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27장> 하나님의 주권과 기도에 대해서
성도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지만, 영적인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한다. 그러나 영적인 기도만 하도록 주님께서 가르치시지는 않았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우리는 모든 것을 기도 가운데 구할 수 있다. 기도가 요술방망이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본다면 기도는 '섭리'의 방편이고, 나의 편에서 본다면 '성화'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즐겨 일하시는 방식은 성도의 기도에서부터 일이 시작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구할 때 응답하시는 방식을 취하심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의 성화가 기도의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성도가 부활의 몸을 입기까지 여전히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우리는 영적인 필요와 육신의 필요를 위해 모두 기도해야 한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이라 해도, 우리의 입술로 간구하는 것이 나의 실존에 대한 전적인 의존이 되며, 이러한 의존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더욱 짙어지고 우리의 성화는 깊어진다.
다만,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 말씀에 비추어 성령님께서 겸비케 하시고 자족하게 하시는 가운데서 기도하도록 힘써야 한다. 내 안에 욕심은 가득한데 100억을 벌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거듭나 성화 가운데서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육신의 정욕을 죽이고, '기도의 영'이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기도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영'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내가 있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내가 있는 이곳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 기도의 영이 없다면, 먼저 위선과 가면을 벗고, 소망함으로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드릴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하신 하나님은 성령을 구하는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기도의 영을 부으시며, 기도의 영을 좇아 간구하는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에 응답하심으로써 그의 뜻을 이루어나가실 줄로 믿는다.
이처럼, 내 안에 죄와 욕망은 들끓는데 기도를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끊어내는 것이 성도다. 중생자 안에 있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롬8:27)하도록 하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어가시는 '방편' 으로서 정하신 것이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이로 말미암은 '성도의 기도'다.
또한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성령님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나'와 '교회'를 위해 간구하게 하실 줄로 믿는다.
교회는 의에 주리고 은혜에 목마른 자들의 모임이다. 따라서 기도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일 때나, 일종의 의무감이 압박할 때나, 일시적인 좋은 감정이 들끓을 때 잠시잠깐 올려드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도 기도하고, 내일도 기도해야하고,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말처럼, "참된 성도의 기도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자 호흡처럼 말씀 안으로 이끌려 가는 영혼의 의지"다. 그러므로, 성도는 '기도의 영' 때문에, '의'에 대한 거룩한 배고픔과 갈증으로 하나님과의 더 깊은 친교와, 은혜의 보좌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