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많이 힘들어요’

 

 

많이 힘들 때

'나 많이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내 안에 욕심과 탐심을

버리고 또 버려야 할텐데 ...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면

우리는 그 기쁨과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나눔

 

 

 

 

내 삶을 나눔에는 투명성과 정직이 필요합니다.

내 마음을 나눔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나눔에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눔의 기쁨을 누리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고 위로해 주시며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진심을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눔의 영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심지어 오해를 받고 상처를 입는다 할찌라도 말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진정한 공동체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삶을 나누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한번 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나눔의 삶을 주님 안에서 즐기십시다.

 

 

 

 

나눔의 두 반응

 

 

 

말씀 묵상과 짤은 나눔의 글을 페북과 네이버 블로그, 교회 웹싸이트 외에 이 메일로도

여러 지체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나눔 가운데서 사람들의 반응을 두 가지로 요약을 한다면 은혜를 받던지 아니면 시험을 받습니다.

이 두 가지 반응을 생각할 때 저는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한 무리들의 두 가지 반응이 생각났습니다.  그 두 그룹 다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에 찔림이 있었지만(행 2:37, 7:54)

한 그룹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를 한 반면에(2:37-38)

다른 그룹은 설교를 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입니다(7:58-59).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찌를 때에 우리는 주로 어떻게 반응을 하고 있습니까?

나눔의 진실성

 

 

 

나눔의 진실성이

오해를 받고 심지어 왜곡이 된다 할지라도

주님이 그 마음을 아시고

한 사람이라도 그 나눔의 진실성을 이해한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합니다.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당신이 나를 신뢰하기가 힘들어졌다해도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그 이유는 나는 당신의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당신을 신뢰하기로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목사인가 공모자인가?

 

 

 

교인들 중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면서

마음 속으로는 이미 재물을 우상화한 사람들이

나를 통하여 물질의 축복 설교를 듣고 싶어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들의 요구대로 물질의 축복 설교를 할 때

나는 더 이상 목사이기를 포기한 것이고 또한 그들의 공모자가 된 것이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이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소모품 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가 …?

 

 

 

교회 안에서 열심히 섬기면서

아무리 그 사람이 나에게 친절을 베풀고

따뜻하게 대해준다 할지라도

그의 의도가 나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나는 그 사람에게 사랑과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저 그 사람의 목적을 이루는 소모품 밖에 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될 수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나 자신이 너무나 힘들기에

나는 당신의 힘든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다.

 

혹은 ..

 

나는 당신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나의 아픔을 나누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떠한 사랑에 익숙해져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통하여 느끼는 사랑에 너무나 익숙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고난)을 통하여 경험하는 사랑에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목사님을 신뢰하며 존경합니다.

 

 

 

거짓을 미워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진실된 목사님,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사랑하는 목사님,

가르치고 선포한 말씀대로 실천해 옮기고자 힘쓰는 목사님,

나는 이런 목사님을 신뢰하며 존경합니다.

 

 

 

나는 직구, 주님은 변화구?

 

 

나는 직구를 던지고 싶은데

주님은 변화구를 던지신다.

 

나는 지름길로 곧장 가고 싶은데

주님은 나로 하여금 돌아가게 하신다

(참고: 출애굽기 13장 17-18절).

 

변화 무쌍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나의 직구의 관점으로 다 이해할 수 있으랴.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God's masterpiece)이다' 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깨달을 때

우리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 최소한 양심이 있는가?

 

 

 

나는 ... 최소한 양심이 있는가?

 

사람으로서,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목사로서.

 

 

 

나를 이해하는 사람, 오해하는 사람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 적어도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서는 사랑을 느끼지만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사랑보다 답답함을 느낌니다.
그래도 나는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렵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으려고 노력하렵니다.

 

 

“나”만의 세계에서 탈피?

 

 

"나"만의 세계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의 세계에도 관심을 갖고 알아갈 필요를 느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세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세계를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

그 방법은 예수님의 이중 계명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마 22:37-39).

