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내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상대방에게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 ...

내가 지나치게 내 생각만 그 사람에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즘은 나 자신을 뒤돌아 봐야겠다.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하는데 …

 

 

거울 앞에 스면 내 모습 밖에 보이지 않는데

영적 거울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는

내 자신 보다 다른 사람이 생각나고 있으니 ... ㅠㅠ

 

 

 

내가 변해야 한다.

 

 

지난 주 또 들은 (교역자 분) 이야기입니다: 성도님들이 변하지 않는다.

전에도 어르신 한 두 어분 목사님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지난 주에 다른 분을 통하여 또 들었습니다.

 

오늘 운동하다가 든 생각입니다:

만일 성도님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면

(물론 그것은 인간의 관점인지라 동의는 하지 앉지만)

그 이유는 목회자인 내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구나.

내가 보기에가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 교회는 최고의 교회인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교회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최고의 교회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내가 보기에

이 교회는 별 볼이 없는 교회 같아 보여도

그 교회야 말로

나를 제일 사랑하시고 제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도해 주신 제일 좋은 (적합한?) 교회일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모습을 통해 받는 교훈

 

 

토요일, 교회에서 점심을 사려고 근처 음식점에 걸어가다가 흥미로운 모습을 보았다.

그 흥미로운 모습이란 바로 휠체어를 탄 사람과

그의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은 시각 장애인이었고

휠체어를 탄 사람은 눈으로 앞을 볼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본 이 모습을 통해 교훈을 받고 있다.

그 교훈이란 나는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었던 사람처럼 내 앞날을 볼수가 없다.

그러나 내 주님은 휠체어에 타고 있었던 사람처럼

충분히 내 앞날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할 일이란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주님 뒤에서 주님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

 

 

주님의 몸된 교회를 겸손히 섬김에 있어서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나에게 필요한 것?

 

 

지금 나는 장미꽃 향기를 원하지만

주님은 나에게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은 장미꽃 가시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지도 ...

 

 

 

내가 원하는 위치 vs. 나에게 주어진 위치?

 

 

개인적으로 욕심을 내어 자기가 원하는 위치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보다

팀 전체의 관점을 가지고

그 팀 안에 나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해 나아가는데 더 잘하는게 아닐까 ...?

 

 

내가 제일 힘들고 어려웠을 때

 

 

우리가 제일 힘들고 어려웠을 때

누군가가 진심으로 관심으로 갖고 던지는 따뜻한 한 마디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시 여기는 것을 ...

 

 

내가 중요시 여기는 것을 상대방은 중요시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상대방이 중요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만큼 중요시 여기지 않을 뿐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상대방은 내가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시 여기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람들은 서로가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이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중요시하는 것이 다를찌라도

만일 주님 안에서 신뢰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서로의 다른점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며 또한 인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신뢰의 관계가 형성되 있지 않고 내 마음이 겸손하지 못하다면

상대방이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보다

내가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만을 더욱더 중요시 여길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신뢰의 관계를 형성치 못하게 만드는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우리가 믿음이 성장하면 할 수록

내 입장에서 내가 필요로하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내가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면의 어두움?

 

 

마음 속에 꼭꼭 숨겨놓고 있었던 나의 어두운 것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빛으로 밝히 들춰진다는 것은

심히 부끄럽고 충격적이며 괴로운 일이겠지만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의 어두움을 들춰내실 때

우리는 겸손히 예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그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어두움을 제거해주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내적 변화

 

 

내적 변화가 없이는 외적 변경은 무의미하고 헛된 것이다.

(Without inner transformation, outer changes are meaningless and useless.)

 

 

 

 

 

 

 

너 제임스야 신앙생활을 흉내도 잘 내는구나

 

 

사람들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가족 식구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의 마음을 잘 주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마음을 못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도 잘 못보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우리도 잘 모르는 우리 마음을 잘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잘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마음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주님의 마음을 본받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종교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행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을 제대로 닮아가지 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실은 사람들 보기에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듯 해 보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에게 칭찬까지도 받고 더 나아가서 존경까지도 받습니다. 

어쩌면 처음에 칭찬을 받을 때에는 그들은 양심이 가책을 느끼며

또한 마음으로 괴로워했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회개하고 돌이켜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추구하지 못하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의식하며 그들 앞에서 칭찬과 존경을 받는 삶을 살고자 애씁니다. 

