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을 잘하자!

 

 

주님 앞에서

주제 파악을 꾸준히 하므로

주제 넘는 생각 속에서

주제 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죽고자 태어났고, 죽고자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자 사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죽음을 위해 살아야 하며

또한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에는 일관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난 죽어도 저 사람을 용서 못해'가

'난 죽기 전에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해'로

바뀌는 은혜가 있길 ...

죽어서라도 …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어내지 못하고 있다면

죽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은 자의 목소리

 

 

산 자의 목소리보다

죽은 자의 목소리가

이리도 더 클 수가 있구나.

 

 

죽은 후에 나에 대한 기억?

 

 

과연 내가 죽은 후

내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나에 대해 무슨 기억들을 하고 있을까?

혹시 그 기억들 중

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일관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을까?

 

지금 나는 무슨 기억을

그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남기고 있는 것일까?

 

죽음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

 

 

사랑하는 장인 어르신의 죽음을 통해서

주님께서 씨에라비스타(Sierra Vista, Arizona)

그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시고자 하시는 음성이 무엇일까 ...

 

 

죽음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 하루 그 분들을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의 관점을 가지고 그 분들을 대할 때

하루 하루 순간 순간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으면 더 이상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합니다.

 

 

준비, 대비, 방지

 

 

준비하고

대비하며

방지해야 ...

 

 

준비를 해야 합니다.

 

 

목사님들이 설교를 준비하듯히

성도님들은 설교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즐거이 섬겨야 …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즐거이 섬겨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필요한 것, 하나님 보시기에는 지금 내가 필요없다?

 

 

지금 내가 절실히 필요한 것,

어쩌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지금 내가 그것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

하나님 보시기에 지금 내게 그것이 필요가 없는데

나는 그것을 원하고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내 욕심일 수도...

그 욕심을 채우고자 내가 필요한 것을 추구하므로 얻었을 때

내가 풍부해졌다는 느낌은 들 수 있겠지만

그 풍부함은 오히려 나의 믿음을 가난하게 할 수도 ...

지금 여러가지 일들이 좀 한꺼번에 진행되고 있지만 ...

 

 

지금 여러가지 일들이 좀 한꺼번에 진행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하나 하나 일들을

어떻께 합력하셔서 선을 이루시려고 하시는지 흥미롭다.

 

비록 나는 지금 퍼즐 하나 하나씩 밖에 못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퍼즐들을 이미 다 맞춰놓으셨기에

어떻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씩 맞춰가실지 기대가 된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의 검이요 방망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의 찔림이 있고 우리의 마음이 부서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주님의 종들에게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말들

사40:10, “부드러운 말”(pleasant things)]을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지적하며 우리를 책망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는 우리의 간지러운 귀를 긁어주는 부드러운 말들을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선택과 바른 길을 버리고

거짓된 것을 추구하는 우리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허망(deceit)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업신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변질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포스트모던(Postmodern) 시대는 이성보다 감성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영역에서 감정적이며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며,

자신의 감정에 지배되어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한 마디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감성주의입니다. 

 

저는 이 감성주의의 문제가 많이 있겠지만 크게 한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 하나는 우리의 감정이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우리의 이성에 이끌림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감정이 견고한 성품에서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문제는 서로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실(Fact)인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Faith)안에서 이끌림을 받지 못하고 그저 감정(Feeling)에만 이끌림을 받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견고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성품도 견고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바른 교훈(sound doctrine)에 견고히 서 있지 못하고

불안정한 느낌(unsound emotion)을 의지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새롭게되어 변화를 받아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기보다

우리의 마음은 우왕좌왕하면서 변질될 위험이 많습니다. 

어떻게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까? 

우리는 상대주의, 다원주의 그리고 혼합주의에 빠져

신앙의 정도를 걷지 못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변질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난친 관심

 

 

신중하지 못한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해가 될 수도 ...

지나친 궁금증

 

 

상대방에 대하여 궁금증이 너무 많아도

그 사람에게 폐가 될 수 있겠네요.

 

 

 

지나친 사랑, 지나친 열심?

