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결코 아무것도 허비하지 않으십니다!
(God never wastes anything!)
오늘 금요일 아침에 사랑하는 아내와 일본에 가서 선교하고 있는 사랑하는 우리 딸 예리에 대해서 좀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나 아내가 예리가 인스타그램 스토리(Instagram story)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보았는데 저는 그 사진과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반면에 제 아내는 제대로 이해를 해서 저에게 말해준 것입니다. ㅎㅎ 그 말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은 결코 아무것도 허비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리나 우리가 보기에도 별거 아닌 것 같은 심히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조차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예리가 ‘하나님은 아무것도 허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요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내에게 예리가 일본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참 귀한 경험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제 아내에게 제 대학교 후배 자매에 대해서 제 생각을 나눴습니다. 그 이유는 그 자매는 제 아내로부터 ‘하나님은 결코 아무것도 허비하지 않으십니다’라는 말을 들은 후 위로와 도전을 받았는지 그 말을 잊지 못하고 저와 또 다른 대학교 후배 형제에게 온라인으로 기도 모임을 했을 때 한 두 세번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나님은 결코 아무것도 허비하지 않으십니다!”(God never wastes anything!)이란 제목 아래 한 3가지로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시간 (Time), (2) 고난(Suffering), (3) 죄 (Sin).
- 저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시간을 결코 허비하지 않으신다고 믿습니다. 비록 우리가 보기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땅에서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wasting time)고 생각될 때가 충분히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시간을 결코 허비하지 않으시는 줄 믿습니다.
-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현대인의 성경) “시간을 아끼십시오. 이 시대는 악합니다”](“making the most of your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에베소서 5:16),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현대인의 성경)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십시오”](“Conduct yourselves with wisdom toward outsiders, making the most of the opportunity”)(골로새서 4:5).
-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지혜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있는 사람처럼 시간을 아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대는 악하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5:15-16,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지혜 없는 사람”(15절, 현대인의 성경) 즉, “어리석은 사람”(17절, 현대인의 성경)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이 시대가 악한 줄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는 이 악한 시대에 술에 취하든지 이것저것에 중독이 되어서 방탕합니다(참고: 18절). 그러나 “지혜있는 사람”은 이 시대가 악한 줄 알고 시간을 아낍니다. 그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헌신된 삶을 삽니다(참고: 15-18절, 현대인의 성경).
-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지혜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합니다(골로새서 4:5,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는 그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 이유는 성령충만한 지혜있는 사람은 “바로 지금이야말로 은혜를 받을 만한 때이며 구원의 날”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6:2, 현대인의 성경).
- 그런데 저는 성령으로 충만하지도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래서 오직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이 땅에서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죄송스럽고 제 자신에게도 낙심이 됩니다. 그런데 점진적으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믿음은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마태복음 5:48, 현대인의 성경)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므로 비록 제 입장에서 제가 시간을 허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허비하시는 시간조차도 사용하시사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어 나아가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지혜와 성령 충만함을 구하면서 저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시간을 감사하며, 주님 안에서 주신 축복들을 겸손히 즐거운 마음으로 누리면서 저에게 주신 사명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이웃들에게 나누는 삶을 계속해서 살고자 합니다.
-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결코 허비하지 않으신다고 믿습니다. 비록 많은 때에 왜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뜻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지만 저는 그 고난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사 우리에게 유익되게 하신다고 믿습니다[(참고: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 그러면 왜 우리는 고난을 당하는 것일까요? 비록 우리는 고난의 문제(Problem of suffering)에 대한 답변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신 은혜와 깨달음이 몇 가지 있습니다:
- 고난의 목적은 순종을 배워서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5:8-9, 현대인의 성경).
- 예를 들어, 불순종한 요나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고난에서(요나1:4) 또 다른 고난으로 건지시고 인도하시사(17절) 하나님께 간구케 하시고(2장, 특히 2절)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시고자(3장)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을 주셨습니다.
- 고난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의 경우 하나님께서 자기로 하여금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고린도후서 12:7).
