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8장> 골짜기에 대해서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께 깊이 뿌리박힌 성도의 영혼과는 달리, 우리의 육체의 정욕과 상상력은 시시각각 변하여 때로는 변덕스러운 감정이 꼭대기에 치달았다가도 금새 바닥에 내려꽂히기도 한다. 

거듭난 성도도 영적 침체를 경험한다. 어떤 이들은 한 때 끓어오르던 신앙 감정이 가라앉아 바닥을 내리쳤을 때, 하나님께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믿기만 하면, 늘 천국을 누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하나님을 향했던 영혼의 광풍도 그저 한 때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의 믿음의 견고함을 위하여 골짜기를 사용하시기도 한다. 골짜기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단절을 느낄 때, 하나님이 없이는 내가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어떠한 가능성과 소망도 없이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던 나의 곤경과 좌절을 다시금 깨닫게 하며, 다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전진을 시작하게 할 것이다. 더욱이 골짜기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단절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과 실패까지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의 격리 속에서 하나님을 오롯이 대면하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다시 솟구칠 힘을 얻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물론, 나도 이러한 골짜기를 일부러 찾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나를 골짜기로 밀어넣는 것은 하나님의 강압적인 손이 아니라,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육체의 본성이다. 그는 우리의 자유의지 가운데서 내가 다시 일어서길 바라시며, 스스로 골짜기의 산을 오르기를 바라신다. 다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기 때문이다.(시23:4)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시나, 인간의 자유의지는 실패를 거듭할 수 있으며, 때로는 우리의 자유의지가 음침한 골짜기로 우리를 데려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를 수 없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기 전에는 나의 본성이 자기 자신, 즉 자기 사랑을 향해 있어서 우리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을 거스를 수 밖에 없었지만, 거듭난 후 새로워진 영혼의 본성은 그 마음과 사랑이 하나님을 향해 있어서, 우리가 실패를 반복하는 가운데서도 결국 우리의 자유의지가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생쥐의 가는 길을 통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 길에는 치즈를 놓고 한 길에는 고양이를 놓으면 된다. 생쥐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따라 내가 의도한 바대로 길을 갈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시지만, 우리는 자유의지를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의 행동에는 우리의 책임이 뒤따른다. 물론, 그 책임마저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께서 모두 지셨지만 말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체의 본성을 거슬러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처럼, 내가 육체의 본성을 날마다 못박아 주께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말씀과 성례와 교제와 그 분의 섭리 가운데서 내가 다시 일어서길 소망한다. 주님의 본성이 나의 본성이 되고, 주님의 의지가 나의 의지가 되어 내가 골짜기에서 일어나 저 높은 천성을 향해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