 

 

사랑하는 교회를 향한 지나친 열심은

절제되지 못한 감정으로

교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감정인 섞인 말로

표출할 수도 있습니다.

 

 

 

지나친 열정은 …

 

 

지나친 열정은

자기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상대방의 잘못만을 보게 하므로

그 상대방에게 함부러 이래라 저래라 하게 만듭니다.

 

 

지난 15년을 뒤돌아 보면서 ...

 

 

서현교회와 한국을 떠난지 15년이 되었네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2003년 11월 말로 서현교회를 사임하고

12월 3일에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12월 21일에 승리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위임된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늘 새벽기도회 때 기도하면서 지난 15년을 뒤돌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렸습니다.

 

 

지난친 이웃 사랑

 

 

마음에 시험이 들정도로 이웃을 열심히 사랑하는 것,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지혜로 …

 

 

지도자는 하나님의 지혜로 바른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잠 16:10).

그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상황에 이끌려서

흐려진 판단력 속에서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서는 아니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의 동기를 가지고 매우 힘든 상황이라 할지다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아 영적 분별력 속에서 옳바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지도자는 …

 

 

지도자는 따라오는 자에게 위임(delegation)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위임을 하되 지도자는 위임한 일의 결과를 기대하기보다

따라오는 자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도자는 따라오는 자를 신뢰하고 있음을

그/녀에게 확증시켜 줘야 합니다.

 

 

지도자에 대한 2가지 교훈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하여 생각하게 된 점들:

 

  1. 내게 주어진 권한을 나 자신을 위해서 마음대로 사용하지 말고 오히려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지 말아야 할 때 잘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예: 사도 바울).
  2. 무슨 말을 어떻게 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어떻게 잘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름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 삶 속에 현실화되는 과정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지식 없는 열심

 

 

지식을 무시하고 감정에만 치우치는 신앙생활은 위험합니다.

더 위험한 것은 성경을 객관적이기보다 주관적이요 체엄적으로 읽고 해석하여

확신을 가지고 자기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을 게을리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지식없는 열심은 좋지 못합니다(잠 19:2).

 

 

지혜로와 질 수록

 

 

지혜로와 질 수록

현실을 더 분명히 보고

지혜롭고 올바른 결정을 내립니다.

 

(신학교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지혜로운 교인

 

 

지혜로운 교인은 교회에 가서 ...

 

겸손히 듣습니다.

잠잠히 기다립니다.

자신을 뒤돌아 봅니다.

 

(ZACK ESWINE, "THE GOSPEL ACCORDING TO ECCLESIASTES:  

RECOVERING EDEN"을 읽으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머리로 비판하는 것은

좀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왠만하면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사랑하여 건설적으로 말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싶습니다.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는 사람에게

상황을 알려주므로 함께 기도하든지

아니면

그냥 기분 나빠하든지,

지혜롭게 선택해야 ...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할텐데 ...

 

 

돈 보다 사람을 택해야 하는데

사람 보다 돈을 택하고 있으니 ... ㅠㅠ

지혜로운 아내는 …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의 장점을 보고

칭찬하며 격려하므로

남편의 그 장점을 더욱더 세워줍니다.

 

 

 

지혜롭지 않은 처사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상대방을 잘 아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처사입니다.

 

(Murray Capill, "The HEART IS THE TARGET" 이란 책을 읽으면서)

 

 

 

직시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시할 때만

우리는 우리의 죄를 직시할 수 있습니다.

진리보다 상황에 이끌림을 받는 사랑하기

 

 

선한 목적 가지고 주님의 일을 추진하는 형제가

올바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너무나 그에게 관대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행함을 그 형제를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는 그 형제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히 진리 안에서의 사랑일 텐데

우리는 진리의 이끄림을 받는 사랑하기보다

상황에 이끌림을 받는 사랑하기에 더 익숙하고,

더 감동을 받으며 그리고 더 감사해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형제 사랑하기를 그릇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실텐데 ...

 

 

 

 

진실된 그 모습 그대로 …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의 관계가

진실하길 기원합니다.

