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원망비우기

 

 

 

앞 장에서는 우리 안에 있는 음란과 잘못된 욕망을 비우고, 우리의 사랑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는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11장에서는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 쉽게 자리 잡는 또 하나의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로 원망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순간 원망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저 사람은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왜 우리 가정은 이렇게 힘든가?  “왜 교회는 이 모양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허락하셨는가?  입술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수없이 이런 말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원망은 단순히 불평 몇 마디를 하는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원망은 우리의 시선을 바꾸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하며,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을 비운다는 것은 단순히 불평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원망의 뿌리에 있는 불신과 불만족,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살피고 비우며, 그 자리를 믿음과 감사로 채우는 것입니다.

 

원망의 뿌리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보면 원망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물이 없을 때 원망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할 때 원망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1장을 보면 그들의 원망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장막 안에서 이렇게 원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1:27).  놀라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미워해서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셨기 때문에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불신앙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미움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죽음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버림받은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의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1:32).  결국 원망의 깊은 뿌리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보다 앞서 가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어려움이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크게 보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망이 올라올 때 단지 “불평하지 말아야지”라고 입술만 막아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고 있는가?  원망을 비우는 일은 결국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는 일입니다. 

 

불신은 불순종으로, 불순종은 불만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신명기 1 26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순종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원망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불신앙은 불순종을 낳고, 불순종은 불만족으로 이어지며, 불만족은 원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원망이 언제나 이 순서로 생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적어도 우리 자신에게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원망하는 이유가 정말 환경 때문만인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가?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더 붙잡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나보다 더 잘 아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원망의 입술만 고치려 하지 말고 그 뿌리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펴야 합니다.

 

원망은 과거의 ‘애굽’을 아름답게 보이게 합니다

 

민수기 2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어려움 때문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현재의 어려움을 불평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마침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20:5).  애굽은 그들에게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노예로 살던 곳이었습니다.  고된 노동과 압제를 당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구원해 주셨던 곳입니다.  그런데 광야가 힘들어지자 애굽이 좋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원망은 기억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통은 크게 보이고 과거의 고통은 작게 보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결혼생활이 힘들면 혼자였던 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직장이 힘들면 이전 직장이 훨씬 좋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전 교회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힘들어지면 심지어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삶이 더 자유롭고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과거의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서 나를 건져내셨는지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인도하실 길을 바라봅니다.  원망은 애굽을 바라보게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합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를 물리치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없자 다시 원망했습니다.  출애굽기 15 24절은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라고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16장에서는 먹을 것 때문에 원망했습니다.  17장에서는 다시 물 때문에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경험했지만 새로운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이전의 은혜를 잊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데 오늘 한 가지 문제가 생기면 모든 은혜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받았는데 한 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아무것도 받지 못한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원망은 없는 것을 크게 만들고 이미 받은 은혜를 작게 만듭니다.  감사는 반대로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원망이 올라올 때 물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잊어버리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어떻게 나를 인도하셨는가?  “내게 이미 주신 것은 무엇인가?  감사는 현실의 문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원망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게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죄를 범한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셨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3:12).  아담은 여자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더 깊이 보면 “하나님이 주셔서”라고 말하며 하나님께까지 책임을 돌리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와도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창세기 3장의 본문을 단순히 부부 사이의 원망 이야기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인간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다른 대상을 탓하려는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쉽게 그렇게 합니다.  “배우자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도 그랬다.  “부모님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교회가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먼저 시작했다.  “환경이 이러니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실제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책임은 분명히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잘못이 내가 범한 죄의 책임까지 가져가 주지는 않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살핍니다.  “주님, 제가 잘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고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원망을 비우는 것은 모든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06 25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의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원망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이 함께 나타납니다.  원망에 사로잡히면 내 생각이 너무 커집니다.  “왜 이것밖에 안 되는가?  “왜 나만 힘든가?  “왜 저 사람은 저런가?  “왜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가?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차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여유가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문제가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부족한 것이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보다 내가 원하는 일이 더 중요해집니다.  그러므로 원망이 올라올 때에는 하나님 앞에 멈추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지금 무엇 때문에 원망하고 있습니까?  “제가 무엇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까?  “제가 무엇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지금 제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원망의 소리만 반복하지 말고 다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원망을 하나님께 가져가면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원망을 비운다는 것이 아픔과 질문을 하나님께 말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의 시편에는 하나님 앞에서 고통과 답답함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어찌하여”라고 묻기도 합니다.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억울함을 말하기도 합니다.  고통을 숨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픈데 웃는 척하는 것도 아닙니다.  힘든데 “저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차이는 그 마음을 어디로 가져가느냐에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계속 퍼뜨리면 험담과 분열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반복해서 키우면 미움과 원망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져가면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너무 힘듭니다.  “이 일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저도 화가 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정직하게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 마십시오.  말씀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원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되, 원망을 그대로 품고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 제기를 ‘원망’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원망을 다룰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모든 불만이나 문제 제기가 죄 된 원망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교회 안에서 실제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헬라파 사람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향해 원망했습니다.  이때 사도들은 “믿음이 없어서 불평하는 것이니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실제로 있는지 살폈습니다.  그리고 사역의 구조를 바로잡았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세워 구제의 일을 맡기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더욱 힘썼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왕성해지고 제자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원망의 소리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불씨가 될 수도 있었지만, 지도자들이 그 안에 있는 실제 문제를 살피고 바로잡았을 때 오히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방향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원망을 제기하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하고, 원망을 듣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살펴야 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만을 모두 의로운 것으로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듣는 사람도 모든 문제 제기를 “원망”이라는 말로 막아서는 안 됩니다.  “이 말 속에 실제로 고쳐야 할 문제가 있는가?  “내가 듣기 싫어서 원망이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은가?  “이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는가?  이렇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원망의 말보다 그 마음을 들으십시오