- 고난의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 곧 거룩한 "귀히 쓰는 그릇"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디모데후서 2:21). 대장장이가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려고(잠언 25:4) 은을 용광로에 넣고 높은 열을 가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연단하시려고(17:3) 우리를 "고난의 풀무 불"에 넣으시사(이사야 48:10) 우리를 단련하십니다(욥기 23:10).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쓸 만한 그릇으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잠언 25:4).
- 예를 들어, 욥에 경우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목적은 그를 단련하시사 순금 같이 되어 나오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욥기 23:10).
- 고난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과 더불어 더 좋아하는 세상(혹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difference) 교훈을 받기 위해서입니다(역대하 12:8).
- 고난의 목적은 바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예를 들어, 예수님의 제자들은 큰 바람과 물결(파도)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했습니다(마태복음 14:24). 왜 그들은 고난을 당한 것일까요?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행하신 일을 충분히 헤아릴 수가 없지만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고난을 당하게 하신 목적은 바로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33절).
-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에 우리는“왜?”(Why?)라는 질문(왜 이런 고난이 나에게 일어났는가?)이나“어떻게?”(How?)라는 질문(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이나 심지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What is God’s will?)라는 질문을 던지기보다 우리는 하나님은 “누구이신가?”(Who is my God?)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고난 중에서 더욱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성경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더욱더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 속에서 자라나므로(호세아 4:1, 6; 6:4)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합니다(빌립보서3:8). 고난을 통해서라도 가장 고상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 고난의 목적은 우리 자신을 덜 신뢰하고, 삶의 어느 때나, 특별히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까지도 하나님을 더 신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고후 1:8-10)(존 파이퍼).
- 고난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17살때부터 39살까지 형들의 모든 미움과 자신의 죽음의 위기와 팔림과 노예 생활 및 감옥 생활을 하게 하신 목적은 요셉의 형들의 생명과 그들의 후손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창세기 45:7).
-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범하는 죄조차도 허비하지 않으신다고 믿습니다. 물론 제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므로 그 죄 차체가 허비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저의 연약함을 아시고 저를 불쌍히 여기시사 제가 범하는 죄들 조차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사용하시사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어 나아가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의 근거를 성경에서 예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의 죄: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요나 1:2-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타고 있었던 배가 거의 깨지게 될 정도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던지셔서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5절). 그 결과 불신자 선원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되고 성난 바다가 즉시 잔잔해지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서약하였습니다(15-16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불순종한 죄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사용하시사 그와 함께 배에 타고 있었던 불신자 사공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서약케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불순종한 죄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사용하시사 그로하여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로 간구케 만드셨고 또한 그로 하여금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하고 고백케하셨습니다(2장, 특히 1, 9절, 현대인의 성경).
- 예수님을 부인한 죄: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마태복음 26:70, 72, 74). 이렇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세 번 질문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한복음 21:15, 16, 17). 그러신 후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하신 베드로(마태복음 1:19)에게 더 큰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 17), “내 양을 치라”(16절).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의 예수님을 부인한 죄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사용하시사 그에게 더 큰 사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베드로로 하여금 성령 충만하게 하시사(사도행전 2:1-4) 사명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 서로 심히 다툰 죄: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심히 다퉜습니다(사도행전 15:39). 그 이유는 바나바는 계속해서 자기의 생질인 마가(골로새서 4:10)를 데리고 2차 전도여행을 떠나자고 말한 반면에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1차 전도여행 초기에 이탈하여 집으로 돌아가 버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15:37-38). 그 결과 그들은 심한 말다툼 끝에 서로 갈라져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따로 실라를 택하여 신자들의 축복을 받고 안디옥을 떠나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거쳐 가면서 여러 교회를 격려하였습니다(39-41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서로 화목하지 않고(참고: 마가복음 9:50; 데살로니가전서 5:13, 현대인의 성경) 서로 심히 다툰 바울과 바나바의 죄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사용하시사 두 개로 나눠진 선교팀(바나바와 마가 한 팀과 바울과 실라 한 팀)을 각각 다른 지역에서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