 

주님께 진실되이 나아가듯이

서로에게 진실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서로의 진실된 그 모습 그대로 용납하며 품으며 사랑하길 원합니다.

 

 

 

진실된 사랑의 눈물

 

 

오늘도 눈가에 눈물을 엿보았습니다.

그 눈물의 의미를 충분히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눈물은 진실된 사랑의 눈물임을 압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눈물 중

끊이지 않는 간절한 기도의 눈물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대히며 희망을 갖습니다.

 

 

진실된 사랑의 마음은 통합니다.

 

 

진실된 사랑의 마음은 통하네요,

비록 그 마음의 사랑 표현이

서툴고, 부족하지만서두요 ...

감사.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

 

나보다 힘(권력)이 쎈 사람 앞에서도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텐데 ...

진실하신 언약의 하나님

 

 

나의 조상의 하나님은 진실하신 언약의 하나님,

나와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 날 그 때까지 이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길 기원합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음의 양심에 찔림 속에서 괴로워 해야 하는데 ...

 

 

진실한 사랑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삐뚤어진 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삐뚤어진 입을 가진 사람은 삐뚤어진 말인 거짓말과 속이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른 마음과 바른 입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바른 입으로 바른 말인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진실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이젠 우리는 더 이상 포장된 마음과 꿀과 같은 입술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이젠 우리는 우리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 주위엔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에 굶주린 영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인품

 

 

인품이 중요합니다.

진실함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인품의 소유자를 친구로 둘 수만 있다면

참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런 친구가 되야 하겠죠?

 

 

 

진실해야 하는데 ...

 

 

우리 목사님들은 진실해야 하는데

거짓말을 그리도 습관적으로 하고 있으니 ... ㅠㅠ

 

 

 

진심, 진실된 표현

 

 

진심을 진실되게 표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 ㅠㅠ

 

 

 

 

진심으로 사랑하길 원합니다.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하지 마십시다.

마음 속으로 사랑하도록 힘쓰십시다.

진심으로 사랑할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진정 기도만 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 이웃을 위하여

기도만 할 수 밖에 없다는 내 생각이

나로 하여금

그 이웃을 사랑해야 할 내 책임을

등한히 하게 만들어서는 아니 될탠데 ...

 

 

진정 순종

 

 

우리의 본능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이적을 보여주시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니다.

 

진정한 순종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므로

우리의 명철로 이해가 안될찌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할 것이다.

진정 우리는 사랑할 시간 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배우 고 김주혁 씨(45살)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그의 연인인 이유영 씨의 충격을 받았다는 뉴스 기사를 읽으면서

몇 가지 드는 생각을 나눕니다.

 

첫째로, 고 김주혁 씨가 나온 드라마를 본 기억이 떠오르면서 얼굴이 익숙한 배우인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좀 놀랬습니다.

둘째로, 고 김주혁 씨의 나이가 45살인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떠났다는게 안타까우면서

참으로 우리 사람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저 오늘 하루 주어진 것, 감사하며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셋째로, 뉴스 기사를 보니 어쩌면 고 김주혁 씨의 사망원인이 "심근경색"이란 글을 보고

심근경색에 대해 좀 인터넷을 뒤져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아는 저보다 젊은 목사님도 심장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의 경우는 의사 선생님이 너무나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랬다고 들었는데

저는 고 김주혁 씨의 사망 소식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혹시 그도 너무 스트레스가 많아서 "심근경색"이 있었던 것이 아닌지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한국에 많은 젊은이들이 여러모르 스트레스가 너무나 많이 받고 있지 않나 염려가 됩니다. 

넷째로, 연인을 먼저 떠나보낸 이유영 씨, 27살 젊은 나이에 이렇게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그녀의 심정은 지금 어떨까 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종종 저의 죽음을 생각할 때 제 아내의 마음은 어떨까,

또는 반대로 제 아내가 저보다 먼저 떠나면 제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서 저와 아내를 같이 천국으로 불러주시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에게 오늘 하루 주어진 것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연인/배우자/자녀/부모님 등등

그/녀의 존재 자체에 감사하십시다.

