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해야 할텐데 ...

 

 

우리는 삶의 위기를 통해서라도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자기 기만에 빠져있기에 …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부인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자기 기만에 빠져있다는 증거이다.

 

(Edward T. Welch, "ADDICTIONS - A Banquet in the Grave"를 읽으면서)

 

 

 

자기 논리에 도취?

 

 

균형있는 성경적인 논리 보다

그 성경에 대한

치우친 논리에 도취에 있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기 부인

 

 

자기 의가 아닌 자기 부인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자기 부인과 예수님 부인과의 관계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의”(Self-righteousness)

 

 

"자기-의"(self-righteousness)를 추구하는

나의 본능적인 "이기심"(selfishness)을

오늘도 끊임없이 나 자신을 자랑(self-glory)하게 만들어

'자아-숭배'(self-idolatry)를 하게 만들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하는 자들

 

 

자기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하는 자들,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

사람들 중에 높임을 받고자 하는 자들

(눅 16:14-15,18),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들,

주님은 우리들의 전적인 어리석음을 드러내십니다.

 

(D. A. 카슨,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를 읽으면서)

 

 

자기 주제를 알아야 하는데 … ㅠ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줄자로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우리 자신이 그 줄자에 걸리는 줄은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자꾸만 생각

 

 

힘든 상황을 자꾸만 생각하지 말고

그 힘든 상황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자꾸만 생각하십시다.

 

 

자녀 앞에 놓인 장애물보다 내 안에 있는 장애물을 ...

 

 

우리 부모가 보기에 우리 자녀의 삶 속에 장애물이 되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을

치우려고 하기 보다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그 장애물을 우리 자녀의 삶 속에 주신(또는 허락하신) 주권적인 뜻을

이루어 주시는게 훨씬 더 낫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 장애물을 통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

그 장애물을 직시하는 용기를 주시려고 하시는지도,

그 장애로 인해 낙심하고 넘어지고 심지어 다칠지라도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그들을 단련시켜 주시사 살아있는 믿음으로 성장케 하시며

또한 어떻게 장애물을 해결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하시사 지혜를 주시고자 하시는지도,

그 장애물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뜻을 점진적으로 깨닫게 하시사 그 주님의 뜻의 성취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자 하시는지도, 등등...

우리 부모들은 우리 자녀 앞에 놓여 있어 보이는 장애물을 없애려고 하기보다

우리 자녀를 바라보는 우리 마음의 장애물을 제거하는게 급선무입니다.

 

 

자녀 앞에서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자녀는 부부가 서로 다툴(혹은 싸울) 때

자기 때문에 싸운다고 생각하여 죄책감에 시달릴 수가 있습니다

또한 정서적으로 불안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될 수 있는데로

자녀 앞에서는 다투거나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상대방 배우자에게 화가 난다 할지라도

자녀 앞에서 함부러 남편/아내에게 언성을 높여서는 아니됩니다.

그 순간을 참고 또 참아서

부부가 따로 조용한 장소에서 차분하게 대화를 해야 합니다.

자녀 양육 힘든 현실 속에서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양육하기가 참 힘든 이 현실 속에서

우리 부모들은 믿음에 견고히 서서

좌로나 우리나 치우치지 않고

우리의 욕심을 버리고

우리 자녀를 하나님께 받치면서

믿음으로 우리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이는 자녀 양육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자녀가 너무 착해서 ...

 

 

사랑하는 자녀가 너무 착해서

인간 관계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빠로서는 좀 힘들 수 있습니다.

 

 

자녀를 죽이고 있는 부모의 욕심

 

 

부모의 욕심이

자녀를 죽이고 있습니다.

자녀에게 배반을 당하는 느낌?

 

 

자녀 하나만 바라보고

그 자녀에게 모든 사랑을 주다가

그 자녀에게 배반을 당하는 느낌이 들정도로

큰 충격과 깊은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자녀로 부터

자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내 자녀를 위해서라두 말입니다.

 

 

자녀의 부부 관계에 고통을 주는 부모?

 

 

자식에게 폐를 끼치는

부모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자녀의 부부 관계에 징검다리가 될지언정

장애물이이 되어 자녀의 부부 관계에 고통을 주는

부모가 되어서는 아니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자녀의 삶에 덜 개입하는게 ...?

 

 

부모가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을 하기 보다

덜 개입하는게 자녀에게 나을 수도 ...

자동차 엔진과 트랜스미션

 

 

 

제 자동차 엔진에 이렇게 큰 구멍이 나서 친구가 고쳐주었습니다.

약 2년 전에는 트랜스미션이 망가졌었는데 이번에는 엔진이 ...

