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믿어주고 신뢰해 주면 안될까 ... ㅠ
순수한 마음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인가 ...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다고 하면서
그 마음의 말을 한 사람은 왜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까 ... ㅠ
서로 믿어주고 신뢰해 주면 안될까 ... ㅠ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
교회 안에서도 ...?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사랑하면 그 마음의 말을 믿어줄텐데 ...
서로 사랑하기 위해선 ...
서로 사랑하기 위해선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기
서로의 다른점들을 극복해 나아가야
성격상 서로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마음이 맞으면
(한 마음을 품으면)
서로의 다른점들을 극복해 나아갈 수가 있을텐데 ...
선물보다 선물을 주신 분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즐기면서
그 복을 주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선물(gift)을 즐거워하기 보다
그 선물을 주신 분(The Giver of that gift)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선물해 달라고요? ㅎㅎ
어제 저는 두 지체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ㅎㅎ)
카톡 사역에 도움이 되는 이모티콘을 선물해 달라고 부탁하여
자그만치 하루에 4개의 이모티콘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ㅎㅎ
그랬더니 그 지체 중 한명의 왈:
"티콘 선물해달라는 목사님은 생전 처음 뵈었수다" ㅎㅎㅎㅎ
- 참고로 저는 독특한 이모티콘을 좋아한답니다 ㅋㅋ
선제 사랑, 선제 용서
우리는 하나님께
미리 사랑을 받고(선제 사랑)
또한 미리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선제 용서).
(유진 피터슨의 "물통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선택의 결과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는 내 책임입니다.
그 책임은 결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내가 죄를 짖는 선택을 하므로
그 결과가 내가 사랑하는 가족 식구들에게까지
고통과 아픔을 줄 때에는 말입니다.
(Josh Mulvihll의 "PREPARING CHILDREN FOR MARRIAGE"을 읽으면서)
선택의 결정의 기준은?
선택의 결정의 기준은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며
내 필요를 채워주는 것 등이 아니라
주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시면서
"가라"고 명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설교 듣기 준비
-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선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 토요일 일찍자야 합니다. 푹 잠을 자야 주일 설교 시간에 졸지 않습니다.
- 주일 아침 식사를 꼭 챙겨 먹어서 설교 시간에 배가 꼬르르 하지 않게 해야합니다.
- 주일 예배 시간 보다 한 30분 일찍 예배당에 와서 예배 준비를 하면 좋습니다. 집에서 여유있게 있다가 예배 시간 정각에 맞쳐서 부랴부랴 오던지 아예 예배 시간에 늦게 와서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으려고 한다는 것은 너무나 정성이 없는 자세입니다.
- 설교 시간에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선 마음 준비가 필수입니다.
- 마음에 목사님이나 목사님의 설교에 대한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흠이 있나 없나 하는 꼬투리 잡는 듣기식으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귀는 병든 귀입니다. 설교는 "트집 잡기"가 아니라 "진리 찾기"입니다(Jay Adams).
- 매일 조용한 시간에(새벽?) 말씀 묵상과 기도를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둔한 귀"(히5:11)를 가지고 설교를 들을 수 없습니다(Adams).
- 기대하는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말씀은 무엇인가?"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Adams).
설교자의 고민
오늘 아침 설교자로서 유익한 고민을 하는 가운데서 아내와 대화를 했습니다.
그 대화를 통하여 얻은 깨달음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도님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섬기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동기가
신앙적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는 데 있다면
교회의 통일성을 지키는데 방해가 될 것입니다.
섬김에 있어서 ...
섬김에 있어서
육신적인 피곤함과 지침 보다
마음적인 기쁨/즐거움과 보람이
더 클수록
우리는 지속적으로 섬김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섬김의 추억을 많이 만들자
섬김을 받았던 기억보다
섬겼던 추억이 더 낫습니다.
섭섭한 마음이 들 때에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성 것 힘을 다해 사랑을 주었는데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의 반응이
그리 감사해 하지도 않을 때에
충분히 섭섭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섭섭한 마음이 들 때에
나에게 주신 예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묵상하면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 배우?