“나쁜 그리스도인”

 

 

왜 당신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 나쁜 그리스도인 " 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러면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요?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하는데 ... ㅠ

 

 

잘못된 추축으로

상대방을 의심하는 습관을

버려야 할텐데 ... ㅠ

 

 

 

 

 

나서지 말고 묵묵히 지며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나서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조심해야 합니다.

복잡한 일이면 일일수록

하나님께 겸손히 믿음으로 다 맡기고

좀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복잡한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묵묵히 지켜보십시다.

나약한 그리스도인들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의 마음을 너무나 편안하게 해주되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고 싶어하는 나약한 그리스도인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믿음은 …

 

 

나에게 필요한 믿음은

말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께 순종하는 믿음이요

주님을 나의 소망으로 믿고

인내하는 믿음이다.

 

(Mark D. Futato 교수님의 "The Book of Psalms" 주석을 읽으면서)

 

 

 

나의 강함, 나의 약점?

 

 

 

나의 강함이

나의 약점이 될 수 있구나 ...

 

나의 됨됨이가 하나가 되어지길 ...

 

 

지금 내가 목회에 필요한 것은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사는 방식에

어긋남이 없는 한결같은 일체의 삶이다.

만일 교회 성도님들이

나의 존재와 내가 하는 말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점진적으로 강하게 느낄 수만 있다면,

만일 그들이 내가 아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순종하는 삶을 살아하므로

말씀인격화되어 가는 삶을 엿볼 수만 있다면 ...

나의 됨됨이가 하나가 되어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나의 명철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해하려고 하면 ...

 

 

나의 명철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해하려고 하면

나는 의심과 불신, 불순종과 불만족 속에서

결국 하나님을 불평, 원망만 하게 될 것이다.

 

 

 

나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좀 뼈져리게 느끼곤 하는

우리 자신의 무능력함이나 무기력함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 같이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좀 뼈져리게 느끼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잘 안되고

또한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나의 미련함

 

 

나의 미련함이 어디까지 인가 ....

 

 

나의 미련함은 ...

 

 

나의 미련함은 반복되는 내 기도의 결과,

즉 내가 기도하고 기대한대로 되지않은

결과를 통해서도 내가 얼마나 내 고집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내 명철과 지식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잘못 기도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의 불순종하는 모습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하와의 불순종한 모습의 비춰 볼 때 드는 몇가지 생각은,

 

  1. 보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보는 것이다.

 

선악과가 보암직하다는 것은 이미 나는 주님을 바라보는데서 시선이 멀어져 있다는 증거이다.

 

  1. 듣지 말아야 할 사탄의 미혹의 말을 듣는 것이다.

 

아예 사탄의 말을 듣지도 말고 사탄과는 말을 섞지도 말아야 하는데 이미 생각의 영역에서 사탄의 거짓말과 섞고 있다는 것은 주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1. 불순종하는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과 멀어지고 '선악과'에 가까이 접근해 있으므로 나의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키고자 죄악된 선택을 하면서도 그 죄악된 선택의 큰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Lydia Brownback, LEGACY OF FAITH: From Women of the Bible to Women of Today"란 책을 읽으면서)

 

 

 

 

나의 사명

 

 

떡 다섯 덩어리를 떼어서 남자만 오천명 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신 주님,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이다.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

나의 삶의 주인은?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며,

우리는 주님의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여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비록 역경과 고난이 있다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참된 자유와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어서 우리 마음대로 살면

이 세상에서 성공해서 순탄한 길을 걸어갈 것 같아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이 세상의 노예가 되어

욕심과 쾌락에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이란 책을 읽으면서)

 

 

 

 

나의 생각과 사고

 

 

나의 생각은 성경에 단단히 고정되있어야 한다.

나의 사고는 하나님이 성경에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목적에 대해서 계시하신 모든 것에 종속되어 있어야 한다.

나의 사고 과정은 성경에 계시에 의해서 나에게 전해진 것에 지배당하고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

나는 성경에 계시된 말로 사고하고 기도해야 한다.

 

(유진 피터슨의 "물통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나의 선행을 기록하지 말아야 …

 

 

내 심비에 나의 선행을 기록하지 말아야 한다.

그 목적은 내 마음에 공로의식이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오직 내 심비에는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더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는 오직 은혜의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그리할 때 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주님의 일을 더욱더 수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무익한 종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수치심보다 ...