두 번 다 차가 그냥 서버려서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아내가 고속도로에서, 다른 한번은 아버님이 도로에서 ...

 

신앙 생활도 제일 중요한 말씀과 기도가 '망가지면'

우리는 멈춰서서 더 이상 앞으로 전진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감

 

 

자신감(confidence)이

나 자신에게 근거한 것이라면

교만함 가운데서

나 자신을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감이 주님께 근거한 것이라면

겸손한 가운데서

주님 만을 자랑할 것입니다.

 

(Mark D. Futato 교수님의 "The Book of Psalms" 주석을 읽으면서)

 

 

자신의 역활의 위치를 알아야?

 

 

자기의 역할에 맞는 위치를 벗어나서 내는 열심은

오히려 팀 전체의 조합을 깨트리므로

다른 팀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 사랑, 큰 위로?

 

 

어떤 사람에게는

우리의 작은 사랑의 섬김이

큰 위로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일부터 희생하자.

 

 

내(우리)가 좀 불편하고

다른 이(들)이 좀 편해질 수가 있다면,

내(우리)가 좀 손해를 보고

다른 이(들)에게 좀 이익이 된다면,

내(우리)가 좀 희생해서라도

다른 이(들)에게 좀 유익이 될 수만 있다면 그리하자.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발하고자,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작은 진보에 감사

 

 

하루 하루

조금씩 조금씩

작은 진보에 그저 감사하며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작정 기도, 작심 기도응답

 

 

왠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작정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작심하시고 속히 기도 응답하시는 것 같습니다.

 

 

잔소리 하지 맙시다.  바가지 긁지 맙시다.

 

 

남편으로 하여금 내가 요구하는 것을 하게 만들려고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던지

화를 내면서 바가지를 긁는 것은 썩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특히 내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치 않은 불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의 잔소리나 화를 내면서 바가지를 긁는 것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내 남편으로 하여금도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참고: 창 16:1-8). 

잘 끝내고 싶습니다.

 

 

목회 시작보다

목회 은퇴를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목회 은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을 잘 끝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은퇴 할 때나 은퇴 후

후배 목사님들에게까지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잘 보이는 것을 너무 믿지 말자.

 

 

내 눈으로 잘 보이는 것을 믿기 보다

잘 보이지 않는, 아니 전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자.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에 설득당하기 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설복당하자.

 

 

잘 헤어져야 하는데 ...

 

 

만날 때도 잘 만나야겠지만

헤어질 때에는 더욱더 잘 헤어져야 하는 듯 ...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주님 안에서  

하나됨이 잘 지켜져야 할텐데 ...

 

 

잘 몰라서 잘못한 것도 잘못한 것이기에

겸손히 사과하되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잘못했다는 지적이나 비난을 받으면

정직하고 담대하게 할말을 해야 할텐데 ...

 

그러나 나 자신보다

주님의 공동체가 주님의 사랑안에서

하나됨을 지키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져서는 아니 될텐데 ...

 

 

 

 

 

잠시 서로에게 거리를 둘 필요가?

 

 

잠시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각자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각자만의 시간에는 각자가 주님 앞에 나아가 각자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우리의 관계의 문제점들을 주님의 관점으로 보면서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순종하겠다는 결심과 헌신의 시간이 되야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우선시 되고 있지 않으면

서로의 관계에는 항상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장로가 문제?

 

 

장로 교회는 장로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님과 치리하는 장로인 장로님이

주님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시면 좋으려만 ...

 

 

장모님과 처남 부부를 떠나보낸 후 ...

 

 

조금 전 아내와 함께

장모님과 처남 부부를 공항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장인 어르신의 하관예배를 위하여 지난 주 목요일 오셨다가

오늘 주일 저희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신 후

이젠 다시 집으로 가시려고 공항에 가셨습니다.

지금 저녁 7시 43분, 45분이면 비행기가 떠나겠네요.

하나님의 은혜로 장인 어르신의 하관예배 및 모든 것을 잘 마쳤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음으로 사랑과 기도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장애물이 아닌 통로가 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전인 간섭 가운데서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에 통로가 되야지

장애물이 되서는 아니됩니다.

장인 어르신에게 죄송합니다.

