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예배당에 마스크(mask)를 쓰고 들어가지 마십시다.
마음 변화의 과정?
I have to ...
I need to ...
I want to ...
I love to ...
마음 조각가 성령 하나님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깍으시사
우리 마음을 넓히시므로
주님의 마음을 본 받게하고 계십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교제
주님 안에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진솔하며 정직하며
또한 절제된 투명한 대화를 나누는 교제를 추구하고 싶다.
마음까지 약해지면 아니될텐데
몸이 약해질 때에
마음도 약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
마음만은 …
이번에 한국 날씨는 무척 추웠지만
이번에도 마음만은 참 따뜻했습니다.
마음에 감사가 있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마음에 고요함과 평온함을 주시기에.
마음에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날 것이기에.
마음에 바벨탑을 쌓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보다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마음에 바벨탑을 쌓을 확률이 많습니다.
마음을 잘 지켜야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그 의심은 불신으로 불신은 불만족 속에서 불평과 원망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건강보다 마음을 더 잘 지켜야 합니다.
마음의 경계선
주님 안에서도
자기와 다른 이성과의 관계에서는
각자 마음의 경계선
(또는 boundary)을
지속적으로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의 눈물을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이 사랑하시는 영혼의 눈물을 보고
마음의 눈물을 흘리며
아빠 아버지께 눈물로 간구하는
주님의 위로의 도구가 되고 싶다.
마음의 무거움
마음의 무거움 ... "...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
(새찬송가 490장)
마음의 벽
지금 우리는 허물어야 할 마음의 벽은 더욱더 높이 쌓고 있으면서(인간관계에서)
높이 쌓아야 할 마음의 벽을 지금 무너트리고 있습니다(세상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비만
우리 마음의 비만(fat of heart)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비만이 생겨
욕심과 탐심의 노예가 될까바 조심해야 합니다.
마음의 자유함?
사랑하는 아기의 육신의 고통은
그녀의 죽음을 통해서라도
자유하였지만
아빠인 내 마음의 고통은
아직도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내안에 남아 아직도 자유하지 못하고 있으니 ...
마음의 절제
음식도 절제하고 생각도 절제해야 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절제해야 합니다.
마음의 절제란 어떠한 종류의 탐심의 유혹이라도 뿌리치고
자족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뭉클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나를 사랑해 주시는 신앙의 선배님들이
나의 힘든 마음을 이해에 줄 때
내 마음이 뭉클하다.
마음이 삐뚤어져 있는 사람
아무리 사람들 보기에 멀쩡해 보일지라도 마음이 삐뚤어져 있는 사람은
인생의 큰 위기를 통해서라도 좌절을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서라도 절망 중에 오히려 주님을 갈망하게만 될수 있다면
그/녀는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다시금 일으킴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네요 …
"나"의 수치스러운 점을 공개적으로 나누는 것은 안그랬던 것 같은데
"우리"의 수치스러운 점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네요...
마음이 힘든 상황을 바라보기 보다 …
마음이 힘든 상황을 바라보기 보다
그 상황을 주관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다.
마지막 대화?
사랑하는 가족과의
마지막 마음의 대화,
저도 그 마음의 대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길 원합니다.
마지막 사랑의 몸짓
장인 어르신이 숨을 거두시기 전에 장인 어르신이
사랑하시는 정 장로님의 목소리를 전화로나마 들으셨을 때 몸이 많이 떠셨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신 정장로님은 장인 어르신의 장례 예배 때 조사를 하시면서 많이 우셨습니다.
저는 장언 어르신이 숨을 거두시기 전에 정 장로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몸을 많이 떠신 것이
적어도 사랑하시던 정 장로님에게는 마지막 사랑의 몸짓이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정 장로님은 장인 어르신의 그 마지막 사랑의 몸짓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고 최분남 할머님,
중환자실에서 임종 예배를 드린 후
제가 할머님에게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산소호흡기를 끼신 상태에서
고개를 끄덕여 주셨습니다.
고 김창혁 목사님,
중환자실에서 암투병중에 계셨을 때
저에게 여전히 웃음으로 농담도 하시면서
헤어질 때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승리'하신 기억이 납니다.
고 Mark Dubrin 형님,
밀리워키 호스피스에서 저를 보자마자 엉엉 우셨습니다. '너에게 사랑을 주노니 ...'라는 영어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저 또한 울었습니다.