성경을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은
가르침과 실행의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 수록
성경 배우(Bible actor)이 될 위험이 참 많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신앙생활을 흉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
성경에서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성경을 사랑합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리스도인,
성경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리스도인,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의 사랑을 느끼는 그리스도인,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가는 그리스도인,
성경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아가는 그리스도인.
성경적인 죄의 기준을 낮추면 ...
성경에서 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죄가 아니라고, 다들 그리한다고 등으로
합리화 시켜서 성경적인 죄의 기준을 낮추고 또 낮추면
우리는 영적 문둥병자 같이 양심이 가책과 죄책을 느끼지 못해
계속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죄를 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을(못할?) 것입니다.
성급한 속단
상대방 이야기를 충분히 다 들어보지도 않고
너무나 성급하게 속단하여
함부러 상대방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
성도님들은 ...
성도님들은
목사님에게
자기들이 듣고 싶은 설교를 요구하기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 주시길 사모해야 합니다.
성도님들을 생각할 때 …
성도님들을 생각할 때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두 마디를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성도다운 성도가 되고 싶습니다.
과연 나는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과연 나는 예수님을 통해 죄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과는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성도의 교제
주님 안에서 마음과 마음이어 지는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은혜와 역사하심 등을 경험합니다.
또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다시금 주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시사
주님께 초점을 맞추게 하시고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주님과 주님의 약속의 말씀 관점으로 재조명케 하십니다.
재조명케 하시는 은혜 가운데
주님과 주님의 약속의 말씀의 이끌림을 받지 않았던
우리의 허물과 죄를 들춰내시사 인정케 하시고 회개케 하시어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성도의 교제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성도의 죽음을 허비하지 않으시는 주님
하나님은 택하사 주님의 종으로 부르신 주님의 일꾼의 죽음을
결코 허비하지 않으시고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하시사
뜻하신바를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성령 성전 성화
성령님께서는 성령의 전인 우리를 성화시켜 주고 계십니다.
(Iain M. Duguid,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EZEKIEL"을 읽으면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
'성령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고 신실한 목사님들을 계속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들이 사는 문화로부터 그들을 분리시켜서,
이 세상이 존경하고 보상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단순한 신앙과 순종과 예배의 길로 돌아가게 합니다.'
(유진 피터슨, "물총새에 불이 붙듯")
성품에서 행동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품의 변화 속에서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행동이 나와야 합니다.
성품의 카리스마
인격이 부족한데 카리스마가 강한 지도자보다
카리스마는 부족하지만 인격이 훌륭한 지도자가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보다 더 나은 지도자는 말씀 인격화 되어가는 인격(성품)의 카리스마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에게 예수님의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라 생각합니다.
세 가지 부족?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세 가지가 많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헌신도 (commitment)와 간절함(earnestness or desperateness)과
긴박감(sense of urgency)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
저는 그 원인이 이기주의와 안락주의와 게으름이라 생각합니다.
세살 버릇 …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 이유는 과거의 죄악된 습관이 참 오래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세상 방법대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
하나님께 약속의 말씀을 받고도
그 말씀에 이끌림을 받아 믿음으로 살지 않고
오히려 자기 명철을 의지하여
세상 방법대로 일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결정과 선택의 쓴 결과를 맛 볼수 밖에 없다(예: 야곱).
(Iain M. Duguid의 'The Gospel in the Lives of Isaac & Jacob'를 읽으면서)
세상과의 화합, 교회 안에서는 불화
우리가 이 더럽고 추한 죄악된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더럽고 추한 모든 모양의 악을 다 내어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추구해야 하는데
지금 교회는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교회는 세상의 풍조에 밀려 더럽고 추한 죄악에 많이 오염되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을 역활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한 마디로, 교회가 세상과 분리하고(나뉘고)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세상과 분리되 있지만
지금 교회는 세상과 화합(harmony)하고 교회 안에서는 불화(disharmony)가 끊임이 없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지금 사단은 모든 것을 거꾸로 바꿔 놓고 있는 것(exchanged)입니다(롬 1:23).
사단은 교회를 나뉘게(분리되게, 불화하게) 만들고 세상과는 화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소망의 나라를 향하여 …
제 자신으로 인하여 낙망하는 가운데서도 저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심지어 절망 가운데서도 저는 주님을 소망합니다.