 

 

장인 어르신의 죽음을 통해

장인 어르신을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장인 어르신을 사용하시사 사랑을 받으신 주위에 여러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제 장인 어르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지금에서야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장인 어르신에게 죄송합니다. ㅠㅠ

 

 

 

장인 어르신의 옷들

 

 

장인 어르신의 옷들이 나에게 맞아서(장인 어르신의 구두까지 내 발에 맞음)

사랑이 많으신 장모님은 저에게 계속해서 남편의 옷들을 기쁜 마음으로 주고 계십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서 짐 가방에 쌓아 놓은 장인 어르신의 옷들을 집에 잘 놓아두고

빈 가방을 들고 세 자녀들을 데리고 장인 어르신의 장례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목요일에 여기로 다시 오려고 합니다. 하하

 

 

 

재림과 사명

 

 

재림 소망

사명 감당

 

재물의 손해를 통해서라도 …

 

 

우리는 재물의 손해를 통해서라도 영적인 재산을 되찾아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탐나는 편리한 길?

 

 

궁핍한 가운데서 재정적으로 탐타는 편리한 길을 선택하기 보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재확인하며 재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묵상케 될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진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재확신하게 됩니다.

 

 

저에게 실망을 했을 때 …

 

 

사랑하고 기대하든 저에게 실망을 했을 때

여러분은 더욱더 주님을 갈망하며

소망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주어진 귀한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보고 계시는 사람을 더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는 신음 소리를 더 듣고 싶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한 영혼 영혼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저항하면 할 수록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는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고집하되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지  고집을 꺽지않고 내 뜻대로 행합니다.

그러면 그럴 수록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복종케 하시고자

더 강력하게 인생의 파도를 일으키십니다.

그 인생의 파도로 인하여 자아가 깨지고 고집이 꺽어지며 내 자신의 한계를 좀 뼈저리게 느낄 때에

그 때가 되어서야 주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요나 선지자와 야곱을 생각하면서)

 

 

적절한 타이밍

 

 

그 말을 적절한 타임에 해야 하는데 ...

스피드 조절이 필요하다.

"전생애가 고난의 일생"

 

 

예수님의 "전생애가 고난의 일생이었다.

그것은 만군의 주의 종된 생활이었고,

무죄하신 이가 날마다 죄인들과 어울려야 했던 삶이며,

죄로 저주받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가 영위해야 했던 삶이었다.

그로서는 순종의 길이 곧 고난의 길이었다."

 

(벌코프, "조직신학")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나 같은 죄인을 통해서도

새창조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도구로 사용해 주시니

이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전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를

수동적인 모드에서 능동적인 모드로 전환해야 합니다.

 

절벽 끝에 서 있더라도

 

 

절벽 끝에 서 있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심지어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포 자기 하지 마세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반드시 하나님이 건져주시사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사랑을 경험케 하실 것입니다.

 

 

절제된 사랑

 

 

풍족히 주는 사랑보다

줄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주지 않는 

절제된 사랑이 더 힘든 듯 합니다.

 

절제력을 상실한 욕심 많은 목회자

 

 

절제력을 상실한 욕심 많은 목회자에게

주어지는 재정적이고 환경적인 풍요로움은

그 영혼을 망치는 것이요,

무너짐의 지름길이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절제하여 거절을

 

 

지금부터도

작은 유혹에

절제하여 거절을 못하고 있다면

결코 나는 앞으로 있을

큰 유혹도 절제하여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 큰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젊은 사역자들

 

 

하나님이여 헌신된 젊은 사역자들을 세워주소서

하나님이여 그들을 통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정도

 

 

정도를 걷기 위해선 마음이 정직해야 한다... 

 

정이 많다는 것?

 

정이 많다는 것,

좋으면도 있지만

않좋으면은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정이 좀 부족해도

이성적인 사람이 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의 전쟁?

 

 

 

정체성의 전쟁(A war of identity)?

 

지금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정체성을 흐리게하고 있고, 맞바꾸고 있으며(롬1:26-27)

또한 혼란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혼동케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사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주님 안에서의 우리 정체성을 공격하여 우리로 하여금 주님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의심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잊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아버지께 순종하며 살지 못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형제답게 예수님의 삶을 이 세상에서 부분적으로 재현해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성령님을 거스려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지금 우리는 사탄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탄의 정체성 공격은 치명적인 것입니다.

 

정치적이 아니라 정직하게

 

 

지도자들이

정직하게 섬기지 않고

정치적으로 삐뚤어지게 일하고 있으니 ... ㅠ

 

 

 

제자?  이중인격자?

 

 

지금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산하기보다 

이중인격자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급하면 실수를

 

 

조급하면 실수를 범하기가 쉽다.

실수를 범한 후

다시는 조급하지 말고 신중할 필요가 있는데 ...

 

조급함

 

 

"조급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앞지르게 하고

그분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게 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계획과 방법들을 만들어내어 

끔찍한 결과를 내게 만듭니다.

