는게 아니라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business를 하는게 아니라 ministry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workers이 아니라 brothers (in Christ)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에게

business를 하는 느낌을 주고

또한 그들에게 형제가 아닌 worker이란 느낌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사역이 ...

 

 

사역이

주님을 섬기는 삶에서

사람들과 교회라는 조직에서 power와

인정을 받으려는 쪽으로

변질이 될 위험을 차단해야 ...

사탄의 역사?

 

 

사탄은

'하지 말라'와 '하라'는 성경 말씀을

우리 머리에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마음에  극소화시키고 있습니다.

 

(Iain M. Duguid의 "EZEKIEL" 주석을 읽으면서)

 

 

사탄의 유혹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유혹은

고난이 없는 십자가요,

십자가가 없는 복음이요,

복음이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Iain M. Duguid의 "Daniel" 책을 읽으면서)

 

 

신앙이 너무 훌륭하면

 

 

믿음이 너무 훌륭하면 (?)

믿음이 약한 형제의 슬픔을 체휼하지 못할수도?

 

살 맛을 나게 하는 세상의 소금

 

 

우리는 살 맛이 안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 맛을 나게 하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의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엿보게 되니

놀랍고 기쁘고 도전이 됩니다.

 

 

 

삶 속에 어려움 …

 

 

삶 속에 어려움이 왜 있을까...

우리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어 보일찌라도

한 가지 우리가 얻는 것은 바로 "인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얻는 것은 잃어버려야 할 것을 "잃은 것"이다.

 

 

삶을 극대화하자.

 

 

역기를 드는 것도 그저 어느 정도의 무게를 드는 것으로 만족하기보다

좀 더 힘들어도 내가 들수 있는 무게를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maximize 하듯이

주님 안에서의 삶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이미 받은 은사 달란트를

최대한 발휘하도록 maximize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선 나는 믿음으로 용기를 내서

지금의 안전하고 편안한 것에서부터 나와

힘들고 어렵고 실수와 실패를 한다 할지라도 모험과 시도를 해야겠다.

 

 

 

삶의 기쁨은 …

 

 

삶의 기쁨은

하루 하루 일상 생활 속에서

지극히 작은 일이라 할찌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삶의 어려움과 고통은 …

 

 

삶에 어려움과 고통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삶의 위기는 …

 

 

삶의 위기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깊이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시편63:3). 

너무나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

주위에 사람들의 작은 사랑의 표현으로 인하여서도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케 하십니다.

 

 

삶이 분주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기에 ...

 

 

삶이 분주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기에

우리는 상대방의 말이나 글 등에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이 아닌 우리 입장에서

그 말(글)을 대충 해석해서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오해와 실수와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이 인간관계에서만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내 입장에서 미안해 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청하기 보다

상대방 입장에서 내가 그/녀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받자.

상대방 입장에서는 ...

 

 

내 입장에서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한 것이

상대방 입장에서는 매우 어렵고 힘들게 들릴 수가 있을텐데 ...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내 기준으로 속단하지 말고,

내 마음으로 정죄하지 말며,

내 입술로 비판 및 비방하지 말자.

 

 

 

상대방의 의중

 

 

상대방의 의중을 어찌 알 수 있으랴 ...

 

그러나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그 상대방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라면

그의 의중은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겠지

만일 그 상대방이 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자라면

그의 의중은 나의 유익보다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일 것이다.

 

상상의 날개

 

 

상대방에 대해서

상상의 날개를 피면서

함부러 추측하는 것을

삼가해야 합니다.

 

 

상처가 아닌 사랑

 

 

상처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요하지

또 다른 상처가 필요한 것이 아닌데 ... ㅠ

 

 

 

상처들

 

 

우리가 받는 상처들이

예수님의 흔적으로 우리 마음에 남아야 할텐데...

 

 

상처를 주는 목사님과 교인?

 

 

교인에게 사과할 줄 모르는 목사님,

목사님의 사과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교인.

상처입은 치유자?

 

 

주님께서는

상처입은 치유자로 하여금

자신의 큰 상처보다

상대방의 상처를 더 크게 보게 하시므로

주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에 하시고 섬기게 하시사

상대방에게 위로해주실 뿐만 아니라

상처입은 치유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사

세상이 줄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평강을 주십니다.

 

 

상품화 된 교회?

 

 

교회도 상품화 되었는지

교회 브랜드가 좋다(?)고 생각하면

매력(?)을 느껴 그 교회로 가는 것 같습니다.

 

 

상황보다 말씀에 …

 

 

상황에 영향을 받기보다 하나니의 말씀에 영향을 받게 하시고,

상황에 끌려가기 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게 하소서

(참고: 수 14:6-15).

