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에 환호하는 우리에게
김규나 작가 2025.09.22 11:00
억압과 고통 속에서도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 누군가는 원한과 분노, 약탈과 방화로 마지막 순간을 소진하지만,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회고하며 평화를 경험한다.
거대한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한다. 과학자들은 종말을 예고하지만, 세상은 놀라울 만큼 무관심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라(Look up)!”고 절규하는 목소리는 희화화되고, 인류의 위기는 정치적 셈법과 상업적 이해관계 속에서 흩어져 버린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에 환호하는 우리 현실을 풍자한다.
천문학자 랜들과 대학원생 케이트는 인류를 멸망시킬 혜성을 발견한다.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10억 배나 위력이 큰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6개월. 그들은 백악관에 찾아가 혜성의 위험을 경고하지만, 대통령의 관심은 오직 지지율과 재선 전략뿐이다.
대통령은 랜들이 주립대 교수라는 핑계로 판단을 보류한다. 그는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대학교수, 노벨상 수상자, 권위 있는 연구소 전문가 발표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가 낙하산으로 앉힌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이 랜들 주장을 묵살하자, 혜성의 위험성은 완전히 무시된다. 무엇이 진실인가 하는 문제는 얼마나 권위 있는 사람이 주장하느냐에 따라 신뢰도가 달라지는 것이 세상의 단면이다.
대중도 진실을 외면하긴 마찬가지다. 랜들과 케이트는 시청률이 높은 인기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위험을 알리기로 한다. 하지만 혜성과 행성의 차이조차 알지 못하는 피디(PD)는 그들 주장을 흔한 종말론으로 치부한다. 앵커들도 새로운 별을 발견한 걸 축하하듯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일관한다. 코에 피어싱한 케이트의 외모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모습도 시청자의 조롱거리가 된다. 결국 곧 닥칠 지구 소멸은 아이돌 스타의 연애 소식과 정치 뉴스에 밀리며 일기예보만큼의 관심도 얻지 못한다.
“우리는 싹 다 죽을 거라고요!”
랜들과 케이트는 필사적으로 외친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지않는다. 두려움을 견디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냉정히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을 속이는 존재다. 그러나 피한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혜성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인류는 농담을 소비하며 멸망에 바짝 다가선다.
태어나면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하물며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질 거라는 끔찍한 예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당장 손에 박힌 가시는 죽을 듯 아프게 느낄지언정 인류 전체를 파멸시킬 혜성, 우주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폭탄의 위험성을 실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자가 아무리 수치로 증명해 보여준다 해도 머나먼 우주에서 벌어지는 사건은인간에게 두려움의 실체라기보다 별똥별 같은 판타지일 뿐이다. 현실에서라면, 인류 멸망을 두려워하며 공포에 떠는 것이야말로 비이성적이다. 지구 종말론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모두 거짓으로 판명 났다. 전쟁 없는 날이 하루도 없는 세상, 매년 수만t의 크고 작은운석이 대기권으로 진입하며 불타 사라지고 있지만, 지구는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 태양 팽창으로 인한 지구 소멸이 약 75억 년 후로 예상된다고 하니 지금부터 걱정할 일도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구가 광활한 우주에서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며, 우주가 인간 행복과 보존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말하는 것도 운석이나 혜성 충돌로 인한 지구 종말의 공포가 아니다. 문제는 정치적 판단만 제대로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파멸을 초래한 권력 세계의 본질이다. 인간은 실수하며 배우는 존재이고, 그런 사람이 하는 정치는 언제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지구를 파괴한 것은 혜성이 아니라 인간의 고약한 욕망이 횡행하는 정치다.
대통령은 지지율을 올리려는 수단으로 뒤늦게 지구 위기를 이용하기로 하고 해당 부서에 방안을 모색하라 명령한다. 과학자들은 핵 장착 무인기를 통한 혜성 궤도 변경 방안을 제안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혜성을 채굴해 희귀 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상업적인 계산에 더 귀를 기울이고, 합리적 정책인 것처럼 포장해 발표한다. 과학이 무시당하고 권력이 탐욕에 잠식될 때, 인류는 재난 앞에서 구원받을 길을 상실한다. 그렇게 대통령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찬다.
혜성이 다가오는 동안에도, 수많은 생명은 삶을 이어간다. 아무것도 모른 채 동물은 먹이를 찾고 짝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기른다. 식물은 꽃을 피우고 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헤엄친다. 혹시나 하고 의심하면서도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또 하루를 살아간다. 먹고 마시고 일하고, 유혹하고 유혹에 빠지고, 상처 주고 상처 입으며 울고 웃는다. 내일 종말이 닥친다 해도 오늘은 불멸을 꿈꾸고, 내일 죽을지라도 오늘을 사랑하며 미래를 위해사과나무를 심는 것, 그것이 생명의 의무이자 책임이고 인간 본성이다.
인간과 정치는 떼어놓을 수 없다. 그래서늘 경계하고 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건 결국 우리,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억압과 고통 속에서도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 누군가는 원한과 분노, 약탈과 방화로 마지막 순간을 소진하지만,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회고하며 평화를 경험한다. 최선을 다해 진실을 알리고 불의와 맞섰다면, 원망도 미련도 남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서로를 향한 사랑과 연대를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인생의 끝자락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식탁에 둘러앉아 손을 잡고 감사 기도를 하며 ‘우린 정말, 부족한 게 없었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당신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혜성을 찾는 사람인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진실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가? 그리고 그 외면의 대가는 얼마나 치명적인가? 우리 생존이나 행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먼 데서 날아오는 혜성이 아니다. 인생의 의미를 결정하는 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결심 그리고 바르게 선택하고 행동할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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