 

가정은 원망이 가장 쉽게 쌓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남편은 생각합니다: “아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아내는 생각합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를 원망하고, 자녀는 부모를 원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원망이 반복되면 서로의 말보다 상처만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불만을 말할 때 즉시 반박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당신도 똑같아.  “당신이 먼저 그랬잖아.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그러나 때로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 힘들어졌습니까?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습니까?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고쳐야 합니까?  배우자의 모든 말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말 속에 실제 아픔이 있는지는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사과해야 합니다.  남편도 아내에게 사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도 자녀에게 사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망의 말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배우자나 가족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다고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궁극적인 만족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가족을 사랑하되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자리를 가족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원망의 소리를 방어하기보다 먼저 들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원망의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플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섬겼는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가?  “왜 저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는가?  이런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모든 문제 제기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면 필요한 말을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의 사도들은 원망의 소리를 들었을 때 먼저 문제를 살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비판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때로는 사실과 다른 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부당한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물어야 합니다.  “주님, 이 말을 통해 제가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이 있습니까?  “제가 놓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고 부당한 말로 상처받았다면 그 상처를 다른 성도들에게 퍼뜨리지 말고 하나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지도자의 상처가 공동체 전체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원망의 소리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지혜가 아니지만, 무조건 막아 버리는 것도 지혜가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분별하고, 고쳐야 할 것은 고치며,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은 맡겨야 합니다.

 

원망 대신 감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빌립보서 2 14절은 말씀합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원망은 반복하면 습관이 됩니다.  처음에는 한 가지 일에 대한 불평이었는데 나중에는 모든 것을 불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부족한 것을 먼저 봅니다.  사람의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봅니다.  감사할 일보다 불평할 일을 먼저 찾습니다.  그러므로 원망을 비우려면 감사도 의도적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감사하십시오: “오늘도 생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정에서 감사하십시오: “함께 살아갈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에서 감사하십시오: “완전하지 않지만 함께 예배할 공동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터에서도 감사하십시오: “오늘 일할 기회와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고백하십시오: “주님,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감사는 현실을 미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는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서 드리는 고백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사실을 붙드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원망 대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예배자가 되십시오

 

욥은 하루아침에 엄청난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재산을 잃었습니다.  자녀들을 잃었습니다.  그의 슬픔은 실제였습니다.  욥기 1 20절은 그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아프지 않은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 가운데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슬픔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제가 모든 이유를 알지 못해도 주님께서 알고 계심을 믿습니다.  “원망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붙드는 사람입니다.