주님을 갈망할 때에 내 영혼을 소성케 하시사 다시금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며
주님을 나의 소망을 삼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저는 오늘도 소망의 나라를 향하여 믿음으로 나아가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나로 인한 썩은 열매를 볼 때에 낙심되고 괴롭지만
하나님께서 맺으시는 선한 열매를 바라보게 될 때 소망이 있습니다.
손해를 본다는 것
손해를 보는 것이 아깝지만
손해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심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솔직한 자백
요즘 나는 우리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기보다
솔직하게 "나의 욕심"이라고 자백하는게 더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우리 자신의 양심에게는 ...
수동적 사랑과 능동적 사랑을 교체하면서 ...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성령님의 인도하심따라
수동적 사랑과 능동적 사랑을 교체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수준을 낮추고 또 낮춰야?
하나님이 우리의 수준으로,
우리 가족과 일과 식사와 장보기와 같은
평범한 생활을 하는 우리의 일상으로
내려오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낮아져서 겸손히
우리 이웃을 섬겨야 할지 귀한 교훈을 줍니다
(성육신 사역).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순결 추구
영적으로 더럽혀지는 것으로부터 순결을 추구해야 합니다.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랑하는 처남
처남의 나이가 한국 나이론 오십이지만 자폐증 같은 것이 있어서 정신 연령이 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으신 아버지에 대해서 묻길래
제가 아버지는 지금 천국에 가셨고 그곳에서 영원히 살것이라고 말해주니까
처남은 기뻐하면서 'My dad went to Heaven!'라고 말하고 또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 주일 오후 장인 어르신이 죽으신 것을 모르고 집으로 찾아오신 이 동네에서 장인 어르신과 제일 오래 알고(40년이 좀 지난듯) 친하게 지내시는 Mr. Kim이란 분에게 처남이 그분이 차에서 내리시기도 전에 'My dad went to Heaven!'이라고 기쁘게(신나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하
순수함과 지혜로움
저는 사람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일 지향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의 사람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는 선을 분명히 거가면서 지혜롭게 일을 잘 하지
못합니다. 알면서도 잘 못하는 많은 것 중 하나는 사람 지향적이든 일 지향적이든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는 순수한 마음과 지혜로운 마음 둘 다 균형있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전한 믿음으로 순종하는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지체를 생각할 때
감사, 감동과 더불어 힘이 납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
음식을 싱겁게 드시는 목사님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었습니다.
건강이 않좋아지셔서 약 3년 전부터 음식을 조절하여 싱겁게 드신다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든 생각입니다:
'마치 음식을 싱겁게 먹으면 나의 건강에 좋은 것처럼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받아 먹으면 내 영적인 건강에도 좋을텐데
나는 마치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에 이것 저럿 순간적으로 맛 돋구는 양념들에 현혹이 되어
내 영적 건강을 헤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순전함
욕심이 순전함을 잃게 하는구나 ...
순종 혹은 불순종?
왠지 초신자 분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나 같은 모태 신앙인들은 죄인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는 것 같다.
순종하며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첫째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였고 지금도 범하고 있지만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모든 사탄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뿌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C. D. " JIMMY " AGAN III의 "The IMITATION of CHRIST in the GOSPEL of LUKE"을 읽으면서)
순종할 수 있는 기회
지난 주일 "나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시 121편).
그리고 이렇게 한 3일 살아오면서 제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낌니다.
이렇게 말씀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나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길 원합니다.
순종함에 있어서 …
순종함에 있어서
희생이 따를 때에 흘리는 그 아픈 마음 속에서 흘리는 눈물을
주님께서 닦아 주시길 기원합니다.
스스로 나 자신을 낮춰야
하나님 앞에서
부지런히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높임을 받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스쳐지나가는 만남이라 할지라도 ...
스쳐지나가는 만남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뜻하신 만남이라면
부족한 저를 통해서라도
그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이루실 것입니다.
스타 목사가 아닌 스톱 목사가 되야
스타(별) 목사가 되기보다
스톱(그만) 목사가 되야 ...
교만/거만/오만 스톱,
물욕,소유욕/명예욕 스톱
욕심/탐심 스톱,
거짓/속임수 스톱,
.. ???