언젠가는 이 땅에서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고 헤어짐은 잠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다.

진정 우리는 사랑할 시간 밖에 없습니다.

진정으로 외로운 자는 …

 

 

진정으로 외로운 자는 생명을 걸고 사랑할 만한 대상이 없는 사람이다...

 

 

진정한 겸손이란 …

 

 

진정한 겸손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나도 나 자신을 존귀하고 보배로운 자로 여기는

건강한 지아관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귀하고 보배롭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천하게 여기고 소외시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신실하게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John Dickson의 "HUMILITAS"을 읽으면서)

 

 

진정한 교제?

 

 

주님 안에서 진정한 교제의 파워(power)는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purpose)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중계명의 원리(principle)에 순종하여

우리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한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같이 사랑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의 패턴(pattern)을 본받아

우리도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과 예수님의 교회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위로는?

 

 

자기의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친구에게

'괜찮아. 앞으로 잘될꺼야'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위로가 될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위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이 있다는 진리를 믿고

참된 회개 가운데 죄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누릴 때만이

고통에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진짜 부끄러운 일이란

 

 

나 자신의 연약함을 나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의 연약함을 강함으로 포장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진짜 비정상인가요?

 

 

이젠 교회 안에서도

정상적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언행이

비정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질병보다 죄짓는 것 …

 

 

질병에 걸리는 것보다 죄짓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더 두려워해야 하는데 ...)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 식구를 ...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 식구를

수년 동안 돌보며 간호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최선을 다하신 담당 의사 선생님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이러한 질문을 합니다:

'산소 호흡기를 떼시겠습니까?'

어떻게 의식이 있고 눈을 뜨고 쳐다 보는데

산소 호흡기를 떼야 하는지 ... ㅠㅠ

이렇게 사랑하는 분을 떠나보내야 하는지 ... ㅠㅠ

 

사랑하는 분을 떠나 보낸다는 것,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것,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도 이 도전을 감수해야 하기에 ...

그 날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사랑하는 분과 주어진 하루 하루, 순간 순간 시간을

주님 안에서 마음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면서

소망되신 주님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질병의 치유보다 …

 

 

질병의 치유보다 죄 사함을 더 사모해야 합니다.

 

 

질투심

 

 

질투하는 마음은

삐뚤어진 마음입니다.

삐뚤어진 마음에서는

삐뚤어진 생각과

삐뚤어진 말이 나올수 밖에 없습니다.

 

 

질투의 눈

 

 

다윗을 바라보는 사울 왕의 눈은 살인적인 질투의 눈이였다.

그러나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사랑의 질투의 눈이시다.

 

 

집중

 

 

세상 것들에 집중하다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집중하다보면

하나님이 보고계시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집중력이 너무 좋아도?

 

 

집중력이 너무 좋다보면

주위를 잘 보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피해를 보기가 쉽다.

 

(왜 유리 문에 얼굴을 부딪혀 바늘을 꿰멜정도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때

아내의 말에 동의하면서)

 

 

짧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짧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오늘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려나,

주님의 뜻이 계시면.

 

만남의 즐거움과 헤어짐의 추억,

우리는 믿음으로 앞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길 위하여!

 

 

짧은 인생인데 …

 

 

사랑만 해도 시간이 모자르는 짧은 인생인데 ...

 

 

짧은 인생입니다.

 

 

말다툼하고 반앙하고

불평 원망하며 살기에는 너무 짧은 인생입니다.

화목하며 순종하며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기에도 짧은 인생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통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짬뽕 신앙”?

 

 

요즘 많은 성도님들이 이 목사님, 저 목사님의 설교를 인터넷으로 많이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목사님의 신학 배경이 장로교이던(합동이던 통합이던), 침례교인던, 오순절 계통이던 등등 상관 없이 내가 듣기에 좋은(은혜가 되는?) 설교를 많이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쪽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모습, 말씀에 굶주린 모습은 보기 좋지만 다른 한쪽으로 생각해 보면 저는 좀 염려가 됩니다.  그 염려란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목사님들의 다양한 설교를 들으면 '짬뽕 신앙"이 될 위험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짬뽕 신앙"이란 마치 무지개처럼 이 색깔, 저 색깔이 섞여 있는 신앙으로서 신앙의 일맥과 일관성이 없습니다.  