제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기 전에
전도폭발 진단 질문을 던졌을 때 질문이 다 마치기도 전에 그는 저에게 "I have faith"이라고 말했습니다.
고 유정숙 권사님,
12월 24일 월요일 새벽 12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거쳐 한국을 가고 있는데 약 4시간 후인 새벽 4시 30분에 소천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통해서도 유 권사님의 사랑을 느낌니다.
그것이 그 분이 저에게 보여주신 마지막 사랑의 몸짓이셨습니다.
이 분들 외에도 저는 여러분들의 죽음을 되돌아 볼 때에 그분들 한분 한분이 저에게 보여주신 마지막 사랑의 몸짓을 느낌니다. 귀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나기가 불편한 사람?
만나면 편안 사람이 좋겠지만
불편한 사람도 만나야 ...
만날 수 있을 때 무리를 해서라도?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사랑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될 수 있는데로 무리수를 둬서라도 만나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만남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만남들,
왜 주님께서 이러한 고통스러운 관계를 맺게 하시는지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사
우리의 고통스러운 관계를 설명해 주시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서둘러 해결해 주시지도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께서 주님의 주권속에서
우리의 만남을 주셨다(또는 허락하셨다)는 것을 믿고
주님 중심된 관계를 추구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점점 듭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만능 기도
감사 기도,
만능 기도.
하하
만일 내 사랑하는 딸이 미혼모라면?
만일 내 사랑하는 딸이 미혼모라면,
그래서 내가 손주를 돌봐야 한다면,
내 마음은 어떠할까 ...?
두 배로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사랑하는 딸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프고,
사랑하는 손주를 생각할 때도 마음이 아플테니 ...
만일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
결혼하겠다고 하면서 동성을 데리고 온다면
내 마음은 어떠할까 ...?
이러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이 현실을 나는 부모로서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만일 내가 산소호흡기에만
의존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
언젠가 아내를 공항에 데려다 주면서 아내하고 대화하다가
저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산소호흡기에만 의존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산소호흡기를 빼주면 좋겠다.’
그랬더니 제 말을 들은 아내는 아무 머뭇거림도 없이
곧장 “Me too”(나도)라고 말하였습니다. 하하.
아내의 반응을 들은 저는 웃으면서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
죽는 것을 두려워 할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랑하는 아내도 제 말의 동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으니
죽음 앞에서 이 세상에 미련을 갖지 말고 더욱더 다가 오는
저 세상인 천국을 사모하자고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한 1시간이 지나면 아내를 공항에 데려다 줘야하는데 ...
만족과 감사
불만족은 불평을 낳습니다.
그러나 만족은 감사를 낳습니다.
풍부함과 궁핍함 속에서 자족의 비결을 배워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길 ...
만족하고 감사해야 하는데 …
만족하고 감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욕심과 교만 때문인 것 같다.
말 잘하는 사람이 되기 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말 잘하는
설교자가 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말씀 선포자가 되고 싶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아론과 모세를 생각하면서)
말 조심해야겠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말아야겠다.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봐야겠지만
그 사람을 위하여 무엇은 말하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도 자주 해야할 듯...
말도 안되는 사랑입니다.
말도 안되는 사랑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평생 음탕한 고멜을 사랑하였다는 사실이 ...
더 말도 안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히 죽어 마땅한 죄인을
사랑하시사 자신의 생명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는 사실이 ...
이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도 말도 안되는 사랑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Michael P. V. Barrett, "LOVE DIVINE AND UNFAILING:
THE GOSPEL ACCORDING TO HOSEA"를 읽으면서)
말보다 웃음이
교회에서는
말이 많기 보다
웃음이 더 많아야 합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자.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컴퓨터 키고, 핸드폰 켜서 인터넷 사역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자.
밤에 잠들기 전에 TV보면서 인터넷 사역하던지 책보던지 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기도하자.
말씀 묵상과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자.
말씀 순종의 기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 후
우리에게 그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말씀에 찔림을 받는다는 것
설교에 은혜받았다고 한 후
예배당 밖으로 나가서 아무 죄책감 없이 똑같이 죄짓고 사는 것 보다
말씀에 찔림을 받아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 조금이라도 고민하면서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것이 더 나은 듯 ...
말씀을 듣는 자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 저 사람이 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당신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세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말씀을 들어야 힐텐데 ...
말씀을 받는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할 자세가 안되있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뿌려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할 위험과 확률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이 은혜로 아니면 율법으로?