 

 

나의 수치심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훨씬 더 크기에

제 자신의 허물을 나누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전했습니다.

 

 

나의 슬픔도

 

 

나의 슬픔도 자신의 슬픔으로 삼으시는 주님,

왜 나 같은 자를 사랑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영어 복음 성가를 들으면서 운전하고 교회 새벽기도회에 오는 중에 들은 생각]

나의 신뢰심을 흔들어 놓는 말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나의 신뢰심을 흔들어 놓는

질투심에서 나오는

상대방의 삐뚤어진 말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신앙생활에 더 유익된 것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그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부지런히 듣는 것이

나의 신앙 생활에 더 유익합니다.

 

 

 

나의 잘못, 상대방의 실수

 

 

나의 큰 "잘못"은

"미안합니다, 제 잘못 입니다"라는

한 마디 없이 침묵하면서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는

용납하지 않고

뭐 그리 잘났다고 크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지 ... ㅠㅠ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다는 것은 ...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다는 것은

자기 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유익이 될만한 지식을 가지고

입술로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 그 젊은이들은 그 나이 드신 어른을 보면

'그래도 저 분에게는 그나마 배울점이 좀 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젊은 사람들이 나이드신 어른을 볼 때

'나는 저분을 존경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지식은 우리에게 지적인 배움을 줄 수 있지만

그 분들의 인품과 덕망과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그 분들을 향하여 존경심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낙망과 심지어 절망 가운데서도 ...

 

 

낙망과 심지어 절망 가운데서도

오히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만 갈망하므로

소망 중에 즐거워하길 원합니다.

 

남남처럼 지내고 있는 식구?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식구가

남남처럼 지내고 있는 것을 볼 때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그나마 같이 사는 이유는 집 안에 어머니(또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기에 (집 안에 어르신마저 돌아가시면 뿔뿔히 흩어질 수 밖에?)

 

  1. 남남과 같은 식구보다 친한 친구가 더 나을 수도 ..

 

 

남편에게 거는 기대?

 

 

부인 자매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자신들의 남편이 자기를

영적으로 이끌어 주길 바라고 있을까 ...

 

 

 

 

남편의 설교, 아버지의 설교?

 

 

사랑하는 아버지의 임종 예배 때

사랑하는 남편의 설교를 들으면서

꼭 내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고 말하는 사랑하는 아내 ...

남편의 침묵

 

 

"남편들이 침묵할수록 아내의 공유하며 확인하고 싶은 욕구는 더욱 가증된다.

그리고 아내가 요구하면 할수록 남편은 더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아내들은 남편의 침묵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 못하고 아내들이 계속 공유학고 확인하고 싶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면

그것은 남편으로 하여금 더욱더 침묵하게 만들 것이다.

침묵도 남편들에게는 대화의 한 방편이다.

그러나 아내들은 남편의 침묵을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라는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하여 의심과 불신을 들게 하긴 하지만 말이다.

아내들은 남편의 침묵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

 

 

 

‘낮게’가 아니라 ‘낫게’

 

 

자기 보다 다른 사람들을 '낮게' 보는 것은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겸손한 자는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낫게" 여깁니다(빌 2:3).

 

 

 

내 계획대로 안되었지만

 

 

내 실수로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잘된 것을 보고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기억력 감소에 감사하는 이유는 ...

 

 

 

내 기억력 감소에 감사하는 이유는

그 때 그 때 적는 습관과

미루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기준과 내 기대에 못미친다고 …

 

 

내 기준으로

(성경적 기준이 아닌)

내 기대에 못미친다고

(주님의 기대가 아닌)

내 마음에 불만족 속에서

(주님 안에서 자족하지 못하고)

내 입술로 불평하고 또 했습니다

(감사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내 뜻과 목적과 계획되로 안되었음을 감사

 

 

내 뜻과 목적과 계획되로 되지 않았지만

지나고 나서야 왜 그리 안되었는지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계획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되니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심어준 귀한 사랑의 추억들 ...

 

 

 

주님께서

사랑하는 형제를 통해

내 마음에 심어준 귀한 사랑의 추억들,

주님과 그 형제에게 감사하면서

나 또한 그 형제가 나에게 보여준 그 사랑처럼

내 이웃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리라.