신앙의 일맥과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견고하지 못한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견고한 신앙을 추구하기 위해선 섬기고 있는 본 교회 담임 목사님의 "바른 교훈"(sound doctrine)을 듣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바른 교훈을 설교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참고로 듣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같은 개혁신학을 공부했다는 우리 같은 장로교 교단 목사님들도 감리교나 오순절 계통의 목사님들처럼 설교를 하고 있으니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성도님의 입장에선 오죽 하겠습니까.

혼돈의 시대입니다.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혼동을 하고 있습니다.

쫓기는 생활 보다

 

 

쫓기는 생활 보다

쫓아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차별 대우 받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 특별한 존재인 줄 착각하여

사람들 앞에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높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특별한 존재임을 느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선택 받은 특별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착각하지 말자.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매를 맞으므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

그 고통을 내가 져야 할 '십자가'로 착각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참 다르네요

 

 

돈만 벌고자 어느 정도 눈가림만하면서 대충 일하는 것하고

자신의 일에 실력과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즐기면서 일하는 것하고 참 다르네요.

참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 매를 맞으면서도

왜 매를 맞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

참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 매를 맞고 난 후에도

하나님의 가르침(교훈)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 어렵습니다.

 

 

말이라는 것,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듣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참고 참는 성도님들 …

 

 

우리 목사님들은 우리가 교인들을 향하여

참고 또 참는다고만 생각할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도님들 중에서도

우리 목사님들을 향하여 참고 또 참으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참된 스승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보여줌으로 가르치는 스승이야 말로 참된 스승이다.

그 참된 스승의 가르침이야 말로 우리 심비에 깊이 새겨져

평생 잊지 못할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참된 위로?

 

 

어떻게 죄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참된 위로가 있을 수 있습니까? 

 

 

참된 자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범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책임 전가 보다 나은 것?

 

 

책임을 전가하려는 자세보다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더 나은  듯 ...

책임 전가보다 나은 것?

 

 

책임을 전가하려는 자세보다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더 나은  듯 ...

 

 

 

 

 

천박해진 기독교

 

 

기독교의 질이 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천박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초자연적 지름길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통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천사와 같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가족을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천사와 같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첫 사랑, 초심으로!

 

 

주님의 구원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던 그 순간을 잊지 말자.

첫 사랑!

 

주님 앞에서 흘렸던

회개의 눈물과 감사의 눈믈과 헌신의 눈물을

다시금 흘리자.

초심으로!

 

 

첫째 아기의 죽음으로 ...

 

 

'첫째 아기의 죽음으로 내가 살았구나.'

(조금 전 새벽기도회 때 기도하면서 약 22년만에 처음 든 생각)

그 아기의 한국어 이름("주영) 뜻대로

나는 그녀의 죽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보았고

그 아기의 영어 이름("Charis") 뜻대로

나는 그녀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에 ...

 

 

청년들과 연로하신 어르신들

 

 

청년들을 생각하며 흥분이 되고,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합니다.

초라한 내 모습

 

 

속히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나 자신을 보니

참으로 초라해 보입니다.

 

 

최악의 상황?

 

 

어쩌면 우리의 삶에 최악의 상황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하시려는 것이라고 보다

우리의 죄악을 들춰내시사 고통을 통하여

겸손히 인정케 하시고 그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는

교정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추론에 근거한 판단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은

내 개인적인 추론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러 판단하는 것을 삼가해야겠다.

추억 만들기

 

 

인생은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

아름다운 추억으로 나쁜(잘못된, 어두운) 추억들을 지우기.

 

 

추억?

 

 

금년 한 해

주님께서 내 마음에 심겨주신 추억은 무엇이고

주님께서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주신 추억은 무엇일까 ...?

 

 

추축하는 것

 

 

추축하는 것은

남녀의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대화로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추한 여자들?