내가 전파하는 설교 말씀이 은혜로 다가가기 보다 율법으로 다가와
성도님들을 위협하기 때문에 성도님들은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읽다가 든 생각)
말하긴 쉽지요.
내 눈으로 보면
남이 하는 것이 쉬워보이는데
왜 저리도 잘 못할까 하는 비판적인 생각이 앞섭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해보면
그 일이 그리 쉽지만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맛을 잃어갈 때 …
내가 좋아하고 즐겨하던 것들에 대하여 점점 그 즐거운 맛을 잃어갈 때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즐겨하시는 것에 대하여
점점 그 즐거운 맛을 보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몰아가시는 것인 줄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우 경계해야 할 욕심
욕심은 불행의 지름길이지만
자족하는 마음은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매우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 보이기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행한 일이 더 잘 보이고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맨날 가르치려고만 하는 우리 목사님?
성도님들 입장에서 볼 때에
우리 목사님들이 "맨날 가르치려고만 하는 분"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 좋을 것 같네요...
먼저 가정에서 실천해야 …
설교한 내용을
먼저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말씀 인격화 되어가는 삶을 살아야 할텐데요 ...
멀리 있으면 …
'멀리 있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거자일소(去者日疎) (?)].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현상은 '멀리 있으면 마음이 더 가까와진다'입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멀리 있는 형제/자매들을 더 마음으로 품고 기도할 때,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 그 지체들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견딜 수 없는 마음')이
우리 마음에 불붙듯 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멈출 수 없는 사랑?
멈출 수 없는 주님의 이타적인 사랑,
그러나 멈춰야할 나의 이기적인 사랑.
모순된 신앙인?
가정에서 부부 관계나 부자(모녀)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라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그리 열심히 교회를 섬기면서
보이는 육신의 가족 식구들을 사랑하지 않고 섬기지 않는다는 것은
참된 신앙인이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목사-메니아 교인들?
목사님을 지나치게 싫어하고 미워하는 안티-목사 교인들도 문제지만
목사님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목사-매니아 교인들도 문제입니다.
목사님과 성도님의 관계에서 …
성도님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후 목사님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을 때
목사님은 그 성도님을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더 나아가서 목사님은 그 성도님을 위로하고 세워줘야 합니다.
목사님이 하나님께 회개한 후 성도님에게 정중히 사과했을 때
성도님은 상처와 오해와 분노 속에서 그 목사님을 용서하기를 거부하지 말고
그 목사님의 사과를 받아들여 용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성도님은 그 목사님의 말씀에 다시금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사님과 장로님도 인터뷰를 받아야?
교회 당회가
교회에서 함께 섬길 부교역자나
성가대 지휘자 및 반주자를
인터뷰하고 있지만
거꾸로 부교역자, 지휘자, 반주자도
그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을
인터뷰(?)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ㅠ
목사님들의 기쁨은?
우리 목사들은
성도님들이 우리의 말에 순종할 때에 기뻐하기 보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므로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에
더 기뻐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목사답지 못한 사람
안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살펴볼 때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을 목사로 세우셨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교인들 앞에서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신자들 앞에서까지
내 자신이 목사답지 못한 사람임을
드러내서야 되겠는가. ㅠㅠ
목사될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목사될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그 자격을 부여하시사
목회 사역을 하게 하신 것은
결코 우리가 잘나서도 아니요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목사될 자격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격이
오직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무기력한 그리스도인
지금 우리는 허물어야 할 마음의 벽은 더욱더 높이 쌓고 있으면서(인간관계에서)
높이 쌓아야 할 마음의 벽을 지금 무너트리고 있습니다(세상과의 관계에서).
무너져야 할 선입관
우리 안에 있는 선입관,
주님께서는 이 선입관을 어떻게 무터트리시는지 기대가 됩니다.
무서운 사단의 전략
이 사단의 전략,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단은 먼저 우리들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부각시킨 후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단의 전략은 우리의 작음과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의 크기를 더 크게 부각시키므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나 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저렇게 주님을 위해서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낙심케 하며 좌절케 합니다.
이렇게 낙심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단은 이 모든 미혹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감당케 하시면
어떠한 큰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위해서 믿음으로 시도할 텐데
사단은 아예 시작도 못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단은 큰 일을 부각시키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더욱더 작게 보게 만들고
또한 그는 큰 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므로
우리로 하여금 낙심케 하고 좌절하게 하며 절망하게까지 만듭니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만약 당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1시간밖에 없고,
단 한 번의 전화 통화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전화를 하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무슨 소용이랴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데 ...