 

 

 

 

“원망” 비우기의 원리와 실천 지침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원망을 어떻게 비워 갈 수 있을까요?  원망을 비우는 것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원망이 올라올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 가져가며, 불신과 불만족을 비우고 믿음과 감사로 채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1.   원망이 올라올 때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피십시오

 

원망스러운 일이 생기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부터 찾기 쉽습니다.  그러나 먼저 이렇게 물으십시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원망하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가?  “두려움 때문인가?  “비교 때문인가?  “상처 때문인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십시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인정하십시오.  회개할 것이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원망의 순간은 다른 사람의 잘못만 찾는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살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2.   원망을 사람에게 퍼뜨리기 전에 하나님께 가져가십시오

 

마음이 힘들 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때로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상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원망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서 퍼뜨리며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공동체에 불신과 분열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가져가십시오.  솔직하게 말씀드리십시오.  울어도 됩니다.  답답함을 말해도 됩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마음도 살피십시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험담이 아니라 해결을 위한 대화를 하십시오.  원망을 사람에게 퍼뜨리지 말고 하나님께 가져가 기도로 바꾸십시오.

 

3.   과거의 ‘애굽’을 미화하지 말고 지금까지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현재가 힘들 때 과거가 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망 때문에 과거를 왜곡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디에서 나를 건져내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지금까지 인도하신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기도에 응답하셨던 일을 기억하십시오.  힘들 때 붙들어 주셨던 일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과거의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비워 주십시오. 지금도 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앞으로 인도하실 길을 믿게 하십시오.  원망은 과거를 붙들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듭니다.

 

4.   문제를 제기할 때에는 비난보다 회복을 구하십시오

 

실제 잘못이 있다면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일터에서도 그렇습니다.  원망을 비운다는 이유로 부당한 일을 무조건 참거나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를 말할 때 자신의 목적을 살펴야 합니다.  “나는 이 사람을 공격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가?  “사람들에게 내 편을 만들려고 하는가, 아니면 당사자와 정직하게 대화하려고 하는가?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싶은가, 아니면 관계와 공동체가 건강해지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문제를 듣는 사람도 방어하기 전에 물어야 합니다.  “이 말 가운데 내가 들어야 할 것이 있는가?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듣는 사람은 실제 문제를 살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원망의 소리가 회개와 변화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5.   원망의 자리를 감사와 믿음으로 채우십시오

 

원망을 비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중요합니다.  불신을 비우고 믿음으로 채우십시오.  불만족을 비우고 자족으로 채우십시오.  비난을 비우고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두려움을 비우고 기도로 채우십시오.  원망을 비우고 감사와 찬양으로 채우십시오.  매일 하루를 마치며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오늘 나는 무엇 때문에 원망했는가?  “누구를 탓했는가?  “그 원망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나는 그것을 하나님께 가져갔는가?  “내가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오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하나님 앞에서 반복할 때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원망을 비우는 일도 우리의 의지만으로 할 수 없습니다.  고통이 깊을 때, 억울함이 클 때, 오랫동안 기다려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은 쉽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고 원망의 뿌리에 있는 불신과 불만족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잊어버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나게 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게 하시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붙들어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마음에 있는 원망을 보여 주십시오.  사람과 환경을 탓하면서 정작 제 마음속에 있는 불신과 불만족을 보지 못하지 않게 하십시오.  제가 잘못한 것은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게 하시며,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 제 책임으로 떠안지도 않게 하십시오.  고통과 서운함을 사람들에게 퍼뜨리기보다 먼저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게 하십시오.  제가 잊어버린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과거의 애굽을 그리워하지 않게 하십시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게 하시고, 원망을 비운 제 마음을 믿음과 감사와 찬양으로 채워 주십시오.

 

원망을 비운다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을 감추는 것도 아닙니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 무조건 침묵하는 것도 아닙니다.  원망 비우기는 고통과 불만을 하나님께 정직하게 가지고 나아가되, 그 고통이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불신과 비난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상대방에게 말해야 할 것은 사랑 안에서 말하며,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원망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내 뜻대로 되지 않는가?  그러나 믿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원망은 부족한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감사는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하게 합니다.  원망은 과거의 애굽을 바라보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길을 바라보게 합니다.  원망은 다른 사람의 책임을 먼저 찾습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먼저 나 자신을 살핍니다.  그러므로 오늘 원망이 마음에 올라온다면 그것을 숨기지도 말고 사람들에게 퍼뜨리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말씀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살피십시오.  회개할 것은 회개하십시오.  고쳐야 할 것은 고치십시오.  감사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원망은 “왜 내 뜻대로 되지 않는가?”라고 묻지만, 믿음은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원망을 비우고 그 자리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감사와 찬양으로 채우는 것,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걸어가야 할 “원망 비우기”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