 

 

조직력보다 생동력을 추구해야 …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의

기계처럼 하는 종교 생활에는

짜임새와 조직력은 있어보여도

예수님의 사랑의 능력이 상실하여

생동력 있는 신앙생활과 공동체의 교제를

결코 할 수가 없다.

 

 

존경 받는 장로님

 

 

욕 먹는 목사님 보다

존경 받는 장로님이 훨씬 낫습니다.

 

존재의 목적

 

 

나는 사랑하기에 존재한다.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요 행복이다.

 

[김형석,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으면서]

 

 

 

졸업장(diploma)을 죽음 자격증(death certificate)으로 여겼다?

 

 

세상에서는

살고자

스펙을 쌓아

성공의 사닥다리를 올라가려고 하지만

 

교회에서는

죽고자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갈보리 산으로 향한다.

 

(1550년 즘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프랑스에 The Genevan Academy의 졸업생들이 졸업장(diploma)을 죽음 자격증(death certificate)으로 여겼다는 글을 W. Robert Godfrey 교수님의 "REFORMATION SKETCHES"란 책에서 읽은 후)

 

 

 

 

좀 느려도

 

 

거북이처럼 좀 느려도

올바른 목적지를 향해서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좀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좀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좀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충격을 받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분노해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좀 걸려 넘어져야 합니다. 

걸려 넘어져서 우리는 좀 우리 자신을 뒤돌아 봐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뒤돌아 보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 양심에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 양심에 찔림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직시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생활  vs.  신앙생활

 

 

  1. 사람들 앞에서의 종교 생활 7가지:

 

  1.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다.
  2. 사람들에게 높임(영광)을 받으려고 한다.
  3. 사람들을 두려워 한다.
  4. 하나님 보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
  5.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을 뜻을 이루려고 한다.
  6. 사람들과 비교한다.
  7.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판에 민감한다.

       

  1.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 생활 7가지: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2. 하나님을 경외한다.
  3. 하나님께 순종한다.
  4.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5.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6. 하나님의 칭찬을 사모한다.
  7. 자기가 무익한 종인 줄 안다.

 

 

좋아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주님 안에서 한 가정을 이룬 신혼 부부를 보니

좋아보이고 행복해 보이며 또한 마음이 평안해 보입니다.

 

좋은 기회인 위기?

 

 

위기는

사랑을 깊고 크게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좋은 사람과 함께

주님 안에서 마음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며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좋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좋은 추억 만들기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

주님이 주신 만남 속에서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헤어져서라도 그 좋은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좋은 추억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의 추억은 좋은 추억입니다.

 

 

죄 짖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죄를 짖는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죄의 유혹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상실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라"

 

 

"전에 우리는 그 죄의 영역에 속해 있었고 죄의 지배 아래 있었고 죄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에 욱체의 마음의 원하는 것들로 그 자체를 드러내는 육체의 욕심에 의해서

통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죄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에 의해서 조정을 받고 있었고 지배를 받고 있었고

마음과 몸 속에 있는 이 정욕들과 욕심에 의해서 여러 방식으로 통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죄의 체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거기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라'고 바울은 로마서 6장에 말합니다."

 

(로이드 존스, "영적 화해")

죄가 익숙하다

 

 

내 몸은 죄짓는 것이 편하다.

내 육신은 죄짓는 것이 익숙하다.

 

 

 

죄를 어떻게?

 

 

죄를 덮고자 하는 것보다

죄와 씨름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죄를 부인하는 것보다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죄악의 풍랑 가운데서 누리는 평강

 

 

죄악의 파도와 풍랑이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 인생의 배의 선장이신

주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길 기원합니다.

 

 

죄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부주의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신앙이 퇴보해 있다는 증거다.

 

 

 

죄에 중동된 상태?

 

 

반복되는 내 죄악된 선택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 만큼 나는

그 죄에 깊이 빠져

그 죄에 중독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Edward T. Welch, "ADDICTIONS - A Banquet in the Grave"를 읽으면서)

 

 

 

죄와 은혜

 

 

죄의 깊이를 인식하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크기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죄책감보다 회한을 해야 …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을 때

죄책감(guilt)를 가지기 보다 회한(remorse)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즉, 죄를 범한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기 보다

죄를 범하므로 내가 마음을 아프게 한 하나님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춰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주는 사랑

 

 

자녀에게 주는 사랑보다

자녀를 주는 사랑(Giving Love)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자녀를 받치는 사랑(Offering Love)과

이웃에게 보내는 사랑(Sending Love).

 

 

주님 사랑 교회 사랑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안전함을 누려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아무리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기에(구원의 확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가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주님 안에서 안전함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정이란 ...?

