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25장> 변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은 영원 중에서 불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운 세계는 다채롭다.
계절은 사시사철 변하고 해는 오늘도 동에서 뜨고 서로 진다. 바람은 동에서 서로 불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는 다채롭게 변화하는 풍경들을 우리에게 펼치셔서, 땅을 적시는 봄비와 같이 임하시어(호6:3)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고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게 하시는 하나님을(잠6:8) 나와 같이 우둔한 자조차 알게 하시며, 밤이나 낮에도 늘 보호하시어(민9:15) 밤에도 찬송이 있게 하시는(시42:8)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말씀을 보내시어 얼음을 녹이시고 바람을 보내 물이 돼 흐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시147:18)를 깊이 체험하게 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운 세계는 각양의 피조물이 시시각각 변화하며 다채로운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며,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1,22) 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와 그의 의지로부터 나온 말씀과 질서와 언약, 그의 허락 가운데서만 운행된다.
오직, 길 잃은 양과 같이 갈 곳을 잃은 타락한 인간만이 스스로 혼돈을 가중하며 허무함을 향한다.
무질서를 탐하는 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을 혐오하게 만드는 전략을 통해 성경의 불변성과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부정하게끔 시도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 우리의 믿음도 변해야 할까? 아니 그럴 수 없다. 우리의 믿음을 '역사적 흐름'이나 '시대적 조류'에 맞추려는 시도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시간을 창조하셨으며 역사를 주관하신다.
스스로에게서는 사랑을 받을만한 그 어떤 자격이나 공로도 발견되지 않는 우리가 붙들만한, 영원한 소망의 근거와 기쁨의 원천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언약과 변치 않는 사랑 뿐이다.
불변하는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믿는 믿음 없이 우리가 그 어떤 위로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의심하는 것은 우리의 피난처의 견고함을 흔드는 것과 같고, 마르지 않는 샘을 스스로 메우는 것과 같다. 그는 어떤 쉼과 위로와 기쁨도 얻지 못할 것이다.
진보적인가가 아니라 진리인가가 성도의 기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고, 예술가들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새로운 관점이나 새로운 시각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예술 역시 창조세계에 숨겨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작업이지, 무질서하게 변화하는 육체와 안목의 정욕을 극대화하는 작업이 아니다.
허락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은 아담이 선악과에 느낀 호기심과도 같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것 외에 새로운 것은 없으며,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어질 뿐이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만이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가 받을만한 새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새 영과 부활 후 얻게 될 새 육체와, 우리가 하나님과 완전함 가운데서 사랑을 나누게 될 새 하늘과 새 땅 외에는 없다. 나머지는 지나가는 것이며 흘러가는 것이니, 우리는 앞에 있는 영원한 푯대를 잡아야 한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