상황의 바뀜보다

 

 

내가 접한 힘든 상황을 바꿔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

 

그 힘든 상황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하는게 더 낫습니다.

 

 

상황의 변화보다 마음의 변화를 위해

 

 

우리는

힘든 상황의 변화를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기보다

강팍한 마음의 변화를 위해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힘든 상황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강팍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사

주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시길 기원합니다.

 

 

상황의 변화보다 먼저

 

 

우리의 본능은 상황을 먼저 생각하고

그 상황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상황을 바꾸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아닌 사명 따라 …

 

 

상황 따라 살지 말고

사명 따라 살고 싶습니다.

 

 

새 것보다 익숙한 것이

 

 

나는 새 기계가 좋지만

상대방에게는 익숙한 기계가 더 좋을 수가 있습니다.

 

 

 

새로운 만남을 주실 때에

 

 

주님께서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새로운 만남(들)을 주실 때에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저(우리)는 그 주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고 (또 없어야겠지만)

어쩌면 그 주님의 뜻이 이것(또는 저것)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생각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의 만남을 통해

주님의 교회를 어떻게 세워나아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물론 주님께서 제 생각 밖에서도

충분히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아가실 것이기에

더욱더 기대가 됩니다. 하하

새해 2019년!

 

 

 

새해 2019년,

내가 죽을 날이 1년 더 가까워졌고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이 1년 더 가까워졌기에

나는 감사하고 기뻐하리라.

그 이유는 이러나 저러나

사랑의 주 예수님을 만날 날이

1년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1월 1일 부터 …

 

 

새해 2016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의 소식을 접할 줄은 예상했지만

첫날인 1일 부터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참으로 죽을 일이 쌓인 이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예수님 만이 참된 소망되심을 인정하며 고백합니다.

 

 

 

생각보다 기도

 

 

내가 먼저 생각하기 보다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자.

생각에도 질서가 있어야

 

 

지난 날에 스트래스를 받았던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때

나는 내 자신으로 하여금 내 마음대로 상상의 날개를 피면서

무질서하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었던 면이 생각났다.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염려하면서

쓸데없이 괜한 생각들을 많이한 것이다.

결국 나는 내 생각들을 무질서해지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생각들로 하여금 내 생각의 영역을 지배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그만큼 나는 내 생각의 영역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지 못했고

또한 그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질서있게 생각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나는 믿음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만일 내가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신 말씀들을 하신 하나님을 믿었더라면

그 말씀들이 내 생각의 영역을 지배하고 다스리므로 말미암아

모든 근심 걱정 염려하는 생각들을 물리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 결과 나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염러하던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나의 연약한 믿음을 아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사 나를 건져주신 것이다.

나는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말씀 충만, 성령충만함을 구해야겠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으로 하여금

내 생각을 지배하게 만들어 무질서하게 생각의 날개를 피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고

또한 그 말씀의 경계선을 넘어 생각하지 않도록 힘써야 겠다.

 

"하나님의 계시가 없으면 백성이 무질서하겠지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다."

(잠언 29장 18절, 현대인의 성경).

 

 

 

생각을 분산시키는 것도 ...

 

 

그 한 가지 일로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그 일에만 생각이 몰두하게 될 때

어쩌면 다른 한 가지 일을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집중하므로

내 생각을 분산시키는 것도 도움이 될 수도 ...

 

 

생각의 영역에서 싸워 이겨야 한다.

 

 

생각의 영역에서 싸워 이겨야 한다.

세상적인 생각들, 죄악된 생각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워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그리할 때 내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배를 받고 또한 이끌림을 받을 것이다.

그리할 때 나는 말씀 중심된 생각에서 말씀 중심된 행동과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의 영역에서의 싸움

 

 

힘들고 어려울 때 상상의 날개를 펴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 생각의 영역에서

무익한 생각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생각케 만든 후배들의 말

 

 

조금 전 대학 후배 두 명하고 식사하며 커피 한잔 하는데 ...

 

나는 한 후배 입에서 '계산적인 모험'(calculated risk)란 말을 들었다.

내 기억으로는 내 평생에 그 말을 처음 들어본 것 같다.

"모험"이란 말은 수 없이 들었고 말을 했겠지만 '계산적인 모험'이란 말은 ...

흠 ...

모험이 계산적일 수 있을까?

계산적이면 모험이라 말할 수 있을까?

계산해보니 이 두 후배를 안지도 벌써 한 26년 된 것 같다.

 

나는 또 다른 후배의 입에서 내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그 후배는 반 농담삼아 내가 대학교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한 것 같다.

동시에 그가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는 내가 좀 변했으면 하는 맘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후배가 나에게 '변질됬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ㅎㅎ

 

 

 

생각할 때마다 기도하자.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감사하고 기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