 

 

주님 안에서 우정이란

믿음으로 순종함과 모험과 힘듬과

어려움과 오래참음(인내)와 고난(역경)이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주님 안에서 함께함이 ...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 주님 안에서 함께함이

감사하고 즐겁고

기쁨니다.

주님 안에서의 교제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가

교제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함께 나누고

함께 웃으며

한 마음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만남은 축복입니다.

 

 

역쉬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의 만남은

반갑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함께 부족하나마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며,

형제, 자매들을 향한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의 만남은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주님, 저는 물 위를 걷고 싶습니다.'

 

 

오늘 영어 예배 때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한 찬양곡 가사의 한 부분이

내 마음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 되었다:

'Lord, I want to walk on the water'

(주님, 저는 물 위를 걷고 싶습니다).

비록 지금 내 자신의 모습이

마치 사도 베드로처럼

주님을 바라보기 보다

내 인생의 바람이나 풍랑 등

내 환경이나 상황을 바라보므로

마치 요나 선지자처럼

물에 깊이 빠지고 있다할지라

나는 다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물 위를 걷고 싶습니다.

 

 

'주님, 제 마음에 근심 걱정을 미약하게 해주세요.'

 

 

새벽기도회 때 받은 귀한 은혜를

하루를 지내면서 이런 저런 많은 생각으로 말미암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염려 가운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 자신의 미약함을 더 깨닫게 됩니다.

 

'주님, 제 마음에 근심 걱정을 미약하게 하시사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하소서.'

주님 중심된 가정은 ...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컨트롤(control)하시고 다스리고 계심을 믿습니다.

성자 예수님의 권위(authority) 아래 있으므로

예수님의 이중 계명에 복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열매인 사랑을 맺으므로

하나님의 임재(presence)를 경험합니다.

이러한 주님 중심된 가정은 가정 천국화를 이뤄갑니다.

 

 

주님께 순종하면서 욕을 먹으면 …

 

 

주님께 불순종하면서 욕을 먹으면

우리는 회개해야 하고 순종하면서 욕을 먹으면

감사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기로 결심합니다.

 

 

내 자신을 보면 낙심이 됩니다.  주위 사람을 보면 실망이 됩니다.

이 세상을 보면 절망이 됩니다.  그러기에 나는 주님만을 바라보기로 결심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을 바라볼 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손길,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주님의 손길,

그 주님의 손길을 바라볼 때 내 영혼이 다시금 힘을 얻습니다.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성적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주님의 경고를 겸손히 받고

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

 

 

나 자신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 속에서

한탄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감탄 속에서 감사하자.

 

 

 

주님을 의식하고 의지하며 사는 삶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그들의 기대에 미치는 삶을 살기보다

나를 사랑의 눈으로 주목하고 계시는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따라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고 보람됩니다.

주님을 즐거워하고 싶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충분히 사용하고 싶습니다.

사용하되 주님께 사용받는 즐거움을 더욱더 충만히 맛보고 싶습니다.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주님을 즐거워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 자세를

흐트러 놓는 가까운 사람들의 많은 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도 할 수 있지만

심지가 견고한 자라면

흐트러짐과 흔들림이 없이

주님의 부르심에 묵묵히 순종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하나님의 자녀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하나님의 자녀는
회개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과 헌신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는 죄를 회개하며,
사랑하지 않는 죄인을 용서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로 헌신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을 보게 될 때에 …

 

 

우리가 주님의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보게 될 때에

우리는 이 세상의 추악함을 미워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할 때

주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일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처럼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주님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주님의 일,

그 과정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지 못하고,

다툼과 서로 상처를 입히며

그 일을 한다면,

그리고 심지어 그 일을 우리 보기에 성공적으로 마치기까지 했다면

과연 그 일이 주님 보시기에도 주님의 일 일까요?

주님이 주시는 만남

 

 

주님께서 만나게 하시는

새로운 만남은 즐겁고 기대가 됩니다.

 

 

주마가편(走馬加鞭)?

 

 

오래 전 저는 잘 달리는 말에 왜 채찍질을 하시냐고 아버님에게 물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님께 잘 달리는 말을 쓰다듬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라고 여쭌 적이 있습니다.

 

요즘 저는 이런 생각들을 합니다:

잘 달리는 말을 쓰다듬어 줘야 하는데 나는 지금 채찍질하고 있으니... 

혹시 나는 지금 잘 달리지도 못하는 말을 채찍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자신은 부지런히 채찍질해도 잘 달리는 말이던 잘 못달리는 말이든 쓰담듬어 줘야 하지 않는가 ...?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 길에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는 '기회',

사랑할 수 있는 기회, 용서할 수 있는 기회,

화해할 수 있는 기회  등등을 놓치지 마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