그러한 삶이 지속되다 보니 결국에 가서 그들은 사람들 보기에 바른 신앙 생활을 흉내내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은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의 입술은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마15:8). 

 

 

 

 

'너 탓' '내 탓'하는 사람은 ...

 

 

'너 탓'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그 '너'의 허물만 봅니다.

'내 탓'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의 허물만 바라봅니다.

 

 

 

너무 무리하면 안됩니다!

 

 

그 때 그 때

필요한 만큼

조금씩 조금씩

무리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가능성도 알 수가 없고

자기 발전 및 진보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는

무리를 해서는 아니 됩니다.

 

만일 자기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무리를 계속하게 되면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깨질 수(break)가 있습니다.

너무 잘해주면 조심?

 

 

'어느 사람이 나를 너무 잘해주면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나에게 신뢰를 얻어 사기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광주의 택시 운전사 아저씨의 말)

 

 

 

너무 현실적이면 …

 

 

너무 현실적이면 회의적이기가 쉽다

(내가 나서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너무 이상적이면 ...? ㅎㅎ

 

 

 

 

너무나 의존적인 사랑

 

 

너무나 의존적인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랑의 대상이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않을 때

큰 상심과 우울과 절망까지 맛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바라보시면서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겔 16:30).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범하고 있음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떠한 죄를 하나님께 범하고 있습니까?

 

 

 

누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하는 자는

영적 거울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비춰보지만

사람들 앞에서 교회생활하는 자는

사람들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므로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구를 섬기는 것인가?

 

 

자기 나름대로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말하고 봉사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 16:2).

누군가 당신을 힘들게 하고 있다면 …

 

 

누군가 당신을 힘들게하고

당신 안에 제일 나쁜 점들을 끌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죄를 깨닫게 해주고 계신 줄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섬긴다는 것은 …

 

 

어쩌면 사랑하는 자매를 섬긴다는 것은

그녀가 한발자국 내딛을 수 있도록 내가 그녀에게 징검다리가 되는 것일 수도 ...

 

 

 

 

눈물과 두려움

 

 

피할 수 없는 눈물도 있지만

필요한 두려움도 있는 듯 ...

 

 

 

눈물을 보았습니다.

 

 

눈물을 보았습니다.

마음에 무거운 짐을 엿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사랑의 눈물을 제 마음 눈물의 병에 담았습니다.

 

 

 

눈물을 유익되게 해야 …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하여 흘리는 눈물을

나 자신에게 유익되게 해야 합니다.

 

 

 

눈물이 메말랐습니다.

 

 

눈물이 메말랐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감사의 눈물이,

헌신의 눈물이 메말랐습니다.

 

 

능동적으로 기도 수동적으로 기다림

 

 

'나의 원대로 마옵시오 주님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능동적으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길 수동적으로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능력있는 그리스도인 …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은 ...

 

  1.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2. 진실하며,
  3. 불의한 이익을 미워합니다(출 18:21).

 

 

 

 

 

다 다른 것 만은 아닌 듯 ...

 

 

'나는 당신과 다를 뿐이야'라는 말도 맞을 때가 있겠지만

'당신이 맞고 내가 틀립니다'라는 말도 맞을 때가 분명히 있는 듯 ...

 

 

다 밀어내고 싶어도

 

 

자존심이 깊이 상하여

자신 주위에 모든 사람들(심지어 가족까지)

밀어내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밀어내지 않는 사람을 붙혀주시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

 

 

표현하는 사랑보다

표현하지 않는 마음엔 둔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성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

 

 

부부 관계 속에서

갈등으로 인하여 심신이 지쳐갈 때

다른 이성으로 하여금 내 생각에 아예 침투하지 못하도록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워야 합니다.

다름점의 조화

 

 

아내와 함께 살면 살 수록

나와 아내가 얼마나 많이 다른지를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동시에 주님께서 저희 부부를 짝지어 주시사

서로의 다른점들을 어떻게 보완하여 조화를 이루어 나아가시는지를 더욱더 뚜렷하게 보입니다.