슬퍼하지 말고 울자
떠나신 분들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말고
남아 있는 자들을 생각하며 울자.
슬픈 일이 …
슬픈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 ...
슬픔
슬퍼할 줄을 알아야 하는데 ...
슬픔의 역설?
슬픔의 역설?
슬픔을 부인하면서
어떻게 기쁨만을 원할 수 있을까?
시간 혹은 사랑?
시간이 약이 아니라
사랑이 약입니다.
시련을 통과하여 풍부한 곳에 이르렀을 때
그물에 걸린 사람처럼,
어려운 짐을 허리에 맨 사람처럼,
하나님의 시험과 단련함을 받고 난 후에
주님께서는 우리는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십니다.
그 때 나는 ...
고난 때에 서원한 것을 주님께 갚을 것입니다.
주님께 헌신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선포할 것입니다.
주님을 높이 찬송할 것입니다.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 응답을 받을 것임니다.
(시편 66편)
시작보다 끝이!
어떻게 시작하느냐 보다 어떻게 끝을 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끝이 시작보다 더 중요합니다.)
시험과 유혹의 필요성?
내가 누구이고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질문할 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험과 유혹이다.
사탄의 유혹은
우리로 하여금 내가 하나님의 하나님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단련시켜서 정금같은 믿음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해준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해야 합니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가 자신이 시험에 드는 것 같으면,
그리고 그 시험을 이겨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한다면
제 개인적 생각은 봉사하던 것을 내려 놓을 필요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려 놓치 않고(못하고) 계속해서 봉사하다가 자신만 시험에 들어서 신앙의 퇴보와 더불어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그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다른 지체들도 시험들게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는 봉사하던 것을 내려 놓고 자기가 어디서 부터 떨어졌는지,
왜 시험이 이겨 나아가기 못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주님과 일대일 관계와 예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공동체에 있는 다른 지체들에게까지 시험에 들지 말게 해야 합니다.
신경 쓰이는 일
신경 쓰이는 일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감사할 일이구나. 하하.
A라는 일이 더 크게 신경을 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B라는 일이 갑자기 터져서 급하게
더 신경을 쓰게 되니 그 덕분에 A 라는 일이 들 신경이 쓰여서 감사하네요. ㅎㅎ
신뢰 ... 중요합니다.
신뢰 .. 중요합니다.
신뢰를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복입니다.
그 이전에 우리가 먼저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돈이 부족해 발생한 위기는 신뢰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뢰를 까먹어 생긴 위기는 돈으로 회복할 수 없다."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
신뢰를 쌓아야
거짓말을 하면 안되는데
거짓말을 거짓말로 여기지 않고 있으니 ...
돈을 쌓는 것보다 신뢰를 쌓는게 더 종요함을 알아야 할텐데 ...
신뢰와 실력
서로에게
신뢰를 줄수 있는
실력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신뢰하는 사람은 이해
사랑하는 사람을 신뢰하면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오해하게 됩니다.
신실함의 작은 발걸음들을 매일 매일 꾸준히 내딛으십시다.
제일 중요한 주님과의 관계에서
조금씩 조금씩 더 깨닫게 되는 참으로 중요한 점은
신실함의 작은 발걸음들(small steps of faithfulness)을
매일 매일 꾸준히 내딛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중요한 부부 관계에서
남편과 아내가 주님의 말씀대로
사랑과 존경과 순종의 작은 발걸음들을
매일 매일 신실하게 꾸준히 내딛을 때에
그 부부의 관계는 주님 안에서
아름답게 꽃이 피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드릴 것입니다.
신앙 vs. 불신앙
신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면
(Faith = obedience)
불신앙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Unbelief = disobedience).
(L. Anne Jervis, "At the Heart of the Gospel"읽으면서)
신앙 빳떼리의 충전기는 …
전화기 빳떼리는 충전기라도 있지
인생 빳떼리는 수명 다하면 이 세상에서는 끝!
