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7장> 마귀에 대해서

 

마귀를 믿지 않고, 나를 영원한 지옥으로 끌어내리려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던 때의 나의 비참한 처지와 절망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며, 이 권세를 끊으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세를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귀는 뿔달리고 빨간 타이즈를 입은 모습이 아니라, 광명의 천사(고후11:14)를 가장하여 우리를 속인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8)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인류는 하나님의 아들을 못박을 정도로 전적으로 무지하였고, 사단은 우리의 무지를 이용해 속이는 자니,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듯 마귀를 알지 못했고 죄와 사망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실재하듯 마귀도 실재한다. 그리고 성도는 마귀의 손아귀에서 해방되어 실존적인 자유를 얻게된 자들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구속사의 주인공이 마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에 갇힌 공주님을 구해내듯,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귀와 피흘리며 싸워 물리치심으로써 나를 구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의 죗값을 대신 치르심으로써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고, 우리가 마귀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게 된 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이다. 중요한 것은 마귀를 물리침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주님의 얼굴을 전심으로 사모하는 자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와 죄의 문제에 대하여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고 혐오하며 적극적으로 대적하게 될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창3:15)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머리 되시고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따라 마귀와 적대 관계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노골적인 욕망이 아닌, 나름대로의 이념과 대의명분을 위해 행동할 때, 우리는 마귀의 일에 대해 분별력을 잃기도 한다. 믿음을 평화주의, 민주주의, 실용주의와 같은 허울 좋은 이념들보다 아래에 두고, 이념을 잣대로 교회를 판단하고 파당을 만들며, 우리의 믿음마저 자신이 생각하는 대의명분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켜버리도록 하는 것이 스크루테이프가 말한 사단의 전략이다.

마귀는 하나님을 공격할 수도 없고, 성도의 거듭난 새 생명을 빼앗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마귀는 하나님을 공격하거나 우리의 목숨을 끊기 위하여 창을 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방해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공격한다. 물론,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어질 수 없다. 우리가 거듭난 심령 가운데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가 되도록 하나님을 잊어 주님과의 연합과 사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도록 거듭 공격할 것이다. 

우리는 죄의 유혹 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념과 가치, 혹은 봉사나 구제와 같이 도덕적인 행위들 마저도, 그 모든 일의 목적과 방식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우리가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때때로 하나님을 잊게 하는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봉사나 구제와 세상의 이념들을 믿음과 혼돈할 수 있다.

하나님을 잊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더욱 주의를 기울여 늘 주를 향해 깨어있기를 바란다. 그 어느 허울 좋은 명분과 도덕적인 행위, 혹은 가치중립적인 것들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저 죄가 될 뿐이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 가운데 깨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마귀의 일을 분별하고 대적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은혜가 오늘도 우리를 마귀로부터 보호하며 기쁨과 소망 가운데 있게 할 것을 믿는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