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11장> 즐거움과 농담에 대해서
청교도들은 한 편으로는 늘 심각한 사람들이었다. 항상 죄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즐거울까봐 염려하는 사람들로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세상의 가장 참된 기쁨을 소유했던 사람들이다.
소요리문답 제1문답: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고전10:31),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시73:25-26).
세상의 오해와는 달리, 성도의 삶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주님과의 깊은 사귐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성도의 제일 되는 목적이다.
세상의 즐거움과 오락들은 일시적일 뿐만 아니라 때때로 후회와 허무함을 남기지만, 변치 않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쁨이 되고, 마르지 않는 샘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기쁨이 될 때, 내 안의 기쁨이 변하지 않으며 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유도한다. 말씀 앞에 자복하여 소망 없는 나에게서 모든 소망의 원천이신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렸을 때, 우리는 영원한 즐거움을 얻게 된다.
그러나 시덥지 않은 농담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주며 하나님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한다.
사단은 이러한 가벼운 농담이나 경박함이 주는 웃음으로 성도의 영원한 즐거움을 대체하도록 유혹한다.
다시 청교도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청교도의 신학을 계승했던 이들이 유머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펄전은 탁월한 유머감각으로 유명했고 로이드 존스가 그랬다.
우리는 침울함과 진지함이 다르다는 것과, 쾌활함과 경박함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성도는 말씀에 대한 진지함 가운데서, 그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쾌활함이 솟구친다. 반면, 그리스도라는 기쁨의 원천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영혼의 침울함을 이기지 못하여 경박함이 솟구친다.
그러나 쾌활함 가운데서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늘 유머와 농담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유머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아름다운 잔과 같아서 그 잔에 독주가 들었는지 달콤한 포도주가 들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유머는 예쁜 칼집과도 같다. 편안함을 주는 예쁜 칼집에 담긴 것이 말씀의 날선 검이라면, 폐부를 뚫고 죽어있던 옛 본성을 찌르겠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이 그저 날선 검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린아이의 손에서 그저 사람들을 상하게 할 것이다.
특히 주의해야할 것은 말씀을 전할 때다. 무분별한 농담은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복음마저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한다
성도가 모인 자리에서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한 가벼운 농담이 있을지언정, 그 본론은 언제나 주님을 향한 진지함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고 믿음이 없으며, 심지어 설교 가운데도 복음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진리가 아닌 농담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내게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즐거움이 없다면 그저 농담과 오락으로 나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