신앙 빳떼리의 충전기는 뭔지 알면서도 안하고 있으니... ㅠㅠ
신앙생활을 하면 할 수록
신앙생활을 하면 할 수록
우리의 양심은 더욱더 깨끗해 져야 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깨끗해 지면 질 수록
우리는 우리의 죄를 더욱더 많이, 더욱더 깊이 인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더욱더 많이, 더욱더 깊이 인식하면 할 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많이, 더욱더 깊이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많이, 더욱더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더욱더 주님의 일에 수고하며 충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에 굴곡이 많을지라도 ...
신앙이 굴곡이 많을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계단을 올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은 ...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은
사람이 보기엔 결코 안전한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수 없이 일어나는
매우 불안한 길이 바로 신앙의 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께 "내 영혼 평안해"라고 찬양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와 동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신앙의 삶의 리듬?
우리가 알고 믿는 것을 사는 것에 있어서
성경의 말씀과 함께하는 삶의 리듬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습관과
그 묵상하여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들일 때
우리는 우리가 알게되고 믿게된 것을
살아가는 능력과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신앙의 여정에 배우는 것은 …
신앙의 여정에서 배우는 것은
'나는 할 수 있다'에서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입니다.
신앙이 너무 훌륭하면?
믿음이 너무 훌륭하면 (?)
믿음이 약한 형제의 슬픔을 체휼하지 못할수도?
신앙이 성장하면 할 수록 ...
신앙이 성장하면 할 수록
우리는 죄를 더 많이 깨닫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신앙이 성장하면 할 수록
죄를 더 많이 회개하고 버립니다.
신앙적 과시욕을 경계하자!
신앙적 과시욕을 경계하자.
잘못하면 그것이 외식이 되고 외식하다 보면 그것이 허식이 되고
허식하다 보면 그것이 가식이 될 수 있다.
결국에는 내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고
내 자신의 의(self-righteous)를 과시하는 위선자가 될 수 있기에
신앙적 과시욕을 경계하자.
실수가 있을 수 없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실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 또한 실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을 수도 없습니다.
“실패할 여지를 허락하고 …”
자녀 양육 참 도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 부부가 세 자녀에 대해서 대화를 할 때에
제 아내가 저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He (she) has to figure it out.'
아내는 각 자녀 알아서 각자가 처한 상황을 대처에 나아가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아내와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실수나 실패를 통에서 배우는게 있으면 그 실수나 실패는 가치가 있다.'
부모로서 자녀들을 사랑할 때에
힘들지만 저희 부부가 추구하고 싶은 사랑은 Tough한 사랑입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요즘 우리 가정들을 보면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아내도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다보니
자녀들도 어머니를 본받아 아버지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권위가 남용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권위가 무시당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심각한건데 ...
죄의 결과가 심각한데,
특히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유혹에 빠져
하나님께 죄를 범하면 그 죄의 결과는 심각할텐데 ... ㅠㅠ
심각한데 ...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할정도록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그냥 약국에 가서 반창고만 사다가 붙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병을 앓고 있는데
그 병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조취하기 보다
임시 방편으로 반창고만 붙이고 있는게 아닌가 염려됩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심화되어가는 부부 갈등
부부 갈등이 심화되어
부부가 말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까지 싸우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상대방 배우자에 대해 전혀 몰랐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에 휩싸일 수가 있습니다.
심히 두려워하길 기원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의 숨겨 놓은 죄가 들춰질까봐 두려워하기 보다
하나님 앞에서 이미 들춰진 나의 죄들로 인해 하나님을 심히 두려워하길 기원합니다.
쓰레기를 잘 버려야 할텐데 …
매주 주일 오후가 되면 저는 집 안에 쓰레기 통들에 있는 쓰레기들을 모아서
쓰레기 봉지에다가 넣어 집 밖에 있는 스레기 통에 버립니다.
그 이유는 월요일 아침에 쓰레기를 수거하는 차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월요일 아침 아내와 딜런 학교, 직장가는 모습을 보면서 냉장고 안에
오래된 음식물들을 보고 쓰레기 봉지에 담아서 스레기 통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음식물을 담았던 병들 등을 씻으니 기분이 좋네요....
이렇게 매주마다 쓰레기 버리는 것은 쉬운데 제 마음과 생각에 무수한 쓰레기들은
매주, 아니 매일, 매 순간마다 버리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보이는 쓰레기보다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잘 버리는 사람이 되야 쓰레기 같은 인간이 안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