사람은 잃어 가면서 일을 얻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랴 ...
무엇에 익숙해져 있는가?
비정상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으면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 이상하고 잘못 된 줄로 생각할 수 밖에 ...
무엇으로 인해 감사?
환경으로 인해 감사하기 보다 사람으로 인해 감사하자.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후)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그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지라도
그 상황을 극복해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없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무엇이 더 낫나요?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영적으로는 변화를 받는 것이
경제적으로 풍부하면서 영적으로는 변화가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무엇이 더 낫습니까?
공동체 안에서
그저 어느 정도것 제한하여 형식적으로 친교하는
30명의 형제보다
주님 안에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실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과 삶을 공유하며 분유하면서 교제하는
3명의 형제가 훨씬 낫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돈 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건만
돈을 더 얻고자 사람을 잃고 있으니 ...
사람을 잃어가면서까지
돈을 얻고자 하고 있으니 ...
한 사람을 얻는 것이 수 많은 돈 보다 귀한데 ..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교회가 세상과 분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세상과 분리되 있지만
지금 교회는 세상과 화합(harmony)하고
교회 안에서는 불화(disharmony)가 끊잉이 없습니다.
무의미한 기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무의미한 행동의 변화
마음 속 깊은데서 부터 변화가 없으므로
존재의 변화가 없는 가운데서 있는
행동의 변화는
무의미하고 무기력합니다.
무의미한 회복
죄를 지었다고 인식하며 인정하고 돌이키는
회개가 없이 어떻게 회복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묵상한 말씀을 실천에 옮겨야 하는 상황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오늘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빌립보 교회의 두 여인들이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한 것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묵상했다 (빌4:2-3).
그런데 나는 조금 전에서야 그 묵상한 말씀을 실천에 옮겨야 할 상황에
내가 놓여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령 하나님께 감사.
이젠 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하여 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그 두 여인들이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화합케 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
성령님께서 주관하여 주시고 인도해 주시길 기원한다.
문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욕심과 시기를 버리기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자신과 깊은 상처가 나도록 끝까지 싸워야 한다.
주님께서 승리케 하실 때
그 상처는 예수님의 흔적이 되지 않을까?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입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아닌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사람의 중심을 보려고 애쓰기보다
사람의 외모에 취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그리스도인 싱글 자매/형제는
입술로는 미래 배우자의 신앙을 제일 중요시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 마음으로는 그/녀의 외모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입술로는 자녀의 배우자감으로
신앙과 성품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 마음으로는 스펙이나 경제권 등 외모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인들은 우리들의 목사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중요시하기 보다
목사님의 입술로 선포하는 (축복) 설교와 겉으로 보이는 언행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목회자의 마음과 성품보다
그의 외모나 스펙 등을 더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을 때에도
우리 그리스도인 시민들의 투표의 기준은 대통령 후보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보다
그의 외모(그리스도인 아니면 교인?, 교회 직분자? 등등)를 보고 투표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람의 진실성 보다
거짓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면 내 배우자/내 사위
또는 며느리/내 교회 목사님/내 나라 대통령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입니다.
바로 우리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너무 다릅니다.
지금 우리의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과 너무 다릅니다.
문제는 잘 보면서 ...
문제는 잘 보이고
그 문제에 대해서 쉽게 말하면서
그 문제에 대하여 아무 해결을 제안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그 팀이나 그룹이나 공동체를 세워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미래, 현재 그리고 과거
미래를 소망하며 기대합니다.
현재를 인내하며 견딥니다.
과거의.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미미한 존재?
내가 사람들 보기에만 미미한 존재가 아니라
내 자신이 보기에도 별 볼일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이 사실 하나로만도 나는 충분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미안한 마음
미안한 마음이 많기에 ...
미움의 씨
사탄은 우리 마음에 미움의 씨를 뿌립니다.
그 미움의 씨를 우리가 그냥 내버려두면
자라나서 싹이 돋고 나무가 되어 죄악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뿌려진 미움의 씨를 그냥 내버려 두면 안됩니다.
우리는 즉각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미워도 다시 한번
바라봐 주세요
미워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세요
미워도 다시 한번
용서해 주세요
미워도 다시 한번
사랑해 주세요.