 

 

 

내 마음에 조급함을 경계하자.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믿자.
기대하지 않았던 어려운 상황으로 인하여

놀라 걱정 근심 가운데 마음이 조급해 져서 성급하게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자.
내 마음에 조급함을 경계하고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자.
분명히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뚯은 이루어 질 것이다.
내 수단과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

 

 

 

내 마음의 기념비에 ...

 

 

내 마음의 기념비에

내가 주님을 위해서 행한 일을 기록하지 말고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을 기록하자.

내 마음의 나눔이 수다꺼리가 된다 할찌라도 …

 

 

 

내 마음의 나눔이

다른 사람에 의해 수다(gossip)꺼리가 되어

내 귀에 들릴 때

내 마음이 불편하고

심지어 내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주님 안에서 내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 안에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교제를 통하여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Sharing is Caring"입니다.

 

 

 

내 마음이 이미 교만해졌다는 싸인

 

 

지금 내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지 못하고

내가 한 일만 보이고 있다면

나의 마음은 이미 교만해 진 것이다.

 

 

 

 

내 믿음이 얼마나 작은지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컨트롤(control)하고 계시는 줄 알면서도

우리의 위기와 고통 가운데서 근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작고 약한지 깨닫게 됩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의 믿음의 작음과 약함을 깨달을 때에야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께 메달리게 되고 부르짖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더 견고한 믿음을 간구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작고 약한 믿음을 가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용납해주시고 사랑해주시며

품어주신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니다.

 

 

 

 

내 상황의 주님

 

 

우리는 상황에 다스림을 받기보다

그 상황의 주님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DEAN R. ULRICH, "FROM FAMINE TO FULLNESS:

THE GOSPEL ACCORDING TO RUTH"를 읽으면서)

 

 

 

 

 

내 신앙생활의 큰 문제 중 하나는 …

 

 

내 신앙생활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나의 불충분함(insufficiency)이 아니라

나의 불충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시는

충분하신(Sufficient)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ANTHONY T. SELVAGGIO, "FROM BONDAGE TO LIBERTY - THE GOSPEL ACCORDING TO MOSES"를 읽으면서]

 

 

내 신앙의 틈은?

 

 

우리 신앙의 틈을 조금만 보여도

사탄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유혹/미혹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게 만듭니다.

 

내 신앙의 틈은 무엇인가?

 

 

내 이성

 

 

물론 하나님의.지혜가 아닌 내 지혜를 의지하여 사용하는 것은 아니되겠지만

그렇다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흠뻑 젖어가는(saturate)

내 이성을 사용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 이웃을 그리 사랑해야 마땅한 것일진데 …

 

 

하나님께서 나 같인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원수된 죄인을

먼저 사랑하시되

무조건적으로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셨고

지금도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 사랑하실 것이다 라는 사실을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나 또한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내 이웃을 그리 사랑해야 마땅한 것일진데 ...

 

 

 

 

내 인생에 3개의 전환점

 

 

내 인생에 역전 드라마를 쓰시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내 인생에 3개의 전환점을 주셨다:

 

  1. 1987년 5월

           주님께서 교회 대학부 집회 때

           요한복음 6장 1-15절 말씀으로 나를 중생케 하시고 부르신 일

 

  1. 1997년 4월

            주님께서 아내와 짝지어 주시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하신 일

 

  1. 1998년 4월

            주님께서 첫째 아기 주영이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사랑을 경험케 하신 일

 

내 책임이다.

 

 

내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주님께 순종하는 본을

내 아내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에,

아내가 남편인 나에게 순종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보고 자라나는 세 자녀들은

아빠인 나에게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책임은 가장인 나에게 있다. ㅠ

 

 

 

 

 

내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왜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저 관망하시는 것 같고 잠잠히 계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 영적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시는 것은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영적 유익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기도의 단련’과 “인내와 연단입니다(박윤선).

또 다른 영적 유익은 우리는 고통의 터널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게 되고

또한 인내를 통해서 연단, 즉 우리의 인격이 더욱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이 빚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