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6장> 두려움에 대해서

 

“두려워 말라!”(눅12:7) 성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씀이지만, 어디 이것이 쉬운가. 나와 가족의 몸은 점점 약해져 가고, 뉴스의 사건 사고의 주인공은 언제라도 내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며, 나는 여전히 세상에서 능력있고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그의 의지와 허락을 내포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된다. 두려워 말라 하심은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선포이다.  

평안은 두려움을 주는 대상과 싸워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 사라지지 않았을 때라도, 말씀과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성도의 ‘평안’이다.  

내가 나의 공로로 생명과 구원을 얻었고 여전히 나의 공로와 능력으로 살아내고 있었다면, 나의 연약함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로로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성도라면, 잠시간의 걱정과 염려가 찾아오더라도 이에 잠식되거나 낙망하지 않으며, 현실의 어려움에 잠시 아파할지언정 우리의 영혼이 파산하지 않고 속히 평안을 회복할 것이다. 

육군 훈련소의 훈련병으로 있을 때 놀라웠던 것은,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힘이 드는데, 고통을 극한까지 끌어올릴지언정, 훈련병들이 버틸 수 있는 만큼만 훈련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훈련에 전문가들이라, 아무리 힘들어도 훈련을 받다가 죽을까 염려하지는 않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다루는 데 있어서 완벽한 전문가시다. 모든 고난과 내일의 일들이 그분의 통제 가운데 있다. 그분은 나를 죽어서도 죽지 않게 하시며, 망하여도 망하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는 성도라도 보험을 들 수 있고, 미래를 대비해 저축을 하고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다양한 수단들을 통해서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사정상 보험에 들지 못하고 저축을 하지 못했으며, 검진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나를 친히 보호하실 것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은 다르며, 우리의 짧은 인생을 대비하는 것 이상으로, 영원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할 심판자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편이 훨씬 지혜롭다.  

우리가 불안정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불안은 여전히 함께 할 것이다. ‘불안’ 자체에 대하여 우리 자신을 정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의 영화 ‘인사이드 아웃2’에서처럼, 불안은 우리를 미래에 대비하게 하고 보호하는 역할도 하지만, 미래의 불안이 현재의 기쁨을 잠식하는 순간, 우리는 갈 길을 잃고 주저앉게 될 것이다. 성도의 기쁨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만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영원하시며 주야로 나와 함께 하시는데, 두려움과 불안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의 기쁨을 깨뜨릴 수는 없다.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아닌 경외함으로, 나는 어느 찬양 가사처럼, 근심하는 중에도 기뻐할 것이다.

 

(영상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