 

 

 

다만 우리 부모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을 위해 최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최선이 그들에겐 최악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아픔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사랑하기에 마음이 아프고 육신의 고통보다

뼈아픈 고통의 현실로 인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을 마음으로 생각할 때 이것이 사랑이요

이것이 주님 안에서 한 가정의 모습이요 이것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당신의 낙은 무엇인가요?'

 

 

'너의 낙은 무엇이냐?'

오늘 친구가 던진 질문입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오늘 이렇게 너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웃는 것이

내 낙이라 말했습니다.

 

소소한 순간 순간의 일에

감사와 기쁨과 행복과 낙을 누립니다.

 

 

 

 

당신의 목사님을 성숙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목사님을 성숙하게 사랑하는 성도님은

목사님의 연약한 점보다 장점을 보고

그 장점을 appreciate하며 encourage 하며 또한 edify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을 성숙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성도님들은

목사님의 연약한 점을 알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기에

그것을 잘해달라고만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안수 집사 후배하고 대화하면서

그 형제가 사랑하는 자기 목사님을 향한 마음을 엿보면서 든 생각임)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음으로 인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당연한 것인데 ...

 

 

당연한 것인데 당연시 안되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당연한 삶을 살고 있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일 수도 ...?

 

 

 

당연한 것처럼 ...

 

당연한 것처럼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됩니다.

 

 

대충대충 넘어가면 안될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아주 싫어할 정도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대충대충 말하고 넘어가려는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덕분에 샌드백 된 남편?  ㅎㅎ

 

 

저희 집은 불화는 아닌데

실제로 많은 미국 사람들처럼 제 아내도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오죽 했으면 제 아내가 저랑 같이 사는 20여년 동안 공화당이 었는데

몇 달 전에 공식으로 민주당으로 바꿨답니다.

결론은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제가 힘들었었습니다. ㅎㅎ

그 이유는 아내가 대통령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저에게 ... ㅋㅋㅋ

어느 정도였냐면 제가 TV를 보고 있는데 뉴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그 때서부터 아내는 저에게 쏟아냈을 정도였습니다.

하두 그래서 나중엔 제가 아내가 올 때면 제가 뉴스를 보다가 채널을 바꿨답니다 ㅎㅎㅎ

지금은 아내가 많이 포기한 듯해요. ㅎㅎ

약 20년 결혼 생활에 대통령 땜시 이런 일도 겪고 ... ㅎㅎ

우리 남편들은 즐거운 맘으로 샌드백 역활을? ㅎㅎㅎ

 

(제가 결혼 전에는 책을 통해서 부부의 "성격 차이"나 "돈 문제"로 갈등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살다가 다른 부부들을 통해 부부의 "영적 차이"로인해서도

부부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된 후에는

충분히 "정치적 차이"로도 부부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하).

 

 

 

대화 시간?

 

 

주님 안에서

약 1시간 대화를 했어도

10분 밖에 대화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깊은 교제?

 

 

주님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나로 하여금 더 깊은 교제를

나누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더 나을텐데요 …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자 그 일을 하려고 하기보다

내가 그 일이 좋아서 즐기면서 만족을 누리면서 하는게 더 나을텐데요 ...

 

 

 

 

 

더 두려운 것

 

 

하나님께 매를 맞으면서도 왜 매를 맞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

참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 매를 맞고 난 후에도

하나님의 가르침(교훈)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더 이상 조의 노예가 될까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

 

 

고통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통 가운데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더 큰 축복은 …

 

 

잘 가르치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도 축복이겠지만

더 큰 축복은 잘 배우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욱 빛을 발하는 믿음

 

 

좋은 재료인 순결한 하나님의 진리를 먹으면서 자라나고 있는 믿음은

불과 같은 시험 속에서 더욱더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나쁜 재료인 거짓된 교훈을 먹으면서 퇴보하고 있는 거짓된 믿음은

불과 같은 시험 속에서 소멸됩니다.

더욱더 깊고 큰 은혜 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 범한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록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더욱더 깊고 큰 은혜 의식을 가지고

겸손히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처럼 죄인 중에 괴수라는 자백속에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고 한경직 목사님이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한 죄를 크게 여기시면서

하나님의 은혜 의식이 크셨던 것처럼).

