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24장> 영적인 교만에 대해서

교만이야말로 은혜를 대적하는 가장 큰 적이다. 현재의 불만족 가운데서 성경과 교회를 통해 어렴풋한 희망을 맛보고서 이미 내가 그런 사람이 된 듯한 교만 혹은 조급함에 휩쓸리기도 한다. 사회에서는 거절당하던 내가 교회에서는 수용되어지고, 모두가 나에게 사랑을 이야기해준다.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던 죄인의 정서에 딱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귀여움 받고 예쁨 받던 어린 아이가 부모님의 전적인 지지와 응원 속에서 자라다가 자신 있게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에 비참하게 무너졌던 경험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는 이미 내가 무언가 된 것 같았는데, 세상에 나가서는 처참히 무너졌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세상 가운데서 승리하는 교회는 서로가 자신을 낮추는 교회이다. 교회는 서로의 연약함, 즉 죄된 본성을 덮어주고 이해하는 가운데서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곳이 아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발견되는데, 공의의 하나님은 찾아볼 수 없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 가운데서 말씀이 선포되는 가운데 우리의 본성적 연약함이 자꾸 들추어져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절망 가운데서 단단한 교만이 깨드려지고, 자신의 죄성과 무력함을 고백하며 주께 무릎 꿇게 되는 것이 우리의 능력이 되는 곳이다. 
 
거듭나 하나님의 본성적이고 주권적인 사랑을 깨닫게 된 성도는, 내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을 정도로 나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따라서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나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영원하심만이 나의 소망의 근거요, 기쁨의 근거가 되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한 성령을 통해 교회가 하나가 된다. 

말씀에 나를 복종시켜서 말씀이 나의 사랑의 행실로 드러나는 은혜로운 경험 없이, 그리고 말씀을 통해 나의 옛 본성이 죽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으로써 내 안에 사시는 구원의 과정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보다 달 수 없고, 성령님을 통하지 않고서 교회가 하나됨을 얻을 수 없으며, 이러한 과정 없이 내가 하나님과 화평을 얻을 수 없다. 교회는 단순히 '즐거운' 모임이 아니라, 내가 낮아져서 연합된 가운데, 서로를 섬기고 격려하며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도 여전히 거듭나지 않은 본성과 교만한 정서를 가지고도 교회에 일체감과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흥미를 느끼는 것이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이나 깨닫게 된 교리가 아니라, 교회의 매력적인 사람들 혹은 즐거운 프로그램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는 기도 중에 혹시 얻게 될지 모를 믿음의 부산물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옆에 있는 매력적인 지체들이 아니라, 내가 평소에 기피하던 부랑자와 실패자들이 교회에 가득하게 되더라도 교회를 즐거워할 수 있는가? 나는 그들과 어울릴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교회 안에서도 사람을 가려서 사귀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를 빛나게 하고 나를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재능이나 외모나 성품이 아닌 그리스도의 의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그리스도의 ‘의’를 자랑하는 것외에 나머지는 모두 배설물로 여길 뿐이다. 

멋지지 않은 사람들을 더더욱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히기 위하여 교회로 초청하는 것이 성도의 믿음이다. 나의 가치를 알아준 사람들이 아니라, 나의 가치 없음을 그리스도의 ‘의’로 덮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한 데 모인 곳이 교회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