 

 

교회 안에서 여자들끼리의 질투,

다윗을 질투한 사울 왕처럼 살인적인 것 같다.

자매를 마음으로 미워하는 자매 살인죄.

축구를 보면서 느낀점

 

 

영국 축구(EPL)를 보다보면

수비수가 공격도 잘하는 모습을 본다.

실제로 축구를 하면서 배우는 점은

수비를 잘 보는 사람이 공격도 잘하는 경우를 보는데

공격수인 나는 수비를 잘 못본다.

이 배운점을 신앙생활에 적용해 보았다.

영적 전쟁에서 믿음의 방패로 수비를 잘 보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자신과 죄악된 본능과 세상과 사탄과 싸워서는 승리하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는 것 같다.

그런데 수비를 잘 못보면서 공격만 열심히 하려는 그리스도인은

균형을 잃어 자기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 같다.

 

 

축복 설교 vs. 회개 설교?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정도로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주일 예배 때

목사님을 통해서 축복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있다는 것은

그정도 우리 영혼이 병들어 있다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그나마 들병들어 있는 영혼은

주님의 종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듣기를 사모하고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죄 용서를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

 

 

성도님들을 섬기면서 받는 고난은 축복이지만

성도님들에게 섬김을 받으면서 누리는 안락함은 저주이다.

 

 

 

축복된 삶

 

 

소소한 일상 생활 속에서

사소한 일도 관찰하고 생각하면서

그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일을 통해서도

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된 삶이라 생각합니다.

 

 

 

축복입니다.

 

 

주님 안에서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축적되어 가고 있는 중 ...

 

 

꾸준히 즐겨 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실력이 축적되 있어서

하나님의 때에

그 실력을 마음 것

(절제된 진리의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그리스도인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또한 그 말씀을 잘못 받아들여 적용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영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하며 왜곡하므로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잠26:9). 

그런데 심각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입을 열어 왜곡된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므로 그들에게도 신앙생활의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민간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영적 민간함을 더욱더 말씀과 기도로 날카롭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미련한 자의 잠언과 지혜로운 자의 잠언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다”녀야 합니다(13:20,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더욱 지혜로와 질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잠9:9).

치유함과 용서함

 

 

치유함을 받기보다 용서함을 받아야?

 

 

친구란 ...

 

 

친구란 관계이지 기능이 아닙니다.

그 관계는 거래가 실용적인 것이 아닙니다.

친구의 관계에는 일상성과 평범함이 있습니다.

그 관계는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사랑의 표현이 있습니다.

친구는 그저 상대와 함께 있는 좋아서 찾아갑니다.

무엇을 해낼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을 성취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서로 함께 있는 것입니다.

친구의 관계에는 우정과 고마움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행동과 존경의 표현이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 "물총새에 불이 붙듯")

 

 

친구의 사랑

 

 

마음과 마음이 묶인(결탁된) 요나단과 다윗의 사랑...

사랑하는 친구를 기뻐하며(delight),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며,

친구의 소원을 다 들어주고 싶어하는 친구의 사랑....

요나단처럼 친구를 위해서 슬퍼하는 사랑...

이런 친구 사랑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친밀한 관계

 

 

친밀함을 추구하는 관계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친정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

 

 

오늘 처음으로 시어머님은 모시고 살 수 있지만

친청 어머님이랑 함께 사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저로 하여금 생각케 만들고 있습니다.

 

 

침묵을 존중해야 합니다.

 

 

괸심 있는 상대방의 침묵이

나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어

상상의 날개를 피게 한다면

나는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은

추측으로 그 상대방을

오해하고 있을 위험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침묵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를 이해하려는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칭찬보다 면책을 …

 

 

마음에도 없는 만 마디의 칭찬보다

사랑으로 말하는 한 마디의 면책을 더 사모하고 싶습니다.

 

 

 

칭찬보다 존경 받는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것은 쉬운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존경 받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칭찬보다 책망을 사랑하자.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므로

마음이 교만해지는 것보다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을 받아

마음이 겸손해지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