그리할 때 우리는 교만할 수가 없으며 욕심을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덕을 세우고자 하는 동기는 좋지만 …

 

 

덕을 세우고자 하는 동기는 좋지만

진실되지 못하게 너무나 포장하는 것은 좀 ... ㅠ

 

 

 

돈 보다

 

 

많은 돈 보다

한 사람을 사랑해야 ...

돈을 사랑하면 돈으로 망한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여 추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돈으로 우리를 징계하실 것입니다.

 

(Iain M. Duguid, "EZEKIEL" 주석을 읽으면서)

 

 

 

돈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하는데 …

 

 

돈을 나의 편안함을 위하여 자꾸만 쓰는

내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동역자의 사랑이 참 좋습니다.

 

 

 

주님 안에서 은혜 가운데 나누는 동역자의 사랑이 참 좋습니다.

그 사랑은 저로 하여금 웃게 만듭니다.

그 사랑은 저로 하여금 눈물난게 만듭니다.

그 사랑은 저의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저는 그 동역자의 사랑이 참 좋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 관계가 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우리 이웃과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이 두 관계가 다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만 중요시 한다는 것은 균형을 잃은 생각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면 하나님께서 중요시하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이 두 관계에서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과 나(우리)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좋을 때에 자연스럽게 우리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관계가 안좋아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안좋으면 우리 이웃과의 관계도 좋을 수가 없고,

우리 이웃과의 관계가 안좋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외치는 것은 “회복”(Restoration)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회복되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인간관계에서도 참된 회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두려움보다 경외심

 

 

죄를 범하고 있는 교회는 장차 올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기 보다

그 징벌을 통해서라도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며 정화시키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경외해야 합니다.

 

 

두려워 떨고 있을 때 ...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좀 붙잡아 주고

누군가가 나를 좀 이끌어 주길 원할 때가 있습니다.

두렵다!

 

 

목회자의 변질... 참 두렵다.

교인 수가 많아지고 교회 건물도 더 커지면서 목회자의 마음도 더 커지는 것 같다...

순수한 초심은 어디간데 없고 마음에 욕심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 마음조차도 못 보고 잇다. 마치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

그 이유 중 하나는 아직도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목회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변질된 마음에서 나온 변질된 목회인 줄도 모르고 ...

두렵다!

 

 

 

둘 다 문제라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대충 넘어가거나 인정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조그만 실수는 강하게 비난하거나 질책하는 것도 문제지만

스스로의 잘못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자기의 조그만 실수도 강하게 자책하는 것도 문제라 생각합니다.

 

 

 

듣고 순종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겠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겠다.

분명히 헌법에서 그리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헌법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우리의 생각이나 경험이나 관래에 대한

우리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확신을 좀 내려놓고

한번만 좀 자세히 헌법에서 뭐라고 말하는지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가 잘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텐데 ...

그런데 들을 수 있는 귀가 부족하기에 깨달음이 없다.

깨달음이 없기에 계속 우리 주장만 한다,

그것도 흥분해서. ㅠㅠ

 

 

 

 

 

들춰지고 가리워지는 은혜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춰지는 나의 죄가

십자가에 내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사하시고자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에

가리워지길 기원합니다.

 

따라오는 자는 …

 

 

따라오는 자는 지도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되 따라오는 자는 지도자의 말(지시?)에 더하거나 빼거나 하면 아니됩니다.

지나친 열정(열심)은 주로 지도자의 말에 더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게으름은 주로 지도자의 말에 빼는 것 같습니다.

 

 

딱 걸린다는 것

 

 

어제 만남 속에서 집사님들 중 한 지체가

저를 보더니 '목사님, 졸리시는가 보다'라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ㅎㅎ

실제로 그 때 많이 졸려서 자꾸만 눈이 감기는 것을 뜨고 있으려고 했거든요.  ㅎㅎ

근데 딱걸린 겁니다 ㅎㅎ

저는 그게 좋습니다, 딱 걸린게요 ㅎㅎ

무슨 말이지 알겠어요? ㅎㅎ

 

 

딸에게 강화시키면 안됩니다.

 

 

엄마가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여

친구처럼 지내면서

할 말 못할 말을 잘 가리지 않고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다 나눌 때에

엄마 자신은 자기 마음의 부정적인 면까지도

사랑하는 딸에게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